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상대 북한 식당종업원  인신구제청구 1차 심문기일을 마친 후 채희준 민변 통일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상대 북한 식당종업원 인신구제청구 1차 심문기일을 마친 후 채희준 민변 통일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민변은 이번에 중국 북한 식당 탈출 여종업원들에 대한 인신구제청구를 하는 과정에서 북한과 연계하여 ‘주고받기식’으로 이슈를 키워나갔다. 이 과정에 이른바 해외 종북인사들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북한은 지난 4월 초 중국 닝보의 북한 식당을 탈출한 여종업원들이 국내에 입국한 사실이 알려지자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과 대남 선전매체 등을 통해 즉각 ‘납치, 가족면담, 북송’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4월 17일 성명에서 “(남한 정부가) 국회의원 선거 판세가 불리하게 조성되자 충격적인 북풍사건을 조작해 민심의 이목을 딴 데로 돌리고 참패를 모면해보려고 추악한 납치 모략극을 조작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및 종업원들의 즉각 귀환, 사건 관계자의 처벌 및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중대 입장’이라며 요구했다. 북한은 또 유엔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국제 쟁점화도 시도했다.

이후 여종업원 탈출을 ‘의혹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에 대한 면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국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5월 13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진상규명과 조속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긴급모임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종업원들의 공개기자회견 및 가족면담, 변호인 접견을 보장하라’ ‘국정원 개입의혹 낱낱이 공개하라’ 등을 요구했다.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도 탈북 여종업원들이 머물고 있는 경기도 시흥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옛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심문센터) 앞에서 ‘가족면담, 변호인 접견 보장’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날 민변은 탈출 여종업원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국정원에 청구했고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변호인 접견 신청을 계속하기로 했다. 민변 통일위원회는 ‘5월 16일 오후 해당 종업원들을 접견할 예정’이라며 당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 무렵 탈북 여종업원 한 명이 단식 농성 중 사망했다는 설이 제기됐다. 친북 성향의 온라인매체인 ‘자주시보’는 “5월 15일 민족통신이 페이스북을 통해 올린 급보에 의하면 집단납치 의혹 사건의 중국 류경식당 북 여성 종업원 12명 중 한 명인 서경아양이 ‘우리 모두를 공화국으로 보내달라’고 단식투쟁 하던 중 사망한 사실이 공동취재진의 추적에 의해 오늘 15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민변은 변호인 접견이 이뤄지지 않자 5월 16일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장경욱 변호사 등은 “재북가족의 위임이 있으면 이들의 석방을 요구할 수 있고, 3일 만에 나올 수 있다” “따라서 북의 가족들이 민변 장경욱 대표 변호사 앞으로 우리 자녀 누구누구의 석방을 바라며 인신구제신청을 해줄 것을 민변 장경욱 변호사에게 위임한다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형식의 위임장을 작성하여 팩스와 이메일로 동시에 보내달라” “정확한 의사표현을 위해 부모들이 직접 자녀의 석방을 바라며 법적 대응을 민변 장경욱 변호사에게 위임한다는 동영상을 촬영하여 민변 페이스북 등에 올려주면 좋겠다”고 공개 요청했다. 장 변호사는 “인신구제청구를 위한 가족 위임장 송부를 위해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언급도 했다.

이날 ‘자주시보’는 이 같은 기자회견 내용을 ‘긴급뉴스’로 보도하면서 기사에 민변의 대표 이메일과 팩스, 전화번호 등을 게재했다.

5월 18일 북한에 체류 중인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가 “탈북자들의 석방 요구 신청을 민변 장경욱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의 가족 인터뷰 동영상을 민족통신에 게재했다. 지금까지 모두 60여회 북한을 방문한 노길남은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간 재미동포로, 1999년 ‘민족통신’이라는 북한 찬양 웹사이트를 설립하는 등 북한을 추종해온 인물이다. 2008년 김일성대에서 사회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했고, 2014년에는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북한을 선전한 공로로 김일성상도 수상했다.

민족통신은 “17일 남녘의 민변 변호사들이 통일부를 찾아 피해자들을 면회하려고 하였으나 이런저런 구실로 이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평양의 가족들 승인서나 위임장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해 민족통신 특파원에게 그것을 부탁했다”는 보도도 했다.

