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아일랜드의 축구장을 방문해 축구공을 시축하는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 ⓒphoto 연합
2012년 2월 아일랜드의 축구장을 방문해 축구공을 시축하는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 ⓒphoto 연합

지난 7월 1일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헐크가 중국 프로축구단 상하이상강(上港)에 입단했다. 이적료는 무려 5580만유로(약 716억원). 지난 2월 라이벌 구단인 장쑤쑤닝으로 이적한 같은 브라질 출신의 미드필더 알렉스 테세이라의 이적료 5000만유로(약 640억원)를 무려 70억원 이상 가볍게 넘어서는 아시아 최고 이적료였다. 상하이상강은 세계 최대 항만인 상하이항을 관리하는 상하이국제항무(SIPG) 산하의 프로축구단이다. 상하이상강은 새 식구가 된 헐크에게 중국에서 가장 좋은 숫자로 불리는 등번호 8번을 부여했고, 헐크는 “브라질 축구의 매력을 보여주겠다”고 화답했다.

앞서 지난 6월 21일 최용수 FC서울 감독이 중국 프로축구단 장쑤쑤닝으로 돌연 이적했다. 장쑤성 난징(南京)에 연고를 둔 장쑤쑤닝은 중국 최대 가전유통기업 쑤닝(蘇寧)전기가 모회사로 있는 프로구단이다. 장쑤쑤닝은 지난 1년간 ‘독수리’ 최용수 감독을 데려가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300만달러(약 35억원)를 들여 데려간 것으로 알려진다. 최용수 감독은 K리그 역대 최단 기간인 193경기 만에 100승을 달성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실력파 감독이다. 최용수 감독을 데려간 것은 한국식 지도력의 정수(精髓)를 빼내간 것과 같다. 최용수 감독의 가세로 홍명보(항저우뤼청), 이장수(창춘야타이), 박태하(옌볜푸더), 장외룡(충칭리판) 등 중국 대륙의 축구장을 누비는 한국 감독만 5명에 달한다.

중국 무술의 총본산인 소림사(少林寺)가 있는 허난성 숭산(嵩山) 기슭에는 천하제일무술학교라 불리는 ‘소림무술학교’가 있다. 지난해 11월 이곳에서는 허난성의 당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소림축구훈련기지’란 현판이 내걸렸다. 무승들이 봉, 창, 칼, 쌍절곤 등 전통 도구를 이용해 무예를 연마하는 과정에 축구공이 추가된 것. 이 자리에서 장원선(張文深) 허난성 체육국장은 “소림축구훈련기지는 축구 개혁을 추진하고, 무술운동을 키우는 대담한 시험장”이라며 “소림무술과 현대체육이 융합발전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이 학교에서는 8~15세 사이의 약 500명의 남녀 학생들이 축구공을 이용해 무예의 기초를 닦는 중이라고 한다.

‘족구’로 불리는 중국 축구

언급한 사례들은 중국이 ‘축구 DNA’를 바꾸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보여주는 일단이다. 중국에서 축구는 ‘족구(足球)’로 불린다. 축구대표는 ‘족구대표’, 축구장은 ‘족구장’, 축구협회는 ‘족구협회’라는 식이다. 때문인지 중국 축구의 수준은 말 그대로 ‘족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성치 주연의 홍콩영화 ‘소림축구’에서 보듯 중국 축구는 자국민에게도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중국 축구는 G2로 기세등등한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있어서도 몇 안 되는 골칫거리 중 하나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월드컵으로 대표되는 축구는 국가 간의 무력 대결을 평화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축구 실력이 처진다는 것은 국가지도자로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2011년 부주석으로 있을 때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를 만나 자신의 축구몽(夢)을 얘기했다. 시진핑 주석은 손학규 대표가 선물로 준비해간 박지성 선수의 사인볼을 건네받으면서 “중국이 월드컵에 진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나의 세 가지 꿈”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2년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는 검정색 코트에 검정 구두를 신은 채로 축구공을 있는 힘껏 찼다. 분노와 결의가 느껴지는 발길질이었다.

