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소재 한 골프장.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photo 영상미디어
경기도 소재 한 골프장.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photo 영상미디어

요즘 골프장에서는 이른바 ‘파이널 라운드(마지막 골프)’가 자주 벌어진다. 골프장에 모인 멤버들은 “올해 마지막 골프가 될 것 같다” “9월 28일 이후에는 골프 약속이 없다”는 얘기가 대화의 주류를 이룬다.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는 9월 28일 전에 올해 마지막 골프를 치는 이들로 골프장이 꽤나 붐비고 있다. 하지만 이런 풍경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될 10월부터 골프장 측에서 매출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부킹(Booking)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판검사, 중앙부처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기자 등이 모이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김영란법을 주제로 한 대화가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일부 공직자들은 사석에서 “당분간 이해관계자와 술자리를 갖거나 골프를 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도 한다. 특히 10월 이후 골프 약속을 잡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접대골프의 상한선은 1인 5만원을 넘을 수 없다. 김영란법은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등으로 접대비 상한액을 명문화했다. 만약 공직자, 기자, 사립학교 교원 등이 5만원 이상의 선물을 받을 경우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최대 5배의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최악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김영란법은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는 공직자, 기자, 사립학교 교원 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말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판결이 내려져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접대를 주선하는 기업 임직원이나 이익단체 관계자들도 김영란법 시행 직후에는 공직자 등과 골프 약속을 잡지 않거나 기존 약속을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아예 올해 10월부터 “골프 약속 자체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주말에 집중됐던 골프부킹이 줄면서 가뜩이나 경영난을 겪는 골프업계에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회원제 골프장 직격탄

현재 국내에는 약 500여개의 골프장이 영업 중이며 한 해 누적 내장객 수는 30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수도권 주말골퍼의 대부분은 기업인, 판검사, 고위 공무원, 기자 등 이해관계자가 포함된 경우가 많아 골프업계가 위기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부 대기업이 운영 중인 고급 회원제 골프장은 주로 기업에서 이해관계자를 초대해 라운딩을 해왔기 때문에 김영란법 시행 이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과연 골프접대, 즉 골프장에서 기업 임직원과 이해당사자가 동반 라운딩을 하는 일이 사라질까. 법 시행 초기에는 골프장 부킹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그 여파가 골프업계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접대를 하거나 받는 측 모두 법 시행 초기 ‘시범케이스’가 되는 것만은 피하자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기업 임직원이나 이익단체 관계자들은 법 시행 초기 다양한 사례를 검토하고 나서 향후 골프를 재개할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 현대차, SK그룹 등의 대기업 임원이나 홍보 담당자들은 10월부터 골프를 중단할 방침이다. 삼성의 경우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인 만큼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기존에 언론사 관계자들과 맺은 골프 약속을 모두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S그룹 대관업무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초기 분위기나 사례를 보고 나서 앞으로 골프를 재개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법적으로 자문을 구하려 해도 사례가 없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당분간 골프 약속은 잡지 않을 계획이다.” 이 기업은 골프 접대는 물론이고 관행처럼 해오던 추석 선물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H기업 홍보 담당자도 “골프비 계산을 해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5만원 기준을 넘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골프를 안 치는 것 외에는 다른 해법이 없다”면서 “각자 자기 몫을 계산하고 친다 해도 어쨌든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치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내 골프장은 클럽하우스에서 옷을 갈아입고 라운딩을 시작한다. 또 사우나와 식사를 하는 동안 다른 골퍼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처럼 골프만 치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구조로 바뀌기 전에는 타인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또 라운딩 내내 캐디가 동반하게끔 되어 있어서 비밀을 보장받는다는 게 불가능하다.

가격 낮추고… 편법까지 동원

대기업에서 고위 공직자 등을 접대하기 위해 운영해온 회원제 골프장의 경우 변신을 모색하지 않는 한 경영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1000억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지은 경기도 남양주의 H골프장이나 여주의 H골프장은 대기업 임원들이 주로 회원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공직자, 언론인 등을 접대해온 대표적인 골프장이다. 이런 골프장은 개인 회원이 없어 기업 임원의 발길이 끊기는 순간 고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이에 대해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우리가 골프장 경영까지 신경을 쓸 수는 없다. 골프장도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대기업 소유의 고급 골프장이 일반인에게 회원권을 분양하거나 대중 골프장으로 변화를 꾀한다면 중저가 골프장들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이나 이익단체의 홍보 및 대관 담당자들도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공직자나 기자 등을 만나 회사 입장을 설명하는 일을 해왔는데, 앞으로 만남 자체를 눈치봐야 하는 상황이다. 기존에 해오던 업무 방식에 변화를 주든지, 아니면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또 다른 H기업 홍보 임원은 이런 하소연을 했다. “기업 홍보 입장에서 보면, 요즘 룸살롱을 가는 것도 아니고 1년에 한두 번 운동(골프)하고 밥 한 끼 먹는 게 기자들과 만날 수 있는 전부인데,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 우리 업무 프로세스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걱정이다. 솔직히 골프 몇 번 쳤다고 기사를 빼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 회사 입장을 두둔하는 일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우리만 불편하고 곤란하게 됐다.”

