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photo AP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photo AP

“물론 딕 모리스는 트럼프 선거 캠페인에 합류할 것이다.”

지난 6월 7일 허핑턴포스트 인터넷판에 실린 미국 대선 관련 기사의 한 대목이다. 이 기사에서 딕 모리스는 “트럼프 선거 캠페인 총책임자인 폴 매너폴트(Paul Manafort)와는 오래된 친구관계”라면서 캠페인 합류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허핑턴포스트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당 성향의 언론매체다. 사실상 공화당 후보로 결정된 도널드 트럼프를 좋게 다룰 리가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딕 모리스는 미국 최고의 정치 컨설턴트로 통하는 사람이다. 아칸소주 시골 정치인 빌 클린턴을 주지사에 나서도록 독려했고, 공화·민주를 뛰어넘는 제3의 정책을 통해 클린턴의 제2기 집권을 창출해낸 일등공신이다. 클린턴이 백악관을 떠난 지 무려 16년이나 지났지만 딕 모리스는 아직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다. 대선만이 아니라 상하원 선거 기간에도 등장해 미국 정치 전반을 분석·평가한다.

허핑턴포스트 기사는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공격에 나선 트럼프의 선거 전략에 관한 것이다. 트럼프가 클린턴의 정치 참모였던 딕 모리스를 고용해 힐러리의 약점을 부각시키려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딕 모리스는 백악관에서 정치 참모로 일할 때 힐러리와 불편한 관계였다. 독점욕에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힐러리 때문에 남편 클린턴의 사적·공적 생활이 엉망이 됐다고 비판했다. 8년 전 힐러리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올 때부터 그는 저격수로 활동했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경우 미국 땅을 떠나겠다는 ‘국민에 대한 맹세’도 공식발표한 바 있다.

트럼프 참모 딕 모리스와의 인연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딕 모리스는 좌에서 우로 ‘전향’한 인물이다. 힐러리와의 불편한 관계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볼 때도 민주당이 아닌 열혈 공화당 지지자로 변신했다. 클린턴을 위해 일했음에도 백악관에서 나온 뒤로는 공화당 정책을 지지하는 인물로 ‘확’ 바뀌었다. 선거 캠페인을 도와주는 자신의 고객 대부분도 공화당계다. TV 출연도 보수의 아성인 폭스(FOX) 뉴스에 집중한다. 리버럴 민주당 지지자들이 변절자라 부르면서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트럼프가 딕 모리스를 고용한다는 것은 클린턴 부부에 관한 인사이드 정보를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제의 모범국가로 불리는 미국이지만 정치의 현실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해가고 있다. 정책과 정강이 아직도 캠페인의 중심이기는 하지만, 네거티브 캠페인, 즉 인신공격성 발언이나 선동을 통한 선거운동도 일상화돼 있다. 트럼프는 그같은 폭로성 감정형 선거전략전술을 통해 ‘재미를 보고 있는’ 정치가다. 클린턴 부부에 관한 인사이드 정보를 갖고 있는 딕 모리스가 합류할 경우 네거티브 캠페인은 한층 더 가속화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 기사를 대하면서 필자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10여년 전 늦가을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길어야 5분 정도 만남이었을까. 불꽃 튀는 청춘 남녀라면 몰라도, 분 단위 만남의 대상을 평생 기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어렴풋한 이미지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나 몸동작, 나아가 음색과 표정까지 떠올릴 수 있는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트럼프는 필자의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된, 그 같은 범주에 드는 인물이다.

장소는 뉴욕 한복판에 위치한 포시즌스호텔 레스토랑이다. 맨해튼 52번가와 파크에비뉴에 인접한 레스토랑으로, 원래 앵글로색슨계 백인(WASP) 상류 뉴요커의 멤버십 살롱 같은 곳이다. 필자는 백인도, 상류층도, 뉴요커도 아닌 평범한 동양인이다. 그런데 그런 장소에 가게 된 것은 ‘업무상 상사’였던 딕 모리스 덕분이었다. 필자는 딕 모리스가 운영하던 선거 컨설턴트 회사에서 잠시 아시아 담당 참모로 일했었다. 당시 미국에 들른 대만(臺灣) 고객과 점심을 하기 위해 딕 모리스와 함께 포시즌스 레스토랑에 간 것이다.

