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기술의 진보는 모든 제조업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전망이다.
로봇 기술의 진보는 모든 제조업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전망이다.

이 글은 미국 글로벌전략정보연구 회사 스트러티직 포캐스트(Strategic Forecast, Inc.)가 발간하는 인터넷판 스트레포(Strafor)의 2016년 6월 7일자 레베카 켈러(Rebecca Keller) 박사의 ‘제조 혁명이 세계화의 종말을 고하다(The Rise of Manufacturing Marks the Fall of Globalization)’라는 글을 요약·번역한 것이다.

켈러 박사의 글은 로봇, 인공지능, 3D프린터 등 첨단 제조기술의 발달로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부품과 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하고 수입해 오던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는 석양을 맞는 동시에 새로운 경제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즉 제조업의 자동화 등 첨단 제조기술이 발달하고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한정된 지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여 소비하게 됨으로써 국제무역량이 급속히 감소할 것이며, 이에 따라 지정학적 측면에서 세계질서도 급변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은 세계화 시대의 총아로서 그 혜택을 누렸지만 90% 이상의 무역의존도를 고려할 때 이 같은 세계화 시대의 퇴조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으며, 특히 브렉시트(brexit)를 계기로 반(反)세계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이 글을 요약·소개한다. 축역자인 김충남 박사는 대통령학 전문가이며 대표적 저서로서 ‘대통령과 국가경영’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 현대사’ 등이 있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은 적어도 3개 대륙 6개 이상의 국가에서 만든 수많은 부품으로 조립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첨단 제품은 지구 차원의 멀고 복잡한 공급망(supply chain)에 힘입어 만들어진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globalization)로 인해 공급망이 지구 구석구석까지 뻗치면서 어느 한 나라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항공기, 열차, 자동차는 물론 컴퓨터, 전화기,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의 수백 개 회사에서 만든 부품들로 조립되어 왔다.

세계화는 컨테이너 수송 등 물자를 대규모로 값싸고 빠르게 수송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이처럼 수송 수단의 발달에 따라 제품 생산에 거리가 덜 중요해지면서 부품이나 제품의 생산은 가까운 곳보다는 가장 비용효율적(cost-effective)인 곳에서 생산하게 되었다. 임금이 싼 중국 등에서 제품을 생산해 소비국으로 수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신흥공업국에서 제조업이 발달하게 되면서 무역망이 길어지고 더욱 복잡해졌다. 1995년 WTO가 발족하면서 세계무역이 급증하고 이로 인해 세계화는 더욱 촉진되었다. 그 결과 세계무역은 1980년부터 2007년 사이에 10배나 급증했고 이에 힘입어 한국 등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이 급성장하였고 뒤이어 중국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 세계화를 촉진하고 국제무역을 증진시켰듯이 새로운 기술 발전이 세계의 무역질서와 경제활동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제조공정의 자동화, 첨단 로봇, 소프트웨어 기술 등 놀라운 새로운 기술의 혁신이 인구 고령화와 경제적 변화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 즉 신경제 시대를 열고 있다.

세계화는 융성기를 지나 퇴조기를 맞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 시대에 의해 점진적으로 대체되고 있다. 로봇, 인공지능, 3D프린터 제조 기술의 등장으로 생산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등 4차 산업혁명이 급속히 일어나고 있다. 로봇 기술의 진보는 앞으로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제품 생산에 활용돼 모든 제조업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이고, 이처럼 제조공정을 자동화함으로써 그동안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온 제조업들이 밀려나게 되면서 세계화의 핵심 동력인 지구 차원의 공급망의 이점도 사라지게 되었다.

3D프린트와 같은 제조기술의 진보는 세계화의 이점을 더욱 무력화한다. 전통적 제조공정은 각 제품에 대해 각기 다른 디자인과 설계가 필요했으나, 3D 프린트 기술의 등장으로 하나의 기계로 다양한 디자인과 설계를 하고 제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에 적합한 시설을 갖출 필요도 없다. 이 같은 제조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광범하게 사용된다면 보다 가까운 곳에서 부품 생산이 가능해짐으로써 세계화 시대의 특징인 국제적 분업이 불필요해진다.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3D프린팅 코리아’에서 참가자가 부엉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3D프린팅 코리아’에서 참가자가 부엉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역 중심으로 무역질서 재편될 것

생산의 단계가 줄어들고 공급망의 거리가 축소되면서 한 제품의 생산에 관련되는 회사와 나라가 적어지고, 그 결과 세계무역 규모는 급속히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면 컴퓨터 제조의 경우 한 공장에서 동시에 여러 개의 부품 생산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지금까지 6개국 이상에서 부품을 생산하여 조립하던 것을 단지 두 나라에서 조달하여 제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새로운 기술들이 아직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3D프린트 기술로 복잡하고 정교한 부품으로 구성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수년은 물론 수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리고 3D프린트 제조에 사용되는 물질의 가격도 너무 비싸다.

로봇을 제조업에 광범위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로봇의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로봇을 이용한 공장은 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한다는 단점도 있고 또한 기존 기계시설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있으므로 기계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도 점진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도 빠르기 때문에 이러한 제한 요소를 극복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새로운 경제 시대에는 첨단 기술에 의해 제조 원가를 충분히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부품이나 제품을 먼 나라에서 만들어 수송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지역 중심으로 무역질서가 재편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국가들로 구성된 무역 블록으로 사실상 자급자족이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캐나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을 가진 멕시코는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경쟁국들을 제치고 제조업의 허브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값싼 노동력의 이점을 완전히 상쇄하기는 어렵겠지만 신흥국들의 경제 발전 기회는 줄어들어 경제가 정체되거나 저성장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첨단 기술 선도국인 미국,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 일본·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새로운 경제 시대를 맞이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또한 상당한 기술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주목되지만, 새로운 제조기술을 도입하게 되면 해안지역과 내륙지역 간 경제적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고 이로 인한 정치·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하며, 만약 중국 정부가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중국 경제는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기술의 지정학적 측면은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기술혁신은 무역질서는 물론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은 이 같은 세계적 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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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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