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의 다락논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가 풍경. ⓒphoto 상주시청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의 다락논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가 풍경. ⓒphoto 상주시청

지난 6월 말 어느 날, 경북 상주시청 민원실. 30대 남성 8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경남 거제도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었다. 그들은 왜 거제에서 상주까지 달려온 것일까. 바로 ‘귀농 상담’을 받기 위해서였다. 최근 불어닥친 조선업 불황으로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이 몰려 있는 거제도 경제가 직격탄을 맞자 위기의식을 느낀 조선소 직원들이 귀농 상담을 받기 위해 상주시청을 찾은 것이다. 그들이 다른 지역이 아닌 상주시를 찾은 이유가 있다. 경상북도는 12년 연속 ‘귀농자가 가장 많은 광역지자체’로 꼽혔다. 통계조사를 시작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다. 특히 상주시는 12년 누적 귀농가구 수(1275가구)가 경북 다른 지역 평균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귀촌 가구는 31만7409가구로, 2014년 29만9357가구에 비해 6%포인트 증가했다. 이 가운데 귀농인 가구는 1만1959가구로 2014년 1만758가구보다 1201가구가 늘었다. 이는 11.2%포인트가 증가한 수치다. 귀농은 도시에 살던 사람이 농촌에 와서 농사를 짓는 걸 뜻하고, 귀촌은 귀농을 포함해 농촌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거주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작년 귀농 가구의 지역별 비중을 보면 △경북 18.6% △전남 15.6% △경남 13.5% △충남 11.5% △전북 9.7% △경기 8.9% △강원 8.2% △충북 7.8% △제주 3.3% △인천 0.9% △울산 0.7% △대구 0.6% △세종 0.5% △부산 0.3% 순이다.

귀농이란 엄격하게 따져 ‘농어촌 이외의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한 비농업인이 농업경영을 목적으로 농촌지역에 전입한 것’을 뜻한다.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지자체가 주는 귀농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지난 6월 상주시청을 찾은 거제 조선소 직원 가운데 대부분이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해 허탈하게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이들은 비농업인이라는 조건에는 부합했지만, 거제도의 주소지가 농어촌이어서 자격에 미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주시청에 따르면, 흔히 아파트에 살면 도시인이라고 착각하고 귀농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지만 거주형태와 상관없이 주소지가 읍·면으로 돼 있는 사람은 귀농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일단 귀농 자격요건에 부합하면 농업을 위한 농지를 확보해야 한다. 농지는 반드시 매입할 필요는 없다. 임차형태라도 최소 1000㎡ 이상의 농지를 소유해야 농업인으로서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농부 자격을 갖추면 지자체마다 마련한 귀농 혜택이 주어진다. 경북의 경우 일단 가구당 500만원 규모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귀농연령이 만 18~39세에 해당한다면 청년 농산업 창업지원금도 노려볼 만하다. 영농경력 3년 이내인 자가 청년 농산업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선발되면 2년간 정부로부터 매달 80만원씩 받을 수 있다. 이 지원금만 1920만원에 달한다.

특히 상주시의 경우는 경북도 내에서도 귀농 혜택이 가장 다양한 곳이다. 상주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귀농 전원마을’을 도입한 곳이다. 귀농 전원마을은 귀농인들이 스스로 마을을 조성하는 개념으로, 상주시는 귀농인들이 마을을 조성하기를 원하면 다양한 도움을 준다. 일례로 상주시는 최소 다섯 가구 이상만 입주하면 도로와 전기 등 기반시설을 무료로 만들어주고 있다. 귀농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할 때 성공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에 이를 장려하기 위해서 이런 혜택을 주고 있다. 군대의 동반입대와 비슷한 개념이다.

상주에는 이런 귀농 전원마을이 최근 4년 동안 8곳이 완성돼 52가구가 입주한 상태다. 상주시에서는 귀농인 주택수리비 지원과 토목·건축설계비 감면 등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주거문제가 해결된 귀농인들은 영농 관련 지원까지 받게 된다. 상주시는 귀농인들에게 농기계 구입비와 하우스 설치·과원조성 등 농업 기반시설 확충에 드는 비용을 연 1~2%의 저금리로 지원해주고 있다.

