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12시 점심 약속을 지키기가 빠듯하다. 창피한 얘기지만 늦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밤낮이 바뀌다시피 해서 새벽 4시나 되어 잠들고 느지막이 일어나 늦게 하루를 시작한다. 30년 가까이 회사를 다녔고 임원을 꽤 오래 했는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침잠이 많은 체질이기 때문인데, 언젠가 아침형 인간이 우리 사회를 휩쓸 때 참 괴로웠다. 요즘은 내 맘대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너무 늘어지는 것 같아서 조금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자고 다짐해 보지만, 벌써 습관으로 굳어졌는지 잘 되지 않는다. 잠자는 행태로만 보면 완전히 젊은 시절로 돌아간 셈이다.

퇴직한 지 3년. 생활은 꽤 단순해졌다. 일주일에 2~3일, 친구나 동료, 후배들과 비싸지 않으나 맛있는 집을 찾아 점심을 먹는다. 가끔은 퇴직 이후에 새로 알게 된 이들로부터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다. 흥미로운 시간이다. 얼마 전부터는 강의도 조금씩 하고 원고도 쓴다. 그런 틈틈이 도움을 청하는 후배들과 마주 앉아 상담사 노릇도 한다. 그래도 가급적 저녁 약속은 하지 않고 일찍 집에 들어간다. 잠자기 전까지는 책을 읽는다. 아, 또 있다. 얼마 전에 시작한 페이스북이다. 이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서 댓글 몇 개 쓰고 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하지만 아직은 재미있다.

이 가운데 뺄 것이 있을까? 혹은 억지로 하는 게 있을까?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반가운 사람들과의 필요한 만남이고 시간이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시동을 건 일들도 내 본성이나 뜻에 어긋나지 않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다. 다른 이의 뜻에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과하게 바쁘지도 않다. 결론적으로 요즘 나의 일상은 필요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본질 중심으로 돌아간다. 심플라이프라 할 만하다. 과거의 내 생활과 비교한다면 더더욱 심플라이프다.

물론 예전엔 나도 바쁘게 살았다. 클라이언트를 모시고 일하는 광고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줄곧 그곳에서 일했으니 누구 못지않게 바빴다. 본부장으로, 부문장으로, 수백 명의 후배들과 일할 때는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자못 비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 부자가 진짜 부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고 정신 없이 돌아가면 갈수록 나는 내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새벽에 출근해 밤이 늦어서야 귀가하는 생활, 게다가 당일을 넘기고 다음날 새벽에 귀가하는 일도 부지기수였으니 가장 부족한 것이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며칠씩의 연휴가 계속될 때, 연휴를 앞둔 마음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꼭 돈이 많아야 부자는 아니구나,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을 때에도 부자라 느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프랑스 작가 실뱅 테송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지 작년에 나온 책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에 이렇게 썼다. “자유로운 인간은 시간을 지배한다. 공간을 지배하는 인간은 단순히 강할 뿐이다.” 그의 생각에 200퍼센트 공감한다.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야말로 우리는 자유인이고 부자다.

한데 한창 바쁘게 살던 그 무렵, 나는 휴대폰 첫 화면에 이런 단어들을 적어서 갖고 다녔다. 자유, 안식, 평화, 단순, 검박…. 출근해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복잡다단했지만 지향은 이랬고 퇴직 후의 삶은 이렇게 살겠다 생각했다. 더 럭셔리한 것, 더 많이 갖는 걸 꿈꾸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마음은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것에 쓸 수 있는 삶, 소박하고 단순한 심플라이프로 향했다.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면 마땅치 않은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칭찬을 해준다면,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 됐다 싶으면 더 이상 욕심 내지 않고 멈출 줄 아는 것. 이 두 가지를 꼽겠다. 말하자면 분별력인데, 3년 전에 퇴직을 그렇게 했다. 당시 부사장 3년 차였으니, 대개의 남자들이라면 내심 차기 사장 자리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남자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나의 그릇의 크기, 능력으로 볼 때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당시 광고업계는 디지털이 촉발한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도전을 뛰어넘을 의지와 능력과 에너지가 없었다. 회사를 위해서나 나 자신을 위해서나 거기서 멈추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임원 인사가 있기 몇 달 전 여름, 그만두겠다는 뜻을 회사에 전했고 그해 연말 그렇게 29년 광고쟁이 생활을 마무리했다.

오랜 일터로부터의 퇴직이란 인생의 결정적 사건이자 매듭인 만큼 꼭 스스로 정하겠다 마음 먹었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더 욕심부리지 않고 맞춤한 때에 스스로 마감할 수 있어 그 또한 다행이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바쁜 생활을 졸업하고 단순한 생활로 들어왔다. 한데, 집에는 여전히 쓰지도 않으면서 쌓아 둔 물건이 적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갖고 있는 옷, 책, 가구도 꽤 된다. 이런데도 나의 삶을 심플라이프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적게 소유하고 적게 쓰는 것이 심플라이프의 핵심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의 지향은 본질에의 집중과 정신적 독립일 것이므로….

사람들은 심플라이프의 원조 격으로 헨리 D. 소로를 친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았던 소로 말이다. 그는 왜 그렇게 한 걸까? 얼마 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삶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정신적으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도쿄를 떠나 나가노 산속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비슷한 이유다. 삶을 단순하게 꾸림으로써 바깥세상에 휘둘릴 요인을 애초에 차단한 것인데, 나는 심플라이프의 정수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적게 갖고 적게 쓰는 단순한 삶이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지키며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함이 아닐는지…. 많이 가지려 들수록 세상에 비위를 맞추며 헛웃음을 지어야 할테니….

일생을 통틀어 심플하게 유지한 것이 내게는 하나 더 있다. 인간관계다. 나의 친구 관계는 점조직이다. 죄다 일대일로 만난다. 세 사람만 넘어도 얘기가 겉돌기 때문이다. 여럿이 만나 웃고 떠들면 그 순간엔 재미있지만 헤어질 땐 마음이 허했다.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회 같은 이름의 정기 모임을 거의 갖지 않았다. 어쩌다 가 보면 남의 옷을 입은 듯 영 불편했다. 이러니 네트워킹이라는 명분의 만남은 더더욱 없었다. 회사 밖 네트워크가 약해서 늘 고심했지만 그 덕분에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로 인한 번잡함은 적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많이 벌고 많이 소유하며 많이 쓰는 생활을 성공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런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저성장 시대에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에게는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 동안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배철현 교수는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말한다. “질문은 이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문지방”이라고. 그러니까 길은 막히고 앞은 잘 보이지 않는 지금이야말로 무엇이 바람직한 삶인지, 대안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할 바로 그때인 것 같다. 소유는 줄이고 본질에 집중하는 심플라이프에 관심이 커지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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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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