중국의 부진한 축구 실력은 세계적 미스터리다. 중국 인구 13억명 중에서 11명을 선발해 축구장에 세우면 월드컵 우승 정도는 떼어논 당상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 우승국인 독일의 인구가 8000만명,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우승국인 스페인의 인구가 4700만명, 2006년 독일월드컵의 우승국인 이탈리아의 인구가 6100만명이다. 모두 중국의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인구 32만명의 얼음왕국 아이슬란드가 유로 2016에서 8강까지 올라가는 기적을 연출하며 세계인을 감동시킨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세계 최대 13억 인구의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2010년 남아공월드컵과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각각 3차 예선에서 탈락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이렇기에 “중국의 부진한 축구 실력의 원인을 규명하면 노벨 과학상을 받을 것”이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실제 중국은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으로도 81위에 머물고 있다. 같은 아시아권인 한국(50위), 일본(53위)에 비해서도 현저히 떨어진다. 국제사회와 스포츠 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98위에 올라 있는 북한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중국의 부진한 축구 실력은 FIFA의 최대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13억 중국 시장이 월드컵에서 사실상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 건설, 관중 동원에서 전혀 문제가 없지만 월드컵 본선에 진출을 하지 못하니 FIFA로서는 늘 반쪽 장사에 그친다. 중국의 FIFA 랭킹을 끌어올리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켜 월드컵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은 지난 2월 새로 선출된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최대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중국은 자칭 ‘축구종가(宗家)’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축구 실력은 중국으로서는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의 고대 스포츠인 ‘축국(蹴鞠)’에서 축구가 비롯됐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주장이다. ‘전국책’ ‘사기’ 등의 수많은 서적에는 모두 축국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다. 4대 기서인 ‘수호전(水滸傳)’에 보면 송(宋)의 휘종 황제가 ‘원앙괴(鴛鴦拐)’란 현란한 드리블 실력을 갖고 있던 축구 신동 고구(高俅)를 고위 관료로 발탁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밖에 서유기, 금병매 등에서 축국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축구는 고대부터 흔히 행하던 스포츠였다. 제프 블래터 전 FIFA 회장 역시 2004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회 때 “축구의 발상지는 중국 산동성 즈보(淄博)의 린즈(臨淄)”라며 중국의 축구종가설을 인정한 바 있다.

중국 프로축구단 상하이상강에 입단한 브라질의 축구선수 헐크(오른쪽).
중국 프로축구단 상하이상강에 입단한 브라질의 축구선수 헐크(오른쪽).

국가 체육에서 우선순위 밀려

과연 FIFA 공인 축구종가인 중국이 유독 축구를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축구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축구가 그간 국가체육의 우선순위에서 소외된 때문으로 지적된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들로부터 ‘동아병부(東亞病夫)’라는 놀림을 들었다. ‘덩치는 큰데 싸움은 못하는 동아시아의 병든 환자’를 일컫는 놀림이었다. 중국은 1949년 건국 이후부터 이 같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올림픽 등 국가 체육 육성에 공을 들였다. 구(舊)소련이나 동독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될성부른 아이들을 미리 선발하고 합숙훈련시켜서 운동기계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국가와 민족의 체력적 우위를 과시하고 선전하는 체제였다.

그 결과 중국은 1984년 미국 LA올림픽을 시작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이래 서울올림픽(11위)을 제외하고 모두 5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축구는 예외였다. 탁구를 비롯해 수영이나 다이빙 등은 주로 개인의 체력과 기술 위주 훈련이다.

반면 단체 스포츠인 축구는 아무리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도 집단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 축구에는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일례로 탁구는 탁구대와 탁구채, 탁구공만 준비하면 된다. 하지만 축구는 넓은 축구장이 필요하다. 축구공과 탁구공의 가격만 비교해봐도 그렇다. 하지만 올림픽에 걸린 금메달은 남녀를 통틀어 단 두 개. 한마디로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스포츠였다.

