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라면 다 용서가 되는가. 조영남 대작(代作) 사건으로 불거진 미술계 대작 관행과 정운호 게이트 사건으로 불거진 법조계 전관예우 관행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관행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다. 한국은 관행에 유독 관대하다. 관행은 종종 면죄(免罪)의 사유가 된다. 한 사안에 대한 불합리나 불공정을 지적했을 때 해당 조직에서 “관행인데요”라고 응수하면 용서가 되는 분위기다. 한국 사회에서 ‘관행’은 지켜나가야 할 아름다운 가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관행(慣行). ‘관행’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전부터 해오는 대로 하다’란 뜻이다. 관행을 되풀이해온 사람들에게 관행은 공기처럼 자연스럽다. 관행은, 말하자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허용되는 게임의 룰이다. ‘관행’이라는 허울로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관행인데요”에는 ‘나만 그런 게 아닙니다. 전임자도, 선배도 해온 일인데 왜 나만 갖고 그러세요?’라는 억울한 항변이 함축돼 있다. 관행이 불거져 문제가 된 당사자는 ‘운이 없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관행’이라는 미명을 벗기고 현상 자체만 보면 어떨까. 조직의 내부에서 용인되고 묵인되는 숱한 관행들이 외부에서 봐도 ‘관행’이라는 이유로 합리화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 곳곳에는 너무나 많은 관행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법조계 관행, 미술계 관행, 건설업계 관행, 교수계 관행, 공기업 관행…. 그 관행들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보면 ‘악습’에 가까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범죄도 많다. 너무 견고해서 관습법처럼 굳어져버린 ‘악습’으로서의 관행,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합당한지 여부에 대한 의심조차 않고 답습해온 숱한 관행. 그 견고한 관행은 균열을 일으켜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깨져야 한다. ‘관행 타파’야말로 공정사회로 나아가고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미술계 관행 수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겠다.”

얼마 전 불거진 가수 겸 화가 조영남의 대작(代作) 사건에 대한 담당 변호사의 말이다. 한 사건에 대한 잘잘못을 미술계 관행에 비춰 판단하겠다는 얘기다. 조수를 고용해서 작품 활동을 해온 미술계 관행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논외(論外)다. 관행이라면 잘못이 없지만 관행이 아니라면 죄(罪)가 된다는 논리다.

미술계의 관행을 둘러싼 이슈가 사그라들기도 전, 법조계에서는 전관예우 관행과 관련된 대형 사건이 터졌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계 구명 로비 의혹이다.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에게 전달된 천문학적인 수임료의 이면에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사건을 맡으면 무혐의 처분 가능성이 높다’는 기대감이 있다. 이 기대감에는 이상한 ‘합법적 관행’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인맥을 돈으로 사고팔고, 제 식구 봐주기식 수사를 하고, 법망을 피해갈 방법을 알려주는, 전관예우 관행을 둘러싸고 얽힌 복잡한 먹이사슬 말이다.

관행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

전관예우는 관행이라는 미명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5월 13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전관예우는 전관 범죄다’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썼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법조계 전관예우 관행은 ‘법은 옳음과 형평의 학문이다’라는 법치주의의 대전제를 휴지조각으로 만든다.… 일부 전관·현관 판검사 사이 공생 유착의 산물인 전관예우는 국가와 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법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드는 전관예우는 전관 특혜이자 전관 범죄이므로 즉각 혁파해야 한다.”

전관예우가 법조계의 잘못된 관행이라는 인식은 폭넓다. 오죽하면 ‘전관예우 금지법’까지 생겼을까. ‘전관예우 금지법’은 판검사로 재직했던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법원 및 검찰청 등 국가기관의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한 법률로, 2011년 5월부터 시행됐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특혜가 얼마나 일반화된 관행으로 굳어졌는지를 뚜렷이 보여주는 현상이다.

하지만 관행을 뿌리 뽑기는 쉽지 않다. 관행은 힘이 세다. 관행은 한순간 바꿀 수 있는 ‘제도’의 차원이 아니라 인식으로 굳어진 ‘문화’의 영역이다. 관행이라고 다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관행은 관습법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관습법은 한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된 규범으로 성문법에 대한 보충적 효력을 갖는다. 관행은 한 사회공동체가 긴 역사적 전통 속에서 쌓아온 자취가 녹아 있는 습관이기에 부정적 개념으로 치부해버릴 수만도 없다. 관행은 의식과 무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의식적으로 행하는 관행도 있지만, 오래되면 무의식적으로 행하게 된다. 의도와 동기,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관행이 무섭고 위험한 이유다.

관행은 대체로 원칙을 벗어난다. 관행은 원칙대로 할 수 없는 경우 정당화하는 논리로 악용되기도 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관행’이 유지되어온 속성에 주목한다. 그는 관행을 ‘다양한 권력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본다. 따라서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권력의 카르텔을 들여다보고 부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공정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관행이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공정사회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인 부모, 국가, 성별 등으로 인해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인정받을 수 있어야 공정사회가 된다. 하지만 관행은 종종 학연, 지연, 혈연 등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된다. 일종의 정서적 지원 같은 것이다. 그 권력관계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법조계를 출입한 A기자는 “전관예우에는 패거리 의식이 작용한다”며 “관행을 이어오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나중에 자신이 전관이 될 수 있다는 특권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특권의식의 대물림이다. 잘못된 관행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관행의 수혜자가 되고 싶은 일종의 이기심 때문에 전관예우 공범자(共犯者) 대열에 기꺼이 합류하는 것이다.

