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둘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photo AP
마흔둘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photo AP

현직 그리스 총리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1974년생, 올해 나이 마흔둘이다. 2015년 1월, 당시 열린 그리스 총선에서 치프라스는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의 당수로 선거에 나서 승리했다. 긴축 반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며 선거를 지휘한 그의 노타이 패션은 그리스뿐 아니라 전 유럽의 젊은 정치인이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선거 기간 중의 주장과는 달리 7월 860억유로(약 115조원)의 구제금융 협약을 맺으며 국내외의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치프라스 내각이 총사퇴하고 9월 조기 총선에서 재신임을 묻기로 했다. 결과는 치프라스의 압도적 승리였다. 마흔한 살의 치프라스는 ‘선거의 제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G7 국가인 캐나다도 2015년 10월, 젊은 지도자를 탄생시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1971년생으로 마흔다섯이다. 그는 자유당의 리더로 총선에 출마해 34석이던 자유당을 184석으로 끌어올려 집권 보수당을 누르고 정권을 잡았다. 그는 알려진 대로 17년간 캐나다 총리를 지낸 피에르 트뤼도의 아들로 2008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정계에 입문했다.

‘40대 기수론’은 어디에…

트뤼도 총리는 조각을 하면서 캐나다 원주민 출신 여성 법무장관을 포함해 다양한 인종, 직업을 가진 전문가들을 15명씩 남녀 동수로 발탁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2만5000여명의 시리아 난민 유입을 허가하겠다고도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트뤼도가 총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트뤼도의 잘생긴 외모와 쾌활한 성품을 좋아하는 젊은 유권자의 지지도 한몫했다. 트뤼도의 파격적인 국가 운영은 캐나다를 넘어 세계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정치가 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30~40대 젊은 정치 지도자가 대거 등장하는 것이다. 당 대표는 물론 총리, 대통령직에 이르기까지 40대는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10개국 정상이 40대이고, 캐나다·과테말라 등 미주 대륙에서도 40대 정치 지도자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모바일 앱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정당도 탄생하고 있다. 단순한 정치 실험이 아니다. 디지털정당이 스페인에서는 제3당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거물급 정치인, 정치 세습 가문도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인물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을 보자. 민주당과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는 모두 정당 밖에서 활동해오던 인물들이다.

20대 총선을 앞둔 대한민국은 다르다. 한국 정치는 이 같은 세계적 흐름과 전혀 동떨어져 굴러가는 듯한 양상이다. 간혹 눈에 띄는 젊은 정치인도 있고, 새로운 시도도 나타나지만 잠깐 반짝할 뿐 어떤 실질적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총선 때마다 반복되는 공천 갈등은 4년, 8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젊은 정치 지도자는 찾아볼 수 없다. 젊은 나이에 패기 넘치게 등장한 정치인들은 소장파라는 이름으로만 불릴 뿐이다.

1970년대만 해도 달랐다. 1971년 대통령선거 당시로 돌아가보자.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은 44살, 김대중은 47살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40대 기수론을 주창했고, 양 김씨보다 나이가 많은 정치 선배들이 40대 기수론을 지지했다. 이들의 출현은 박정희 정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김영삼은 스물여섯, 김대중은 서른일곱에 국회의원에 당선, 각각 정치에 입문했다.

이제 이런 모습은 유럽과 미주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다시 유럽으로 가보자. 2014년 G7 국가인 이탈리아에서는 젊은 총리가 등장했다. 당시 서른아홉이었던 마테오 렌치는 중앙정부나 의회에 몸담은 경험이 없다. 1975년생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져 1996년에 이탈리아 인민당에 가입해 1999년에 스물넷의 나이로 피렌체주 장관직을 맡았다. 피렌체주 주지사가 된 것은 스물아홉의 일이다. 9년 뒤 이탈리아 민주당 대표가 되어 총선에서 승리해 2014년, 총리 자리에 올랐다. TV에 출연해 부패한 이탈리아 정계를 비판하고, SNS로 젊은층과 소통해온 것이 그의 인기 요인이다. 총리 자리에 오르고는 정치개혁안을 잇따라 통과시키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네덜란드 마르크 뤼터 총리는 2010년 당시 마흔세 살에 총리에 당선되었다. 룩셈부르크 사비에르 베텔 총리는 마흔 살에 총리가 됐다. 2015년 5월에는 동성 파트너인 건축가 고티에르 데스테네이와 동성결혼을 했다. 룩셈부르크는 2014년부터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벨기에 샤를 미셸 총리는 올해 마흔한 살이다. 2014년 10월에 총리가 될 때는 서른아홉이었다. 2015년 8월, 폴란드 대통령이 된 안체이 두다는 마흔넷이다. 2014년 1월 체코 총리가 된 보후슬라프 소보카는 당시 마흔셋이었다. 빅토르 폰타 루마니아 총리도,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총리도 모두 40대다. 유럽의 40대 지도자로 대표적인 인물은 2015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고 3선에 성공한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2010년 그가 총리가 되던 해, 그는 44살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에도 40대 정치 지도자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도 젊은 40대 정치인이 의회 수장(首長)에 올랐다. 미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하원의장이 된 폴 라이언이다. 올해로 마흔여섯이 된 폴 라이언의 정계 입문은 29살 때의 일이다. 하원의장을 지낸 존 베이너의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위스콘신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의장으로서 하원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 1월에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폴 라이언 의장이 거둬들인 후원금은 총 540만달러(약 65억원)로 미 하원에서 가장 많다.

