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유성온천에 있는 육군 휴양소 계룡스파텔.
대전 유성구 유성온천에 있는 육군 휴양소 계룡스파텔.

대전 유성구 유성온천의 계룡스파텔. 유성온천의 온천호텔 중 가장 큰 부지면적을 자랑하는 이 호텔 별관에는 ‘스파마트’란 중형 마트가 있다. 기업형슈퍼(SSM)와 비슷한 318㎡(약 96평) 규모의 중형 마트다. 스파마트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주변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물건보다 훨씬 저렴하다. 참이슬 소주는 920원, 하이트 캔맥주는 1100원에 팔린다. 신라면은 개당 570원, 포카칩은 1140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스파마트와 길 하나를 마주하고 있는 GS25 유성봉명점과 씨스페이스 유성봉명점 등 편의점에는 참이슬 소주와 하이트 캔맥주가 각각 1600원과 1850원에 팔린다. 신라면이나 포카칩의 가격도 각각 780원과 1500원으로, 스파마트에 비해 각각 200원, 400원가량 더 비싸다.

스파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유성점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도 저렴하다. 홈플러스에서 참이슬 소주는 1130원, 하이트 캔맥주는 1300원에 개당 가격이 형성돼 있다. 포장 단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지간한 생필품을 비롯해 유제품, 과일 등 신선식품의 가격은 스파마트가 홈플러스보다 더 싸다. 스파마트는 아예 홈페이지에다 “대형할인마트보다 훨씬 저렴합니다”라고 붉은 글자로 명기할 정도다.

반값 판매에 인근 도시서도 원정 쇼핑

물건값이 싸다는 소문이 나면서 인근 주민들도 스파마트로 몰려와 장을 본다. 문 앞에 ‘우리 군(軍) 마트는 국방가족을 위한 복지시설입니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사실 엉터리다. ‘국방가족’은 군인복지기본법에서 현역 군인 본인 및 배우자의 직계 존·비속, 장교, 준사관, 부사관 및 병(兵)을 일컫는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분들에게는 마트 물품을 판매하지 않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는 말도 있었지만 허울뿐이다. 정작 물건을 살 때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구는 한 차례도 없었다.

동네 영세상인들이 스파마트에 승합차를 몰고 와서 박스째 대량으로 물건을 떼가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군 휴양소 안에 있는 마트지만 30대가량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별도의 주차장까지 따로 확보하고 있다. 주차요원이 없어 주차장 이용은 사실상 무료다. 자연히 규모에서는 대형마트에, 가격에서는 스파마트에 밀리는 동네상인들은 울상이다. 관광지라 원래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스파마트에 비하면 도무지 가격경쟁력이 없다. 한 동네 상인은 “처음에는 군인가족들을 상대로만 팔았는데 요즘은 일반인들을 상대로 반값에 물건을 판다”며 “멀리 세종시에서까지 원정쇼핑을 온다”고 했다.

대전 유성구 봉명동에 있는 ‘계룡스파텔’은 대한민국 국군 산하 최대 휴양시설이다. 원래 일본 육군 휴양소였던 ‘봉명관(鳳鳴館)’이란 온천여관이 있던 곳이다. 광복 후 이를 적산(敵産)으로 인수해 1959년 육군 군인휴양소로 바꾼 곳이다. 유성온천의 제일 알짜 요지에 있는 온천호텔로 2001년 423억원을 들여 계룡스파텔이란 이름의 온천호텔로 바꿨다. 관리주체만 육군 복지지원대대(옛 육군 재경근무지원단)란 점을 제외하면 사실 계룡스파텔은 유성온천 주위의 민간호텔들과 별 다를 바 없다. 일반인을 상대로도 객실을 판매하고, 예식장을 빌려주고, 식당에서 음식도 제공한다. 유성온천 일대 온천호텔과 같이 대온천탕과 고급 사우나 시설도 운영한다.

계룡스파텔은 온천탕 운영을 놓고도 주변 업체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계룡스파텔 대온천탕 일반인 입욕료는 6000원. 인근 유성호텔(7500원), 아드리아호텔(6500원), 인터시티호텔(8000원)에 비해 싸다. 고급 사우나탕의 입욕료 역시 8000원으로 인근 유성호텔(1만4000원), 리베라호텔(1만5000원)에 비해 저렴하다. 계룡스파텔은 지난해 리모델링을 통해 사우나와 대온천탕 시설을 33억원을 들여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수준은 그대로 유지 중이다. 심지어 오는 6월부터는 ‘호국보훈의 달’이라며 국가유공자 가족을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 무료 입욕도 실시하기로 했다.

