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그 흔한 단체 하나 없다. 정부 기관 어디에서도 관련 정책을 내놓은 곳이 없다. 해마다 13만명의 사람이 관련된 일이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함부로 ‘커밍아웃’ 하기에는 삐딱한(?) 시선이 두렵다. 재혼가정에 대한 얘기다.

최근 잇따라 보도되는 아동학대 사건은 재혼가정과 재혼 부부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아동학대 문제를 전면에 드러나게 만들었던 2015년 연말의 인천 열한 살 여아 탈출 사건은 친아버지와 동거녀가 가해자였다. 학대로 죽은 딸의 시신을 백골이 될 때까지 방치했던 부천 여중생 학대 사건의 가해자 역시 친아버지와 새엄마였다. 경기도 평택에서 아이를 학대하고 암매장한 사건의 가해자도 친아버지와 새엄마였다.

재혼가정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되다 보니 일부 언론은 새부모에 대한 편견을 줄이려는 뜻에서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다수는 친부모’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게 끝이지요. 참 신기한 게, 다섯 중 하나가 재혼가정이라는 요즘에도 재혼가정을 제대로 다루는 보도는 보기 힘들어요. 아동학대 가해자가 새엄마였다는 사실만 반복해 보도하다 보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재혼에 대한 편견은 줄어들지 않고 있어요.” 김효순 세종사이버대 아동가족상담학과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재혼가정을 집중 연구해오다 올해 세계적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후 인더월드(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된 학자다.

재혼은 주홍글씨?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재혼한 가구 수는 6만5915가구. 2013년의 6만7120가구와 큰 차이가 없어 해마다 13만명 이상의 재혼 부부가 탄생한다고 볼 수 있다. 다섯 중 하나는 재혼 커플이라는 말인데, 유독 우리는 재혼가정과 재혼 부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른바 ‘평택 원영이 사건’의 전모가 거의 다 밝혀진 지난 3월 15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정유림(가명)씨의 집. 정씨는 31살이던 2014년 현재의 남편과 결혼했다. 정씨는 초혼이었지만, 남편은 재혼이었다. 남편에게는 당시 6살, 4살이던 아들과 딸이 있었다. 정씨는 초·중·고를 미국에서 다녔는데, 정씨의 친어머니는 이혼 후 미국에서 인도계 미국인과 재혼했다.

“결혼한다고 주변에 알릴 때부터 굳이 남편이 재혼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어요. 물론 친구들은 반대했지만요.”

새로 생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담임 선생님이나 같은 반 학부모에게 사실을 얘기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솔직함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3월 11일 금요일에는 아들의 담임으로부터 전화도 받았다.

“새로 담임을 맡게 돼서 인사차 전화드렸다, 잘 지내시냐 이런 이야기 하다가 아이 학원은 보내고 있느냐, 아이는 몇 시에 잠드느냐 이런 걸 계속 묻더라고요.”

친한 학부모에게 물어봤지만 그런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며 정씨는 “새엄마는 아이를 보살피지 않는다는 편견이 많다 보니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요즘은 아이 옷을 더 비싼 걸로 사 입혀요. 학부모 모임에는 꼭 참석하고, 아이랑 손 잡고 많이 다녀요. 일부러라도 더 잘 보여야 해요.”

정씨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신주연(가명)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정씨와 만났다. 4년 전 재혼해 남편의 13살 쌍둥이 아들을 만난 신씨는 요즘 다시 이혼을 고민 중이다.

“저는 오히려 제가 학대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 결혼할 때만 해도 아들들이 공부를 꽤 잘했거든요. 그런데 중학교 진학하고 성적이 곤두박질쳤어요. 불량한 친구들과도 어울리고요.” 신씨의 남편은 그 탓을 신씨에게로 돌렸다. “심하게 싸운 날에는 남편이 ‘차라리 애들 친모에게 보냈으면 애들이 이렇게는 안 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신씨는 재혼과 동시에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

“이혼했다는 걸 다 아는 회사 사람들에게 재혼한다고 말하기도 싫었어요. 기왕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된 것, 아이들 잘 키워보려고 그만둔 것도 있어요.” 그러나 끊임없이 아이들의 친모와 비교당하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다시 결혼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큰 스트레스가 됐다. “모든 걸 지우고 새출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혼은 초혼과 다르다

TV에서는 재혼 부부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 ‘아이가 다섯’(KBS)이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 세상에 재혼이란 별거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재혼 전문 결혼정보회사도 성업 중이다.

