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6일은 박근혜 정부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임시공휴일이었다. 지난해 8월 14일 ‘광복 70주년’ 임시공휴일에 이어 전국 고속도로는 또 한 차례 무료 개방됐다. 한국도로공사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494만대의 차량이 고속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공휴일 총량이 급격히 늘면서 산업계의 희비도 엇갈렸다. 2014년부터 시행된 대체공휴일에 이어 각종 임시공휴일마저 추가되면서다. 총선이 있었던 지난 4월 13일 역시 법정 공휴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들어서도 벌써 두 번째 임시공휴일이었다. 불과 일주일 앞두고 결정된 조치에 서비스업계에서는 반기지만 제조업계는 사정이 다르다. “모든 징검다리 연휴가 임시공휴일로 지정될 판”이란 우려도 나온다.

내년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징검다리 연휴가 유난히 많다. 2017년 5월 3일(수) 석가탄신일과 2017년 5월 5일(금) 어린이날이 징검다리 연휴다. 5월 4일만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 석가탄신일인 수요일부터 어린이날(금)을 넘어 토·일 주말까지 이어지는 5일간의 연휴가 주어진다. 내년 6월 6일 현충일 역시 화요일이다. 토·일 주말과 사이에 낀 6월 5일(월)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 토·일 주말부터 현충일(화)까지 이어지는 4일 연휴가 생긴다. 내년 8월 15일 광복절 역시 화요일이다. 징검다리에 있는 8월 14일 하루를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 주말 포함 4일간의 연휴가 생긴다.

무엇보다 백미는 내년 10월 개천절과 추석이다. 10월 3일(화) 개천절과 추석(10월 5일) 사흘 연휴가 공교롭게도 이어졌다. 주말을 끼고 한글날인 10월 9일(월)까지 붙었다. 기본적으로 7일간의 연휴가 보장돼 있다. 이번 임시공휴일 지정과 같이 ‘내수경기 활성화와 국민 사기 진작’이란 논리에 따라 10월 2일(월)만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 주말 두 번을 포함해 무려 10일간의 연휴가 생긴다. 중국 최장 휴일이라는 국경절(國慶節) 7일 황금연휴를 넘어서는 진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게다가 2017년 12월에는 19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대통령 선거일 역시 법으로 지정한 임시공휴일이다. 정치권에서는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표를 잡기 위해 “징검다리 휴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자”는 목소리가 쏟아질 것이 뻔하다. 지난해 8월 14일과 올해 5월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전례가 있어 거부할 명분도 딱히 없다. 지난해 8월 14일 임시공휴일은 ‘광복 70주년’이라는 그럴듯한 의미라도 있었다. 지난 5월 6일 임시공휴일은 ‘국민 사기 진작’ 이외에는 딱히 내세울 명분도 없었다. 사석에서 만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임시공휴일을 남발할 경우 2017년 한 해는 완전히 ‘놀자판’이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와 관련 “임시공휴일을 남발할 바에 차라리 중국식 공휴일 지정제를 도입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중국식 연간 공휴일 지정제는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문화체육관광부 의뢰로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수행한 ‘휴가문화 선진화 및 공휴일제도 개선을 통한 내수관광 활성화 방안’ 연구에서 검토 대상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결과는 없었다.

중국은 매년 말, 다음해의 연간 공휴일을 국무원에서 일괄 발표한다. 중국 국무원 판공청은 2015년 12월 10일, 2016년의 공휴일 계획표를 일괄적으로 각 직할시와 성(省), 자치구 등의 당정 기관에 일제히 하달했다. 춘절(春節), 노동절, 중추절(中秋節), 국경절 같은 특정 기념일을 기준으로 앞뒤로 조정해 설정한 연간 공휴일 계획표다.

매년 상황에 맞춰 인위적으로 설정한 공휴일 계획표이기 때문에 징검다리 연휴 같은 것은 원천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자연히 “징검다리 연휴에 임시공휴일을 만들자”는 기대 섞인 주장도 나오지 않는다. 황제가 매년 반포하는 ‘역법(曆法)’에 따라왔기 때문에 ‘라오바이싱(老百姓·백성)’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달력 반포 주체가 황제에서 공산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날짜 기준 한국식 공휴일과 부합

중국식 연간 공휴일 지정제의 장점은 매년 공휴일 총량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 관리된다는 점이다. 가령 국경절과 같이 주말과 이어져 공휴일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경우 아예 주말을 ‘대체근무일’로 지정한다. 올해 10월 1일 국경절의 경우 10월 1일(토)부터 10월 7일(금)까지 일주일이 국무원이 지정한 공휴일이다. 국경절 연휴와 이어지는 토·일 주말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9일간의 장기연휴다.

하지만 중국 국무원은 지나치게 긴 연휴를 감안해 국경절과 이어지는 토·일 주말을 ‘대체근무일’로 지정했다. ‘대체근무일’로 지정되면 관공서는 물론 은행·기업체도 출근해야 한다. 이날은 국무원에서 지정한 ‘대체근무일’이라서 별도 ‘주말 수당’도 없다. 해당 주말에 쉬고 싶으면 연차휴가를 사용해야 한다.