지난 1월 과테말라 대통령에 취임한 지미 모랄레스는 마흔일곱 살. 코미디언이던 그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2011년, 마흔두 살 때의 일이다. 코미디언일 때 모랄레스는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 역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대선 레이스가 막 시작할 당시 그의 지지율은 0.4%에 불과했다. 그러나 곧 지지율 1위로 올라섰고 10월 열린 본 선거에서는 73%의 득표율을 올렸다.

서른아홉에 총리가 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photo EPA
서른아홉에 총리가 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photo EPA

늙어가는 초선의원 평균 연령

물론 우리나라에도 젊은 정치인은 있어 왔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만 하더라도 1996년 15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당시 31살이었다. 그러나 내리 5선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20년이 흘렀고, 경기도지사직을 맡고 있는 현재는 51살로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마찬가지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됐을 당시에는 36살이었지만 3선 국회의원을 거쳐 중앙정치에서는 한발짝 물러난 모습이다.

한국갤럽에서 지난 2월 첫째 주 실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를 보자. 1, 2, 3위를 차지한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63살, 54살, 64살이다. 부동의 차기 지도자 1위로 거론되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은 72살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회에서 정계에 입문하는 초선의원의 평균 나이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7~19대 국회 초선의원들을 연구·분석해왔다. 가상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7대 초선의원의 평균 연령은 48.9세, 18대는 51.5세였다. 19대에서는 51.5세로, 특히 남성 의원의 평균 연령이 52.2세로 높아졌다. 초선의원의 평균 나이가 50대가 넘은 것이다. 가 교수는 “물론 연령이 개혁성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초선의원이라는 신분과 높은 연령으로 정당 지도부에 대한 순응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젊은 정치인이 많이 탄생하지 않는 이유로는 우리나라 정치 입문 시스템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대부분 정치인이 정계에 입문하는 과정이, 정당 내부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박명호 동국대 정외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독일의 메르켈 총리만 하더라도 정당에 입당한 것이 16살이었다. 정치에 뜻이 있고 정치 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정당에 들어와 하나씩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기본적인 정계 입문 과정이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정치를 배우고 정치인으로 커 가면 자연히 자기 관리가 되고 검증이 된다.”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만 하더라도 20대 초반부터 정치인의 지지 그룹을 만들고, 정당에 가입하며 한 단계씩 정치적 입지를 키워 나갔다.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도 시작을 전임 하원의장 존 베이너의 선거캠프에서 했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역시 대학 재학 시절 내내 학생운동을 하다 졸업 후 곧바로 정계에 투신한 인물이다.

계파 정치와 보여주기식 개혁

어느날 갑자기 정치권 밖에서 활동하다 영입된 정치 신인은 자신의 정치 철학을 마음껏 펼칠 여력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계파 정치가 공고한 곳에서는 의정활동 같은 외부 정치활동보다 내부 정치활동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박명호 교수는 “정치에는 당연히 계파나 파벌이 존재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제는 계파가 이념이나 정치 철학이 아니라 아주 기초적인 인간 관계 요소, 지역 같은 걸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런 지적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정당마다 이념지형마다 정치에 뜻이 있는 젊은이들을 키워 정계 입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현재도 시민단체는 물론 각 정당 내부에서도 청년 정치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해도 젊은 정치인이 목소리를 키우기는 쉽지 않다.

사실 우리 국회는 초선의원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16대 41.2%, 17대 62.5%, 18대 44.8%, 19대 49.3%이다. 거의 절반의 의원이 매 국회 때마다 교체된다. 이른바 ‘물갈이론’ 때문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우선 유권자 눈에 국회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사람을 교체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들은 이런 물갈이론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박명호 교수의 설명이다.

“물갈이는 양날의 검입니다. 물론 새로운 인물을 수혈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인물이 매번 외부에서 영입해오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요. 사실 정치라는 것은 전문성이 중요한 부분인데, 처음 와서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데 전문성을 기를 새도 없이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초선 국회의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검사나 변호사로 일하다가 국회에 들어와 보면 의정활동은 매우 낯선 분야다. 1~2년 익숙해질 만하면 곧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 준비의 칼자루는 정당 지도부가 잡고 있다.

우리나라 정당 정치는 철저하게 선수(選手) 중심으로 움직인다. 즉 시니어리티(seniority) 시스템이다. 아무리 실력 있는 의원이라 하더라도 초·재선 의원의 발언권은 거의 없다. 오랜 장유유서(長幼有序) 사상과 계파 정치에 익숙한 정당 구조 때문이다. 가상준 교수는 “우리나라는 후보 공천과 의회 내 활동에서 정당 지도부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며 “어떤 후보든 공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초선의원은 정당 지도부의 훈육에 이끌려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물갈이라고는 하지만, 젊고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초선 의원 중심으로 물갈이가 이뤄지고 오랫동안 계파 정치를 이어온 중진 의원들은 남아 있는 것이다. 물갈이가 잦은 우리나라에서 젊지만 힘 있는 정치 지도자가 탄생하기 어려운 이유다.

