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1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해변에서 주민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31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해변에서 주민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해안에는 나아해변이라 불리는 모래사장이 있다. 자갈이 잘게 부서져 생긴 회색 모래밭에 들어가면 발이 푹푹 빠진다. 나아해변에는 평일에도 십여 명의 낚시꾼들이 모여 세월을 낚는다. 이맘때 이곳에서 주로 잡히는 어종은 성대. 날치와 비슷하게 생긴 여름 생선이다. 큰 것은 40㎝가량 된다. 잘게 썬 고등어를 낚싯바늘에 꿰어 던지면 이내 미끼를 문다. 잡은 자리에서 회를 쳐 먹으면 맛이 좋다.

이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대한 돔 모양 원자로 4기(基)가 보인다. 나아해변과 불과 500m 남짓 떨어져 있는 이 시설은 국내 유일의 가압중수로(加壓重水爐)형 원전인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의 월성1·2·3·4호기다. 가압중수로는 핵분열 속도를 늦추는 감속재와 원자로의 열을 식히는 냉각재로 중수(D2O)를 사용하는 원자로다. 원자력본부 구역은 철조망과 울타리로 막혀 있다. 바다 쪽으로 길게 나온 방파제도 보인다. 방파제 끝부분에는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열을 내리는 데 사용할 해수를 빨아들이는 취수구가 있다. ‘일반인 출입 및 거주를 통제한다’고 붉은 글씨로 쓰인 ‘제한구역 알림’ 팻말도 곳곳에 있다. 발전소 북서쪽으로는 거대한 송전탑 수십 개가 산기슭을 따라 전신주처럼 솟아 있다. 산 능선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고압 전선들이 보였다. 이곳은 1983년 월성 1호기 가동을 시작한 월성원자력본부다. 발전소 건설 당시 행정구역명이 월성군이라 월성원자력본부로 이름을 지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월성본부에는 원자로가 총 6개 있다. 월성 1·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이다. 2015년 기준 월성본부의 총 발전량은 302억㎾h였다. 같은해 대구·경북 전력소비량의 50%가 넘는다. 이 중 가장 먼저 건설돼 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30년으로 예정된 설계수명이 2012년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지난해 재가동을 시작했다. 계속운전 허가는 2022년까지 유효하지만, 월성 1호기는 지난 5월 11일 발전을 멈췄다. 액체방출밸브의 작동 이상이 원인이었다. 약 보름 만에 월성본부는 월성 1호기를 재가동했지만, 주민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계속운전 1년 만에 고장난 30년 된 원전, 재가동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지난 5월 30일과 31일, 6월 7일 사흘 동안 월성본부가 있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를 찾았다.

“삼중수소 검출” vs “인체 영향 미미”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는 구글과 네이버 등 인터넷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사이트의 지도에 위치가 표시되지 않는다. 테러 등 위험에 노출될 경우 국민의 생명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는 ‘가’급 국가보안시설이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월성본부의 월성 1·2·3·4호기는 양남면 나아리, 신월성 1·2호기는 양북면 봉길리에 있다. 월성본부의 두 출입문인 남문과 북문 역시 각각 나아리와 봉길리에 있다. 원래 후문이었지만 현재는 사실상 정문 역할을 하는 남문이 북문에 비해 주민 거주지역과 더 인접해 있다. 월성본부와 가장 가까운 주민 거주지역은 양남면 나아리다.

월성본부 남문 앞에는 울창한 나무와 잔디밭이 있었다. 곳곳에 물레방아와 인공하천도 보였다. 한수원이 지은 공원이다. 근처 주민들은 시원한 저녁이나 주말이면 이 공원에서 산책을 한다. 곳곳에 텐트를 쳐놓고 가족과 휴식을 즐기는 이들도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깔끔하게 잘 지은 공원이다. 그런데 이 공원을 한참 거닐자 멀리서 윙윙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원자력발전소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였다. 핵분열로 인해 발생하는 열로 만든 증기가 돌리는 터빈에서 나는 소음이다. 이따금 통제실에서 원전 내 직원을 호출할 때 울리는 ‘삑삑’ 소리도 들렸다.

