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4일 폐쇄된 중국 베이징 ‘무장경찰 제2의원’.
지난 5월 4일 폐쇄된 중국 베이징 ‘무장경찰 제2의원’.

중국군은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의 모든 영리활동을 금지하는 대개혁에 착수했다. 지난 3월 28일 발표한 ‘군대와 무장경찰 부대의 유상 서비스 활동 전면 정지에 관한 통지’라는 이름의 명령을 통해서다. 향후 3년 내 해방군과 무장경찰이 잡다하게 벌여온 각종 호텔과 병원, 출판사, 부동산임대 등의 상업활동을 3년 내 정리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해방군과 무장경찰의 신규 영리사업 진출은 일절 금지되고, 계약기간 등이 만료된 사업은 중단해야 한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발표한 30만 감군(減軍) 선언에 이어 최대 개혁 조치다. 중국 국방대학의 공팡빈(公方彬) 교수는 “군대가 유상 서비스 활동을 전개하며 일부 영역에서는 부패 문제가 일어나기 쉽다”며 “군대는 마땅히 국가방어에만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간 해방군과 무장경찰은 거대한 재벌기업과도 같았다. 호텔과 식당을 비롯해 병원, 출판사, 부동산임대 등 모든 서비스 업종에 진출해 민간과 경쟁을 벌여왔다. “장성들의 마음이 전장(戰場)이 아닌 시장(市場)에 있다”는 비아냥까지 나왔었다. 이 같은 개혁 조치를 촉발한 것은 지난 4월, 22살 청년 웨이쩌시(魏則西)의 사망사건이 발단이 됐다. 중국 서부 산시성 셴양(咸陽) 출신으로 ‘활막육종’이란 희귀질병을 앓던 청년이 베이징에 있는 ‘무장경찰 베이징총대 제2의원’이란 병원에서 엉터리 시술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다. 22살 청년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중국이 공분했다.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다가 지난 5월 4일에는 해당 병원이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웨이쩌시 사건에서 보듯 중국군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의료사업에까지 뛰어들어 광범위한 상업활동을 전개해왔다. 지금도 베이징, 상하이 등지의 소위 ‘공신력’ 있는 대형 종합병원은 해방군이나 무장경찰이 직접 경영하는 병원이다. 베이징의 301의원, 302의원, 304의원, 307의원 등은 덩샤오핑, 장쩌민 등 중국의 지도자가 다니는 병원이라는 유명세를 타고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베이징 301의원은 해방군 총후근부(군수지원부)가 관리하는 종합병원이고, 302의원, 304의원, 307의원 등도 인민해방군의 각급 부대가 관리하는 해방군 소속 대형병원이다. 베이징에만 총후근부나 베이징군구가 관리하는 대형병원이 15개가 넘는다. 상하이에도 장해(長海)의원, 장정(長征)의원 등 해방군 소속 대형 종합병원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웨이쩌시 사망사건을 계기로 해방군과 무장경찰이 관리해온 병원의 허술한 관리시스템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중국군이 상업활동에 뛰어든 것은 군자금을 스스로 충당하는 유구한 전통 때문이다. 특히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등으로 국가재정이 거의 파탄난 직후 집권한 덩샤오핑은 100만 감군 조치를 단행하고, 군의 기업식 경영을 장려했다. 방대하게 늘어난 군을 떠받칠 국가의 재정은 사실상 파탄 상태였다. 이후 전국 각지에 해방군이 직접 경영하는 호텔과 식당 등 각종 사업체가 생겨났다. 심지어 출판사와 부동산 임대, 문화재 거래 등 돈 되는 사업이면 거의 모든 사업에 뛰어들었다. 덩샤오핑 집권 때인 1984년 해방군 출자로 태어난 바오리(保利) 같은 기업은 군수물자 거래부터 호텔, 부동산개발 등 모든 사업을 망라한다.