자연히 주말이면 인근 주민들은 계룡스파텔 온천탕으로 몰린다. 슈퍼마켓이나 온천탕을 막론하고 유성온천에서 흘러나오는 돈의 상당액은 민간으로 흐르지 못하고 육군의 호주머니로 고스란히 떨어진다. 그렇다고 민간업자들이 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도 없다. 가격을 올리고 싶지만 계룡스파텔의 눈치를 보며 가격을 동결할 수밖에 없다. 대전 유성구청 위생과의 한 관계자는 “목욕요금 책정은 업체 완전 자율”이라고 했다. 유성구청 위생과에 따르면, 계룡스파텔을 포함해 관내 목욕탕은 23곳. 한국목욕업중앙회 대전지회 정영상 사무국장은 “국방부에서 막대한 예산 들여서 군인가족들 쓰라고 만든 시설인데 민간인들까지 받으니 일반 목욕탕 영업에 지장이 있다”며 “개장 초에는 일반 목욕탕에서 직원들까지 빼내가서 소송까지 갔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안 올라 좋은 점도 있지만, 가격을 못 올리니 시설 개선 역시 요원하다. 유성온천은 되레 과거보다 퇴락했다. 술집과 싸구려 모텔들만 즐비한 유흥가 속의 육군 휴양소는 어색하다.

계룡스파텔 스파마트 이용 안내문.
계룡스파텔 스파마트 이용 안내문.

알짜배기 요지에 앉아 상권 잠식

군의 영리활동이 민간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 알짜배기 요지에 앉아 가격덤핑으로 상권을 잠식하면서다. 나라가 존재하는 한 군은 망할 일이 없다. 군이 민간업체와 달리 가격덤핑을 불사할 수 있는 이유다.

군 시설의 가격덤핑을 일부 동네 주민들은 반기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손해다. 민간에서 판매되는 물건에는 정부에서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등을 걷는다. 민간업자는 장사가 잘되면 법인세와 소득세도 낸다. 군 시설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재화와 용역(서비스)에는 부가세와 개별소비세 등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민간영역에서 이뤄져야 할 상당수의 소비활동이 군시설에서 일어나는 만큼 세금을 걷지 못하는 국가 전체적으로는 손해다.

엄밀히 말해 군 시설의 민간인 대상 영업은 불법은 아니다. 군인복지기본법에는 ‘국방부 장관은 복지시설 등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 군인과 군인가족 외의 자에게도 복지시설 등을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 등에는 군의 영리사업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20~30% 가격이 낮은 군납상품을 일반 주민들에게 판매해 소상인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주고 있다”는 내용이 대다수다.

실제 국방부를 비롯해 육·해·공 각 군은 거대한 영리사업을 운영 중이다. 국방부와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국군복지단을 비롯 육·해·공 각 군에서 운영하는 호텔과 콘도는 모두 14곳, 쇼핑센터는 7곳에 달한다. 영내마트 1138개, 영외마트 114개를 비롯 각종 이동식 매점 등을 합하면 군이 운영하는 각종 명목의 마트는 1942개나 된다. 문제는 현역 군인과 민간인의 이용 경계가 불분명한 호텔과 콘도, 영외마트 등에서 나온다.

군 소유 시설과 민간업체들 간의 충돌은 비단 계룡스파텔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서울 용산역 앞에 있는 용사의집. 용사의집은 육군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의 명으로 1969년 설치한 군 장병 전용 숙박 및 쇼핑시설이다. 역시 육군 복지지원대대가 관리하고 있는데 스파마트와 같이 유명무실한 관리감독으로 각종 생활용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도매창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일례로 용사의집에서 300m가량 떨어진 이마트 용산점에서 판매하는 500mL 코카콜라 한 병은 1480원. 하지만 용사의집 할인마트에서는 이보다 용량이 더 큰 600mL 코카콜라 한 병을 1050원에 판매한다. 하이트 캔맥주 역시 이마트에서 개당 1276원에 판매하는 데 반해, 용사의집에서는 1100원에 판매 중이다. 용사의집 영수증에는 이마트와 달리 별도의 ‘부가세’ 항목이 표시되지 않는다. 물론 용사의집 입구에도 역시 ‘국방가족을 위한 복지시설’이란 안내와 함께 대상자가 적혀 있지만 요식행위에 그친다.

계룡스파텔의 육군 군인휴양소 표지석.
계룡스파텔의 육군 군인휴양소 표지석.