5월 19일 중국 칭화대 초빙교수라는 정기열이 탈북 여종업원 부모들이 작성했다는 위임장 12장을 민변에 발송했다.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북미주조국통일협의회’ ‘자유민주통일미주연합’ 등에 가입해 활동해온 정기열에게도 북한은 “해외에서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위대성을 적극 선전한 공로”로 사회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23일 민변은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민변은 “미국 국적자로 중국 베이징 소재 칭화국제영자신문 ‘제4언론’의 편집인 겸 책임주필인 정기열이 민변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단체 명의의 전자우편으로 간단한 자기 소개와 함께 각 가족들이 작성한 위임장 및 위임장을 작성하는 가족들의 동영상을 보내왔다”면서 “이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하여 일단 정기열 교수가 보내온 위임장으로 구제청구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했다. 민변은 기자회견 종료 후 서울중앙지법에 인신구제청구서를 제출했다.

민변의 역사와 조직

1988년 ‘정법회’ ‘청변’ 통합… 회원 1000여명, 1년 예산 11억

민변의 전신은 1986년 5월 결성된 ‘정의실현 법조인회’(약칭 정법회)다. 당시 망원동 수재사건과 구로동맹파업사건을 공동 변론했던 인권변호사들이 결성했다.

1970~1980년대 시국사건을 변론해온 인권변호사들이 주축이 됐던 정법회는 1988년 5월 ‘청년변호사회’(청변)와 통합하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되었다. ‘청변’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영향을 받은 신진 변호사들이 결성한 모임. 여기서 보듯 민변의 탄생에는 1987년 6월 항쟁 등 민주화와 그 결실인 ‘87년 헌법’이 밑거름이 됐다.

민변은 출범 당시만 해도 참가 변호사가 51명에 불과했지만 설립 28년을 맞은 현재는 회원이 1000명이 넘는다. 현재 민변은 회장(정연순)과 3명의 부회장(김남근·김도형·김호철), 사무처, 집행위원회, 15개 개별 위원회와 8개 지부(부산·대구·울산·인천·광주전남·대전충청·전주전북·경남) 등으로 구성돼 있다. 15개 개별 위원회는 미군, 통일, 여성인권, 환경, 노동, 언론, 사법, 과거사청산, 민생경제, 교육청소년, 국제연대, 소수자, 국제통상, 디지털정보, 아동인권 등 우리 사회의 이슈를 분야별로 망라하고 있다.

지난 5월 16일 기준 민변의 정확한 회원 수는 1088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변호사 1만7000여명의 약 5% 정도가 가입해 있다. 민변 홈페이지에 따르면, 작년 예산은 11억여원으로 대부분이 회비(7억9000여만원)로 충당했다. 예산에서 회비 외에는 전기이월금이 3억여원에 이르고 기타 수입은 거의 없다. 2013년 예산(6억7000만원)에 비해 작년 예산은 두 배 정도 늘었다. 2015년 지출 항목을 보면, 경상비(3억9000여만원)와 인건비(3억여원) 외에 사업비(3억1000여만원), 지부사업(1억여원) 등에 많은 돈을 썼다.

민변은 ‘87년 헌법’이 작동한 지난 30년 동안 위상과 영향력을 키워왔다. 민변의 위상과 영향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정점에 달했다. 이는 당시 정·관계 진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2005년 기준 청와대에만 노무현(대통령)·문재인(시민사회수석)·전해철(민정비서관)·김선수(사법개혁비서관)·김준곤(법무비서관)·김진국(사회조정2비서관), 박범계(민정2, 법무비서관)·이석태(전 공직기강비서관)·김용철(전 민정2, 법무비서관) 등이 전·현직으로 근무했고, 행정부에는 고영구(국가정보위원장)·강금실(전 법무장관)·최영도(국가인권위원장)·이용철(국방획득개선단장)·김창국(전 국가인권위원장)·김갑배(국정원 과거사 규명위원)·최은순(고충처리위원)·김희수(전 의문사위원회 상임위원)·박연철(전 부패방지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몸담았다.

국회에도 천정배·이종걸·유선호·송영길·문병호·조성래·임종인·이원영·이상경·정성호·김종률·최재천 등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사법부에는 조준희(대법원 사법개혁위원장)·박원순(사법개혁위 위원) 등이 있었다. 지난 7월 5일 출범한 사법정의실현 국민감시센터(센터장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측은 “현재도 민변 회원이나 민변 출신들은 정·관계에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20대 국회에도 이재정, 박범계, 이종걸, 전해철, 정성호, 진선미, 천정배, 송영길 등 14명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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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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