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명원 설립의 주역 최진석 교수(왼쪽)와 배철현 교수. 최진석 교수는 원장을 맡아 총괄하고, 배철현 교수는 조직 및 기획을 맡았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건명원 설립의 주역 최진석 교수(왼쪽)와 배철현 교수. 최진석 교수는 원장을 맡아 총괄하고, 배철현 교수는 조직 및 기획을 맡았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이 시대를 버리십시오. 저희 세대까지는 열심히 하면 밥 먹었고, 남의 것 베껴서도 밥 먹었습니다. 그러나 30년 후 여러분의 시대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방식이 아니면 답이 없습니다. 교수님들께 당부 드립니다. 학생들을 이 시대의 반역자로 키우십시오. 이 시대를 거역해야 다음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없던 학교’로 불리는 건명원(建明苑)을 설립한 오정택 이사장의 말이다. 오정택 이사장은 40년 가까이 단추 제조 한 우물을 파서 성공한 ㈜두양문화재단 이사장. 그는 수십 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돈을 가치 있게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독서광으로 소문난 그는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다가는 선진국 진입에 실패하고, 오히려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가 찾은 답은 ‘교육’이었다. 한 나라 미래의 명운(命運)이 달린 분야. 그는 평생 땀 흘려 모은 사재 100억원을 ‘새 시대를 여는 인재 양성’을 위해 쾌척했다. 교육 공간으로 쓰라며 북촌에 있는 자신의 한옥까지 내놓았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건명원은 파격 그 자체다. 교수진도, 수업 내용도, 시스템도 파격이다. ‘21세기 융복합 인재 양성소’로 표방한 이곳의 최강 무기는 스타 교수진이다. 전국 대학에서 강연 잘하기로 소문난 인문·예술·과학 분야 교수 8명을 그러모았다. 최진석(서강대 철학)·배철현(서울대 종교학)·김개천(국민대 공간디자인학)·김대식(카이스트 전자전기공학)·김성도(고려대 언어학)·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정하웅(카이스트 물리학)·서동욱(서강대 철학) 교수. 이들은 ‘실패를 각오한 특공대’를 자처한다. 수업은 매주 수요일 저녁 4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교수의 강의가 끝나면 피 튀기는 토론이 이어진다. 때론 건명원 소속 다른 교수가 청강도 한다.

1기 건명원 정원은 30명. 원생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은 별도로 없다. 19~29세 지구인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2기 건명원은 더 개방적이다. 1월 22일부터 2월 4일까지 모집하는 2기생의 자격요건은 ‘만 19~35세의 사람’이면 된다. 학력, 소속 등 기재란도 없다. 수업료는 무료다. 대신 고강도의 공부량이 요구된다. 1기 정원 30명 중 최종 수료생은 11명에 불과하다. 이들에게는 해외여행 경비 500만원이 지급됐다.

건명원 1년 수업과정이 마무리된 지난 1월 초,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건명원에서 최진석 교수와 배철현 교수를 만났다. 두 사람은 건명원 설립의 핵심 주역이다. 최진석 교수는 원장을 맡아 건명원 교육 방향을 잡았고, 배철현 교수는 기획 및 조직을 담당한 행동대장이다. 오정택 회장에게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언론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다는 그는 교수들을 통해 “당신들의 취지가 곧 내 뜻”이라는 말만 전해왔다.

‘ㅁ’ 자형 건명원 내부는 소박하고 아늑했다.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오른쪽이 수업 공간이고, 정면 복도 뒤의 방이 일명 ‘교수실’이자 다도실이다. 한옥을 개조한 건명원은 학교라기보다 서당에 가까웠다. 디딤돌에 신발을 벗어두고 교수실로 들어가 두 교수와 마주 앉았다.

- 입구의 나무현판 ‘建明苑’이 분위기 있다.

배철현(이하 배) “최진석 원장님이 직접 쓰신 거다. 건물 리모델링은 김개천 교수가 맡았다.”

최진석(이하 최) “작게 써서 확대한 건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다.(웃음) ‘건명원’은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라는 뜻이다.”

- 건명원 설립 1년이 지났다. 애초의 취지대로 운영됐나.

