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황금연휴를 맞아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의 오미초시장을 찾은 여행객과 시민들 모습. ⓒphoto 양지혜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5월 황금연휴를 맞아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의 오미초시장을 찾은 여행객과 시민들 모습. ⓒphoto 양지혜 조선일보 기자

이웃 일본은 우리보다 한발 앞선 2000년대 초반 공휴일 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소위 ‘축일법(祝日法)’ 개혁이다. 그 핵심은 미국식 ‘월요일 공휴일 제도’의 일본판인 ‘해피먼데이’ 제도를 도입해 기존의 날짜별 공휴일과 혼용한 것이다. 성인의 날은 ‘1월 둘째주 월요일’, 바다의 날은 ‘7월 셋째 월요일’, 경로의 날은 ‘9월 셋째 월요일’, 체육의 날은 ‘10월 둘째 월요일’로 요일에 기초해 새로 지정했다. 성인의 날과 체육의 날은 2000년, 바다의 날과 경로의 날은 2003년부터 ‘월요일 공휴일’로 변경됐다.

원래 성인의 날은 1월 15일, 바다의 날은 7월 20일, 경로의 날은 9월 15일, 체육의 날은 10월 10일이었다. ‘해피먼데이’ 제도에 따라 올해 일본의 공휴일은 원래 날짜와 상관없이 성인의 날은 1월 11일, 바다의 날은 7월 18일, 경로의 날은 9월 19일, 체육의 날은 10월 10일이 됐다. 올해 기존의 날짜별 공휴일과 ‘해피먼데이’에 따른 새 공휴일이 일치하는 것은 ‘체육의 날’(10월 10일) 하나밖에 없다.

기존 날짜별 공휴일 제도의 골격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원일(元日·1월 1일), 건국기념일(2월 11일), 쇼와의 날(히로히토 쇼와 천황의 생일·4월 29일), 헌법기념일(5월 3일), 어린이날(5월 5일), 문화의 날(무쓰히토 메이지 천황의 생일·11월 3일), 천황탄생일(옛 천장절·현 아키히토 헤이세이 천황의 생일) 등이다. 대개 새해 첫날(1월 1일)과 건국기념일(2월 11일), 천황의 생일 등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짜와 연관돼 있어 날짜를 바꾸기 힘든 날들이다.

일본도 징검다리 연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헌법기념일(5월 3일)과 어린이날(5월 5일) 사이에 낀 날짜였다. 이에 일본은 2007년부터는 아예 5월 4일을 ‘녹색의 날’로 축일법에 넣었다. 헌법기념일, 녹색의날, 어린이날과 이어지는 3일 연휴를 만든 것. 또 올해부터는 전통적인 휴일이지만 법정공휴일은 아닌 ‘오봉절’ 근처에 법정공휴일인 ‘산의 날’(8월 11일)을 신설해 휴일을 점차적으로 늘려가는 추세다. ‘바다의 날’은 있는데 ‘산의 날’은 없다는 일본산악회 등의 민원에 따라 올해부터 새롭게 신설한 공휴일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인 1872년 양력에 기초한 양력 설을 받아들이는 등 서양식 제도 도입에 거부감이 없었다. 한국과 중국은 지금도 양력과 음력을 혼용하고 있어 신정(新正)과 구정(舊正)을 두 번이나 쉰다. 한국은 신정(양력 1월 1일)과 설날(구정·음력 1월 1일을 전후한 3일)을 쉬고 있고, 중국 역시 원단(元旦·양력 1월 1일), 춘절(음력 1월 1일을 전후한 7일)을 쉬고 있다. ‘해피먼데이’ 제도를 2000년대 초반에 아시아 최초로 도입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일본도 영미식 월요일 공휴일 도입

일본 ‘해피먼데이’의 벤치마킹 대상은 미국의 ‘월요일 공휴일 법령’이다. 말 그대로 주요 공휴일을 날짜가 아닌 요일에 따라 월요일에 집중 배치하는 것이다. 미국은 ‘월요일 공휴일 법령’에 의거해 새해 첫날(1월 1일), 독립기념일(7월 4일), 재향군인의 날(11월 11일), 성탄절(12월 25일) 등 몇몇 주요 기념일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요일에 기초한 연방 공휴일제를 운영하고 있다.