김학범 성남FC 감독은 중국 프로축구단 허난젠예(河南建业)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경험이 있다. 김학범 감독은 전화인터뷰에서 “엘리트 축구 자원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요즘도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축구 시설은 한국보다 월등히 좋지만,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축구 자원은 한국보다도 부족한 편”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은 역사적으로 격한 신체운동을 천시해온 유구한 문화가 있다. “좋은 남자는 군대에 보내지 않는다”는 ‘호남불당병(好男不当兵)’이란 중국에서 흔히 쓰는 말처럼 격한 신체운동을 꺼려왔다. “격한 신체운동은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전통적 믿음이 강해서 은퇴한 장년층들도 ‘조기축구’보다는 느릿느릿 몸을 흔드는 ‘태극권(太極拳)’ 등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것을 공원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당연히 스포츠 가운데 가장 호전적인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덩샤오핑이 1978년 집권 후 1가구1자녀의 ‘독생자(獨生子)정책’을 강제한 이래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당연히 애지중지 자란 ‘소황제(小皇帝)’들이 위험한 축구를 할 리가 없다. 행여나 공을 차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의료체계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병원비도 많이 들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체육수업을 등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축구공을 가지고 놀아봐야 국가대표로 뽑힐 일도 없고, 성공할 확률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의 상당수 학교에서는 체육수업 시간을 ‘자율학습’ 등으로 때우면서 대충대충 보내는 일이 잦다. 심지어 “학교 유리창이 깨진다며 등교할 때 축구공을 들고 오지 못하게 했다”는 증언도 많다. 여기에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축구는 수영이나 탁구처럼 지도자들이 애호하는 운동도 아니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역대 최고 지도부가 장강(長江)과 북대하(北戴河)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탁구채를 쥔 모습을 선보인 적은 있지만 축구공을 차는 모습을 13억 인민에게 보여준 적은 없다. 축구공 차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시진핑이 처음이다.

중국 프로축구단 장쑤쑤닝으로 지난 6월 21일 이적한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photo 김경민 스포츠조선 기자
중국 프로축구단 장쑤쑤닝으로 지난 6월 21일 이적한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photo 김경민 스포츠조선 기자

낮은 우유소비량과 높은 흡연율

이번에는 영양학적 측면에서 중국인의 체격을 살펴보자. 중국인은 체격 및 골격에서도 축구를 잘하는 유럽이나 남미 사람들에 비해 절대 열세다. 심지어 같은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상대적 열세다. 실제 2015년 기준, 중국의 18세 이상 성인남성의 평균 신장과 몸무게는 167.1㎝, 66㎏에 그쳤다. 이는 아시아에서 발육이 뛰어난 편이라는 한국의 성인남성 170.5㎝, 70.9㎏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수치다. 체격과 기골이 우월한 유럽인들에 비해서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이 같은 이유는 마오쩌둥 집권 시기인 대약진운동(1958~1960)과 문화대혁명(1966~1976) 등으로 경제가 파탄나면서 영양상태가 부실해진 것이 대체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신체발육 부진 원인을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이 우유소비량이다. 우유는 골격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식품이다. 세계낙농연합(IDF)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중국의 연간 1인당 우유소비량은 15㎏ 정도에 그친다. 이는 같은 동아시아권인 한국(33㎏), 일본(30㎏)에 비해서도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같은 ‘축구종가’인 영국의 연간 우유소비량 102㎏의 15%가량에 그치는 수준이다.

중국은 영국과 같은 자칭 ‘축구종가’에다가 기호식품으로 ‘차(茶)’를 선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중국은 영국과 달리 차에 우유를 타서 마시는 밀크티 문화가 없다. 중국의 우유 식음(食飮) 문화는 만리장성 이북의 유목민족들로부터 비롯됐다. 정착민족인 한족(漢族)들 가운데는 아직도 우유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뜨거운 차를 선호하는 습관도 신선함이 생명인 우유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멜라민 분유사태 등으로 중국 낙농업에 대한 불신이 유독 심한 것도 낮은 우유소비량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중국의 흡연 문화 역시 축구 실력과 연관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중국 국가위생 및 계획생육위원회에 따르면, 중국의 흡연인구는 3억6000만명에 달한다. 15세 이상 흡연인구는 28.1%, 이 중 성인남성의 흡연율은 52.9%에 달한다.

중국은 흡연율이 높은 사회다. 담뱃값이 세계적으로 저렴한 수준이고, 전통적으로 흡연에 관대한 문화로 인해 비흡연자 가운데 2차 흡연피해에 노출된 사람만도 72.4%에 달한다. 이로 인해 “폐활량이 떨어져서 축구를 못한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실제 지난 5월 항저우뤼청 감독으로 있는 홍명보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이 로커룸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해 중국에 화제가 됐었다. 이 같은 주장이 일파만파 퍼지자 항저우뤼청 구단 측은 “과거 일부 선수들의 음식습관과 생활습관에 프로답지 못한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은 로커룸에서 선수들의 공공연한 흡연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만약 이런 일이 있으면 선수들은 구단에서 계속 운동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력한 개인주의와 女權주의