월성본부 구역임을 표시하는 초록 울타리 내에는 원자력홍보관이 있었다.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홍보하기 위해 한수원이 지은 홍보관이다. 원자력홍보관 바로 옆에는 2차선 도로가 있다. 월성원전 직원들이 출퇴근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 길이다. 이 도로와 인접한 보도에는 검은색 천막과 초록색 천막이 쳐 있었다. 이 천막은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원회의 농성장이다. 길 바로 옆에 있는 천막에는 ‘제발 이주시켜주세요!’라고 쓰인 현수막과 ‘집회일수 646일’이라고 쓰인 칠판이 위아래에 붙어 있었다.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원회는 2014년부터 2년 가까이 이곳에서 농성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로, 70세 이상의 노인들이 많다. 양남면 나아리 주민인 김정섭씨가 위원장이다.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원회는 월성원전을 멈추거나 폐기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들의 요구는 자신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켜 달라는 것이다. 원전 주변의 삼중수소 농도가 높아 건강을 위협받고, 노후된 원전 근처에 있어 불안하다는 것이 이유다. 실제로 삼중수소가 기준치 이상 검출될 경우 유방암과 위암 등 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김승환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경주환경운동연합이 조사한 결과, 나아리 주민에게서 검출된 삼중수소 양이 약 30㎞ 떨어진 경주시 동천동 주민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며 “한수원이 월성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을 이주시켜야 한다”고 했다. 반면 한수원 홍보팀 최은정 차장은 기자에게 “원전 지역 주민에게서 검출된 삼중수소 최대치는 허용 기준치를 1만으로 볼 때 다른 지역 주민이 2라면 6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미미한 수준”이라며 “1년에 바나나 6개를 먹는 것과 동일한 방사선 양”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나아리 주민들만 이주시킬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주대책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월성원전에서 반경 5㎞ 내에 포함되는 경주시의 리만 양남면 나아리와 나산리, 양북면 봉길리 등 3개 리가 있다. 나아리 주민들에게만 이주가 가능할 만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다른 지역 주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월성원전이 원전 관련 정보를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데서도 온다.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원회의 한 회원은 “월성원전이 고장났다는 소식을 서울에 있는 자식들에게 들었다”며 “지역 주민들이 월성원전 얘기를 서울에 있는 매스컴보다 늦게 듣는 것이 말이 되냐”고 했다.

2014년부터 이주를 요구하고 있는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2014년부터 이주를 요구하고 있는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막연한 공포감

지팡이를 짚고 월성본부 홍보관 근처를 지나던 한 70대 여성은 원전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체념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원전) 다른 데 가라고 해도 우리 말 듣습니까. 방사능 안 좋은 건 다들 아는 건데. 옛날엔 나쁜 건지도 몰랐어요. 마을 사람들 중에 시름시름 아픈 사람이 많았는데 원인을 몰라 ‘김병’이라고 했어요. 아침이면 발전소에서 김이 막 올라서 그거 때문에 아픈 줄 알았지요. 지금 보니까 그게 다 나쁜 거였어. 재가동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고장났잖아요. 근데 며칠 전부터 다시 가동하고. 우리 말 듣습니까.”

실제로 이날 기자가 찾은 읍천1리 마을회관의 주민 대부분이 “이 동네 사람들이 암도 많이 걸리고 이유 없이 앓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원전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안감은 막연하다. 원전으로 인해 임파선암과 갑상선암 등 관련 암들이 늘어난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이어지지만,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이 주민의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정부나 학계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일은 아직까지 없다. 원전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국민은 원전에 접근할 일이 거의 없다. 잘 모르는 시설이기 때문에 오는 공포감이 크다. 기자도 이번 취재를 하기 전까지 원자력발전소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원전은 ‘가’급 보안시설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 통제가 엄격하다.

원전은 대표적인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시설이다. 위험성이 적다고는 하지만 방사능 누출과 폭발 우려 등 인근 주민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특히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원전 폭발사고로 인해 원전에 대한 국민의 공포감은 더욱 커졌다.

이로 인해 한수원은 원전이 들어서는 지역에 거액의 보상을 하고 있다. 월성 1호기를 계속운전하는 대가로 한수원이 경주시에 지급하기로 한 보상금은 총 1310억원이다. 이 중 60%인 786억원이 양남면과 양북면, 감포읍 등 동경주 지역에 배분됐다. 이 금액을 집행하는 월성본부의 한 관계자는 “계속운전이 확정된 것이 작년이라 아직 예산이 집행되지 않았다”며 “현재 사업비 집행을 위한 사업 공모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나머지 40%인 524억원은 경주시가 자체 예산에 편성해 지역에 사용한다. 최근 월성본부 내에 건립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관련 보상금으로 한수원은 경주시에 추가로 3000억원을 지급했다.

