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선서를 하는 9급 공무원 합격자들. ⓒphoto 연합
공무원 선서를 하는 9급 공무원 합격자들. ⓒphoto 연합

봄은 9급 공무원 시험 계절이다. 4월 국가공무원 9급 공채를 시작으로 지방직과 경찰직 시험이 계속 이어진다. 그 첫 번째로 4월 9일 토요일에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이 있을 예정이다. 선발예정 인원은 4120명인데 22만2650명이 원서를 접수했다. 역대 최대 접수 인원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선발예정 인원이 11%나 증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경쟁률은 오히려 54:1로 작년의 51:1보다 훨씬 높아졌다. 응시자 중에서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93%를 넘고 있으며, 응시자 평균 연령은 28세이다. 여성 응시자의 비율이 53%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9급 공무원에 대한 이러한 쏠림현상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9급 공무원은 박봉에 말단이라 면접만으로 선발하던 시기가 있었을 정도로 인기가 그리 높지 않았다. 응시자 학력도 주로 고졸이었다. 중졸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졸자가 응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9급 공무원에 대졸자의 비중이 30%를 넘기 시작하더니 1990년 중반 이후 경쟁률도 40%를 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9급 공무원 공채시험의 경쟁률이 높을 때는 90 대 1을 넘는 경우도 있다. 합격자 중에서 고졸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여성 사회진출과 맞물려 쏠림현상

9급 공무원 쏠림의 원인은 구조적이고 복잡하다. 일단 합격하게 되면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되는 직업의 안정성 때문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공무원의 신분 보장이 건국 이후부터 존재해왔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직업의 안정성 이외에도 쏠림현상에 뭔가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민간 부문의 변화이다. 대졸자 수가 급증한 반면 경제성장의 둔화로 청년실업이 증가하였다. IMF 이후 민간 부문에서 ‘유연한 고용’을 강조한 이후 비정규직 중심으로 취업시장이 성장하여 고용의 질이 저하되면서 대학생 등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공직에 대한 선호가 급속도로 높아졌다.

두 번째는 민간에 비하여 월등한 공직의 근무여건이다. 공직은 민간에 비하여 육아휴직과 다양한 자기개발의 기회 등 근무여건이 좋다. 이는 정부가 모범적인 고용주(model employer)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들로, 오래전부터 노력해온 결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경제침체와 여성의 사회진출 등 취업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직업선택의 주요 변수가 되었다. 특히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는 취업이나 근무조건에서 남녀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직에 대한 선호가 커지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의 증가도 공직 쏠림현상에 한몫을 하였다.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큰 경우 보수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공직보다는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민간에 취업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게 된 것이다.

현재와 같이 공직에 대한 선호가 지나치게 높은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그 해결은 용이하지 않다. 올해의 경우 9급 공무원 공채 지원자 20여만명 중에서 4000명만이 합격할 것이고 탈락한 19만5000여명은 내년을 기약하며 다시 시험 준비를 할 것이다. 보통 9급 공무원이 되는 데 4~5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는 합격하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숫자이다. 합격하지 못하는 경우 10년 이상을 공무원 시험준비에 매달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시자의 95%는 마지막까지 합격하지 못한다.

10년간 매달리다 95%는 결국 포기

20~30대의 대부분을 공무원 시험 준비로 보내고도 합격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선택이 별로 없다. 나이가 많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준비해야 하는 시험과목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민간기업 취업은 어려워진다. 수험생활 과정에서 겪는 경제적 어려움, 심리적 압박, 좌절감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젊은 인재들이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노량진 고시촌에서 젊음을 ‘죽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현재와 같이 대졸자가 9급 공무원 공채 합격자의 대부분인 것도 문제이다. 고졸 학력이면 충분하게 수행할 수 있는 9급 공무원의 업무를 대졸자가 담당하게 될 경우 직무동기가 낮아 업무 몰입도가 낮아지고 장기적으로 업무 수행을 통한 자아실현과 성취동기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정부 전체의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결책은 없을까? 경기침체와 청년실업의 증가가 공직 쏠림현상의 근본적 원인이므로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나 공직 선발제도의 개선을 통하여 문제의 일부를 완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공직 시험 과목을 조정하여 준비과정에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공직의 준비가 민간 취업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하거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와 같이 민간 취업에도 도움이 되는 과목을 강화하고 행정학과 행정법 등 행정업무 수행에 필요한 전문성을 측정하는 과목의 비중을 낮추는 것이다. 선발의 기준을 전문성 중심에서 공직에서 요구되는 역량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역량 중심의 선발은 민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 준비가 민간 취업 준비에 모두 ‘매몰비용’으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선발 기준과 방식도 완벽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공무원 선발 시험에서 공직에서 요구되는 전문성과 지식을 측정하지 않거나 그 비중을 낮추는 것이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 전체적인 인적자원 관리 측면에서는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나 직위분류제의 도입 등 그동안 공직의 전문성 제고를 위하여 추진해온 정책들과의 일관성 문제는 물론, 공직에서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합리적 선택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 응시자 20만명 중에서 상위 2%를 선발하는 시험은 변별력이 매우 높아야 한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위 2%의 인재를 골라낼 수 없다면 시험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그리고 2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치르는 시험의 경우 그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비용효과적인 수단을 찾아야 한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이근주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