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태양의 후예 문화산업전문회사 NEW
ⓒphoto 태양의 후예 문화산업전문회사 NEW

이 정도면 역대급 현상이다. 어딜 가나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이야기다. ‘태양의 후예’를 줄여서 말하는 ‘태후’는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다. ‘태후앓이’는 이미 식상한 표현이 됐고, “일주일이 수목수목수목수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돈다. 다중채널시대 꿈의 시청률인 30%를 돌파했고, 한국을 너머 중국·일본·태국에서도 전례 없는 인기다. 중국에서는 김수현 주연의 ‘별에서 온 그대’ 시청률을 이미 넘어섰고, 일본에서는 제2의 ‘겨울연가’ 조짐도 보인다. 16부작 중 딱 절반 고개를 넘은 시점이라 향후 인기몰이가 더욱 주목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드라마에 쏟아지는 반응은 한결같다. “송중기 멋있다”. 간만에 국민 모두가 송중기에 대한 팬심으로 대동단결이라도 된 모양새다. 스토리에 죽고 사는 게 드라마라지만, 이 드라마의 결말을 궁금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행여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이 ‘태양의 후예’가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답하기도 애매하다. 그저 송중기 때문에 본다는 얘기다. 아무리 길게 관련 이야기가 나와도 ‘기승전, 송중기’다.

현실에는 없는 진짜 남자

송중기는 평소 드라마를 안 보던 사람들까지 TV 앞으로 불러들였다. 40대 후반 직장인 박미희씨는 “평소 한국 드라마는 잘 안 보는데, 태양의 후예는 송중기 때문에 꼭 보게 된다”며 “연예인에게 이렇게 마음을 빼앗긴 건 처음”이라고 했다. 여성뿐 아니다. 송중기의 힘은 남성들에게도 통했다. 드라마는 유치하다며 눈길도 안 주던 50대 중반 남성 황근호씨 역시 ‘태양의 후예’ 본방 사수에 목매고, 30대 중반 특전사 출신 이상섭씨 역시 아내와 나란히 앉아서 본방을 본다.

‘태양의 후예’에 중독된 이유는 성별로 다르다. 여성들은 한결같이 ‘송중기에 끌려서’지만 남성들은 좀 복잡하다. 송중기를 보면서 ‘잊었던 군대 시절의 열정과 뜨거움’을 추억하는 경우도 있고, 김지원(윤명주 역) 때문에 본다는 사람도 꽤 많다. 튕기듯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송혜교(강모연 역)보다 예쁜데 적극적이기까지 한 김지원 캐릭터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이 송중기에 끌리는 건 송중기의 외모 때문이 아니다. 송중기는 이미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꽃미모를 과시했다.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꽃도령 구용화를 연기했고, 영화 ‘늑대소년’에서 철수는 노숙자도 울고 갈 수준의 분장에도 감출 길 없는 자체 발광 이목구비를 보여줬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강마루는 또 어떤가.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다 바치는 순애보 자체다. 하지만 이 작품들에서 송중기는 폭발적 인기까지는 얻지 못했다.

결국 인기 요인은 송중기 자체가 아니다. 송중기가 연기하는 가상의 인물 ‘유시진’이다. 유시진은 이 시대 여성들의 로망이 투영된 남성성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30대 초반의 김지유씨는 “송중기는 현실에는 없는 강한 남자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송중기가 ‘착한 남자’에 나올 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 여자에 목숨 거는 순애보였고, 착하기만 했다. 그런 캐릭터는 매력 없다. 답답하다.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는 다르다. 군인으로서 직업관이 투철해 자기 것을 지킬 줄 알면서도 내 여자도 지킨다. 요즘은 남자다운 남자가 희소하지 않나. 내 남자만큼은 나를 보호해주고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런 남자가 거의 없다. 유시진은 진짜 남자다.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다.”

