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자하리스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 내 원탁에 둘러앉아 책을 읽고 있다. ⓒphoto 박승혁 조선일보 기자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자하리스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 내 원탁에 둘러앉아 책을 읽고 있다. ⓒphoto 박승혁 조선일보 기자

2010년 3월 25일 캘리포니아주 포트와이너미(Port Hueneme)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빈스 디영 선생님은 영어 수업시간에 수업용 영화를 보는 도중 웃고 떠드는 학생들을 붙잡고 “입 닥쳐 멍청이야(Shut up stupid!)”라고 소리를 지르며, 몇몇 학생들에게 연필을 집어던졌다. 또 다른 3명의 학생은 작대기로 머리를 얻어맞기도 했다.

빈스는 정년이 보장된 그 지역에서 나름대로 존경받던 선생님이었다. 학교의 조사가 시작되자 그는 ‘멍청이’라고 한 것은 인정했지만 작대기로 학생을 때린 것은 부인하였다. 교육위원회의 거듭된 조사 후 그는 학교에서 해직되고 말았다. 이후 복직을 위해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여 학교에 돌아올 수 없었다.

이 사건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미국에서 이런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차별, 추행, 폭력, 따돌림 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곳이 미국 학교이다. 학생들 개개인이 너무나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고, 자칫 잘못하면 그런 다른 배경이 차별, 추행, 따돌림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 1조는 누구나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평등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다르다는 것은 개성일 뿐, 그것 때문에 차별받거나 무시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바로 개성과 다양성을 기초로 만들어진 나라이고, 각각의 개성과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동시에 그런 다양성이 충돌했을 때 어떻게 그것을 해결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시켜온 것이 미국의 역사다.

한국과 비교하면 더욱 이해가 쉬워진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한때 우리는 스스로를 단일민족이라고 불렀다. 언어도 문화도 역사도 생김새도 똑같은 단일민족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다르다. 우선 사람의 생김새가 너무 다양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 색깔은 물론이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 언어, 종교 등 어느 것 하나 다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르다는 것 때문에 서로 다투게 된다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 즉 미국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사회 곳곳에 잠재해 있고, 국가 시스템은 이 시한폭탄이 터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교육하고 훈련하고 법을 집행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다양성을 저해하는 것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한다. 추행(Harassment), 차별(Discrimination), 왕따 혹은 따돌림(Bully)이 그것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학교에서는 인종(Race), 피부색(Color), 성별(Gender), 종교(Religion), 성정체성(Gender Identity), 성지향성(Gender Orientation), 정신적 혹은 육체적 장애(Mental or Physical Disability)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미국 교사의 책무는 학과를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미국의 가치를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 교사들은 차별, 추행, 따돌림을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칭찬하는 말이라도 조심해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여기에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외모와 관련해서 하는 발언도 포함된다. 얼굴이나 몸매 등 육체적인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옷차림, 모양새 등 사실상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한 학생을 예쁘다고 말하면 즉각 그 말은 다른 학생은 예쁘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될 뿐만 아니라 성추행으로 확대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한 학생의 옷차림이 멋지다고 하면 그 말은 즉각 다른 학생은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교사들은 학생들의 외모를 두고 이렇다저렇다라고 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칭찬받는 말도 조심해야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즉각 그 학생이 학교 당국에 신고하거나, 혹은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신고하여 해당 교사는 수업이 정지되고 조사를 받게 된다. 조사 결과에 따라 학교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이런 조사는 매우 엄정하고 객관적인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내부자들에 의한 봐주기식 조사나 처벌은 있을 수 없다. 한번 이런 문제로 학교를 떠나게 되면 교단을 영원히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학교에서 언제나 이전 직장 경력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런 엄격한 관리를 위해 학생들은 입학 오리엔테이션에서 기본 인권(Civil Rights)에 대해 상세히 교육을 받고, 어떤 경우든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는 즉각 담임교사, 카운슬러 혹은 교장선생님에게 신고하도록 교육받는다. 교사와 학생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의 이런 행위도 철저하게 금지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담임교사가 아니라 교장선생님이다. 그러니 쉬쉬할 여지도 없다.

다음은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나눠주는 유인물이다. ‘재학생 혹은 신입생은 인종, 피부색, 국적, 성, 장애여부, 성정체성 혹은 그 표현, 성적 지향성, 혹은 종교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다. 추행이나 따돌림도 이 원칙에 의해 금지된다. 성추행도 금지된다. 성추행은 개인에 대한 원치 않는 접촉과 언행을 포함한다.(No student or perspective student will be discriminated against on the basis of race, color, national, national origin, sex, disability, gender identity or expression, sexual orientation. Harassment or bullying also prohibited by this policy. Sexual harassment also prohibited by this policy. Prohibited sexual harassment includes unwelcome touching of a personal nature and sexual comments.)’

학생의 기본 인권에 대한 교육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학생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다. 여러가지 사항들 중에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른 사람을 말, 신체, 성적으로 추행하는 것(Harass others verbally, physically or sexually), 수업방해(Disrupt learning), 흡연, 음주, 약물복용(Smoke, Drink, Drug), 낙서 혹은 쓰레기 무단 폐기(Vandalize or Litter), 싸움(Fight), 거짓말(Cheat), 결석(Skip Class), 욕(Swear)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을 매일 단속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한 번 걸리면 즉각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내려진다. 말로만 있는 조항이 아니라 실제로 처벌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도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미국은 그야말로 신상필벌(信賞必罰) 사회다.

이러한 교육은 학교에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학교에서 보내는 통지문 말미에는 언제나 차별, 추행, 왕따에 대한 주의와 관심을 촉구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학교에서의 기본적인 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된다.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가이드해주는 레지던트 어드바이저(Resident Advisor·RA)들도 반드시 사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신체적 폭력이나 언어폭력, 따돌림과 같은 문제가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려 모두가 노력한다. 이렇게 수많은 단계를 거쳐 자연스럽게 상호 인권을 존중하는 성인을 길러내는 것이 미국의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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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현 경기텍스타일센터 뉴욕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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