“‘해보니까 결과가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교육은 결과를 바로 기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교육의 가장 큰 덕목은 멀리 보고 믿고 꿈을 공유하는 것이고,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미래를 준비하는 인재 배출이다. 미래를 열게 하려면 지금의 문법(文法)을 주입하면 안 된다. 원생 각자가 자기만의 문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꿈과 배짱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젊은이들이 없으면 사회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교육 공급자들이라면 ‘이런 인재를 계속 배출해 내도 좋은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 뽑힌 원생들은 각자가 자신만의 문법을 가진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이들 역시 비슷비슷하다. 요즘 학생들은 저돌적인 힘이 없다. 점잖은 합리주의자들이다.”

- 그런 원생들이 이곳에서 배우면서 달라지던가.

“눈빛이 달라졌다. 처음부터 기준을 높게 잡았다. 단 한 명이 살아남더라도 엄격하고 강도 높은 공부를 요구했다. 무단결석을 한다든지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가차없이 퇴출시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창의적 전사’를 발견해 내려 했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다가 몇 달 지나자 잘 따라왔다.”

“맞다. 눈빛이 달라졌다. 짐승같이 바뀌었다고 할까. 소위 야성(野性)이 생겼다. 건명원에서 지식을 주는 건 별 의미 없다. 이 시대의 꿈을 공유하고 창의적인 돌파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많던 1등은 다 어디에 갔나. 이미 있는 시스템을 흡수해서는 내면의 동력을 상실한다. 배 교수님이 늘 말씀하시듯 ‘너는 어디에 있는가’를 늘 각성해야 한다. 각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이미 존재하는 프로그램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거다.”

건명원 전경.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건명원 전경.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 건명원 수료생들은 이제 어떤 길을 걷게 되나.

“각자 자신의 길을 걸을 거다. 대기업에서 건명원 출신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원생들이 멀리 내다봤으면 좋겠다. 이곳은 이병철 회장을 만드는 학교지, 이병철 회장이 만든 회사를 보내는 학교가 아니다. 제2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를 양성하는 곳이 되고자 한다. 이곳이 원생들에게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1등, 2등이 아니라 일류(一流), 이류(二流)다. 1, 2등은 이미 있는 시스템 안에서 매겨지는 등수지만 일류, 이류는 흐름을 다르게 가져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인재들에게 기대하는 건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거다. 자신이 어떤 분야에 가 있든 이미 있는 것들과 결별하려는 노력을 해서 새로운 시대의 인재가 되길 바란다. 정보통신 분야든, 군대든, 정치 등 어떤 분야든 좋다. 이 시대는 모든 분야가 서로 연결돼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반역자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 반역자라.

“건명원 건배사가 ‘반역자’다. 내가 ‘건명원’ 외치면, 원생들은 ‘반역자’ 한다. 반역자란 이미 있는 모든 것과 결별하는 거다. 과거의 나, 직업 형태, 내가 아는 지식, 사회 시스템, 지식습득 방식, 지식유통 방식 등 모든 것과 말이다.”

“이런 건명원의 취지에 이미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다. 얼마 전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만났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지금 당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아는가. 건명원이 15~16세기 메디치가(家)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란다. 메디치 가문이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해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듯, 이곳에서 길러낸 인재가 새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되길 기대한다. 원로 교수들이 건명원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이다.”

- 건명원을 통해 배출해 내려는 인재상은.

“자기의 욕망과 시대적 사명이 일치하는 인재다. 지성이 높아질수록 자신과 옆 사람을 보는 능력이 고도화된다. 배 교수님이 늘 강조하시는 ‘공감과 연민’이다. 그걸 갖게 된 인재의 눈에는 시대가 보인다. 이 정도가 돼야 스티브 잡스나 진시황, 세종 같은 영웅이 된다.”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싹트고 전 세계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된 데에는 페리클레스라는 23세의 젊은 지도자의 역할이 컸다. 페리클레스는 비극작가 아이퀼로스 등 당시 최고의 인재들과 의기투합해서 원형극장을 만들었다. 시민정신을 고양하기 위해서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비극 ‘페르시아인들’을 보면서 적군인 크세르크세스의 처지에 공감하고 같이 울었다. 자기 안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원수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관조’ 수련이 된 거다. 이런 시민정신이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페리클레스를 중심으로 한 몇 명의 인재가 한 시대를 진일보(進一步)시킨 거다.”