중국식 공휴일 지정제는 날짜와 숫자를 중시하는 한국식 공휴일, 기념일 운용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한국과 중국에는 유독 특정 날짜로 기리는 기념일이 많다. 양대 명절인 설날(춘절)이나 추석(중추절)만 해도 음력 1월 1일, 음력 8월 15일 식으로 특정 날짜를 기준으로 고정돼 있다. 양국의 독립기념일에 해당하는 광복절(8월 15일), 국경절(10월 1일) 역시 특정 날짜에 고정돼 있다. 삼일절(3·1절) 같은 날은 아예 기념일 이름마저 숫자로 되어 있다. 광복절도 종종 ‘팔일오(8·15)’로 부른다.

연도별 상황에 따라 탄력적 운용

미국·영국 등 영미권에서 일찍부터 사용해온 ‘요일별 공휴일 제도’는 국내 사정상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식 ‘월요일 공휴일제’의 경우 의미를 부여하는 특정 날짜와 실제 쉬는 공휴일 간의 괴리가 생긴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삼일절(3·1절)처럼 특정 날짜에다가 아예 의미를 부여하는 한국 정서상 미국식 공휴일제를 수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본 역시 2000년대 초반, 미국식 월요일 공휴일 제도를 부분 도입했지만 아직 ‘성인의 날’ ‘바다의 날’ ‘경로의 날’ ‘체육의 날’ 등 4개 공휴일에 그친다.

중국식 연간 공휴일 지정제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다. 기념일로 삼는 특정 날짜를 기준으로 앞뒤 휴일을 주말에 가까운 쪽으로 유동성 있게 지정하기 때문이다. 해당 기념일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걸릴 경우 해당 날짜의 앞이나 뒤에 유동적으로 대체휴일을 지정한다. 지난 5월 1일 중국의 ‘노동절’ 연휴의 경우 일요일에 걸렸지만 바로 뒤 월요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해 토·일·월 3일 연휴를 만들어줬다. 때문에 ‘징검다리 연휴’와 같은 고민거리가 생기는 일도 없다.

연도별로 처한 상황에 따라 공휴일 날짜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중국식 연간 공휴일 지정제의 최대 장점이다. 물론 ‘대체근무일’이 있기 때문에 연간 공휴일 총량은 매년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자연히 한국과 같이 매년 실제 쉬는 공휴일이 지나치게 늘거나 줄어드는 일은 거의 볼 수 없다. 국무원이 매년 연말, 이듬해의 공휴일 전체를 일괄 지정 발표하기 때문에 일주일 전에 부랴부랴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는 ‘비상사태’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연휴의 경우 중국 공휴일 제도의 탄력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평가다. 중국 국무원은 올해 노동절 연휴를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로 총 3일간의 연휴를 지정했다. 하지만 노동절 연휴는 2007년까지만 해도 무려 7일간의 장기 연휴였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직후인 1999년, 중국 국무원이 내수소비 활성화 차원에서 춘절, 노동절, 국경절을 각각 주말을 포함한 7일간의 장기 연휴로 지정한 것. 소위 ‘황금주(黃金週)’ 연휴의 탄생이었다.

‘노동자, 농민’ 정당인 중국공산당이 집권하는 중국에서 노동절은 가장 중요한 연휴 중 하나다. 중국 전통 명절인 ‘춘절’, 건국기념일에 해당하는 ‘국경절’과 같은 7일간의 장기간 ‘황금연휴’를 설정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노동자들이 고향에 다녀오려면 적어도 7일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셈법이었다. 이에 중국 국무원은 노동절의 앞뒤 주말을 현란하게 떼었다 붙여서 7일간의 연속 휴일을 만들었다.

하지만 1999년 황금주가 탄생한 지 10년도 채 안 돼 일주일간 장기 연휴에 따른 업무 비효율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여행 활성화를 통한 내수진작이란 정책목표를 초과달성해, 국내 여행의 질(質) 자체가 하락해버린 것. 여행객 이동이 황금주에 집중되다 보니, 고속도로와 철도는 사실상 마비돼버렸다.

전국 주요 관광지는 여행객이 몰려 사실상 관람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세계 최대 궁궐인 베이징 자금성의 경우 하루 적정 관람인원 3만명, 최대 수용인원을 약 8만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14만명이 몰린 적도 있다. 압사(壓死) 등 안전사고를 우려할 지경이 됐다.