그러나 실제 재혼가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어떤 차별과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특히 대부분의 재혼가정이 한부모가정에서 재혼가정으로 바뀌는, 즉 자녀가 있는 가정이다. 하지만 새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지는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족 구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 장애가정, 입양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에 대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지원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재혼은 아니다. 재혼은 단지 ‘한 번 더 하는 결혼’으로 초혼과 다름없이 취급된다.

새부모와 새자녀의 결합을 진짜 가족으로 보지 않는 경우는 많다. 2015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위원을 선출할 때 새부모는 후보 자격도 없는 상황에 대해 권고조치를 내렸다. 그보다 전에 인권위는 재혼 부부의 사위나 며느리는 직계존속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강보험 규정에 대해서도 권고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전히 새부모는 학부모위원이 되지 못하는 학교도 많다.

그러나 “재혼가정은 진짜 가정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다. “재혼이나 초혼이나”라며 재혼에 대해 별다른 준비도 하지 않고, 재혼 이후의 가정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재혼 이후의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관리받고 지원받아야 하는 것이 재혼가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조언이다.

재혼가정이 다시 해체되는 이유

김태한 안산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혼가정을 연구해 박사 논문까지 썼다. 15년간 재혼가정 상담을 해온 김 교수는 어떤 재혼가정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는지 사례를 분석해 종합해봤다. “관건은 두 가지입니다. 재혼 당시 꿈꾸는 가정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가정에서의 역할과 양육 부담이 어떻게 나뉘는지에 달렸습니다.”

예를 들어보자. A씨는 남편 B씨와 재혼하면서 자녀들을 맡게 됐다. 이제 막 철이 든 어린 아이들이라 걱정이 됐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감싸안으면” 잘될 거라고 기대했다. 김태한 교수는 “대부분의 재혼가정은 ‘친엄마·친아빠처럼 하면 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가진다”며 “재혼을 하게 되면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 관계도 리셋 (reset)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 역시 새자녀에게 “엄마라고 생각하라”거나 “엄마가 더 잘 해줄게”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혼 가정 아이들은 이혼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김 교수는 “주 양육자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데, 양육권 다툼이 있거나 주 양육자의 공백이 있으면 정서적 불안 증세까지 보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어린아이들은 대소변을 못 가리거나 편식을 하거나 짜증을 내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표현한다. 조금 더 나이 든 아이들은 반항을 한다. 아이들의 반복적인 행동 때문에 A씨는 “혹시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 걱정을 하게 됐다. 또 “이대로 가다가는 계모 밑에서 자라서 그렇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다”는 염려가 들었다.

그래서 A씨가 선택한 방법은 엄격한 훈육과 통제다. 편식을 하면 회초리로 혼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와 정서적인 유대를 쌓을 시간도 없이 훈육이 시작됐다. B씨는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B씨는 “어렵게 찾은 배우자를 놓칠까봐” “새부모와의 관계를 쌓아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사실상 아이와 A씨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아동학대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 경우 A씨의 새자녀는 자라나면서 A씨와 거리를 두게 된다. ‘한가족’이란 불가능해진다.

재혼가정에 더 가혹한 사회적 시선도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든다. 김태한 교수는 “재혼가정의 새부모를 관찰해 보면, 새자녀의 교육에 신경 쓰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재혼가정이 초혼가정과 차이 나지 않아야 한다는 완벽주의가 아이들의 학업 성취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만약 B씨가 아이들을 엄격하게 훈육하는 A씨를 나무라고 아이들 편만 들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재혼가정은 재혼 부부와 새부모, 새자녀뿐 아니라 주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새롭게 설정된 수많은 관계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 재혼 부부의 결속력까지 강하지 않은데, 친부모와 친자녀를 중심으로 공감대가 이뤄지면 새부모는 언젠가 떨어져나가게 된다.