공고해진 계파 정치는 유권자들의 요구를 읽어내기 어렵게 한다.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둘 다 방향은 다르지만, 유권자들이 바라던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두 사람 다 정치권 밖에서 활동을 해오다가 정당 내부로 들어와 당원들이 바라던 점을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 같은 공천 시스템이 미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가상준 교수는 “순전히 유권자들의 투표로 후보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인물 중심의 계파 정치, 눈치 보는 공천 시스템은 먼 얘기가 된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 정치에서도 대선 때마다 제3의 후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와는 사정이 다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등장한 문국현 당시 창조한국당 대표나 지난 대선의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신드롬적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들은 계파 정치를 무너트리기는커녕 계파 정치에 이용당하거나 그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마흔다섯 살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photo AP
마흔다섯 살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photo AP

“SNS는 일방 소통의 무대”

지난해 연말, 스페인에서 열린 총선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40년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제3당 ‘포데모스’와 ‘시우다다노스’ 때문이다. 스페인의 집권당인 국민당은 4년 사이 63석이 줄어든 123석에 그쳤고 사회주의노동자당도 20석 줄어든 90석에 그쳤다. 포데모스가 69석, 시우다다노스가 40석을 가져가 오랜 양당 체제를 끝낸 것이다.

포데모스가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이 정당의 기반이 모바일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있기 때문이다. 포데모스에는 당원이 아니라도 시민이라면 누구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아고라 투표(Agora Voting)’라는 시스템을 사용해 시민들이 직접 유럽의회 후보와 당 집행부를 뽑았다. 온라인 토론장에서는 소속 의원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 이런 의사 결정 방식에 익숙한 포데모스 소속 의원들은 의원직의 특권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 이들은 지난 1월 국회 등원에 앞서 가진 시민평의회에서 9시간 넘는 토론 끝에 스페인 의원에게 주어지는 퇴직연금을 아예 받지 않기로 했다. 월급도 최저 임금의 3배 조금 넘는 월 1950유로(약 250만원)만 받기로 했다.

스페인만이 아니다. 2013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상원 54석, 하원 109석을 차지해 일약 원내 제3당으로 떠오른 ‘오성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0만명이 모인 부패척결 집회를 바탕으로 SNS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창당했다. 2010년 아이슬란드는 아예 헌법 개정을 시민들과 함께 했다. 온라인 웹사이트를 통해 헌법 개정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루미오’나 ‘데모크라시 OS’ 같은 앱은 뉴질랜드, 헝가리, 스페인, 대만 등 전 세계에서 쓰인다. 이 앱들은 누구나 의제를 설정하고 토론에 참여하며 투표할 수 있게 해주는 앱인데, 지방정부나 군소 정당은 물론 포데모스 같은 정당에서도 널리 쓰인다.

여기서 다시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가고 있다. 온라인 접근 통로는 다양해졌지만 소통은 늘지 않았다. 이를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앞서 언급된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2013년 우리나라 유권자의 정당 정치 만족도에 대해 연구했다. 자발적으로 정당에 가입하는 경우뿐 아니라 선거 때마다 날아오는 우편물, 전송되는 문자 메시지 등을 경험한 적 있는 사람이 대상이다. 이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은 정당과 어떤 식으로든 접촉한 적 있는 사람이 접촉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정당 정치에 불만족한다는 점이다.

윤 교수는 이런 결과의 이유가 우리나라 정당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정당의 커뮤니케이션은 일방적입니다. SNS가 개설되고, 블로그에 글이 활발하게 업데이트되지만 그건 다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전달만 되고, 듣지 않습니다.” 국회의원마다 트위터를 하고, 블로그를 운영하며, 페이스북도 쓰지만 쌍방소통이 아니라 일방소통만 이뤄진다.

선거 운동 제도만 해도 유권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불가능한 상태다. 윤 교수는 “미국은 가정별 방문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선거 13일 전에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항상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다가 결정적일 때 왜 당신들은 참여하지 않느냐고 꾸짖는 경우가 많다”며 “평소에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니 정치에 참여할 사람은 자꾸 줄어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실생활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나서서 활동하는 사람은 드물고, 그저 ‘정치란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윤종빈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 중 자발적으로 정당에 접촉한, 즉 적극적인 정치 경험이 있는 사례는 16%에 불과하다.

결국 한국의 정치는 변화의 움직임은 커녕, 해결해야 할 문제만 잔뜩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취재 중 만난 전문가들 누구도 우리 정치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한 정치학 교수는 “변화는 언젠가 찾아오겠지만 매우 천천히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치학 교수는 “만약 젊은 지도자가 나오고, 참신한 정당이 나온다 해도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결코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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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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