일반 국민의 원전 기피증이 심해진 데에는 2013년 밝혀진 한수원 비리가 한몫을 했다. 국가 중요시설인 원전에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위조 부품을 사용한 것이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은 관련 업체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이에 대해 전휘수 월성원전본부장은 지난 6월 7일 기자와 만나 “시험성적서 위조, 모조품 생산 납품 등의 행위는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수면에 떠오르기 전까지 걸러내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며 “제도적 측면에서 그런 일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보완해오고 있다”고 했다. 전 본부장은 원전 납품비리 근절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비리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다. 전 본부장은 “서류를 위·변조하다 적발된 업자는 다시는 원자력 관련 업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둘째는 시험성적서와 서류 등 납품받는 부품을 검증하는 한수원 내 조직 인력을 확충한 점이다. 전 본부장은 “(납품받은) 물건이 진본인지 확인하고 검증하는 프로세스를 강화했다”며 “두 번 다시 그런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토양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양남면 읍천리에 있는 읍천항 전경. ⓒphoto 배용진
양남면 읍천리에 있는 읍천항 전경. ⓒphoto 배용진

“원전 아니면 걸뱅이 됐을 사람 천지여”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원회의 의견이 양남리 주민들의 여론을 대표하진 않는다. 월성원전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오히려 이주대책위원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특히 나아리 사람들과 읍천1리, 2리 등 다른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이 대표적이다.

“데모하는 사람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세요. 출퇴근시간마다 곡소리 틀고 상여 갖다놓고, 여기 주민들은 싫어해요. 이미 보상받은 사람들이 또 보상해달라고 그러는 거라고요.”

월성본부 남문에서 가장 가까운 모텔은 읍천2리에 있다. 모텔 주인인 박모씨는 1997년 서울에서 내려와 19년째 모텔업을 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와 다르다. 박씨는 “오히려 외지에서 ‘언니 거기 위험하지 않아’ 하는데 사실 우린 좋다”며 “한수원에서 촌동네에 수영장, 해수탕도 지어주고 공원도 좋고 이런 데가 어딨냐”고 했다. 그는 매일 아침이면 월성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다. 하지만 이런 박씨도 양남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주대책위와 같았다.

“보상만 해주면 뜨고 싶죠. 장사도 안 되고. 여기 경기가 다 죽었어요. 사람들도 안 오고. 집값 땅값도 떨어지고.”

원전으로 인한 공포감은 막연하지만 불황으로 인한 불안감은 현실적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읍천리 상인들은 호황을 맞았다. 월성 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가 건립되면서다. 각지에서 건설 근로자와 용역업체 직원들이 몰려들면서 숙박업소와 식당은 매일이 대목이었다. 하지만 신월성 3·4호기 건립 계획이 취소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아리와 읍천리 상인들에 따르면 월성원전 주변 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실제로 저녁 7시면 월성본부 남문 주변 상가의 불은 대부분 꺼진다. 한 상인은 “원전 직원들은 주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어 장사가 안 된다”고 했다.

오히려 원전을 더 지었으면 좋겠다는 주민도 있었다. 나아해변을 걷다 만난 읍천리 주민 백효자씨는 “원전 아니었으면 이 동네 걸뱅이(거지) 됐을 사람 천지여”라며 “원전 더 지었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는 해변에 설치한 나무판에 널어둔 말린 도루묵 수십 마리를 걷어 넣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자리를 떠났다.

경주시 동남쪽 끝인 양남면에는 2016년 5월 말 현재 6498명이 살고 있다. 총 면적은 84.95㎢로 면사무소가 있는 하서리를 포함해 총 16개 리가 양남면에 있다. 동으로는 동해와, 남으로는 울산광역시와 접한다. 월성본부가 있는 나아리는 그중에서도 남쪽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주시지만, 실제 생활권은 울산광역시 북부와 가깝다. 차로 달려 20분 정도면 울산 북구에 들어갈 수 있는 반면 경주시 도심으로 가려면 토함산을 넘어야 한다.

한수원은 월성원전 건립 당시 월성본부 원자로 반경 약 900m 이내에 있는 주민을 이주시켰다. 나아리 전체 인구는 5월 말 현재 812명이다. 나아리 전체 면적 중 반 정도가 월성원전 건립으로 인해 수용됐다. 원전이 있는 지역을 제외하면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크지 않다. 나아리 다음으로 원전과 가까운 지역은 읍천리다. 읍천리는 인구가 많다. 읍천 1리와 2리를 합치면 총 1859명이 읍천리에 산다. 양남면 읍천 1리에서 태어나 월성원전과 평생을 함께해 온 백순희씨의 사례를 보자.

올해 81세인 백순희씨는 양남면 읍천1리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동네에서 자라 이웃 총각과 결혼해 3남2녀를 키웠다. 젊을 때 백씨의 남편은 읍천항에서 배를 타 고기를 잡고, 부잣집을 다니며 농사일을 했다. 이제는 허리가 굽어 보행보조차가 없으면 오르막을 오를 수 없지만, 백씨도 젊었을 적에는 여기저기 일을 하러 다녔다. 특히 한창 원전을 건립하던 시기에는 일감이 많았다. 작은 철근을 나르기도 하고, 못을 뽑기도 했다. 다섯 자녀를 키우기 위해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은 백씨의 손은 웬만한 남자 손보다 두껍고 거칠었다. 지금은 백씨의 손주들도 자라 결혼을 했다.