‘평택 원영이 사건’으로 알려진 아동학대 사건 이후 재혼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 사진은 평택시립추모관에 안치된 고 신원영군. ⓒphoto 연합
‘평택 원영이 사건’으로 알려진 아동학대 사건 이후 재혼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 사진은 평택시립추모관에 안치된 고 신원영군. ⓒphoto 연합

기대를 버려라

김태한 교수는 “재혼가정의 성공은 낙관적 기대를 버리는 것에 달렸다”고 말했다. 김효순 세종사이버대 교수 역시 “재혼하자마자 원래 가족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효순 교수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초혼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각자 ‘가족’이 있었던 재혼은 어떻겠어요. 재혼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좋은 아저씨·아줌마’가 되겠다는 마음이다. 김태한 교수는 “새엄마·새아빠라는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역할에 몰입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새자녀에게 친부모의 자리를 없애려고 하면 반발이 일어난다. “친엄마가 있는데 갑자기 가족이라고 들어온 아줌마가 ‘엄마’라고 부르기를 강요한다 한들 마음으로 부를 수 있겠어요? 아이는 반항하거나 스트레스를 표출하고, 새부모는 초조해하는 상황만 발생합니다.”

재혼 전에 가족 간의 유대 관계를 쌓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효순 교수는 “재혼가정의 대부분이 자녀가 있는 가정인데, 왜 자녀들에게는 재혼가정에 편입할 것인지 의사를 묻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흔히 재혼을 부부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혼은 온 가족의 문제입니다. 자녀들도 재혼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죠. 무작정 시작하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A씨의 사례로 되돌아가보자. 만약 A씨가 새자녀의 정서적 불안 상태를 알고 있었다면 엄격한 통제와 훈육만을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혼가정에 중요한 것은 서로의 정서와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겉보기에 하나가 되고, 그럴듯한 역할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재혼을 하면, 부부 사이에 역할을 조정하고, 관계를 중재하는 것이 재혼가정의 안정을 가져오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성이 양육권을 가질 가능성이 높고, 재혼할 때도 남편의 아이가 새엄마를 맞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때 남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김태한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부부간에도 신뢰를 쌓아야 하지만, 자녀와 새엄마 사이의 미묘한 갈등에도 중재를 서야 합니다. 시댁과 새 처가에서도 중재가 필요해요. 재혼한 배우자의 애매한 위치를 이해하고 서로 이끌어준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6년 전 재혼하면서 부인이 낳은 남매를 새자녀로 맞은 김정훈(가명)씨의 사례는 모범사례라고 할 만하다. 김씨의 새자녀들은 재혼 당시에 대학생, 고등학생이었다. 김씨는 무리하게 “아빠가 되겠다”고 나서는 대신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새자녀가 명절 즈음에 친아빠를 만난다는 사실도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다. “아이들의 결정, 아이들의 감정이 우선이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결혼할 때 친아빠를 부르고 싶다고 해도 그러라고 할 거예요. 제 손을 잡고 입장하고 싶다고 하면 더 좋고요.” 부인의 자율권을 인정하고, 억지로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김씨는 “힘들지만 이 정도면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비판할 정책도 없다

우리보다 재혼이 일상적인 미국에서도 재혼가정의 해체율은 25%로 초혼가정보다 높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아동복지포럼’에서 조홍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연구발표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재혼실패율도 60%로 매우 높게 추정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재혼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지원이나 공감대가 없다.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서 관련 정책을 검색해봤을 때 한부모가정에 대한 검색 결과는 무려 2000개가 넘는다. 입양가정에 대해서도 43건, 조손가정도 186건이지만 재혼가정에 대해서는 단 한 건에 그친다. 그마저도 2004년 호주제 폐지 당시 “호주제 폐지가 재혼가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구절이다.

재혼가정 연합체는 더욱 없다.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소규모로 운영되고는 있지만 적극적인 모임을 갖는 곳은 거의 없다. 재혼가정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어려움을 상담할 곳이 없는 것이다. 재혼가정을 위한 사전교육, 상담이 이뤄지는 시민단체도 없다. ‘좋은 아저씨’로 새아빠의 역할을 잘 수행하던 김정훈씨만 해도 “솔직히 내가 하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 몰랐다”고 할 정도였다.

부부 문제만 해도 초혼 부부와 재혼 부부는 크게 다르다. 김효순 교수의 지적이다.