‘정운호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그로 인해 법조계의 전관예우 악습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정운호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그로 인해 법조계의 전관예우 악습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개념예술 대작 관행은 OK?

다시 미술계의 관행을 보자.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미술계’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 1위가 ‘미술계 관행’이다. 조영남 사건으로 불거진 미술계 관행이 얼마나 초미의 관심사가 됐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미술계는 조영남의 ‘미술계 관행’ 운운에 대해 펄쩍 뛰는 분위기다. 한국미술협회는 “미술계는 그런 관행이 없다” “조영남이 자기가 살려고 미술계를 죽였다”며 조영남 측에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미술계 대작(代作) 관행 논란을 둘러싼 미술계와 일반 대중의 온도 차는 크다. 이 사건 덕분에 ‘조수 채용’이라는 미술계 관행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이 많다. 화랑 관계자는 “작가가 작업실에서 조수를 두고 그리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조수와 떨어져서 작품을 오더하고 사인만 하는 건 작가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며 조영남을 향한 날 선 비판을 했다. 관행적으로 행해온 대작의 범위에 대해 선을 그은 것이다. “대작은 개념미술이나 팝아트 계열에서 종종 있는 일”이라는 화랑 관계자도 있었다. 조영남의 미술은 대작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어쨌거나 화랑계에서는 조수 채용 관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어디까지가 조수의 역할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역할인지’, 또 ‘개념미술이나 팝아트인지’ 여부로 조영남의 죄(罪)의 유무를 가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반인의 시선은 다르다. 화랑계에서 당연시해온 ‘조수 대작 관행’ 자체가 이상하다. 내가 구매한 미술품이 조수의 손길을 절반 이상 거친 작품이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소비자는 드물다. 대작 관행을 알게 된 대중은 ‘사기당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원점에서 묻자. 순수회화에서 대작이 용인되지 않는다면, 개념미술에서는 대작을 해도 되나. 과연 그 대작 관행이 합당한가. 그렇다면 대작은 논문 대필(代筆)과는 뭐가 다른가. 관행적으로 해왔으니 문제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화랑계 누구도 대작 관행 자체가 옳은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미술계 대작 관행 논란을 몰고 온 가수 겸 화가 조영남. ⓒphoto 채승우 조선일보 기자
미술계 대작 관행 논란을 몰고 온 가수 겸 화가 조영남. ⓒphoto 채승우 조선일보 기자

표지갈이 관행, 연구용역비 삥땅 관행…

관행 타파에 앞장서야 할 교육계도 관행에서 자유롭지 않다. 교수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져온 관행들은 그 양상도 다양하고 죄질도 나쁘다. 범죄 수준의 관행도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것이 일명 ‘표지갈이 관행’이다. 지난해 12월 표지갈이로 문제가 된 교수 179명이 검찰에 무더기로 기소되는 초유의 사건이 있었다. 대학 전공서적의 내용은 그대로 둔 채, 저자의 이름만 싹 바꾸고 디자인 약간만 수정한 표지로 갈아 끼워 새 책인 것처럼 출간한 혐의다.

표지갈이 관행은 대학교수, 원저자, 출판사 3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수십 년간 저질러온 범죄(犯罪)다. 재임용 평가를 앞둔 교수는 연구실적을 부풀릴 수 있고, 원저자는 인세를 챙길 수 있고, 출판사는 재고처리를 할 수 있는 데다가 저자들의 약점을 잡아 다른 출판사로 이탈하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공생관계를 맺고 서로의 잘못을 묵인해온 이들은 분명 공범자다. 하지만 기소된 이들의 항변은 한결같았다. “수십 년간 관행처럼 이루어진 일이다.”

예체능계 대학의 관행은 형평성 문제와 직결된다. 대표적인 것이 예체능계 교수의 개인 레슨 관행이다. 예체능계 교수는 입시생을 상대로 고액의 개인 레슨을 하고, 입시 면접에서 특혜를 주기도 한다. 이 관행의 피해자는 선량한 경쟁자들이다. 정원이 분명한 대학 입시에서 누군가가 특혜를 받는다면 또 누군가는 탈락의 고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연구비 횡령도 공공연한 관행이다. 정부 등에서 실시하는 연구용역을 수행하면서 인건비와 출장비, 부대경비 등을 허위 계산하는 식으로 거액의 연구용역비를 빼돌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관행 범죄는 비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연구용역비 사용 내역을 100% 정확하게 기재하는 경우가 더 희귀할 것”이라며 “교육부 등에서 연구용역비 지출에 대한 감사를 세세히 하지 않기 때문에 허위·과장 보고가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털어놨다. 박사학위 논문심사 과정에서 교수들에게 지급하는 거마비, 논문심사 통과 후 지도교수에게 전달하는 선물, 교재 채택 수수료 지급 관행 등도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상한 관행들이다.

