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photo 이명원 조선일보 기자
지난 1월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photo 이명원 조선일보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16일 국회 연설을 통해 1993년 처음 불거진 북핵 위기 이후 역대 정부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햇볕정책 10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였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북한과의 협상, 대화의 끈을 한번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20여년간 이어져온 만성적 문제인 핵 포기 카드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은 한 그 끈을 끊어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대북정책은 북한의 비핵화에만 초점이 맞춰진다고 봐야 한다”며 “북한이 우리 내부를 흔들기 위해 남북고위급회담이나 이산가족상봉 등의 대화 재개를 요구할 수 있지만 비핵화 논의가 전제되지 않은 대화에는 우리가 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국내 정치 문제에서 냉철한 승부사의 기질을 보여온 박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배수(背水)의 승부수를 꺼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 핵게임의 틀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핵화 전제되지 않는 협상은 없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핵 게임의 종착지도 분명하게 언급했다. 북한이 핵 포기 등 실질적인 변화의 길로 들어서지 않을 경우 정권 붕괴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체제 붕괴’를 공식 언급함으로써 한반도 핵 게임이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 가능성까지 열어둔, 종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올라섰음을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지금부터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 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시작으로 ‘레짐 체인지’까지 언급하며 북한 옥죄기에 나선 것은 그간의 대북 정책 기조에 비춰볼 때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한 승부수다. 특히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는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등의 도발을 당한 이명박 정부도 꺼내들지 못한 카드였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의 선(先) 핵포기를 전제로 하지 않았다는 게 지난 대선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던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설명이고 보면 박근혜 정부의 이번 대북 강경 조치는 반전(反轉)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충실했다. 임기 초반부터 전임 이명박 정권 때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어떻게든 녹이려고 애썼던 측면이 있다. 북한이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취임 초부터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었지만 그 여파로 가동 중단된 개성공단을 7차례의 실무회담 끝에 166일 만에 정상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에도 박근혜 정부는 전임 이명박 정부가 취한 5·24 대북 제재를 풀고 북한과의 교류를 정상화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다. 2014년 5·24 조치 이후 처음으로 민간단체의 대북 농업지원을 승인했고, 2014년 7월 발족한 통일준비위원회에서는 북한 식량난을 돕자는 취지에서 ‘연해주 농업단지 공동개발 등 남·북·러 삼각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대북 온건책의 밑바닥에는 스스로의 경험도 녹아 있다는 게 박 대통령 주변의 말이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 의원은 “박 대통령은 평소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다”며 “북한 정권과도 만나면 대화가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과의 3박4일간의 만남에서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설치, 금강산댐 부실공사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 등의 제안을 했고 이에 대해 북한이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을 높이 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펴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북한에 다녀온 이후 나는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것은 진심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야만 발전적인 협상과 약속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썼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김정일의 뒤를 이은 김정은을 지난 3년간 상대한 후 결국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를 접고 말았다. 북한 정권에 대한 기대가 거꾸로 절망과 분노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앞서 인용한 친박 의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박 대통령은 본래 스타일상 어떤 문제든 스스로 설정한 임계점이 있다. 성의를 보여온 상대방이 자신이 정한 신뢰의 데드라인을 넘어버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간다. 그런데 김정은이 결국 박 대통령이 설정해 놓은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설정해 놓은 북한 관련 임계점은 적어도 안보 분야에서는 뚜렷했다. 북한과의 교류와 대화를 중시하면서도 안보에 관한 한 일관되게 선(線)을 지켜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가 이른바 ‘레드라인(red line)’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오래전부터 보여 왔다. 우리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레드라인을 설정하지 않을 경우 북한의 핵 위협에 질질 끌려가며 북핵 위기가 만성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말기였던 2006년 11월 ‘서초포럼’ 연설에서 “지난 10년간의 대북 정책은 완전 실패”라며 “레드라인을 정해서 (북핵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대가 절망과 분노로 바뀐 배경

