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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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야구기자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야구기자 17년 차다. 지금까지 롯데, 두산, 현대, 삼성, SK, 넥센 등 여러 구단을 취재했고, 많은 감독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매일같이 가까이서 지켜보니 유명세와는 다른 모습에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고, 의외의 모습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대상도 있었다. 넥센을 취재하며 옆에서 지켜본 결과 염경엽(48) 감독은 확실히 후자 쪽이다.

2008년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를 토대로 만들어진 넥센 히어로즈는 항상 하위권에만 있다가 염 감독이 부임한 2013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과연 이런 결과가 우연, 혹은 운이 좋아서였을까.

그에겐 리더로서 배워야 할 리더십이 있었다. 넥센 전담 기자로서 나는 염경엽 감독의 특출한 리더십을 여섯 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봤다.

1 실패를 딛고, 절실해야 발전한다

염경엽 감독의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는 굴곡진 야구 인생에서 조금씩 ‘감독 염경엽’을 만들어왔다.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한 선수였다. 그는 대학 때까지 누구보다 야구를 잘하는 천재형의 내야수였다. 다른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할 때 혼자 몰래 빠져나가 농땡이 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바짝 훈련하면 힘들이지 않고 야구를 했다고 했다.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고, 경쟁자에게 진다는 것을 프로에 와서 뼈저리게 느꼈다. 프로 입단 뒤 수비는 잘했지만 타격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그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신예 박진만에게 밀려났다. 백업 선수로 활약하다가 결국 이른 나이에 은퇴한다. 그는 선수로서 완전 실패였다. 하지만 프런트와 코치를 하면서 그는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갔다.

프런트로 생활을 할 때 유니폼을 입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2004년 11월 1일, 당시 그는 운영팀장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잠실구장에서 현대 유니콘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순간 운영팀장 염경엽은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우승 축하연 준비를 위해 잠실롯데호텔로 뛰어가야 했다. 택시가 잡히지 않자 비를 흠뻑 맞고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선수단이 올 시간에 맞춰 가까스로 준비를 끝냈다.

한숨을 돌리고 담배를 피면서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날 염경엽은 지도자로서 성공하겠다는 절실함을 가지게 됐다. 선수로서는 실패했지만 지도자로 성공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그는 야구를 보는 자세를 바꿨다. 경기 상황에 대해 세세하게 메모하고 자신이 느낀 점을 쓰면서 조금씩 자신의 야구 색깔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메모한 노트가 여러 권이 된다.

그래서일까. 그는 선수들에게 절실함을 강조한다. 절실함이 없으면 야구가 발전하지 않는다고 그는 믿는다. 당연히 그의 팀엔 절실함 없는, 안주하려는 선수는 있을 수 없다. 아직 배울 게 많고 더 커야 할 선수가 자신이 주전이라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질책한다.

2 유연한 사고, 나를 선수에 맞춘다

염경엽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서건창을 환영하고 있는 모습. ⓒphoto 넥센
염경엽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서건창을 환영하고 있는 모습. ⓒphoto 넥센

염 감독 리더십의 핵심은 유연한 사고다. 무조건 자신만의 야구 철학을 강요하지 않는다. 상황에 맞추고, 선수에 맞춘다. 그러면서 최적의 결과를 찾아낸다. 넥센이 화수분 야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염 감독의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넥센은 모기업의 지원이 없는 구단 특성상 몸값이 높은 선수를 잡을 수가 없다. 그동안 많은 선수들을 FA로 다른 팀에 보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염 감독은 미리 선수가 떠난 뒤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주축 선수들이 떠나면 그 자리를 누군가가 메워야 한다. 전략적 사고가 필수적이었다.

염 감독은 유망주들을 A, B, C 등급으로 나눠서 관리했다. 선수에 따라서 단계를 설정하고 그에 맞춰 육성을 한다. 유망주들을 가끔씩 1군에 동행시켜 함께 훈련하게 했고 1군 경기도 보게 하면서 동기 부여를 한다. 유격수 김하성이 그렇게 성장해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올해는 홍성갑이나 주효상 등 몇몇 어린 선수들이 그렇게 1군을 경험했다.