역사적 배경에서도 분석이 가능하다. 중국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이후 개인주의가 들불처럼 번졌다. 공연히 참견하거나 나섰다가는 새파란 극좌 홍위병(紅衛兵)들로부터 몽둥이 찜질을 당하는 광경을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숱하게 보아왔던 중국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의 일에는 잘 참견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중국인에게 내면화되었다. 교통사고를 목격하고도 수수방관하는 등의 뉴스가 중국에서 종종 나오는 이유는 문화대혁명의 깊은 트라우마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국인의 개인주의는 1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단체 스포츠인 축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남미의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처럼 개인적인 플레이에 능숙한 것도 아니다. 그나마 동아시아에서 공을 좀 찬다는 한국과 일본은 집단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뒤처지는 신체적 열세를 겨우 만회하고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회식과 같은 것이 극히 드물다. 회식을 강요하다가 ‘공회(工會·노조)’에 신고를 당하는 한국계 기업의 상사도 많다. 중국 남성들은 집단주의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군대도 가지 않는다. 중국은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어 원하는 사람만 군대에 가면 된다. 자연히 한국 남성들처럼 군대에서 배우는 ‘군대축구’ 역시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아시아에서 이례적으로 강력한 ‘여권(女權)주의’ 탓에 남성들의 경우 신체를 단련할 시간조차 없다. 중국에서 헬스클럽이 뜨고 있는 것도 최근 현상이다. 지금도 평범한 남성들의 경우 퇴근하면 시장 보고 주방에서 요리하기 바쁘다. 공원이나 광장 등에서는 집단체조의 일종인 ‘광장무(廣場舞)’ 등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다마(大媽·아줌마)’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중국 여자축구의 더 좋은 성적으로 입증된다. 중국 여자축구는 AFC 여자 아시안컵에서 무려 8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전통의 강호다. FIFA 여자 월드컵에서는 1999년 준우승(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1995년에는 4강에 들었다. 이는 월드컵 본선에 1번밖에 진출한 적이 없는 남자축구와 극명히 대비되는 성적이다.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배경 외에도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중국축구협회의 고질적 부패다. ‘축구광’으로 알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2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직후 가장 먼저 착수한 사정작업이 축구협회에 대한 사정이었다. 이를 통해 셰야롱(謝亞龍)·난용(南勇) 등 중국축구협회의 최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감방에 들어갔다. 중국축구협회 부주석을 지낸 셰야롱은 징역 10년에 20만위안(약 3500만원) 몰수형, 역시 축구협회 부주석을 지내고 국가체육총국 축구운동관리중심 주임을 지낸 난용 역시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난용은 조선족 출신의 중국축구협회 최고위 간부로 6·25전쟁 때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을 지내고 휴전협정에 서명한 남일(南日)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도는 인사다. 그리고 모두 58명에게 축구(족구)계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도록 하는 ‘금족(禁足)형’을 내렸다.

지난해 영국의 프로축구단 맨체스터시티를 찾아 세르히오 아구에로 선수와 셀카를 찍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오른쪽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photo AP·뉴시스
지난해 영국의 프로축구단 맨체스터시티를 찾아 세르히오 아구에로 선수와 셀카를 찍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오른쪽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photo AP·뉴시스

축구보다 재밌는 축구도박

축구 비리는 대개 축구도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뇌물수수와 승부조작 등과 연관돼 있다. 중국은 마작이나 포커와 같은 ‘도박’ 스포츠를 즐기는 민족 특성상 축구 자체보다 축구도박에 오히려 더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로 인해 우승팀을 맞히는 ‘축구복권’과 같은 사행산업은 합법적으로 번창하고 있다. 중국국가체육총국에 따르면,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는 무려 129억위안(약 2조2300억원)의 축구복권이 팔렸다. 4년 전인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23억위안(약 3955억원)이 몰린 것에 비해 거의 5배 넘게 폭증했다. 이는 2013년부터 인터넷 등을 통한 축구복권 구매가 합법화되면서 시장이 폭증한 때문이다. 음지에서 이뤄지는 불법적인 축구도박시장은 추산조차 불가능하다. 브라질월드컵 때 불법 도박으로 단속한 금액만 180억위안(약 3조1100억원)으로 합법적인 축구도박시장을 훨씬 초과했다.