“재혼 부부는 초혼 부부보다 덜 참는 경향이 있어요. 각자가 잘 살고 싶다는 욕구로 만나다 보니 기대가 크고, 인내심은 적습니다.”

더이상 재혼가정을 각 가정만의 문제로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것이 김효순 교수의 설명이다.

“재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건 단지 차별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재혼가정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재혼가정 문제는 많이 없어질 겁니다.”

재혼가정 가이드

재혼가정의 가족 내 갈등은 부부, 자녀, 친족뿐 아니라 전 배우자나 사회적 관계로 인한 것까지 다양하다. 재혼가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알아야 그에 대한 대처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해봤다.

부부 관계

재혼가정은 경제적 문제, 육아, 고독감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재혼 부부의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치가 초혼 가정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감은 특히 초기 결혼생활에서 혼란과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

재혼 부부의 자원 관리 또한 주의해야 한다. 자원에는 소득과 같은 경제적 자원도 있지만 시간이나 애정 같은 비물질적 자원도 있다. 예를 들어 여가 시간을 쓰는 데 있어 이전 결혼생활에서 갈등을 빚은 부분이나 이혼 후 재혼 전 생활과 같은 패턴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 새 가족 구성원의 합의를 통해 자원을 분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한쪽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또는 의사결정을 할 때도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한쪽 배우자가 자신의 의사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초혼 상황에서보다 더 신중한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재혼 부부는 이미 결혼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이혼을 선택한 적이 있기 때문에, 재혼에서도 이혼이라는 판단을 우선할 수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재혼 부부의 재이혼율이 높은 이유다. 부부 사이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혼이라는 파국에 이르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화 및 상담을 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부부-자녀 관계

친자녀에 대한 편애는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그만큼 흔한 갈등 요인이다. ‘배우자의 자녀’를 무시하거나 차별하려는 움직임은 감정적 교류가 이뤄지지 않을 때 흔하게 발생한다. 새자녀의 습관이나 사고방식이 익숙하지 않아도 이를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교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배우자의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지고 쉽게 양육을 포기하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재혼 생활에서 새자녀를 방해자로 인식하게 된다.

대부분의 재혼가정에서 이미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겪은 스트레스를 각종 불안행동 형태로 표현한다. 편식, 짜증 등의 행동은 흔한 것이고 청소년기 새자녀는 종종 가출하거나 학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때 재혼 부부에 따라서는 새자녀의 행동의 원인을 배우자에게 돌리기도 한다. 자녀 문제로 부부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다. 새자녀의 문제는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이해의 문제라는 점을 파악하고, 부부 공동의 문제라는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재혼 부부가 둘 다 자녀를 데리고 결합하는 경우 자녀들 간 갈등도 고려해야 한다. 대개 재혼은 부부간의 감정만을 고려해 이뤄지기 때문에 자녀들의 동의는 형식적이거나 없을 때가 많다. 부모의 재혼을 납득하지 못하거나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자녀들을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사회, 친족, 전 배우자

한국 사회에서 재혼가정의 아이는 ‘불쌍한 아이’로 인식된다. 편향된 시선에 노출될 경우에 아이는 본래 성격이나 취향을 인정받기 어렵다. 최근에는 그래도 줄어들었지만 재혼가정의 아이가 ‘특이한 아이’로 인식돼 또래집단에서 따돌림받는 사례도 자주 발견된다.

무엇보다 전 배우자와의 문제는 재혼가정에서 주요 갈등 요인이 된다. 아이가 없는 부부끼리 재혼했을 경우에는 문제가 덜하지만, 아이의 친부모가 살아 있는 경우에는 문제가 커진다. 아이가 친부모에게 집착할 수도 있고, 육아 문제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교류해야 하는 재혼가정의 특성상 부부 관계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가정 내에서 친부모와의 만남 횟수 등에 대해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대개 재혼할 때 친척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친척 관계 또한 재혼 생활의 성패를 가르는 부분이다. 이전 배우자에 대해 불만족하고 있던 친족이라면 새배우자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보일 수 있고, 반대로 새배우자를 이전 배우자와 끊임없이 비교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재혼 부부에 대한 친척들의 인정과 지지는 재혼가정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재혼가정을 이룰 때 본인과 자녀뿐 아니라 주변의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