벤자민학교에 재학 중인 서혁준, 김은비, 성규빈 학생.(왼쪽부터)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벤자민학교에 재학 중인 서혁준, 김은비, 성규빈 학생.(왼쪽부터)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생애선택자유지수가 낮은 한국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대표적이다. 입시 경쟁을 견디지 못하거나 학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는 것이 대안학교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지만, 최근의 대안학교는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거부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앞으로의 진로 선택을 고민하도록 돕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그중 한 곳이다. 사단법인 국학원이 설립한 벤자민학교는 인성교육의 가치를 강조하는 대안학교다. 1년 과정으로 운영되며 한 달 학비는 38만원이다. 정규교육을 2년밖에 받지 않았음에도 스스로를 연마해 미국사(史)에 이름을 남긴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에서 이름을 땄다.

벤자민학교는 학교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교실이 없다. 숙제도, 시험도 없다. 공부를 하라고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무엇을 할지를 교육과 체험과정을 학생이 직접 설계해야 한다. 멘토와 담임교사가 옆에서 돕긴 하지만 선택은 학생이 한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셈이다. 학습관은 서울 압구정동과 부산, 대구 등 전국 18곳에 있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학습관을 찾아 담임교사에게 학습지도를 받고 일주일에 두 시간씩 인터넷으로 독서토론을 한다.

갑자기 주어지는 선택의 자유는 준비가 안 된 학생에겐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 대부분이 2~3개월, 길게는 1학기를 통째로 적응 기간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주위의 도움을 받으면서 스스로 극복한다. 김나옥 벤자민학교 교장은 “처음에는 학생들이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놀라지만, 또래들과 캠프를 다녀오고 그들이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차츰 스스로 선택하는 데 익숙해진다”며 “자기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학생들 대부분이 의욕을 갖고 열심히 한다”고 했다. 3월부터 학교에 다니는 2기 학생 479명 중 중도에 포기한 학생은 현재까지 40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선택의 자유를 모토로 내세우는 벤자민학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입학생들은 모두 최소 3개월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는 3월에는 몇 번씩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는 학생이 많다. 하지만 새로 자리를 얻은 학생들은 거울을 보며 표정 연습도 하고 일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돈을 버는 활동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알게 된다. 실제 세상과 부딪히며 장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도 갖는다.

교육과정 스스로 선택

김나옥 벤자민학교 교장
김나옥 벤자민학교 교장

상설 대안학교로는 국내 최초로 설립된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도 학생들의 선택을 기반으로 교과 과정을 운영하는 대안학교다. 중·고교를 통합한 6년 과정으로 운영되는 간디학교는 획일적인 기존 공교육의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로 1997년 설립됐다. 중등과정은 2002년 분리해 제천으로 이전했다.

산청간디학교는 2개의 교실 동과 한옥풍 교무실, 강당 겸 식당, 도서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벤자민학교와 달리 간디학교는 교육부로부터 대안학교로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간디학교를 졸업하면 일반 중·고교를 졸업한 것과 같은 졸업장을 받는다. 학비는 급식비와 기숙사비를 포함해 한 달에 40만원 정도 든다.

간디학교 교육과정의 기본방향은 이렇다. 학생은 자신의 관심과 장래희망을 고려해 스스로 시간표를 짠다. 담임교사, 학부모가 도움은 주지만 선택은 역시 학생이 한다. 학습능력이 된다면 학년과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단계의 수업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교과과정은 1년 주기로 학부모 및 학생의 의견을 수렴해 계속 보완된다.

간디학교 중등과정 학생들은 요리와 농사, 목공, 옷 만들기 등 자립의 기초가 되는 다양한 필수·선택 과목을 배운다. 이 과목들과 함께 1학년 때는 지역문화와 풍물체험, 2학년 연극체험, 3학년 제주도 도보 및 타 대안학교 체험 등도 한다. 고등부로 올라가면 필리핀 해외체험, 평화와 진로 프로젝트 등 더욱 다양한 과목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6학년 때는 외부 인턴십과 인문학캠프 등 실용적인 과목을 배운다. 조생연 산청간디학교 교감은 전화인터뷰에서 “공장식으로 규격화된 노동자를 생산해 내는 데 초점을 맞추던 기존 공교육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생겨난 운동이 대안학교 설립”이라며 “대안학교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맞춤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교육환경에 적합한 학교 형태”라고 했다.

현재 교육부로부터 정식으로 인가받은 국내의 대안교육 특성화 중·고교와 대안학교는 총 62개교다. 미인가 대안교육시설은 지난해 기준 170곳에 달한다. 교육부 학생복지정책과의 강병구 과장은 전화통화에서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중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교육부도 자유학기제 등 새로운 제도를 통해 학생들의 선택을 더욱 보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교육 공약인 자유학기제는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는 대신 토론·실습 수업이나 직장 체험활동과 같은 진로교육을 받는 제도로, 대부분 중학교 1·2학년의 한 학기를 정해 시행하고 있다. 새해부터 전면시행될 예정이다.

인생에 질문을 던져라

학생들만 획일화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월 서울 이태원에 방송인 출신 작가인 손미나씨가 ‘손미나의 인생학교’의 문을 열었다. 일반인을 수강 대상으로 하는 이 학교는 스스로 행복을 찾는 방법을 가르친다. 어떻게 하면 만족감을 주는 일을 찾을 수 있는지, 어떻게 관계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을지, 한 사람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을지, 어지러운 세상에서 과연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 등이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표 질문들이다.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수업을 듣는 비용은 1회 8만8000원이며, 여러 번 들을 수업을 미리 구매할 수도 있다.

인생학교는 스위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2008년 영국 런던 블룸즈버리에 처음 세웠다. 일, 사랑, 관계, 죽음 등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을 문화, 인문학, 철학, 심리학 등과 연관지어 더 좋은 삶을 고민하도록 한다. 서울에는 세계에서 10번째로 세워졌다. 조승희 인생학교 홍보팀장은 알랭 드 보통이 손미나씨를 한국 파트너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KBS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선 점이 인생학교가 지향하는 바와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사진도 화려하다. 현재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으로 활동하는 손씨 외에도 최인아씨(전 제일기획 부사장·전 칸국제광고제 심사위원), 김지윤씨(좋은연애연구소 대표), 다니엘 튜더(작가·현 바이라인 수석큐레이터,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강의한다. 이들은 삶을 겪어오며 쌓은 경험과 지식으로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돕는다. 한 가지 길을 거부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직접 찾아나서려는 움직임이 한국 사회에서도 조금씩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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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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