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응원하는 지지자들. 지난 1월 1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모습이다. ⓒphoto AP·연합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응원하는 지지자들. 지난 1월 1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모습이다. ⓒphoto AP·연합

수퍼 화요일을 지나면서 양당의 미국 대통령 후보는 거의 힐러리와 트럼프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모양새이다. 미국의 이번 대통령 선거가 무엇보다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누가 뭐라해도 트럼프와 샌더스의 공이 크다. 2015년 봄, 이 두 명이 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그저 또 누군가가 출마 선언을 하는구나 하는 정도였다.

트럼프는 출마 선언을 하기 전까지 공화당 당원도 아니었다. 선출직 공직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고, 공화당 내 지지기반이 전혀 없었다. 샌더스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아예 제3당을 만들고 그 당적으로 초기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고 1981년부터 2014년까지 무소속으로 일관했다. 즉 그도 대통령 후보 출마 직전까지 민주당과는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당내 지지기반이 전혀 없는 사람이 기존 조직표를 뒤흔들며 유력 대선주자가 될 수 있었을까. 미국의 선거제도에 그 해답이 있다. 미국의 선거법은 대부분 어떻게 후보를 선출하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선거운동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공천 좌지우지 중앙당 없어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한국과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보다도 공천이라는 게 없다는 점이다. 즉 한국의 정당 시스템은 아무리 여론조사를 반영하고 실적을 평가하고 해도 근본적으로 톱-다운(top-down)인 반면, 미국은 추천인 확보부터 예비선거까지 철저하게 바텀-업(bottom-up)으로 진행된다. 자연스럽게 공천위원회, 인재영입위원회, 컷오프, 살생부 등등 한국의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그런 용어들을 찾을 수가 없다.

공천이라는 것이 좋은 의미로 보면 훌륭한 자질을 갖춘 신인 정치인들을 정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단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측면에서 지극히 비민주적이다. 1970~1980년대 시대 상황상 카리스마 넘치는 1인 리더에 의한 공천은 잡음이라도 덜했지만 이제는 보는 눈이 많아서 합리적 형태를 가장한 억지 공천을 하려다 보니 수많은 잡음과 부작용이 멈출 새가 없다.

우리는 이런 공천의 문제점을 공천 탈락자들이 다시 당선되어 여의도로 복귀하는 것을 통해 너무나 익히 보아 왔다. 미국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역 의원이라도 당내 경쟁자가 나타나면 반드시 당의 후보 결정을 위한 예비선거(프라이머리 혹은 코커스)를 치러야 한다. 그러니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중앙당이 있을 리도 없다.

미국의 선거제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 이유는 각 주마다 서로 다른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연방 선출직(상원의원·하원의원)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의 자격에 대해 딱 3가지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하원의원은 미국 시민이 된 지 7년이 경과한 자로 25세 이상이며 출마하고자 하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상원의원은 미국 시민이 된 지 10년 이상 경과한 자로 30세 이상이며 출마하고자 하는 주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 대통령은 미국에서 출생(Natural Born American)한 자로 만 35세 이상이면서 14년 이상 미국에서 거주한 사람이라고만 되어 있다. 그 외의 세세한 규정은 각 주에서 결정한다.

예를 들면 출마를 위한 후보 등록 과정도 주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주는 일정 수 이상의 주민 동의서를 요구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주는 공탁금을 내기만 하면 되는 곳도 있다. 또 어떤 주는 주민 동의서와 공탁금을 동시에 요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플로리다주는 연방 상원의원 후보자에게 1만440달러의 공탁금과 11만2174명의 주민 동의서를 요구하는가 하면, 알래스카주는 100달러의 접수비만 요구하며 주민 동의서는 요구하지 않는다. 뉴햄프셔주에서는 50달러의 접수비와 100명의 추천서만 구비하면 후보가 될 수 있다. 미 하원 후보자에게 요구하는 평균 접수비(Filing Fee)는 1465달러이다. 이런 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중앙당이 후보자를 지명하는 경우는 없다. 모두 예비선거를 통해 지명된 후보자가 본선에 나서고 그들끼리 최종 경쟁을 하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에 이민온 지 30년이 되는 ‘백두산’이라는 가상의 동포가 뉴욕주에서 민주당 후보로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 주거지는 뉴욕주의 롱아일랜드이다. 20살에 이민을 온 그는 13년 전에 영주권을 받았고 그로부터 5년이 경과한 8년 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는 50세가 되었을 것이므로 상원이나 하원 어디에도 출마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권을 받은 지는 8년에 불과하므로 상원의원 입후보는 불가능하고, 하원의원에는 입후보할 수 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민주당 혹은 공화당의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가 되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이다. 버니 샌더스와 같이 무소속으로 오랫동안 정치 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대개 양당 예비선거(당내 경선)를 거쳐 당의 후보로 출마한다.

