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화백의 부인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씨와의 인터뷰를 위해 아들 이태성(일본명 야마모토 야스나리)씨에게 전화를 했다. 태성씨는 “어머니의 일정을 맡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했다. 태성씨가 소개해준 사람이 쓰지모토 다카유키(61) PD였다.

이남덕씨와의 인터뷰 일정 조정은 그를 통해 이뤄졌다. 지난 5월 12일 인터뷰를 위해 안내에 나선 그가 내민 명함에는 ‘이중섭 프로젝트’ 대표 프로듀서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이남덕씨를 비롯해 야마모토 집안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프리랜서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이중섭과 관련해 움직일 때는 이 명함을 사용하기로 돼 있다고 그가 설명했다. 최근 이남덕씨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자주 접촉하고 있는 사람은 쓰지모토씨이다.

그는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 이남덕씨에 대해 “온화하고 편견이 없고 남을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남덕씨가 직접 출연한 다큐 영화를 기획한 것을 계기로 야마모토 집안과 인연을 맺었다. 영화의 제목은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영화는 2015년 일본 전역에서 이미 상영이 됐고 국내에서는 미로비전(대표 채희승)이 배급을 맡아 연내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일본에 ‘화가 이중섭’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대부분의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중섭이라는 화가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한다.

“2004년 당시 제가 일하던 기획사 고문이 이중섭이라는 화가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TV도쿄 ‘美의 거인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중섭에 대한 소개가 나온 때였습니다. 작가의 삶이며 예술이 극적이었습니다. 이런 화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화가 되겠다 싶었죠. 처음 유족을 만나기 위해 집을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의 위대한 화가의 유족인데 사는 모습이 너무 초라했습니다. 이상하다 싶었죠.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어요.”

영화를 제작하기로 하고 준비를 하던 차에 2005년 한국에서 유족까지 휘말린 이중섭 위작(僞作) 사건이 발생했다. 영화 계획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11년 태성씨 측에서 “어머니가 영화를 찍겠다고 하신다”는 연락을 해와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80분 분량의 영화는 2013년부터 이중섭 가족이 피란 생활을 했던 제주도, 부산 등을 중심으로 7개월 동안 촬영됐다. 촬영을 위해 이남덕씨도 5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24곳의 영화관과 전시장 5곳에서 상영된 영화는 불운의 시대를 살았던 한 예술가와 그의 사랑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쓰지모토씨는 흥행 결과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를 계기로 NHK, TBS 등에서도 다큐를 제작하고 아사히, 마이니치, 산케이 신문 등에서도 취재가 이어졌습니다. 올 3월에도 NHK에서 다큐가 재방송되면서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이중섭을 일본 사람들이 알게 됐습니다.”

쓰지모토씨는 이중섭을 ‘근대 아시아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했다. “그만큼 소재도 주제도 틀에 박히지 않고 다채로운 화가가 없습니다. 힘이 있는가 하면 아이처럼 자유롭잖아요. 이런 화가가 왜 그동안 일본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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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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