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해양공원
한여름의 해양공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서울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유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실제로 블라디보스토크 중심가에는 유럽식으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나 동상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먼저 찾는 곳이 중심가인 아르바트거리. 원래 아르바트거리는 모스크바에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르바트거리의 정식 명칭은 포킨제독거리이다. 19세기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러시아에 영구귀속시킨 청나라와의 베이징조약(1860년)이 체결됐기 때문에 베이징거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곳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르바트거리라고 불리게 된 것은 아름다운 카페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들어선 이후 사람들이 즐겨 찾게 되면서부터다. 길지 않은 아르바트거리를 걸어내려가면 해변에 닿는다. 해양공원이다. 한여름 블라디보스토크 해변에는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넘친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은 한낮에는 더위를 느낄 정도로 기온이 높은 7~8월에 하는 것이 좋다. 9월 중순만 돼도 쌀쌀해지고 10월이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면적은 서울특별시의 절반 정도. 인구는 60만명에 불과하다. 관광객이 많은 시가지의 관광 명소들은 아르바트거리에서 2㎞ 이내에 위치해 있어 걸어다니며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요즘에는 러시아 경제가 악화돼 범죄가 증가하는 데다, 북한의 한국인 납치공작 경고도 발령돼 있다. 한밤중의 산책이나 외진 곳을 홀로 다니는 일은 삼가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를 누비는 차량들은 주로 한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온 중고차다. 승용차는 대부분 운전석이 오른편에 위치한 일제 중고차. 버스는 대부분 한국산 중고차. 낡은 차량의 행렬, 탁한 공기, 웃음기를 잃은 사람들의 표정 등을 살피다 보면 이곳은 유럽인 듯, 유럽이 아닌 듯한, 유럽 같은 나라, 바로 러시아임을 실감하게 된다.

아르바트거리
아르바트거리

한국과 일본 중고차 전시장

러시아에는 유럽과 같은 따사로운 햇볕이나 아름다운 건물은 찾기 어렵지만 어디서나 극한의 자연환경이나 고난을 넘어서 동토(凍土)를 개척하고 나라를 지킨 러시아인의 역사와 자부심을 대할 수 있다. 러시아인의 조국 사랑과 개척에 대한 열정이나 다짐은 블라디보스토크 도처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모스크바를 출발하는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종착역이 위치해 있다. 모스크바까지 총길이 9288㎞인 시베리아횡단철도는 공식적으로는 1916년 완공됐으나, 실제로는 1930년대까지 공사가 진행됐으며, 지금도 부분적으로는 진행 중이다. 기차역 건너편에는 소련 시절 세워진 레닌 동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모자를 움켜쥔 혁명가 레닌은 오른손으로 역사 너머의 동쪽 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시베리아횡단철도의 건설을 적극 추진한 인물은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니콜라이 2세를 기념하는 개선문이 있다. 그는 황태자 시절부터 시베리아횡단철도의 건설을 독려했으며, 1891년 시베리아횡단철도의 극동 종착역으로 계획된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 황태자는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 전에 들른 일본에서 암살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황태자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개선문은 소련 정부에 의해 철거됐다가 2003년 복원됐다. 개선문 상층부 앞면에는 니콜라이 황제의 얼굴이, 뒷면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상징 동물인 호랑이 문장이 그려져 있다.

니콜라이 2세는 1894년 제국의 마지막 차르가 되었지만 1917년 공산혁명으로 강제퇴위 당하고, 다음 해인 1918년 7월 유배지에서 공산당원들에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된 이후 러시아정교회는 니콜라이 2세 가족 모두를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킨 순교자로 인정하고 성인으로 시성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포크롭스키 성당에 가면 니콜라이 2세 가족을 성인으로 그린 성화(이콘)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루스키섬을 잇는 금각교.
블라디보스토크와 루스키섬을 잇는 금각교.

위대한 승전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또 과거부터 러시아 해군의 극동사령부가 위치한 군항이다. 그런 만큼 각종 군사시설과 기념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중앙광장에는 커다란 무명용사들 조각상이 있고, 한쪽에 러시아 대통령이 이 도시를 위대한 승전의 도시로 지정한다는 내용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2차대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묘역에는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S-56 잠수함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 조선소에서 건조된 S-56함은 파나마운하를 지나서 유럽 전역에 투입돼 나치 독일 해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옆으로 조금 지나가면 한국 해군의 방문 기념비가 있다. 그곳 바로 위에는 소련 해군의 전설적인 지휘관인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제독(1904~1974)의 흉상이 있다. 쿠즈네초프는 2차대전 때 소련 영웅 칭호를 받고 원수에 오른 인물. 군에 대한 공산당의 간섭을 비판하다 강제로 퇴역당했던 쿠즈네초프 제독은 나중에 복권되었다. 현재 러시아 항공모함의 명칭이 쿠즈네초프일 정도로 그는 러시아 해군의 영웅이다.