백두산은 자기의 정치 성향과 유사한 민주당의 당원으로 당내 경선에 도전하기로 결정한다. 그가 출마하려는 곳은 뉴욕의 제3 지역구로 롱아일랜드의 일부이며 현재 하원의원은 같은 당 소속 스티브 이스라엘(Steve Israel)이다. 그는 2001년부터 이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강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후보 지명을 받기 위한 당내 경선에 뛰어들었다.

현재까지 민주당에서 6명, 공화당에서 6명 등 총 12명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이며, 백두산이 민주당 당내 경선에 나서면 민주당 예비후보는 모두 7명이 되는 셈이다. 11월에 총선이 있고 민주당의 경우 당내 예비선거는 6월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들에 대한 이력과 기본적인 소개 사항 등은 웹사이트(http://www.uselections.com/ny/)에서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 총선이 6주 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후보가 누구인지 오리무중인 한국과는 상당히 다르다. 정치 신인에게도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 것이다. 이들 13명 중 누구도 전략 공천, 우선 공천, 표적 공천, 자객 공천으로 불리는 사람은 없다. 오로지 출마하는 사람, 자신의 의지에 따를 뿐이다. 오랫동안 지역구를 갈고닦아온 현역 프리미엄만 제외하면 현역이나 신인이나 전혀 차별 없이 이 후보 지명을 위한 예비선거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거리 응원에 나서고 있다. ⓒphoto 김은정 조선일보 기자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거리 응원에 나서고 있다. ⓒphoto 김은정 조선일보 기자

경선은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로 치러져

경선의 형태는 방식에 따라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로 나뉜다. 가장 근본적 차이는 선거관리를 누가 하느냐이다. 프라이머리는 각 주 정부가 주관하지만, 코커스는 그 주의 당 위원회에서 관리한다.

코커스는 당원들만 참여할 수 있는 폐쇄적 당원대회로 마을회관이나 강당 같은 장소에 당원들이 모여 후보를 두고 찬반 토론을 벌인 후 후보자를 결정한다. 지지자가 나서서 왜 이 후보가 되어야 하는지, 왜 저 후보가 되면 안 되는지 발제하고, 참석자들은 발표자에게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다. 그런 다음 공개투표로 후보를 결정한다. 투표 방법은 손을 들게 하거나 후보 이름을 표시한 영역을 정한 다음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들의 영역으로 사람을 이동시키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미국 초기 개척 시대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당원대회(코커스)는 그래서 고전적이며 공개적이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사표 방지를 위해 15% 미만 후보의 지지자들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은 후보를 선택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공개투표의 난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프라이머리이다. 흔히 역선택이라고 하는 크로스보트를 방지하기 위해 대개 공화당과 민주당이 같은 날 치르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형태에 따라 폐쇄형(Closed Primary), 반폐쇄형(Semi Closed Primary), 개방형(Open Primary), 반개방형(Semi-Open Primary)으로 구분한다.

폐쇄형은 말 그대로 투표일 전까지 당원으로 등록된 사람만 참여할 수 있다. 뉴욕 등 15개주가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반폐쇄형은 등록된 당원 외에도 다른 당 당원이 아닌 사람은 투표 당일 자기가 원하는 당에 투표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 등 13개주가 이에 해당한다. 개방형은 유권자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적과 관계없이 투표할 수 있다. 이 개방형에서는 상대방 당의 약한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개연성, 즉 역선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98년 버몬트주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반개방형은 투표 전 자신이 지지하는 당을 밝혀야 하며, 그 당의 투표 용지를 받아서 투표한다.

백두산은 당원의 추천을 받아 4월 18일까지 주 선거관리위원회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뉴욕주는 폐쇄형 프라이머리를 실시하기 때문에 후보 선출은 당원만 할 수 있지만 선거는 주에서 관리한다.

따라서 주 선거관리위원회에 서류를 제출하는 것이다. 서류 양식은 웹사이트에 가면 모두 다운받을 수 있고 예시도 있으므로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후보 등록 후 혹은 그전이라도 여론조사를 포함한 선거 관련 비용을 5000달러 이상 사용한 경우는 반드시 선거 캠프를 꾸려야 하고 회계책임자를 지명해서 회계 사항을 보고해야만 한다.

즉 이때부터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당내 다른 후보들보다 출발이 조금 늦었지만 6월 28일에 있을 민주당 경선까지는 아직 100일가량 남았으므로 얼마든지 추격할 수 있을 것이다. 코커스가 아니라 프라이머리로 후보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 조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당내 경선에서 후보로 지명된다면 다시 4개월 이상을 공화당 후보와 치열한 경합을 거친 후 11월 총선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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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황효현 경기텍스타일센터 뉴욕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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