“꽃미남 외모에 상남자라는 말이지.” ‘태양의 후예’에 빠진 여성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유시진은 군인 중에서도 군인이라는 특전사, 특전사 중에서도 특전사 부대라는 ‘707특수임무대대’ 소속이다. 이런 상남자 설정이 여리여리한 외모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유시진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그간 군복무를 소재로 한 드라마 속 군인은 대부분 그저 상남자였다. KBS 미니시리즈 ‘신고합니다’(1996) 속 차인표가 연기한 차성연은 카리스마 넘치는 육사 생도였고, SBS ‘태양 속으로’의 권상우가 연기한 해병 강석민은 의리에 죽고 사는 터프가이였다. 전형적인 군인 캐릭터였지만 여심을 홀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유시진은 다르다. 사랑에 목매는 로맨틱한 남자인 것만도, 군인정신만으로 똘똘 뭉친 상남자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둘 다 묘하게 한 몸에 지녔다. 손발이 오그라들 법한 달달한 고백도 할 줄 아는 남자이면서 민간인 한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뛰어드는 남자다. ‘사랑이 먼저냐, 국가가 먼저냐’의 정답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유시진의 갈등과 고뇌야말로 시청자를 유시진에게 감정이입시키는 포인트다. 목숨을 걸 정도로 사랑하면서도 그토록 사랑하는 여인과 시간을 보내다가 국가의 부름에 망설임 없이 응하는 이 남자. 투철한 국가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긋나는 상황들이 애절함을 낳는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도 내놓는 군인과 생명이 우선인 의사, 그 둘 사이의 숙명적 부딪침이 별 스토리 없는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이다.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역을 맡은 송중기. ⓒphoto 태양의 후예 문화산업전문회사 NEW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역을 맡은 송중기. ⓒphoto 태양의 후예 문화산업전문회사 NEW

軍에 대한 호감도 급상승

‘태양의 후예’ 유시진 인기가 치솟을수록 주목받는 집단이 있다. 바로 군대다. 30대 초반 직장인 김진희씨는 “요즘 군인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며 “군인이 세상에서 가장 남자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군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직업군인입니다. 오늘 급하게 복귀하는데 버스에서 만난 분들이 좋은 말씀과 응원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드라마의 영향이 큽니다. 모든 분들이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나라를 열심히 지키겠습니다. 필승!”

드라마 속 유시진이 연기하는 특전사에 대한 관심이 특히 뜨겁다. 특전사 공보실 송용현 일병은 전화통화에서 “태양의 후예 방송 이후로 특전사에 대한 문의전화가 1.5배 정도 늘었다”며 “부사관 지원 문의나 장교로 임관해서 특전사로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특전사가 되고 싶다”는 글이 하루에도 몇 건씩 올라온다. “특전사를 꿈꾸다 잠시 잠잠해질 쯤 ‘태양의 후예’를 보고 다시 모락모락 피어났다”며 특전사가 되는 방법을 ‘지식IN’에 질문한 이도 있다.

‘~하지 말입니다’의 군대 말투도 유행이 됐다. 군대 용어는 보통 ‘다, 나, 까’로 끝내도록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는다. 요즘은 그 말투를 쓰지 않도록 장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드라마 속 유시진은 여전히 ‘다, 나, 까’를 쓴다. 일상어에서도 기사에서도 온통 유시진 말투다. 평서문이건 명령문이건 권유문이건 상관없다. ‘밥 먹었지 말입니다’ ‘빨리 오지 말입니다’ 하는 식이다.

육군도 이 기세를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육군은 지난 3월 10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진짜 태양의 후예가 나타났다’는 제목으로 남수단에 파병 중인 특전사 한빛부대 6진 장병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고, 3월 14일에는 ‘유시진 대위의 실제 군대 시절 소감문 공개’라는 제목으로 송중기가 국방일보에 기고한 글을 올렸다. 송중기는 육군 22사단 수색대대 출신이다. 2015년 5월 26일자 ‘병영의 창’ 난에서 송중기는 ‘신독(愼獨)하는 황룡 수색인이 되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대한민국 1%만이 경험할 수 있다는 DMZ 매복 수색작업 경험을 털어놓으며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내 양심에 맞게 뜻한 바를 굳게 밀어붙이겠다”는 결의를 다진 글이었다.

사실 그간 군인에 대해서 냉소적 시각이 꽤 강했다. 언론이나 방송 속에 등장하는 군인은 종종 ‘트러블 메이커’거나 ‘불쌍한 청춘들’로 비쳐졌다. “군대 가면 바보, 군대 가면 시간 낭비”라는 말이 공공연했다. ‘국가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조직체계에 소속된 훈련 및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거룩한 사전적 의미가 상당 부분 훼손됐다. 2006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방개혁 관련 발언을 하면서 ‘군대 가서 썩히지 말고…’라는 발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군대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빨리 사회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가야지 아이를 일찍 많이 낳을 수 있다는 요지였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한동안 군에 대한 호감도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011년 한국갤럽이 전국 남녀 1501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인과 군대문화’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군대 복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 중 35.8%가 ‘시간 낭비다’라고 그 이유를 답했다.

그러다 군복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계기가 있다. 탤런트 현빈의 해병대 복무다. 앞서 언급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현빈의 군복무 후 군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고 답한 사람이 50.7%에 달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윤일병 폭행 사망사건을 비롯, 방산비리로 대표되는 각종 군비리가 속출하면서 ‘군은 위험하고 어두운 곳’이라는 부정적 시선이 떠나지 않았다.

