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윗행치마을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친 묘소.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윗행치마을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친 묘소.

산 사람의 집이 양택(陽宅)이라면, 죽은 사람의 묘는 음택(陰宅)이다.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윗행치마을에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선친 묘 역시 요즘 풍수가들이라면 반드시 찾는 곳이다.

1991년 교통사고로 작고한 반기문 총장의 부친 반명환씨는 반 총장의 생가가 있는 윗행치마을의 보덕산 자락에 묻혀 있었다. 반 총장의 생가가 있는 곳에서 도보로 약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윗행치마을 바로 위에는 100여기가 넘는 광주 반씨 장절공파의 대규모 선영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 마을주민의 안내를 받아 야생 멧돼지가 심심찮게 출몰한다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봉분을 둘러싼 묘지석이나 무덤 주인을 알려주는 비석도 없이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묘였다. 다만 잡초로 무성한 주위의 다른 묘소와 달리 어느 묘역보다 관리가 잘 되어 었었다. 묘소 앞까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시멘트길이 잘 닦여 있는 것으로 보아 유엔 사무총장 부친의 묘소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풍수에 문외한인 기자가 보기에 반 총장 부친의 묘는 묘소 앞으로 공장들이 모여 있는 원남산업단지가 보여서 풍수가 그리 좋다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묘소 앞으로 하얀 민들레밭이 지천으로 펼쳐져 있어서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선영으로 올라가는 길에 윗행치마을 생가 앞에 있는 ‘진응수(眞應水)’와 비슷한 ‘둠벙’이란 작은 옹달샘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혈(穴)자리를 둔 명당임은 분명한 듯 보였다.

경북 칠곡에서 왔다는 한 노부부는 “박정희·박근혜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금오산 자락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풍수가 나쁘지는 않다”고 평했다. 반 총장 선친의 묘를 둘러봤다는 익명을 요구한 풍수학자는 “양택은 드러난 게, 음택은 숨겨진 게 좋다”며 “고려할 것이 30가지가 넘어 섣불리 얘기하기 조심스럽다”고 했다.

대망론과 함께 늘 주목받는 것은 음택의 음덕(蔭德) 발휘 유무다. 제왕이 나온다는 군왕지지(君王之地)를 찾아가는 이장(移葬)은 대권 도전 의사로 흔히 풀이된다. 최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부친 김용주 전남방직 회장과 모친 강신팔씨의 묘를 서울 도봉구 우이동에서 경남 함양군 유림면 유평리의 선산으로 이장해 화제가 됐다. 앞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2004년 선친 이홍규씨의 묘를 충남 예산군 산성리의 선영에서 인근의 녹문리로 이장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대선을 앞둔 1995년 전남 신안군 무의도에 있던 선친의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했다.

이장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톡톡히 효과를 봤다.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용인은 국내의 대표적 음택 명당이다. 이 밖에 김종필, 이인제 등 한 번이라도 대권에 도전했던 인사들은 모두 부모 묘를 이장한 전력이 있다.

반 총장의 선친 묘는 아직까지 이장 움직임이 없다. 윗행치마을의 반기문 평화랜드 옆에서 ‘보덕산 민박집’을 운영하는 반영환 옹에 따르면, “윗행치마을에 광주 반씨 장절공파의 선영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때 반 총장은 부친 묘의 이장을 거부했다”고 한다. 반영환씨는 역시 광주 반씨 일문으로 반기문 총장과는 10촌 지간이다. 민박집에 들어가니 반 총장과 함께 찍은 사진도 걸어놓고 있었다. 대개 사진을 찍으면 반 총장이 가운데 서기 마련인데, 이 사진은 광주 반씨 항렬에 따라 반영환씨가 가운데 서 있는 점이 독특했다. 가문의 항렬은 사회적 지위도 초월하는 듯했다.

음성군 하로1리 능모링이의 장절공 반석평의 묘.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음성군 하로1리 능모링이의 장절공 반석평의 묘.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광주 반씨 일가가 묘 관리”

실제 윗행치마을 위에 있는 광주 반씨 선영을 찾으니 반기문 총장의 선대인 ‘환(煥)’ 자 항렬과 당대인 ‘기(基)’ 자 항렬의 무덤을 한데 모으고, 묘지석까지 둘러 제법 장관을 이뤘다. 반 총장 선친의 묘는 한적한 곳에 따로 있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윗행치마을에서 만난 한 마을주민은 “광주 반씨 일가들이 묘를 관리한다”며 “충주에 사는 모친(신현순 여사)이 돌아가시면 합장하려고 석물도 안 해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선친 묘 이장은 안 했지만 반기문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고, 연임되고, 현재 대망론이 나올 정도로 승승장구한 데는 윗대 조상의 음덕 덕분이란 얘기도 있다. 윗행치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원남면 하로1리의 광주 반씨 선영 역시 1999년에 조성한 묘역이다. ‘능모링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광주 반씨 장절공파의 묘역으로 최근 소설로 출간돼 화제가 된 반기문 총장의 직계 조상인 장절공(壯節公) 반석평의 묘가 있다.

어른 키 세 배 높이의 ‘광주반씨 장절공파 묘역’이란 비석을 지나 언덕을 20분가량 걸어 올라가자 봉분 8기가 나왔다. 이 중 가장 화려한 묘의 주인공인 ‘광주 반공 석평’의 묘였다. 일반인보다 훨씬 큰 넉넉한 봉분에 이보다 작은 봉분 2기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무덤 앞에는 용머리를 튼 비석 2기가 서 있었고, 관을 쓴 문인석 2기가 양옆으로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묘비석을 찬찬히 읽어 보니 무덤 주인 반석평과 세 명의 정경부인들이 한데 모여 있는 형태였다. 비석에는 ‘장절(壯節)’이란 시호가 새겨져 있었다. “조상 묘 아래 후손들의 묘를 쓴다”는 조선 후기 관습에 따라 묘 아래로는 후손들의 묘가 줄줄이 배열돼 거대한 묘역군을 이루고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봉분에서 앞을 내려다보자 아늑한 음성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 사이로 난 충북선 철길을 따라 무궁화호 열차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지나다녔다. 앞으로는 반기문 기념광장에 세워둔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탁 트이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의 묫자리가 한눈에 길지(吉地)임을 알 수 있었다. “명가(名家)에 명당(明堂)이네”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다만 음성에서 묫자리를 봐주는 한 인사는 “반석평이면 중시조인데 발복이 중시조까지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며 “이장한다고 해서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아무튼 조상 묘의 발복 덕분인지 반기문 총장은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거쳐, 2006년 12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2011년 6월에는 유엔 사무총장으로 연임됐다. 광주 반씨 장절공파 종친회 역시 “조상의 위덕을 숭배하고 충효를 근본으로 살아온 ‘기문(基文)’이 외교통상부 장관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에 선임되었다”고 공공연히 밝힌다. 음덕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2017년 12월 판가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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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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