지금도 해방군과 무장경찰은 전국 각지에 빈관, 초대소 같은 호텔을 거느리고 있다.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직속 호텔인 베이징의 경서빈관(京西賓館)을 비롯해, 무장경찰이 관리하는 베이징 중무대하(인민무장경찰부대초대소) 등등이 대표적인 사업체다. 베이징의 경서빈관은 매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가 열리는 곳이고, 베이징의 중무대하는 양회(전인대·정협)의 대표단들이 단체로 투숙하는 곳이다. 이들 호텔은 대부분 시내 중심의 요지를 차지하고 4성급 이상의 시설을 갖춘 데다가, 가격은 오히려 민영호텔들보다 저렴해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사실상 당정군의 일감 밀어주기로 먹고사는 호텔인데, 자연히 민영호텔 입장에서는 손님을 빼앗기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이 밖에 인민해방군 출판사 등에서 찍어내는 각종 군사서적은 중국 주요 서점의 제일 앞자리에 깔린다. 특히 국유 대형 서점으로 베이징의 왕푸징(王府井)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신화(新華)서점’에서는 해방군이 발행한 각종 군사도서를 전진배치하는 경향이 더욱 심하다. 책이 팔리건 말건 별 상관이 없다. 가뜩이나 출판의 자유도 상당 부분 제약을 받는 민영출판사 입장에서는 별로 유쾌할 리가 없다. 해방군과 무장경찰 같은 든든한 백을 갖춘 국영기업이 민영기업들의 밥줄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최대 약점이라는 ‘국유기업은 전진하고, 민영기업은 퇴보한다’는 ‘국진민퇴(國進民退)’ 현상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후 군이 국방보다 상업활동에 더욱 치중하는 폐단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망할 수 없는 군대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각종 영역에서 국영기업은 물론 민간기업 등과도 충돌해 왔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고위 장성들은 지위를 이용해 적지 않은 ‘회색수입’도 챙겨왔다. 심지어 군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밀수사건까지 심심찮게 터져나왔다. 특히 선박을 이용한 대형 밀수사건 등은 해군의 묵인 또는 방조가 없으면 사실상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이 같은 풍조가 계속된 결과 중국군은 ‘당나라 군대’가 된 지 오래다. 시진핑 정권 들어서 숙군(肅軍)작업과 함께 해방군 최고 지휘부인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가 부패 문제로 낙마했다. 중군위 부주석은 현직 군인이 맡을 수 있는 최고 지위다. 궈보슝은 8000만위안(약 144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수수한 죄로 무기징역을 받았고, 부하로부터 3500만위안(약 63억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쉬차이허우는 복역 중 방광암으로 사망했다. 이 밖에 해방군 총후근부 부부장을 지낸 구쥔산(谷俊山) 장군은 6억위안(약 1081억원)을 받은 죄로 사형유예 판결을 받았다.

미군은 대부분 민간에 아웃소싱

반면 중국군의 가상적인 미군은 핵심업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업무를 민간에 아웃소싱한다. 미군이 영내에 소유한 거의 모든 호텔들은 IHG(인터컨티넨탈호텔그룹) 같은 호텔 전문기업에 아웃소싱하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군 숙소 민영화 프로그램에 따른 조치로, 1만7000여개가 넘는 객실 운영과 유지보수를 민간 전문기업에 맡기는 것이다. 운영리스크를 떠안는 것도 당연히 민간기업 몫이다. 이 밖에 군부대 외곽 경비나 청소 같은 잡역 등 사실상 모든 업무를 민간에 위탁한다. 심지어 중동에서는 군사업무마저 군사전문기업인 ‘블랙워터’에 아웃소싱할 정도다.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로 최근 주한 미군 재배치에 민간인들이 고용보장을 호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찌됐건 군과 민간이 각자의 영역에서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며 상생하고 있다. 연일 터져나오는 방산비리에 휘말린 한국군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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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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