상주시는 귀농인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지만 기존 농민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주시청 박진우 주무관은 “단순히 금전적인 혜택만으로 귀농을 장려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기존 농민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생길 수 있다”면서 “상주시는 귀농인들의 질적 성장을 위해 상담과 교육 등 실질적으로 농사에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주시에는 농업기술센터 상담소만 10곳에 달한다. 이곳에서는 귀농인을 위한 재배기술 지도 및 작목선택과 상담까지 해주고 있다. 상주시에서는 귀농인들을 위한 다양한 농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귀농인들이 말하는 상주시의 가장 큰 장점은 농사짓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상주시는 곶감, 오이, 육계, 양봉 등 전국 매출 1위의 농작물이 다양하다. 초보 농부인 귀농인들이 수익창출이 가능한 작물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다는 점은 큰 매력이다. 실제 상주시에 정착한 귀농인들은 곶감이나 오이, 포도 등 상주시의 대표작물을 선택해 기르는 경우가 50% 이상이라고 한다. 상주시청 안영묵 계장은 “특히 포도는 귀농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작물”이라면서 “포도는 심고 난 후 1년이면 50% 정도, 2년 뒤면 70% 정도, 3년 뒤면 90% 이상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단기간 내에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상주시는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이 가로질러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농업자원이 풍부하다. 교통조건 역시 매우 뛰어난 편이다. 상주시는 경북 서북부 내륙지방으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이 때문에 전국 거의 모든 지역을 2시간대로 이동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자리 잡은 누적 귀농인이 많다는 점도 미래의 귀농인들에게는 큰 강점이다. 성공한 귀농인들이 귀농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주시청도 귀농을 상담해오는 이들에게 기존 귀농인과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도 한다. 귀농을 망설이는 이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기존 귀농인들이다. 귀농인의 정착을 위한 상주시의 노력 덕분일까. 최근 7년간 조사한 상주시의 귀농 이탈률은 3.6%에 불과했다.

취재 중에 만난 시청 직원들과 귀농인들이 한 말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있었다. 도시에서 살 때는 풀리지 않던 한 의문이 “왜 노력만큼 항상 결과가 따라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귀농을 한 뒤 분명 노력만큼 결실은 따라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들이 귀농을 통해 얻은 삶의 교훈에 대해 한결같이 한 말이다.

“농사는 땀 흘린 만큼 결실을 얻는 정직한 노동이다.”

인터뷰 | 이정백 상주시장

“귀촌 공동체 마을 8곳 조성 지원”

 ⓒphoto 상주시청
ⓒphoto 상주시청

상주시가 ‘12년 누적 귀농인 1위 지역’이 된 데는 이정백 상주시장의 공(功)이 크다. 이 시장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4대 상주시장으로 당선됐다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근소한 표 차로 재선에 실패했다. 이후 2014년 선거에서 다시 시장직에 복귀했다. 이 시장은 상주대학교 축산학과를 나와 한국농어민후계자 경북연합회장, 중앙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상주축협조합장도 지낸 농·축산업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시장 당선 이전에 경북도의원(5~7대)도 지냈다. 이 시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수요자별 맞춤식 영농교육” 등 상주시가 귀농 1번지가 된 특유의 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상주시만의 특별한 귀농 정책이 있는가. “상주시는 농림축산식품부 우수정책으로 선정된 바 있는 입주자 주도형 소규모 전원마을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동체 귀농·귀촌인들에게 맞춤형 소규모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는 내가 가장 힘을 쏟는 귀농인 관련 공약이기도 하다. 마을 조성에 꼭 필요한 진입로 포장과 상하수도, 가로등, 전기통신시설 설치 등을 지원하여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기반시설 확립을 통해 더 많은 귀농인을 상주시로 견인할 수 있으리라 본다. 현재까지 8곳이 완료되어 52가구가 입주한 상태다. 또한 시 전체가 귀농인을 위한 지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관내 토목·건축사 연합회에서는 자발적으로 귀농·귀촌인들에 기준설계비의 40%가량을 감면해 주고 있다. 시장과 뜻을 함께하는 지역민들의 동참에 다른 지자체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들었다.”

- 아직까지 도시에만 인력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귀농이 갖는 의미는. “도시 주민들이 농촌으로 거주지를 옮기면 농촌의 가장 문제점인 농번기 인력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귀농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재능은 지역의 문화·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과밀인구로 인해 발생되는 일자리 부족과 환경오염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 상주시를 농업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떤 행정을 펼치고 있는가. “상주시는 대한민국 농업의 중심 도시다. 수요자별 맞춤식 영농교육으로 창조적인 농업 전문인과 강소농(强小農)을 육성하고 있다. 시장 임기 내에 농업의 선진기술화를 위해 농약·화학비료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농법도 개발 및 보급하고 있다. 특히 농·특산물 판로 개척 및 해외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시에 유통마케팅과를 신설하는 등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06억원의 수출실적을 거둬 경북 수출정책 우수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는 수출정책대상에 이어 경북 농·식품 수출촉진대회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 상주시를 어떤 브랜드 가치를 가진 시로 이끌어갈 계획인가. “상주시는 농사에 적당한 기후, 전국을 2시간대로 연결할 수 있는 편리한 교통여건 등 장점이 많은 지역이다. 상주시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지형적 다양한 장점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농업 중심 상주, 신(新)낙동강 시대 관광선도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키울 계획이다. 성장도 중요하지만 시장으로서 귀농인과 지역민의 화합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년 지역민과 귀농·귀촌인 모두가 참여하는 귀농·귀촌 화합행사를 열어 서로 간의 소통과 교류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다. 또한 농업경쟁력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기업유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임기 내에 낙동강권역에 신관광벨트를 조성해 전국 레포츠 관광 중심도시로 육성해 나갈 계획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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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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