이로 인해 중국 프로축구에서는 승부조작과 같은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2011년에는 국제축구심판으로 활동한 루쥔(陸俊)이 전격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2003년 중국수퍼리그 결승전 때 35만위안(약 6000만원)을 받고 상하이선화에 유리하게 판정을 하다가 걸렸다. 그 이후 승부조작 등으로 모두 약 81만위안(약 1억4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자복했고, 법정에서 5년6개월형을 받았다. 그 사건의 여파로 상하이선화는 2003년 우승팀 자격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간혹 중국 프로리그를 시청하다보면 어이없는 플레이가 나올 때도 많은데, 상당 부분이 승부조작과 연관돼 있다고 얘기된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각 프로축구단의 급속한 변화도 중국 축구의 꾸준한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심지어 권력의 부침에 따라 하루아침에 명문 구단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한때 안정환 선수가 속했던 중국 프로축구의 다롄스더가 대표적이다. 다롄스더는 랴오닝성의 해안도시 다롄(大連)을 홈으로 하는 구단으로, 구단주는 보시라이(薄熙来) 전 충칭시 서기의 대집사로 알려진 스더(實德)그룹의 쉬밍(徐明)이었다. 다롄시장을 지낸 보시라이는 다롄 시내에 커다란 축구공 모형을 세워놓을 정도로 축구에 관심이 많았고, 다롄을 축구도시로 키웠다.

다롄에는 북방의 최강자로 군림해온 다롄완다라는 프로 축구단이 있었다. 1994년 수퍼리그 초대 우승을 비롯해 모두 4번 우승을 한 명문 구단이었다. 쉬밍은 완다의 왕젠린(王健林) 회장으로부터 구단을 인수해 ‘다롄스더’란 이름으로 바꾸고 투자를 계속해 이후에도 4번이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안정환 선수가 다롄스더로 이적한 것도 이 즈음이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아내 구카이라이(谷开来)의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 독살사건에 휘말려 정변 음모가 드러나고 낙마하면서 구단도 2012년 순식간에 해체 수순을 밟고 수퍼리그에서도 퇴출됐다. 다롄완다 시절을 비롯해 무려 8번이나 우승한 명문구단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구단주였던 쉬밍은 2012년 체포된 뒤 지난해 돌연 44세의 나이에 옥사(獄死)했다. 이후 다롄스더는 타 기업에 인수돼 다롄아얼빈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지금은 다롄이팡으로 바뀌었다.

이 밖에 ‘남방호랑이’로 불리는 광저우헝다의 경우도 중국의 부동산 재벌인 헝다(恒大)그룹이 인수하기 전까지는 광저우의약, 그전에는 광저우타이양선이었다. 한때 한국인 이장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광저우헝다는 2011년부터 5년 연속으로 내리 우승한 중국 최고의 명문 구단이다. 광저우헝다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타오바오(淘宝)를 가진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이 지분 투자를 단행한 뒤인 2015년 시즌부터는 ‘광저우헝다타오바오’로 이름을 바꾸었다. 구단의 재정을 책임지는 기업의 부침이 워낙 심하다 보니, 구단 고유의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

지나친 해외 의존 역시 중국 축구의 내실 있는 성장을 가로막는 한 가지 이유다. 용병의 수입으로 클럽 수준은 올라가나 토종으로 구성되는 대표팀 수준 향상에는 문제가 있다. 축구스타라고 할 수 있는 득점왕 순위에서 중국 선수들은 완전히 소외돼 있다. 득점왕 1위에서 10위까지를 봐도 토종 중국인은 3명에 불과하다. 7골로 5위에 랭크된 동쉐성(董學升·허베이화샤)을 비롯해 5골을 넣은 가오린(郜林·광저우헝다)과 우레이(武磊·상하이상강)이다. 나머지는 모두 남미·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입된 용병들이 득점왕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프로리그 자체가 용병에 의한, 용병을 위한 리그가 되고 있는 셈이다.

시진핑의 두 가지 꿈

체격조건을 비롯해 우유소비량, 흡연율, 개인주의, 도박 선호, 국가 체육의 우선순위 등은 중국 축구 발전의 걸림돌이 되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 정부의 집중적 지원에 힘입어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는 평가도 나오는 상황이다. 중국은 현재 2026년 월드컵 개최권을 노리고 있다. 대륙별 개최원칙이 한 가지 걸림돌로 지목되지만, “FIFA가 중국을 위해 대륙별 개최원칙을 없앨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도 분분하다. 중국 축구개혁영도소조 조장을 맡고 있는 류옌동(劉延東) 부총리는 지난 7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을 만나 “중국의 축구개혁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월드컵 개최는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세 가지 꿈 중 두 번째로,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시진핑 주석은 두 가지 꿈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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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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