- 그런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어떤 수업을 하나.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두 가지 어젠다는 ‘창의력과 상상력’이다. 이 두 가지가 없으면 굶어 죽게 생겼다. 우리 사회는 창의력이 없는 사회다. 단군 이래 가장 잘나간다는 삼성전자를 봐라. 삼성전자와 애플을 비교하면 답이 나오지 않나. 창의력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튀어나오는 거다. 인격적 주체가 준비되지 않는 한 창의력은 발휘될 수 없다.”

- 여기서 인격이란.

“그 사람의 내면 동력의 형태다. 자기 자신을 세우는 것이고. 우리는 자기가 자기 삶을 산다고 하지만 아니다. 대부분 우리 안에 산다. 우리(we)는 나를 가두는 우리(cage)다. 우리 속에서 우리의 관념이나 이념 속에 용해되지 않도록 자기를 보살피는 일, 이것이 자기를 지키는 일이다.”

- 라틴어 수업과 도덕경 수업이 빡빡하다. 암기 시험도 있고. 이런 과정은 왜 필요한가.

“언어 공부는 자신의 무지(無知)를 가르쳐준다.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정직해야 한다. 1과를 아는 사람이 2과는 모르고, 2과를 아는 사람이 3과는 모른다. 자기가 아는 만큼만 행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면과 인내도 가르쳐준다. 또한 언어는 자신의 무아상태로 들어가는 가장 좋은 계기다. 해당 언어 문화권으로 파고들어 가는 과정이자,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수련이다.”

- 건명원 구상부터 설립까지 불과 5~6개월 걸렸다. 어떻게 가능했나.

“최 교수님은 이런 구상을 오랫동안 해 오신 듯하다. 나 역시 남이 간 길은 따라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고. 중요한 시도를 해 보자고 덤볐는데 운이 좋았다. 오정택 회장님, 최진석 원장님, 다른 교수들과 뜻이 잘 맞았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준비된 사람에게 따르는 우연한 행운.”

- 2기 운영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면.

“절반 정도의 교수진이 교체된다. 최무영 서울대 교수(물리학),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정치학), 박훈 서울대 교수(동양사학),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문예창작과)가 새롭게 합류한다. 수업은 더 빡빡해진다. 주1회에서 주2회로 늘린다. 수요일 수업에 이어 토요일에는 걷기 명상을 할 거다. 지식을 육화(肉化)하는 프로그램이다. 걷기 명상 장소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또 배철현 교수의 라틴어 수업, 내가 하는 도덕경 수업이 두 배로 늘어난다. 이를 통해 각각 서양, 동양식 높은 차원의 관리 능력을 배우게 될 거다.”

- 건명원 강연은 매주 KBS 1TV ‘생각의 집’을 통해 방영됐다. 솔직히 다른 인문학 강의와 별 차별성이 없어 보이더라. 교수의 강의 뒤에 이어지는 학생들과의 피 튀기는 수업이 건명원의 참모습 아닌가. 이런 부분이 공개되지 않아 아쉬웠다.

“애초에는 건명원이 지향하는 교육이념과 인재상을 사회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언론과 방송 노출을 위해 교수들이 직접 나섰다. 내가 KBS콘텐츠본부장과 조선일보 지인 등에게 연락해 만나기도 했다. 건명원 강의를 방송으로 내보낼 경우 장단점이 분명했지만, 초창기에는 장점이 크다고 판단했다.”

내부에서 수업하는 모습. ⓒphoto 이진한 조선일보 기자
내부에서 수업하는 모습. ⓒphoto 이진한 조선일보 기자

“맞다. 우리가 30명의 인재를 배출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훈고의 기풍’에 갇힌 나라를 ‘창의의 기풍’으로 옮겨가게 하려면 사회적인 메시지 제공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메라 때문에 위축도 됐고 수업에 방해도 됐다. 2기부터는 방송으로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 건명원 교수가 학생들 틈에 섞여 다른 교수의 강의를 듣기도 하더라. 낯선 광경이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다른 교수의 강의실은 신성불가침 영역이 아닌가.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교수가 다른 교수의 강의실에 들어가는 건 실례이고, 들어가더라도 질문이나 코멘트를 하는 건 상당한 실례다. 그런데 건명원 교수들은 아니다. 교수들이 서로 다른 교수의 강의를 들으려 욕심 내고, 그 교수의 강의를 듣고 질문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게 아니라 이런 거 아니냐’라는 반박도 한다.”

- 기분 나빠하지 않나.

“그런 걸 기분 나빠하는 분이라면 건명원에 오시지 않는다.”