포시즌스 레스토랑에서의 짧은 만남

레스토랑은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곧바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정사각형 구도로 이뤄져 있다. 손님은 100% 백인이다. 뉴욕에서 보기 힘든, 모두가 정장 차림으로 식사를 하는 곳이다. 한가운데 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딕 모리스를 쳐다보며 안부를 물었다. 딕 모리스가 전국적 유명인이라는 점 때문이겠지만, 레스토랑 내 백인 손님들끼리 서로 잘 알고 있는 듯 느껴졌다. 거꾸로 필자와 대만 손님에 대한 무언의 따가운 시선도 피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영역을 동양인에게 침해당한 데 대한 어떤 불쾌함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자리는 레스토랑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실내 분수대 바로 옆이다. “여기에서 식사를 하는 뉴요커는 뭔가 비밀스러운 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분수가 소리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바로 옆 테이블의 대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딕 모리스의 설명을 통해 물이 소리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주문을 받는데, 서부영화에서나 보던 중국인 웨이터가 등장했다. 유럽 레스토랑 내 최고의 웨이터들은 프랑스·이탈리아·그리스 출신들이다. 독립한 지 240년이 된 미국에서는 중국인이 그 자리에 올라서 있다. 서부개척시대 당시 중국인은 철로를 건설하는 노동자 역할에서 레스토랑의 얼굴로까지 올라선 것이다. 21세기 미국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풍경 중 하나지만, 뉴욕의 역사인 포시즌스 레스토랑에서는 고급 정장 차림의 중국인 웨이터들을 접할 수 있다.

딕 모리스의 추천에 따라 ‘120달러’짜리 프랑스 직수입 트리플 수프를 주문하던 중 바로 옆 테이블에서 눈에 익은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트럼프였다. 현재의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와 둘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멜라니아는 1970년생이다. 1946년생 트럼프보다 24살이 어린, 띠동갑 부인이다. 원피스 차림의 늘씬한 모습이어서, 사실 처음 눈이 간 것은 트럼프가 아니라 멜라니아였다. 주변을 눈부시게 만드는 미인을 보다가 바로 반대편에 앉은 ‘옥수수 머리’ 스타일의 트럼프를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딸과 함께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당시 트럼프는 지금처럼 유명인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통하는 재능 있는 기업가 중 한 명이었다. 거기다가 연예가 가십에 등장하는 재미있는 캐릭터 정도로 통했다. 당시만 해도 대통령에 출마할 인물이란 예상은 꿈에도 하기 어려웠다. 같이 식사를 하던 대만인들도 트럼프를 알아챈 듯 귓속말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딕 모리스는 상황을 이해했는지 트럼프 쪽 테이블을 쳐다봤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듯하더니, 트럼프가 벌떡 일어나 딕 모리스 쪽으로 걸어왔다. 사실 10여년 전만 해도 딕 모리스의 지명도가 트럼프를 압도했다. 딕 모리스가 아닌 트럼프가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은 당연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데 엄청 거구라는 느낌이 들었다. 키도 크지만 몸집이 대단하다. 체중이 최소한 100㎏ 넘어 보였다. 테이블로 다가온 트럼프는 딕 모리스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가족들의 안부도 물었다. 부모까지 언급하면서 조만간 다시 한 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서로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인사를 끝낸 트럼프는 필자 쪽을 보면서 “손님들인가?”라고 딕 모리스에게 물었다. 딕 모리스는 웃으면서 이름과 함께 한 사람씩 소개를 했다. 필자도 얼떨결에 인사를 나눴다. 악수를 하는데 손이 얼마나 큰지 꽉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트럼프라고 합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기쁩니다. 뉴욕에서 재미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트럼프는 모두에게 ‘선생님(Sir)’이란 호칭을 쓰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불과 5분 정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필자는 순간 트럼프의 팬이 됐다. 동양적 사고라 말할 수 있지만 일단 그는 예의가 남달랐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타입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 성공한 미국인 치고 처음 대면한 사람에게 ‘서(Sir)’란 호칭을, 그것도 동양인에게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워싱턴에서 필자를 ‘서’라 부른 유일한 미국인은, 텍사스 출신 자동차 정비소 기술자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 트럼프가 자리로 돌아간 후 내가 딕 모리스에게 물어봤다. “뉴욕은 좁은 곳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고 부모끼리도 서로 잘 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딕 모리스와 트럼프는 1946년생 동갑이다. 미국에 살면서 알게 됐지만, 딕 모리스가 자랐던 뉴욕과 클린턴 대통령 출현 이후 전개된 글로벌 시대의 뉴욕은 전혀 다르다. 간단히 말해, 우디 앨런 감독의 흑백영화 속 뉴욕이 1990년대 이전의 진짜 뉴욕의 모습이다. 복잡하게 얽힌 듯 하지만, 교육·경제·문화 수준에 맞춰 서로가 잘 알고 통하던 곳이 트럼프와 딕 모리스가 자랐던 시기의 뉴욕이다. “나의 아버지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트럼프 아버지의 일을 많이 도와줬다. 트럼프 아버지는 뉴욕 부동산 개발을 통해 부를 축적한 독일계 후손이다. 뉴욕에는 진짜 뉴요커가 극히 드물다. 새로운 이민자로 넘치고 어느 정도 성공하면 조용하고 편안한 다른 도시로 떠난다. 나는 뉴욕 바로 옆 코네티컷으로 옮겼지만, 뉴욕 5번가에 사는 트럼프는 진짜 뉴요커라 부를 수 있다.”