월요일 공휴일에는 유명인들의 탄생일 역시 예외가 없다. 연방 공휴일인 ‘마틴 루서 킹 데이’는 ‘1월 셋째 월요일’ ‘조지 워싱턴 데이’는 ‘2월 셋째 월요일’로 지정해서 쉬는 식이다. 이들 공휴일은 각각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아버지인 마틴 루서 킹 박사의 생일(1월 15일)과 미국 독립전쟁 총사령관이자 초대 대통령인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생일 2월 22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월요일 공휴일 법령에 의해 공휴일로 쉬는 날짜는 실제 생일과 상관없이 해마다 조금씩 바뀌어왔다. 올해 마틴 루서 킹 데이의 경우는 1월 18일날 쉬었지만 지난해에는 1월 19일날 쉬었다. 내년 마틴 루서 킹 데이는 1월 16일날 쉴 예정이다. 미국인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쉬는 날짜가 유동적이다 보니 월요일 공휴일과 날짜로 지정된 원래 공휴일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올 5월 마지막주 월요일에 쉬는 ‘메모리얼데이’(현충일에 해당)’ 공휴일이다. 원래 메모리얼데이 역시 5월 30일이었으나 월요일 공휴일 법령에 따라 5월 마지막주 월요일로 이동했다. 하지만 올해 메모리얼데이는 ‘월요일 공휴일 법령’에서 지정한 ‘5월 마지막주 월요일’과 원래 메모리얼데이인 5월 30일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미국식 공휴일제의 장점 역시 징검다리 연휴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도 1971년 ‘월요일 공휴일 법령’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한국과 같은 날짜에 기준한 공휴일 제도를 운용했다. 하지만 징검다리 연휴가 생기면서 업무 효율성 문제가 불거졌다. 급기야 1971년 연방법을 개정해 월요일 공휴일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월요일 공휴일 제도는 미국의 전 연방 공공기관에 적용되고, 주한(駐韓)미군 역시 월요일 공휴일 법령에 따라 병사들의 휴식시간을 운용하고 있다. 미국식 실용주의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 역시 오래전부터 금요일 혹은 월요일 공휴일 제도를 운용해와 역시 징검다리 휴일에 따른 업무 비효율이 없다. 영국은 1871년부터 시행된 ‘은행휴일법’에 따라, 전체 국민이 쉬는 관행을 갖고 있다. 은행휴일이 법정공휴일은 아니지만, 고용계약서상에는 대개 ‘은행휴일에 맞춰 쉰다’는 조항이 삽입돼 있다. 사실상 은행휴일이 ‘관습’ 법정공휴일이다. ‘관공서의 휴일’을 기준으로 법정공휴일을 정하는 한국과 상징적으로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은행휴일법에 따라 새해 첫날(뉴이어스데이·1월 1일)과 성탄절(크리스마스·12월 25일)을 제외한 모든 은행휴일은 금요일 또는 월요일로 배치돼 있다. 은행휴일의 이름 자체가 아예 금요일, 월요일이라고 명기돼 있는 것. ‘굿 프라이데이’ ‘이스터 먼데이’ 등이다. 굿 프라이데이는 부활절 전 금요일이고, 이스터 먼데이는 부활절 다음 월요일이다. 부활절 날짜가 매년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자연히 이들 휴일 역시 매년 날짜가 다르다.

이 밖에 ‘5월 첫째 월요일’은 ‘노동절 은행휴일’로 ‘5월 마지막 월요일은 ‘봄 은행휴일’로, 8월 마지막 월요일은 ‘여름 은행휴일’로 지정해 사실상 공휴일로 운용하고 있다. 또 성탄절(12월 25일) 다음날인 12월 26일은 ‘복싱데이(Boxing Day)’로 정해 최소 이틀간의 연휴를 보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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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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