홍보업계에서는 기존 인맥에 의존하는 홍보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앞으로는 친한 사람만 만날 수밖에 없고, 그나마 만나도 치킨 한 마리에 맥주 몇 잔 마시는 게 전부다. 바쁜 분들 불러내 용건만 전달하고 헤어져야 하는데, 일이 잘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장 현안 때문에 공무원이나 기자를 만나야 하는 기업 홍보 및 대관 담당자들은 편법을 동원하는 무리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도 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골프비 명목의 현금을 사전 또는 사후에 공직자 등에게 주고 각자 계산하는 방식이 얘기된다. 음료 제조회사 한 임원은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과는 계속 골프를 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면서 “그럴 때는 각자 계산한 뒤 미리 준비해간 현금을 전달하는 식으로 정산하는 게 당분간 유용할 것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은 홍보 및 대관 담당 임직원들의 급여를 올려주고 대외 활동비를 개인이 지출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일부 외국계 기업의 경우 계약 당시보다 급여를 높게 책정하고 접대 등의 업무 때 개인이 비용을 부담케 하는 곳이 있다. 음료 제조사 임원은 또 “내가 아는 어떤 기업은 언론사에 광고를 더 주고 그 돈으로 기자들에게 골프나 활동비를 더 지급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반해, 베테랑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김영란법 통과 이후 주가가 한층 높아졌다. 한 중소기업 대관 담당자의 말이다. “7월 말 김영란법이 합헌 판결 난 직후 언론사에서 일하는 지인 여러 명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너밖에 없다’면서 김영란법 시행되면 나하고만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언론인과 깊이 사귀어 놓았는데, 그 신뢰 덕분에 앞으로는 더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그래도 눈치가 보인다면 함께 스크린 골프라도 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거기서 자장면 먹으며 한 게임하는 건 문제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국내 스크린 골프장의 1인당(18홀 기준) 비용은 2만~3만원 선이다.

일부 지방 골프장은 이용요금을 낮추는 대신 일반 골퍼의 유입을 늘려 이 난국을 타개한다는 복안을 마련한 곳도 있다. 지방 골프장 업계는 “이제 미국처럼 진정한 골프 대중화가 아니면 골프장을 경영하기 힘들다”고도 했다. 수도권 인근 지방 B골프장 회장의 말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시점에 맞춰 골프장 이용요금을 5만원까지 떨어뜨릴 생각이다. 이제 진짜 대중화를 하지 못하면 다 망한다고 봐야 한다. 골프 안 치던 사람들을 골프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건 가격밖에 없다. 우리는 평일 4만~5만원, 주중에도 10만원 이하로 1인당 이용료를 낮출 계획”이라고 했다. 이 가격대는 미국 워싱턴 주변의 대중 골프장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는 또 “문제는 경영수지인데, 비용과 지출을 줄이고 수지를 맞춰 나가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골프장은 비수기인 올여름 주중 18홀 가격대를 5만~6만원대까지 낮춘 바 있다.

골프접대는 요정이나 룸살롱에서 질펀하게 술접대를 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골프를 치며 야외에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계 전반에 확산됐다. 기업이나 이익단체의 임원 또는 홍보나 대관업무 담당자들이 공직자 등 이해관계자를 초대해 골프비 전액을 부담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캐디피만 연 1조원

일부 대기업의 경우 골프접대를 위해 수천억원을 들여 호화 골프장을 만들고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업 주요 임원들의 주말은 대개 골프장에 반납한 지 오래다. 골프는 사교적 목적이 주가 되지만 때론 민원이나 청탁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물론 골프장에서 나눈 대화가 모두 부정한 청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기업이나 이익단체들은 접대골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일상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측면이 있다.

주말골프 비용은 통상 100만원을 상회한다. 4명이 18홀 정규코스를 라운딩할 경우 회원제 골프장은 150만원 정도가 들고 대중 골프장은 1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는 그린피(Green fee), 카트 이용료, 그리고 식사비가 포함된다. 미국 등 골프가 대중화된 국가에는 없는 캐디피(Caddie fee)는 별도다. 캐디피는 4인 기준으로 12만원. 전체 골프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아 골프장 이용원가를 높이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지난 5월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골퍼들이 한 해 지출하는 캐디피는 1조원에 육박한다.

물론 회원제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무기명 회원권 등을 활용해 이보다 비용이 덜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무기명 회원권을 이용한 골프 또한 김영란법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상한선을 놓고 볼 때 접대골프가 비용 면에서 가장 주목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식사의 경우 미국의 25달러 제한법처럼 국내도 점심식사의 경우 음식점들이 알아서 비용을 낮추거나 로비스트들이 상한선에 맞춘 장소에서 접대해야 할 상대를 만나면 된다. 이미 정부서울청사와 언론사가 모여 있는 광화문 일대의 복요리집은 가격 상한을 3만원 아래로 낮춘 곳이 꽤 있다. 물론 저녁식사와 술값은 이 금액 한도에서 접대가 어렵기 때문에 향후 기업홍보 및 대관업무 담당자들과 공직자 또는 기자와의 접촉 또한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골프업계가 철퇴를 맞게 될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 업계는 “우려는 하지만, 그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 이종관 홍보팀장은 전화통화에서 “왜 골프장이 김영란법의 대표적 피해업종으로 분류되는지 모르겠다. 접대골프 문화가 광범위하고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을 만큼 사회가 부패되어 있다는 해석인데, 이에 동의할 수 없다. 골프를 대표적 피해업종으로 내세우는 것은 골프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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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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