황금주에 해외로 나가버리는 관광객이 매년 급증하는 것도 중국공산당의 골칫거리가 됐다. 7일간의 장기 연휴를 이용해 해외로 나가 소비를 해버린 것. 일주일 정도의 연휴면 미주나 유럽 등지로 장거리 여행도 가능하다. 경제성장으로 지갑이 두둑해지면서 국내 여행을 넘어서 해외 여행으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황금주 지정을 통한 국내 여행 활성화와 내수소비 증대라는 당초 정책 의도와 배치되는 결과였다. “중국의 황금주에 세계만 황금을 얻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국무원은 2008년부터 세 개의 황금주(춘절·노동절·국경절) 가운데 노동절 연휴를 7일에서 3일로 줄여 버렸다. 후진타오 정권 때 단행된 결정이다. 대신 청명절, 단오절, 중추절과 같은 전통 명절을 부활해 주말 포함 각 3일간의 공휴일로 신규 지정했다. 노동절에 집중된 7일간의 연휴를 분산시켜 3일간의 휴일을 만든 것. 연휴가 7일에서 3일로 줄어들면 해외 여행이 억제되는 측면이 있다. 해외로 나간다고 해봤자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중화권 여행지에 그친다.

임시공휴일인 지난 5월 6일 경부고속도로 천안IC 부근 하행선 도로가 차들로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임시공휴일인 지난 5월 6일 경부고속도로 천안IC 부근 하행선 도로가 차들로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예측 불가능성… 엉터리 달력

또 전통 명절의 경우 관례적으로 해야 하는 세시풍속이 있다. 청명절에는 성묘를 해야 하고, 단오절에는 종자(粽子·대나무잎밥)를 먹고, 중추절에는 월병을 먹어야 한다. 해외로 나가기보다 국내에서 소비를 하는 경향이 더 크다. 이를 위해 춘절, 청명절, 노동절, 국경절 등 4개 휴일에 한해서는 2012년부터 고속도로 무료통행도 실시했다. 한국의 임시공휴일 고속도로 무료개방은 중국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임시공휴일 단 하루만 고속도로 무료통행을 실시한 한국과 달리 3일에서 최장 7일에 달하는 연휴 기간 전체에 고속도로 무료통행을 실시하는 것은 차이점이다.

최근에는 춘절, 국경절 두 황금주마저 추가로 연휴 일수를 축소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역시 해외 여행객이 너무 많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여행사인 시에청(携程·시트립)에 따르면, 지난 춘절의 경우 무려 600만명이 일시에 해외로 나갔다. 시에청은 중국 관광객이 해외에서 쓴 돈을 900억위안(약 16조1300억원)으로 추산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황금주 개혁방안을 재차 논의 중으로 알려진다. 국경절 7일 연휴는 2008년 노동절 7일 연휴를 3일로 축소 조정할 때 함께 대상에 올랐다가 막판에 빠진 전력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말 한마디에 따라 언제든지 축소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공휴일 제도 변경 움직임은 한국 등 주변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춘절, 한국은 태국·일본에 이어 중국인이 세 번째로 선호하는 해외 관광지였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불과 일주일 전에 임시공휴일을 발표하는 일은 적어도 중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은 이듬해 공휴일은 연말께 국무원 판공청이 심사숙고해 일괄 발표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 잡혀 있다.

지난 5월 6일 임시공휴일은, 4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갑작스레 결정됐다. 한국의 공휴일 규정은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24828호)으로만 돼 있다. 엄밀히 따지면 일반 국민들이 공휴일을 온전히 누릴 법적 근거가 미약한 편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시혜(施惠)하듯 ‘공휴일’을 내려주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대통령 마음에 달렸다. ‘날짜 지정제 공휴일제’로 연간 3~8일에 달하던 매년 공휴일 편차는 2014년 대체공휴일제 시행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2015년 임시공휴일(8월 14일), 2016년 임시공휴일(5월 6일)로 이제는 종잡을 수 없게 됐다.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

예측가능성 측면에서는 중국이 한국보다 월등히 우위에 있다. 적어도 중국에서는 엉터리 달력이 나오지는 않는다. 달력 제작업체 역시 국무원이 연간 공휴일을 지정 발표하면 달력 인쇄에 들어간다. 한국의 경우 갑작스러운 임시공휴일 발표로 올해 인쇄된 모든 달력이 임시공휴일을 반영하지 못하는 엉터리 달력이 돼버렸다. 지난해 달력 역시 8월 14일 임시공휴일로 인해 엉터리이긴 마찬가지였다. 정확한 달력이 있어야 연간 경영계획, 생산계획, 인력수급계획 등을 적절히 세울 수 있다. 세계 6대 수출국인 한국은 달력을 함부로 바꾸어 시장에 혼선을 주어서는 안 된다.

실제 지난 5월 6일 갑작스러운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은행, 증권 창구를 비롯해 병원, 약국, 학교, 어린이집 등에서는 크고 작은 혼란이 벌어졌다. 두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임시공휴일이 갑자기 정해져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색을 표했다. 수혜업종으로 분류된 호텔, 모텔 등 숙박업소에서도 주중 요금이냐 주말 요금이냐를 두고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즉흥적인 임시공휴일이 가져온 각종 폐단이다. 한국도 중국식 연간 공휴일 지정제를 검토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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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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