- 건명원 운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뭐였나.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스펙 좋은 학생들이 너무 견고해져 있는 거다. 견고란 지식의 틀이다. 대부분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읽은 것 위주로 말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자기 말을 할 줄 모른다.”

- 이런 스펙 좋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더 어려운가.

“그렇다. 꿈을 가지려면 자신에게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가 가진 것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한다. 열심히 했으니 값지게 여기는 거다. 있는 틀 안에서 받아들이려 하지, 틀을 깨려 하지 않는다.”

- 그러고 보니 배철현 교수가 얼마 전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유사한 말을 했다. “공부란 편견에 둘러싸인 나로부터의 결별 선언”이라며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건 편견이자 오만”이라고. 두 분의 교육관이 상당히 닮았다.

“(웃음) 그래서 내가 처음에 최 원장님만 인터뷰하면 된다고 한 거다.”

“장자는 ‘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해서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모르는 것으로 넘어갈 때 발생하는 것이 바로 질문이다. 지식인이라면 자신이 아는 것이 말해주지 않는 것으로 넘어가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 질문 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이 나오려면 자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가 없는 사람은 질문을 못한다. 독립된 주체가 아니면 질문이 없다. 우리나라 교실에 질문이 없는 이유는 ‘나’가 없기 때문이다. 독립된 주체의 ‘나’로서가 아니라 다 ‘우리’ 중의 한 명으로만 있다.”

- 건명원 교실에서는 질문이 점점 많아지던가.

“질문의 질이 달라졌다. 초창기에는 원생들에게 질문을 하지 말라고 했다. 진짜 질문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배경지식 내에서 하더라. 예를 들어 키케로의 국가관을 배우면서 자신이 아는 국가관에 빗대어 질문을 하는 식이다. 그건 참된 질문이 아니다. 키케로를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생기는 질문이어야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질문다운 질문이 쏟아졌다.”

- 1년간 건명원이 걸어온 길에 점수를 주자면.

“100점이다. ‘사회적 파급력’ 면에서 매긴 점수다. 건명원이라는 교육기관이 지향하는 바를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본다. ‘생각의 집’이란 프로그램으로 방송됐고, 한 일간지에는 ‘제2의 건명원을 꿈꾸며’라는 칼럼이 실렸다. 건명원이 하나의 브랜드 네임이 된 거다.”

“나 역시 100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안 했는데 우리는 했으니까. 머릿속 구상만으로는 하루 동안 나라 100개도 세울 수 있지 않나.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비판에는 일류지만 실천력이 약하다.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말로만 비판하지, 덤비는 사람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일류 비판가보다 삼류라도 행동가가 필요하다.”

- 먼 훗날, 건명원 출신들이 건명원을 어떤 곳으로 기억하길 바라나.

“얼마 전 원생들이 ‘건명원을 내 고향으로 만들겠다’ ‘내 꿈의 뿌리로 만들겠다’고들 하더라. 앞에서는 그냥 웃었지만 집에 오면서 굉장히 뿌듯했다.”

“‘나 건명원 나왔어’ ‘건명원 O기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곳.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건명원 문을 연 첫날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입학식 첫날 ‘지금 이 순간이 거룩하다’는 말을 했다.”

“배 교수님이 당시 그 말씀을 하면서 울먹거리셨다.(웃음)”

“생전 처음 가 본 산의 정상에서 몰려온 감동이라고 할까. ‘내 인생에서 이런 순간이 몇 번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스텝이 될 것이라 믿는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그 시작이 장차 큰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기를 기대한다.”

- 건명원 설립자 오정택 이사장을 인터뷰하지 못해 아쉽다. 가까이에서 본 오 이사장은 어떤 분인가.

“우리에게 아무리 간절한 꿈이 있어도 오 이사장님이 없었으면 건명원은 존재할 수 없었다. 오 회장은 내가 본 매우 귀한 자본가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이 주도권을 가지고 끌고가는 사회다. 자본이 건강해야 자본주의 사회가 건강하다. 우리나라는 부자는 있는데 자본가는 없다. 자본에는 시대의식과 계급성이 들어가야 한다. 돈이 다른 것을 열려는 기능을 해야 자본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돈이 돈으로만 있고 자본으로 이행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오 회장은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자기가 가진 돈을 자본으로 쓸 수 있는 귀한 기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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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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