“군 시절의 뜨거움이 생각난다”

‘태양의 후예’는 일반인은 물론 군대 다녀온 남자들의 군에 대한 인식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드라마를 보면서 군복무 의무를 다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새삼 자부심을 느낀다는 얘기가 많다. 특전사 출신 이상섭씨는 “제대한 지 10년 됐는데, 당시 뜨거웠던 군인정신이 생각나서 꼭 챙겨 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특전사는 애국심과 자부심이 강하다. 군대에서 농담처럼 ‘축구에도 국가대표가 있듯, 나라에도 국가대표가 있다. 우리는 국가대표다’라고 말한다. 특히 파병군인들의 어깨에는 태극기 견장을 붙이는데, 그들의 프라이드는 대단하다. 당시 한 배를 탄 사나이들의 단단한 소속감, 힘겨운 훈련들을 해낼 때마다 생기는 동기부여가 엄청났다. 회사원이 되고 가장이 되면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잊고 있던 열정과 뜨거움이 생각난다. 그 시절이 그립다. 돌아가고 싶다.”

이상섭씨는 이라크 파병부대인 205특공여단(현 39사단 기동대에 편입) 출신이다. 이씨의 군대 동기들도 최근 유독 SNS에 파병 당시 사진을 많이 올린다고 한다.

채문석 YTN 국장도 특전사 출신이다. 채 국장 역시 ‘태양의 후예’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는 “시간이 안 맞아서 드라마를 꼭꼭 챙겨 볼 수는 없지만 관련 기사를 꼼꼼히 찾아 읽는다”며 유시진이 속한 부대로 나오는 707특임대의 특수성에 대해 들려줬다.

“한 해 3500명의 ROTC가 배출되고 그중 150명 정도가 특전사로 빠진다. 특전사는 수컷 중에서도 우수하다는 프라이드가 있다. 체력도 남다르고 소위 ‘가오’가 있다. 특히 드라마에 나오는 707부대는 특전사 중 특전사 부대로 불린다. 교육과 훈련의 강도가 매우 세다. 고공낙하훈련이라고, 헬기를 타고 2000피트(약 600m) 상공에 올라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훈련도 한다. 그만큼 자부심도 더 강하다.”

채문석 국장은 제대한 지 28년이 지났지만 특전사 출신으로서 자부심은 여전하다고 한다. “평소 특전사 출신이라는 말은 잘 안 하지만, 나대는 사람이 있으면 ‘나 특전사 출신이야’라고 제압용으로 한마디 한다”며 농반진반 말했다.

‘태양의 후예’에는 군인정신과 관련된 명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이런 명대사들이 군인을 멋있어 보이게 하고, 직업관이 투철한 유시진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몇 개만 꼽아보자.

“저는 군인입니다. 때론 내가 선이라는 신념이 누군가에게 다른 의미라 해도 저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합니다.”

“국가가 뭔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국가야. 그게 무슨 뜻이냐면, 너 같은 새끼도 위험에 처하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리지 않고 구해내는 게 국가라고. 군인인 나한테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라고 국가가 준 임무는 없으니까.”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가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그만한 각오로 입어야 한다. 그런 각오라면 매 순간 명예롭다.”

박근혜 대통령과 태국 총리가 극찬

애국심과 국가관을 피력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한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가 수장들도 이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자리에서 ‘태양의 후예’를 극찬하면서 이 드라마가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을 확립하는 데에도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태국 총리 프라윳 찬오차(Prayuth Chanocha)도 지난 3월 17일 방콕에서 열린 공식 행사에서 ‘태양의 후예’를 언급했다. 찬오차 총리는 “‘태양의 후예’를 보면 애국심과 희생, 명령에 대한 복종, 그리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 녹아 있다”며 시청을 독려했다.

이 드라마에 우호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스토리가 약하고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16부작의 드라마에 이렇다 할 별 스토리가 없다는 것이다. ‘닥치고 애국심’을 강요하는 듯해서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아 몰입이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한국군의 우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미군의 수준을 폄하한 내용에 대한 질타가 거세다. ‘사전제작 드라마’라는 명성에 걸맞게 디테일에 신경을 썼으면, 좀더 세련되게 포장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후예’는 현 시점에서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초식남’ ‘마마보이’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유시진은 진정한 남자다움에 대해 묻는다. 유시진은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한 몸에 지녔다. 군인으로서 직업적 책무를 다하면서도 사랑도 지킬 줄 아는 남자, 개성이 넘치면서도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남자.

유시진에게 투영된 남자다움이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김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