“원자력이라는 게 언제 어느 시에 터질지 모르는 건데. 늘 불안불안하지요.”

오르막 끝에 있는 도로가 보도블록에 걸터앉아 이마의 땀을 훔치며 백씨가 말했다. 읍천리는 나아리 바로 남쪽에 있다. 나아리처럼 해안에 붙어 있는 마을이다. 읍천항은 월성원전 근처에 있는 작은 항구다. 어민들이 잡아온 물고기는 대부분 근처 횟집에서 소비된다. 읍천항 주변에는 마을 토박이들이 운영하는 횟집들이 여러 곳 있다. 원전 종사자를 제외하면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이나 상업에 종사한다. 이 항구를 거점으로 출항하는 어선이 수십 척 있다. 1990~2000년대는 지역 경기가 좋았다. 월성 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를 연달아 지으면서 건설 근로자들이 쉼없이 드나들었다.

“시름시름 앓는 사람이 많아요. 암 환자도 많고. 나같이 늙은이들이나 여기 살지 젊은 사람들은 위험해서 여기에 안들어오려 해요.”

백씨의 남편은 20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떠난 고향을 백씨는 20년째 혼자 지키고 있다. 장성한 아들딸은 출근할 때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요즘 안부는 차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최근 들어 읍천항은 유명 관광지가 됐다. 주말이면 외지에서 온 차들로 읍천항 입구 도로가 붐빈다. 특히 읍천항과 바로 이어진 주상절리가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그것도 횟집이나 카페,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지 백씨하곤 관계없는 얘기다. 교통량이 많아져 교통사고 위험만 높아졌다. 특히 최근에는 울산에서 포항을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덤프트럭, 대형 트레일러 등 공사용 대형 차량이 5분에 한 대꼴로 지나다닌다. 보도블록도 없는 2차선 도로로 덤프트럭이 바람을 가르며 지나면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백씨는 현재 다달이 받는 기초노령연금 20만원과 자식들이 이따금 보내는 용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양남면 읍천리에 있는 월성스포츠센터 전경. 양남·양북면과 감포읍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다. ⓒphoto 배용진
양남면 읍천리에 있는 월성스포츠센터 전경. 양남·양북면과 감포읍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다. ⓒphoto 배용진

월성본부 직원들의 고민

월성본부에 근무하는 한수원 소속 직원은 약 2000명이다.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합치면 총 3500여명의 직원이 월성본부에 근무한다. 대부분 양남면 읍천리에 있는 사택에 살거나 울산 북구, 경주 감포읍 등 가까운 지역에서 출퇴근한다. 월성본부에 다니려면 자가용이 필수다. 경주에서 들어오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녀 이용하기 불편하다. 반면 자가용만 있으면 다니기가 수월하다. 현재 부분 개통한 울산~포항 간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교통은 더욱 좋아질 예정이다.

월성본부 직원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자녀 교육이다. 자녀가 초등학생일 때는 읍천리에 있는 나산초등학교를 다니면 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모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월성원전 남문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는 하서리에 있는 양남중학교다. 이 학교는 한 반 학생이 20명 정도이다. 전교생은 78명에 불과하다. 어린 나이에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려야 할 학생들에게는 교육환경에 부족한 점이 많다. 이 때문에 한수원 직원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울산이나 경주 시내로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다. 월성본부 관계자는 “한수원 본사가 내려오면서 경주시에 한수원 자사고가 건립될 계획이 있었지만 지역 명문인 경주고교의 반대에 무산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경주시는 전국에 얼마 남지 않은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다.

월성본부 남문 주위 공원에서 만난 직원들은 대부분 원전이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여기서 30년 근무했는데 위험한 거 없어요. (신월성 1·2호기에만) 국가예산 6조3000억원을 쏟아부었는데 (원전을) 안 돌리면 어쩔 긴교?” 5월 30일 저녁 6시쯤 월성본부 앞 공원을 지나 걸어서 퇴근하던, 단단한 체구의 월성본부 직원이 말했다. 나아해변에서 낚시를 하던 한 40대 남성은 이주대책위를 어떻게 보냐는 기자의 질문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이주대책위에는 노인들만 있지요. 젊은 사람들은 다 일하러 가서 거기 못 가요. 거기 있으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며) 요거라도 좀 나오니까. 내가 월성본부에서 일하다 지금은 한수원 본사에서 일하는데. 모르죠. 나도 퇴직하면 거기 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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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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