객실 역시 초저가에 내놓고 있다. 용사의집은 23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는데, 현역 및 예비역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객실을 개방한다. 하룻밤 투숙비는 3만5000원. 시설이나 서비스는 딱 상상하는 만큼이지만, 인근 모텔이나 여관에 비해서도 월등히 저렴하다. 용사의집의 한 관계자는 “육군복지지원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군번란에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일반인도 예약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부산 해운대 백사장 바로 앞에 있는 그린나래호텔 역시 인근 호텔이나 콘도와 비교해 반값 영업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원래 보라매회관이라는 공군휴양소였으나, 2010년 개축해 공군호텔로 바꾸었다. 하지만 말만 공군호텔이지 인근 호텔들처럼 일반인 상대 객실판매는 물론 예식장, 돌잔치 영업도 한다. 주변의 비슷한 규모의 민간호텔이나 콘도에 비해 월등히 저렴한 가격이 특징으로, 객실의 경우 대략 10만원 내외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인근 호텔의 한 관계자는 “이 지역의 지가를 생각하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금액”이라며 “공군호텔이라 수지타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고 했다.

군은 본연의 임무인 국방과 상관없이 서비스업에 직접 뛰어드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항변한다. 근무 특성상 벽오지에 주둔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생활필수품 구매에 필요한 마트 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군이 직접 마트, 휴양시설 등 국방 본연의 업무와 관계없는 일을 하게 된 것. 국군복지단이 관리하는 화진포콘도, 청간정콘도 같은 휴양시설의 경우도 전방부대가 있는 강원도 최북단인 고성군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시대변화에 따라 도심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국방부 직영의 영리사업장도 한두 곳이 아니다. 국군복지단 산하의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덕산쇼핑타운의 경우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롯데마트, 홈플러스, 하나로마트 같은 대형마트가 있다. 인근에 중소형 마트나 편의점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강원도 춘천시의 두미르쇼핑타운 역시 인근 롯데마트, 이마트와 차로 10분 거리다. 3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시의 계룡대쇼핑타운 역시 홈플러스 계룡점과 차로 6분 거리다. 사실 군의 쇼핑센터가 굳이 있을 이유가 없는 곳들이다.

계룡스파텔 별관의 스파마트.
계룡스파텔 별관의 스파마트.

육·해·공 나눠 관리도 따로따로

각 군에서 방만하게 관리하던 호텔, 콘도, 마트 등의 영리사업을 통합정리하는 작업도 지지부진하다. 국방부는 2008년 9월 ‘국군복지단’이란 별도 조직을 창설해 각 군이 관리해 오던 호텔, 콘도, 쇼핑센터, 마트 등을 한 곳으로 모았다. 효율적 통합관리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각 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몇몇 시설은 여전히 육군, 해군, 공군 등 각 군이 자체적으로 관리한다. 서울 육군회관을 비롯 계룡스파텔, 용사의집은 육군이, 진해 해군회관을 비롯 서울 해군호텔과 제주 해군호텔 등은 해군이, 서울 공군회관을 비롯 부산 그린나래호텔 등은 공군이 자체 관리 중이다.

일례로 국군복지단 홈페이지의 ‘전국복지시설’ 소개에서 각 군 산하 휴양시설인 대전 계룡스파텔(육군)이나 제주 해군호텔(해군), 부산 그린나래호텔(공군) 등은 검색조차 안 될 정도로 군 내부 장벽이 심하다. ‘국군’ 복지단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민간기업 같으면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국방부 대변인실의 관계자는 “육·해·공 각 군 본부에서 각 군의 특수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육·해·공군이 호텔과 콘도 같은 휴양시설과 마트, 목욕탕 운영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구조다. 그렇다고 그다지 경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실이 지난 3월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군 최대 휴양시설인 계룡스파텔의 연간 호텔 매출과 수익은 갈수록 악화일로다. 계룡스파텔의 지난해 호텔 부문 매출은 122억원으로 2014년(127억원)에 비해 5억원가량 줄었다. 호텔 부문의 수익 역시 2013년 9억원 적자로 전환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1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호텔 부문의 부진한 영업실적을 온천탕 운영을 통해 벌어들이는 구조다.

경영능력도 의심스러운데 군이 호텔, 콘도 같은 휴양시설을 굳이 직영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민간기업의 경우 복지시설은 대개 대형 콘도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국방부 역시 한화리조트, 대명리조트, 켄싱턴리조트, 금호리조트 등과 같은 민간업체와 제휴관계를 맺고 있지만 여전히 14곳의 호텔과 콘도를 직접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한지 국방부는 지난해 5월, 경기도 성남시 위례신도시 한복판에 ‘밀리토피아호텔’이란 이름의 호텔까지 별도로 개관했다. 150개 객실을 갖춘 특급호텔(특2급)이다. ‘밀리터리(군대)’와 ‘유토피아(이상향)’를 결합한 호텔로, 호텔예약 사이트와 제휴도 맺고 있다. 호텔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텔과 콘도 개수로만 따지면, 대한민국 국방부는 남부럽지 않은 대형 리조트 기업에 속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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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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