비리 백화점 건설업계

건설업계는 온갖 잘못된 관행으로 얼룩진 ‘비리 백화점’으로 불린다. 특히 협력업체 선정 과정은 비리의 온상으로 꼽힌다. 협력업체들이 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비자금 조성을 통한 로비는 관행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건설회사 소장 정도 되면 월급보다 뒷돈이 더 많다” “건설회사 간부를 O년 맡으면 집 한 채가 떨어진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돈다.

유보금 관행도 만연하다. 공사가 끝났는데도 원청업체가 유보금 명목으로 하도급 금액의 일부를 1~2년간 지급하지 않거나 차기 공사대금을 줄 때 정산한다는 조건으로 유보금을 남겨놓는 불공정한 행위다. 유보금 관행은 하도급 업체의 임금체불 등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뿌리 뽑아야 할 사안이다.

건축 공법 답습 관행도 문제다. 새 기술이 적용된 신공법이 등장했는데도 보수적인 건설업계에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기존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불필요한 시공 관행으로 빚어진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다.

무엇보다 건설업계의 ‘담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에는 액화천연가스(LNG) 탱크 건설과 관련해 13개 건설사가 담합으로 적발됐다. 당시 해당 건설사들은 지금과 같은 입찰 시스템에서는 담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질적으로 저질러온 관행을 인정한 셈이다. 건설업계 관행은 부실공사로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반드시 척결돼야 한다.

관행, 하면 공기업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낙하산 인사, 도덕불감증, 방만경영으로 얼룩진 공기업계 관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계에 있다가 낙하산으로 공기업 감사로 가게 된 한 공무원은 공기업 관행을 고발하는 책을 줄기차게 써 왔다. 주인공은 강동원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강 의원은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근무하면서 겪은 구조적 비리와 관행을 일지 형식으로 써서 책을 냈다. ‘제가 바로 무능한 낙하산입니다’ ‘공기업 판도라상자 1·2’ ‘철밥통 공기업 그 모순과 관행의 실체’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감사 일기를 공개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 공기업이 완전히 곪아터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 현실을 알고도 모른 체하면 나는 비겁한 인간이리라. 제도 개선과 혁신을 통해 이곳을 통째로 바꿔놓지 않는다면 나는 역사 앞에 죄인이리라.’

저자는 ‘내부자’로서 ‘내부자들’을 고발하는 책을 내면서 “충격요법이 절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충격요법은 통하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하는 저자에게 임원 등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른 공기업도 그렇게 합니다. 관행이니 모른 체하세요.”

지난해 12월 표지갈이 관행에 가담한 대학교수 179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photo 연합
지난해 12월 표지갈이 관행에 가담한 대학교수 179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photo 연합

관행이 깨지는 징후들

이 외에도 사회 각계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관행이 셀 수 없이 많다. 출판계 관행, 언론계 관행, 스포츠계 관행, 방송계 관행…. 관행이 없는 분야를 찾기 힘들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관행은 그 양상이 다양하고 뿌리도 깊다.

하지만 다행히도 관행에 문제제기를 하는 목소리가 하나둘 늘고 있다. 또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노력도 보인다. 계속되는 건설업계의 담합 논란에 정부가 입찰방식을 개선하겠다고 나선 것이 한 예다. 정부는 300억원 이상 공공 공사에 도입하던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하고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 구성원이 다양해지는 것도 관행이 서서히 깨지는 한 원인이 된다. 이나영 교수의 설명이다. “관행이 유지되려면 집단의 균질성이 유지돼야 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는 다양해지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고 다문화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 다양해지면 조직 내부에 변화가 온다. 내부에서 당연시해온 관행이 외부인에 의해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내부자의 시선에서는 관행이었던 것이 외부자의 시선에서는 더 이상 관행이 아닌 것이다.”

이 교수는 관행에 균열이 생긴 예를 들었다. 최근 교수 사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같은 대학 출신들이 포진한 교수 사회에 타 학교 교수가 영입됐다. 영입된 교수의 눈에 비친 이 집단은 너무 폭력적이었다. 하지만 기존 대학 출신 교수들은 관행처럼 반복해온 문화에 대해 별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 영입된 교수의 문제제기를 듣고 나서야 당연시해온 관행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로 기존 교수들은 관행으로 치부되던 행동들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조심하게 됐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도 균열의 징후가 보인다. 법조계도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법조계를 출입하는 A기자는 “법조계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상관이 지시하면 무조건 따르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위에서 아래를 무서워하고, 눈치를 본다.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간여를 안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전관예우 분위기가 과거보다 확실히 없어지고 있다. 투명해졌다. 이번 사건(정운호 게이트)으로 법조계의 자정 노력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 같다.”

지금 대한민국은 견고한 관행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부의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 관행은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답습해온 고질병이다. 일상 곳곳에 뿌리내린 관행을 답습하기 전에 의심을 품어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불공정한 범죄행위가 ‘관행’이라는 미명으로 덧씌워 있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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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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