실제 김영삼 정부부터 이어져온 북핵 문제에 대해 역대 정부들은 레드라인을 지키지 못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는 북핵 문제를 외면하고 축소하면서 문제를 키워온 측면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의혹 등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보였고 노무현 정권에서는 북한이 2005년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하고 2006년 1차 핵실험에 성공했는데도 자위권 운운하며 문제를 희석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북한이 ‘핵은 외부 위협에 대한 자위용 억제 수단’이라고 한 것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강수를 빼든 직접적 계기는 지난 2월 7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였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7일 오전 9시30분 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곧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고, 미사일 발사 4시간 반 뒤에는 한·미 국방당국 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위한 협상 개시를 선언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그 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연이어 통화한 끝에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개성공단 폐쇄 카드는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 실험 이후 박 대통령에게 올라온 대응책 중 하나였는데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만지작거리던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대통령이 결국 빼들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지난 4차 핵실험 이후 국방부와 NSC 등에서 인질화 등의 이유로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통일부는 거기까지는 안 가고 ‘잠정적으로 문을 닫는다’는 정도로 가닥을 잡았었는데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대통령이 결국 폐쇄를 결정했다”며 “2월 10일 개성공단 폐쇄 결정 2~3일 전부터 사실상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상태에서 NSC 논의와 건의를 받아들여 폐쇄하는 형식을 밟았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내리기까지에는 중국에 대한 대통령의 실망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중국을 남북관계 개선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며 대중(對中)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박근혜 정부 1기 국정원장인 남재준씨 같은 대북강경파들은 이런 박 대통령의 접근을 ‘중국 환상론’이라고 칭하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박 대통령은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중국의 별다른 태도 변화가 보이지 않자 눈에 띄게 실망감과 분노를 드러냈다고 한다. 참모들에게 ‘더 이상 중국의 역할에 대해 기대하지 말라’고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시진핑 주석과의 첫 통화도 거의 한 달 만인 지난 2월 5일에야 이뤄졌다. 최근 황교안 국무총리가 중국 보아오포럼에 불참하기로 한 것도 박 대통령이 만류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아무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개성공단 폐쇄라는 카드는 무엇보다 중국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리 내부에서 ‘자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의 심각한 부담을 감수한 이상 중국도 달라져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교관 전 통일부 정책 보좌관은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폐쇄가 우리에게는 실로 살을 베는 것 같은 아픔이다. 하지만 중국을 제재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아픔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판단을 대통령이 내렸을 것이다. 우리가 북핵 해결의 주인의식을 갖고 동참과 역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살을 내줬고, 그 대신 우리는 안보라는 뼈를 취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도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우리 기업들의 손실이란 측면에서 비합리적 결정이란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이 피해를 감수하면서 솔선수범에 나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동참을 이끄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합리적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우리의 안보라인에서 대통령에 건의한 ‘인질화’ 우려에서 알 수 있듯 선제적인 문제 해결의 의미도 담고 있다는 것이 안보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이 핵탄두의 경량화·소형화에 성공해 핵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할 상황에 이르게 되면 개성공단은 우리가 폐쇄하고 싶어도 폐쇄하지 못할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핵 위협으로 북한의 통제 속에 들어갈 경우 개성공단이 남북경협의 장에서 대량 인질극의 장으로 돌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국회 연설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앞으로 우리가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나갈 제반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폐쇄에 이어 나올 일련의 대북 제재 조치는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준비 중인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이 기반이 될 전망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는 190여개 유엔 회원국에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북 제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지난 2월 13일 ‘광명성 4호’ 발사에 기여한 관계자들 환영연회에서 축하 연설을 하는 김정은. ⓒphoto 연합
지난 2월 13일 ‘광명성 4호’ 발사에 기여한 관계자들 환영연회에서 축하 연설을 하는 김정은. ⓒphoto 연합

세컨더리 보이콧 위력 발휘하나

지난 1월 22일 일본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마련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에는 북한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 북한산 광물자원 수입 금지, 북한 고려항공의 영공 통과 거부, 일부 북한 국적 선박의 전 세계 항구 입항 금지, 북한 해외 자산 동결 대상을 현재의 개인 12명, 단체 20곳에서 2배로 확대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이 제재가 그대로 통과된다면 중국에서 수입하는 원유 40만~50만t과 북한의 수출 총액에서 40%를 차지하는 대중국 무연탄 수출이 끊기는 등 실질적인 타격이 북한에 가해질 수 있다.