공산당에 처형당한 니콜라이 2세 가족을 시성한 성화.
공산당에 처형당한 니콜라이 2세 가족을 시성한 성화.

이 부근에 러시아 극동해군사령부가 있으며 앞바다에는 다수의 해군 함정이 정박해 있다. 근처에 소련 시절 노벨문학상을 받은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솔제니친은 1994년 미국에서의 망명생활을 청산하며 새로이 태어난 러시아로 귀환할 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조국의 모습을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조국애의 표현! 솔제니친의 러시아 귀환을 기념하는 동상이 블라디보스토크 해변가에 세워진 것은 이 때문이다. 동상은 솔제니친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솔제니친은 1970년 소련에서 추방당해 미국에서 살았지만 서구문명을 동경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구 시민들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는 평가했지만 경건하지 못한 대중문화에는 반대했다. 소련이 몰락한 뒤 들어선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대해서도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던 솔제니친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러시아에 질서와 명예, 자부심을 찾아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역시 2007년 솔제니친의 집을 찾아 직접 국가훈장을 전달하고 감사를 표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영화배우 율 브리너(1920~1985). 스위스 출신의 부유한 측량기사와 러시아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유했던 그의 아버지는 당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멋진 집을 지었다. 아버지가 러시아 여배우와 눈이 맞아 떠나고 나자, 율 브리너는 어머니와 함께 유랑극단을 전전하다 미국으로 진출해 대스타로 성장했다. 그의 대표작은 뮤지컬영화 ‘왕과 나’. 그는 이 작품에서 시암왕국의 국왕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뮤지컬 ‘왕과 나’는 브로드웨이에서 4600여회나 공연됐다. 율 브리너의 석상은 ‘왕과 나’에 등장한 시암 국왕의 모습이다.

솔제니친이 러시아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담은 동상.
솔제니친이 러시아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담은 동상.

푸틴의 야망이 한눈에 보이는 곳

블라디보스토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독수리언덕에 오르면 러시아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러시아를 위대하게 만들려는 푸틴 대통령의 야망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다란 만(灣) 위에 건설된 거대한 교량. 육지를 길게 파들어간 금각만(金角灣·Золотой Рог·Golden Horn) 위를 지나는 이 교량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와 최남단의 루스키섬을 연결한다.

독수리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만을 금각만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햇빛이 비치면 잔잔한 바다 표면이 마치 황금뿔처럼 찬란하게 빛나기 때문. 과거 무라비예프 총독이 이스탄불의 금각만을 생각하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길이 7㎞에 달하는 금각만 주위에서는 조선업이 발달했으며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태평양 진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율 브리너 동상
율 브리너 동상

육지와 루스키섬은 사실 금각교와 루스키교량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현수교 교량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교량들은 2012년 루스키섬에서 개최된 제24차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완공됐다. 당시 정상회담은 루스키섬에 위치한 극동연방대학 캠퍼스 내에서 개최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9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벌이게 될 장소도 이곳. 러시아에서 명문대학으로 통하는 이 대학의 재학생은 3만5000명, 교수는 8000명에 달한다.

푸틴 대통령이 루스키섬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은 각국의 투자를 유치해 개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한국이나 중국 관광객을 위한 카지노 등 위락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이 분출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진 러시아와 소련의 영웅상들은 모두 태평양으로 진출하라고 재촉한다. 성화 속의 니콜라이 2세, 해양공원 언덕에 세워진 러일전쟁의 영웅 마카로프 제독, 역전에 위치한 레닌, 소련 해군의 영웅 쿠즈네초프 제독 등 모두가 바다로 나가자고 소리치는 듯하다. 이들의 염원을 담은 듯 푸틴 대통령은 더욱 적극적으로 태평양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천천히 걷다 보면 푸틴과 러시아인의 태평양을 향한 본능을 느낄 수 있는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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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영 조선뉴스프레스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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