최근 트럼프의 선거 참모로 나선 정치컨설턴트 딕 모리스(왼쪽)와 함께한 필자.
최근 트럼프의 선거 참모로 나선 정치컨설턴트 딕 모리스(왼쪽)와 함께한 필자.

딕 모리스의 예언은 맞았다

딕 모리스는 헝가리계 유대인이다. 많은 친척들이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필자는 당시 딕 모리스의 설명을 들으면서 미국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다. 서로 원수관계인 유대계와 독일계도 미국 땅에서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구나!

포시즌스호텔에서의 기억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어릴 때부터 지켜본 ‘죽마고우’ 트럼프에 대한 딕 모리스의 평가다. “저 친구 어릴 때부터 머리가 비상했다. 숫자 감각도 뛰어나지만, 한마디 한마디 전부 기억하고 계산하면서 내뱉는다. 언젠가 대통령에도 나올 것이다.”

딕 모리스는 남편 클린턴이 백악관을 나서는 순간 힐러리의 대선 출마를 예언한 사람이다. 필자는 이미 10여년 전 트럼프가 대통령에 나설 것이란 예언을 뉴욕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트럼프라고 하면 ‘막말, 망언, 인종차별주의자’란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한국에 전해지는 반(反)트럼프 소식의 진원지는 리버럴이 지배하는 미국 신문과 방송에 있다. 미국 국민이 아니라 80% 가까운 리버럴 미디어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트럼프=막장 정치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마치 2012년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총리에 취임할 당시 ‘곧 끝장날 막장 지도자’로 분석 평가했던 것과 너무도 비슷하다. 한국 신문에 따르면, 아베는 ‘진작에 끝났어야 한다’. 반일 정서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일본 리버럴 미디어의 목소리를 맹신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왜곡과 무지’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집권 4년 차의 아베는 끄떡없다. 같은 시기에 출발한 박근혜 대통령보다 더 많은 지지와 리더십으로 일본을 이끌고 있다. 나는 트럼프가 선한지 악한지, 옳은지 그른지, 인종차별주의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보통 미국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과연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지, 당선될 경우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주목할 뿐이다.

5분 만남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우스운 얘기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외눈박이’ 미디어의 500시간짜리 보도에 놀아나기보다 단 1분이라도 당사자와 직접 만나 판단하는 것이 한층 더 정확하다고 믿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트럼프는 결코 무뇌(無腦)의 선동형 무식꾼이 아니다. 미국 정치는 정확한 여론조사와 이슈를 통한 통계의 싸움이다. 뭔가 막말로 대응하는 듯 보이지만 배경에는 과학적이고도 객관적인 검증·분석·평가가 숨어있다. 정책이나 이슈를 내세우면서 객관화된 정확한 통계로 뒷받침한다. 열혈 지지자가 아니라 프로 선거컨설턴트가 캠페인 본부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그 같은 이유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귀에 솔깃하고 입에 달콤한 주관적 판단이 들어갈 여지가 사실 별로 없다. 트럼프나 힐러리는 그 같은 과정 속에서 나타난 ‘정치적 아바타’라 볼 수 있다. 둘 다 모두 치밀한 선거 전략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공화당의 사실상 후보가 된 트럼프 정도라면 이제 ‘막말 정치’로 한때 반짝 뜨고 사라지는 수준은 아니다. 미국 국민의 심리를 파고들 만한 공통분모를 움켜쥐고 지지표를 모아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 6월 14일 갤럽은 트럼프와 힐러리의 지지율을 52% 대 45%로 발표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50여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올랜드 대참사’에 따른 반사이익이나 이슬람 히스패닉에 대한 인종차별을 통한 단발성 인기가 아닐지 모른다. ‘누가 더 많은 일자리를 줄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 이해관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라는 측면도 강하다. 서울에서 보면 곧 끝날 듯 보이는 막말 정치인이지만, 트럼프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기억에도 아스라한 5분간의 만남이었지만 트럼프가 왜 2016년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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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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