현재 안보리 대북 제재 수위가 어느 선에서 결정될지 불투명하지만, 중국도 이번 안보리 제재에는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인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2월 17일 사설에서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전보다 더 강력한 내용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대해 지지한다”며 “관련 (제재) 조치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우리가 꺼내든 사드 배치에는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대북 제재에 대해서는 좀더 유연하게 입장이 바뀌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 상하원을 통과하고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 법안을 상당히 의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기업과 금융기관들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 방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재 중국과 미국의 연간 무역량이 4500억달러이고 중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연간 2500달러에 이른다”며 “중국의 경제가 지금 어렵기 때문에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실제 작동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국영기업과 금융기관들을 압박하기 시작하면 경제적 이유에서라도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개성공단 폐쇄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빼들었지만 우리의 독자적인 후속 대북 제재 방안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예컨대 정부는 북한을 경유하는 3국 선박의 입항을 금지하는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조치와 함께 국제적인 대형 선박 보험사들이 북한을 다녀오거나 북한과 거래하는 선박에 대해 보험 가입을 거절하면 효과가 더 커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핵 개발로 국제적인 제재 조치를 당한 이란의 경우도 유럽계 대형 보험회사들이 이란과 거래하는 선박들의 보험가입을 거절하자 원유 수출 루트가 막히면서 애를 먹었다.

정부는 북한의 돈줄을 죄는 차원에서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인 해외 북한 식당 이용 자제를 국민들에게 권유하는 한편 북한 해외 노동력 송출 시스템에도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조영기 교수는 “북한의 해외 노동력 송출이 임금을 착취하는 일종의 노예노동이라는 점에서 국제 인권문제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며 “국제노동기구(ILO) 등과 협의해 북한의 해외 임금 착취 시스템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해외에 파견한 노동자의 인건비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2억달러 규모로 파악되고 있다.

보수층 결집과 한·미·일 공조 강화

일부 전문가들은 경제적 압박과 함께 북한 체제를 바닥에서부터 흔들 수 있는 조치들도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대북 심리전 강화도 한 수단이다. 김대중 정부 이전 국군정보사령부가 주도했던 대북 전단 살포와 국방부 심리전단의 대북 방송을 재개할 필요가 있고, 중국 등지를 떠도는 해외 탈북자들을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받아들일 것이라는 의지를 다시 한 번 표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꺼내든 대북 승부수는 우리 사회 내부에도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북한과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시선과 고정관념에 충격을 줄 수 있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는 “박 대통령의 결단은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력감과 안이함을 깨우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박 대통령의 결단을 강경책으로만 볼 게 아니고 대북 정책에서 현실주의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보수는 햇볕정책을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듯이 비판하고, 진보는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며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지난 진보·보수 정부 모두 북핵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김정은이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명확하다. 그런 사실 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선택은 지금으로서는 최선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도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등 박 대통령의 선택에 대한 지지가 더 많은 것으로 나오지 않느냐. 박 대통령의 선택은 이념과 기대를 앞세운 정책을 넘어선, 현실주의의 복원이라는 의미가 있다.”

박 대통령의 대북 승부수는 우리 사회의 정치지형도 바꿀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대북 강경책을 던진 이후 보수층이 결집하는 양상이어서 야당이 제기하는 ‘북풍’ 의혹과는 별개로 이번 총선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박 대통령이 임기 4년차에 꺼내든 대북 강경책은 쉽게 되돌리기 힘든 성질이어서 내년 대선까지 우리 사회의 다른 이슈들을 압도하며 가장 폭발적인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진보 진영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번 대북 강경책을 총선을 의식한 단순한 ‘북풍’ 차원에서 대하는 야당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 기고에서 “북풍론이 사태의 본질을 짚지 못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현 상황이 북풍론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며 북풍론이 사태를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며 “문제의 핵심은 선거용 북풍이 아니라 재앙적 군사충돌의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고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한반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승부수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도 바꾸고 있다. 위안부 문제 등으로 갈등이 노정됐던 한·일 관계가 대북 공조 차원에서 탄탄해지면서 전통적인 한·미·일 공조도 복원되어가는 모습이다. 이번에 한·미·일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안과는 별개로 모두 독자적인 대북 제재안을 꺼내든 상태다. 박 대통령의 북핵 이니셔티브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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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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