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팔괘도. 8괘가 2개씩 조합을 이뤄 64괘를 구성.
태극팔괘도. 8괘가 2개씩 조합을 이뤄 64괘를 구성.

흔히 점집에 ‘철학관’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그렇다면 ‘점술(占術)이 곧 철학’이란 말인가. 과거에는 철학이 지혜 또는 학문 전반을 의미했다. 아득한 옛날에는 ‘점술이 곧 철학’이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이 바로 ‘주역(周易)’이다.

도대체 ‘주역’이란 무엇일까. ‘주(周)’는 주나라를 가리킨다. ‘역(易)’은 변화한다는 뜻이다. 글자로만 본다면, 주나라 때 만들어진 변화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The Book of Change’라고 한다. 고전이 대부분 불변의 무엇을 찾는 데 반해, 주역은 변화 그 자체를 주제로 삼는다. 변화가 곧 생(生)이라는 것이 주역의 관점이다.

주역은 ‘하나가 둘을 낳는다(一生二)’는 원리에 입각해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말이 있다. “역(易)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 즉 음양)를 낳고 양의가 4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8괘(八卦)를 낳는다.” 태극은 만유(萬有)의 본바탕이다. 그것은 음양의 절묘한 균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것은 음양으로 쪼개진다. 음양은 만유를 분별하는 가장 기초적인 범주이다. 음양을 둘씩 조합하면, 4상이 된다. 그것은 좀더 세분된 범주이다.

이때 음과 양을 표시하는 부호(--, ㅣ)를 효(爻)라고 한다. 4상에 음이나 양을 하나씩 더 포개면, 3효로 구성된 8괘가 만들어진다. 3효는 곧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바, 이런 우주적 원리를 담는 것이 바로 8괘이다. ‘괘(卦)’란 ‘걸다’라는 뜻으로, 만유가 거기에 ‘걸린다’는 함의를 갖는다. 실제로 8괘는 만유의 속성을 완전하게 반영한다. 8괘의 상징과 의미는 64괘가 되어도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그 뜻이 다양하고 풍부해질 따름이다.

8괘를 두 개씩 조합하면 64괘가 만들어진다. 64괘는 3효가 중첩되어 6효로 이루어진다. 효를 기준으로 보면, 384개(64괘×6효)의 하위 범주가 생성된다. 범주는 너무 단순해도 문제지만, 너무 복잡해도 문제이다. 주역은 8괘의 속성이 중첩된 64괘를 가장 적절한 범주로 보고,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64괘 384효가 주역의 기본체계를 이루게 된다.(실제로는 특별한 경우를 위한 효가 2개 더 있다.)

고대 사람들은 거북껍데기, 소뼈 등을 태워 무늬가 번져나간 모양으로 점을 쳤다. 그러나 그 양상이 불규칙하여 결과를 판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풀줄기를 한 움큼 쥐고 적당한 방법으로 나누고 뽑아 숫자를 얻고, 그 숫자를 통해 점을 보기 시작했다. 이런 방법은 판독도 용이했고, 결과를 범주화하여 축적하기도 쉬웠다. 이것이 주역의 탄생 배경이라고 추측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괘’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그것은 일종의 분류 기호라고 볼 수 있다. 차츰 점친 결과가 축적되었고, 문자가 생겨나면서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64괘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설명한 기록이 확립되었는데, 그것을 괘사(卦辭)라고 한다. 또한 386효에 대한 기록도 확립되었는데, 그것을 효사(爻辭)라고 한다.

전승(傳承)에 따르면, 괘를 만든 이는 복희씨(伏羲氏)다. 그는 중화민족의 전설적인 시조(始祖)이다. 또한 괘사와 효사를 지은 것은 주문왕(周文王)과 그의 아들 주공(周公)이다. 괘사와 효사를 모아놓은 책이 곧 ‘역경(易經)’이다. 역경은 워낙 상징적이고 함축적이다. 후대에 공자가 그 이해를 돕기 위해 단전(彖傳) 등 10편의 해설서를 저술했다. 이것이 곧 ‘역전(易傳)’이다. 주역(周易)이란 바로 역경과 역전을 합쳐 이르는 말이다. 후대에 공자에 대한 평가가 높아짐에 따라 역전 중 일부를 아예 역경에 포함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경’ 해석서(일부). 굵은 글씨가 역경 본문이고 작은 글씨는 해석.
‘역경’ 해석서(일부). 굵은 글씨가 역경 본문이고 작은 글씨는 해석.

복희씨, 문왕, 주공, 공자는 위대한 성인이다. 그들이 주역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공자는 죽간(竹簡)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역경을 탐독했다. 여기서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고사가 유래했다. 그러나 주역은 몇몇 특정인이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고뇌가 축적된 결과일 것이다. 성인들에 의한 성립설은 주역의 가치를 그만큼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 이후에도 주자(朱子) 등 수많은 학자들이 앞다퉈 주역에 대한 해석서를 냈다. 오늘날에도 학인(學人)들이 끊임없이 자신만의 해석서를 내고 있다. 아마 주역은 도서관 서가에 최신 해석서가 가장 많이 진열된 경전일 것이다. 주역은 내용이 상징적이라, 그만큼 해석도 다양하다. 오늘날에도 점술에서 인문철학에 이르기까지 그 응용이 다채롭다.

그러나 주역의 시작은 점술이다. 어떤 문제를 염두에 두고, 댓 가지 묶음을 나누고 뽑고를 반복해 숫자를 몇 개 얻는다. 이를 통해 그 문제가 처한 괘와 효를 알아낸 다음, 해당 괘사와 효사를 참고한다. 괘가 일반적인 범주 또는 상황이라면, 효는 구체적인 범주 또는 상황이다. 따라서 괘사를 통해 그 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를 얻고 효사를 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체로 괘사나 효사는 “무엇이라면 길하다(또는 흉하다)”라는 조건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에 힘써 길함을 얻든지 ‘무엇’을 삼가여 흉함을 벗어나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양효(ㅣ)가 여섯 개 쌓인 중천건괘(重天乾卦)의 첫 번째(맨 아래) 효의 효사가 그 유명한 ‘잠룡물용(潛龍勿用·물에 잠긴 용이니 움직이지 마라)’이다. 준비가 덜 된 사람은 내실을 기해야지, 섣불리 움직이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괘사나 효사는 결코 운명에 대한 판결문이 아니다. 오히려 민감한 실마리만 제공하여 개방적인 해석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것을 점괘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수신(修身)의 지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이중적 측면을 주목한 사람이 공자이다. 그는 주역을 통해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자신을 연마하고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을 제안했다.

세상사에 대한 인간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점술의 필요성은 감소했다. 그럼에도 미래가 궁금한 것은 인간의 절박한 본능이다. 그렇다고 점은 함부로 칠 수 없다. 거기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마음을 깨끗하게 다스릴 수 있나? 점치는 목적이 올바른가? 괘를 얻는 과정은 완전한가? 해석은 제대로 할 수 있나? 이런 조건을 충족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기독교에서는 점술 자체를 아예 ‘사악한’ 죄로 단정한다.

그럼에도 점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주역은 어떤 식이든 점술에 권위를 부여하는 근거로 이용된다. 동시에 그것은 수신의 지침으로 시대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주역이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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