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로스쿨의 문제를 계속 지적하는 게 사시 존치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문제가 있으면 밝히는 게 첫 번째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논의하는 게 그 다음이죠. 정말 만에 하나 총체적 난국이라 도저히 개선이 안 된다면 제3의 제도를 고민해야죠. 근데 문제가 있으니 옛날 제도로 돌아가자? 말이 안 돼요.”

지난 4월 27일 서울 서초동의 법무법인 ‘광교’ 사무실에서 김정욱(37)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 초대 회장을 만났다. 한법협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권익단체. 국내 유일의 로스쿨 출신 법조인 단체인 한법협에는 약 2000명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소속돼 있다. 로스쿨 1기 출신인 김 회장은 성균관대 공과대학과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2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차장을 지냈고 현재 법무법인 광교 변호사로 있다.

김 회장은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측이 흔히 제기하는 ‘로스쿨은 금수저가 유리한 제도”라는 주장에 대해 서울대 로스쿨의 최근 조사 결과를 인용해 반박했다. 그는 “최근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 중 입학원서의 부모 직업란에 법조인이나 사회고위층 임원을 적은 학생들의 합격률이 일용직 등을 적은 학생들보다 오히려 2% 정도 낮았다”며 “무조건 정성(定性)평가는 불투명하고 이권이 개입돼 있을 것이라는 건 근거가 없는 추측”이라고 했다.

- 로스쿨 학비가 비싸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보나. “지난해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의 조사 결과 로스쿨 재학생들의 가구 소득분포가 일반 가구들의 소득분포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 전국 로스쿨 평균 학비가 연 1500만원이었는데 로스쿨은 장학금 비율이 40%나 된다. 이를 감안해 다시 계산해 보면 실질적인 전국 평균 로스쿨 학비는 연 900만원 선이다. 이 정도면 장학금 비율이 5% 정도인 일반 대학교 학부 등록금과 큰 차이가 없다. 고학력 대학원 과정이다 보니 사회 평균에 비해 잘사는 집안 학생들이 좀더 많긴 하지만 거의 평균에 가까운 값을 그리고 있다.”

-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실력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연봉을 기준으로 보자.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차장 시절 1년 차 변호사들의 연봉을 조사해 봤는데 연수원 출신과 로스쿨 출신 모두 대부분 연봉이 6000만~7000만원 사이에 몰려 있었다.”

- 나이가 많은 학생들은 로스쿨에 가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로스쿨에 30대가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와 함께 실태조사를 한 결과 실제로는 완전 반대다. 사시 출신보다 로스쿨 출신이 평균 세 살이 많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로스쿨에 30대가 거의 없는 이유는 객관적인 스펙이 20대가 훨씬 좋기 때문이다. 내가 로스쿨에 갈 때만 해도 졸업 평점 3.1정도면 로스쿨에 갔는데 요즘은 학생들의 학점이 워낙 좋지 않나.”

김 회장은 ‘로스쿨 입학 면접에서 나이가 많은 학생은 불리하다’는 비판에도 반론을 제기하며, 서울대 로스쿨의 최근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최근 서울대 로스쿨이 면접 등 정성평가를 제외하고 정량평가로만 학생을 선발하면 어땠을지를 가정해 자체 조사한 결과 27세 이하 학생의 비율이 20%가 늘었다”며 “교수들이 나이 많은 학생의 경험을 고려해 오히려 면접점수를 후하게 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성평가가 있어야 오히려 공평하다. 안타까운 사연이든 집안 형편이든 더 고려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현 로스쿨 면접 제도를 옹호했다.

- 지난해 신기남·윤후덕 의원 등 일부 인사들의 청탁 사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처신을 잘못한 건 누구도 정당화할 수 없다. 다만 왜 로스쿨에 비난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신기남 의원의 사례 같은 경우 공론화되기 전에 교수들이 이미 신 의원의 아들을 떨어뜨렸다. 자정기능이 작동되고 있는 것 아닌가. 청탁한 사람을 비난해야지 왜 제대로 행동한 로스쿨을 비난하나.”

- 3년으로 지정된 로스쿨 교육 기간이 짧다는 비판이 있다. 로스쿨 교육 기간이 충분하다고 보나. “오래 공부했다고 (법률 실무를) 잘하는 게 아니다. 연수원에서 공부하는 1000명 중 소위 ‘임관권’이나 ‘대형펌권’으로 불리는 상위 200~300등에 있는 학생은 대부분 20대에 사시를 패스했다. 정말 시험 잘보는 애들은 똑똑하고 어린 애들이다. 올해 변시(변호사시험) 합격률이 55%인데 올해 로스쿨을 졸업한 초시생(로스쿨 5기)은 70% 이상이 붙었다. 근데 4년을 더 공부한 1기생의 합격률은 10%대였다. 물론 최소한의 교육 기간이란 게 있긴 한데 3년이면 충분하다. 4년 넘게 공부하는 것은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거지 변호사가 되기 위한 기본 소양을 기르는 건 아니다.”

- 현재 로스쿨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교수들의 특권이 너무 강하다. 학점 등에 전권을 행사하는 교수들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 만큼, 학생이나 변호사 등 누군가가 교수들을 평가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로스쿨 학생들이 변시에 목매다 보니 특성화·다양화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국민에게 다양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로스쿨 도입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 로스쿨 입학 관련 청탁이나 비리 등 부정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한법협 차원의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나. “한법협 차원에서 윤리위원회를 발족하려고 준비 중이다. 조만간 외부인사를 영입해 위원장으로 모실 예정이다. 현재는 집행부 차원에서 입시 청탁 등 비리 제보를 받고 있다. 또 문제가 있는 학교에는 공문을 보내 사실관계를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아직까지 의혹만 제기됐을 뿐 규탄할 만한 사실이 확인된 건 없었다. 사실 진짜 비리가 나오면 제일 열 받는 당사자는 우리다. 괜히 우리까지 욕먹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사시 존치 논란이 이익단체들의 밥그릇 싸움이 안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인생이 걸린 만큼 고시생들이 필사적인 건 이해하지만, 수십 수백 명이 몰려와 ‘떼법’을 쓴다고 법이 바뀌면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로스쿨에 진학한 학생들 중 일부는 사시를 봐도 단기간에 붙을 만한, 각 명문대 수석하던 학생들”이라며 “이들의 신뢰는 누가 보호하냐”고 했다.

“참 안타까워요. 실제로 저도 송무를 하지만, 의뢰인들은 변호사면 변호사지 ‘사시 출신이다’ ‘로스쿨 출신이다’ 구분하지 않아요.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변호사 단체들이 스스로 차별화하기 위해 로스쿨 출신을 까내리는데, 누워서 침 뱉기예요. 결국 변호사들의 인지도가 점점 낮아지는 거죠.”

키워드

#커버스토리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