넥센의 외야수 고종욱은 매우 공격적인 타자다. 볼넷이 별로 없다. 10월 3일 현재, 549타석에서 얻은 볼넷이 27개밖에 없다. 볼을 골라내기보다는 자기가 치고 싶은 공을 자신 있게 쳤다. 그는 2번 타자다. 테이블세터이기 때문에 출루를 많이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공격적으로 치기보다는 볼을 골라내는 능력도 필요하다. 지도자에 따라서는 고종욱에게 “무조건 치지만 말고 볼을 골라내라”고 조언을 할 수도 있다. 나쁜 공을 쳐서 아웃되기보다는 볼을 골라내서 걸어나가는 것이 타율 관리와 출루율에도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그의 타격 능력을 인정하고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유도했다. 고종욱은 지난해 3할1푼을 기록했고, 올해는 3할4푼 이상의 고타율로 넥센의 3위 등극에 큰 역할을 했다.

3 자율 훈련, 스스로 크게 하라

염 감독의 야구의 기본은 자율이다. 야구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스스로 느껴서 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항상 선수들이 야구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 부여에 초점을 맞춘다. 전지훈련에서도 기본적인 훈련만 모든 선수들이 참여한다. 기량을 키워야 할 어린 선수들을 제외한 주전급은 기본 훈련이 끝나면 모두 자율적으로 하고 싶은 훈련을 하게 한다. 코치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부족한 면을 생각해서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훈련의 능률도 오른다고 그는 믿는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한현희가 수술을 받겠다고 했을 때 염 감독은 사실 깜짝 놀랐다. 한현희가 입단 때부터 팔꿈치가 좋지 않았지만 수술을 받을 정도로 나쁜 것이 아니었고, 관리를 받으면서 던지면 1∼2년은 더 지금과 같이 던질 수 있다고 봤다. “나중에 수술을 하더라도 변화구를 좀 더 완벽하게 완성을 한 뒤 수술을 받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는 염 감독은 그러나 한현희를 설득하지 않고 수술을 하게 했다. 염 감독의 말이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못하게 하면 본인이 잘 던지고 싶겠나. 그런 마음이 들면 아무리 마음을 잡으려 해도 안 된다. 결국 본인도 손해고 팀도 손해가 될 수 있다.”

박병호와 강정호의 넥센 시절, 염 감독은 두 선수에게 메이저리그에 대한 목표의식을 심어주면서 도루도 시도하게 했다. 염 감독은 “그저 잘 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도루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메이저리그 진출에 더 좋다고 했고, 병호와 정호도 잘 따라줬다”고 했다. 박병호와 강정호는 2012년에 20개 이상의 도루를 하며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었다. 2011년까지 박병호는 통산 11개, 강정호는 12개의 도루를 하는 데 불과했다. 염 감독의 조언대로 두 선수는 상대투수가 방심하는 틈을 노려 과감하게 도루를 시도했고 20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염경엽 감독의 수첩.
염경엽 감독의 수첩.

4 좋은 것은 받아들인다

염 감독은 성공한 감독들의 장점을 연구했고, 이를 자신의 야구에 받아들였다. NC의 김경문 감독에게선 야구장을 활용하는 법을 벤치마킹했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 감독 시절 발 빠른 야수들을 기용했다. 잠실야구장은 다른 구장에 비해 넓어 홈런이 많이 나오지 않지만 그만큼 외야 수비가 중요했다. 또 큰 야구장이라 한 베이스를 더 가는 게 중요했다. 따라서 발 빠른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에서 꼭 필요했고, 이른바 ‘두산 육상부’로 불리는 빠른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에 큰 도움이 됐다.

염 감독도 야구장을 충분히 활용한 감독이다. 작은 목동구장 시절엔 기동력과 작전보다는 홈런과 장타로 승부를 봤다. 지난해 넥센의 팀 홈런은 200개였다. 박병호·유한준·김민성 등 장타자가 많았고, 홈런이 많지 않은 타자도 홈런을 칠 수 있는 목동구장이란 점을 십분 활용한 결과다. 그리고 올해는 목동보다 큰 고척돔으로 옮기면서 팀 컬러를 수비와 기동력으로 바꿨다. 박병호와 유한준이 빠지면서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가 줄어들다 보니 예전처럼 ‘4점 주고 6점 뽑는’ 야구가 힘들어졌기에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기동력의 야구는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3루타’와 ‘가장 많은 도루’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김성근 감독에게선 세밀한 야구를 배웠다. 염 감독은 주루·수비코치를 하면서 상대팀의 주요 공격작전과 수비작전을 꿰뚫고 있었다. 그 위에 김성근 감독의 세밀한 작전을 더해 넥센을 빈틈없는 팀으로 만들었다. 상대 전력에 따라 공격 방법도 달랐다. 투수들의 퀵모션이 느린 팀을 상대로는 도루로 수비를 뒤흔들며 경기를 풀어나갔고, 퀵모션이 빠른 팀은 도루를 자제하면서 작전야구로 돌파했다. 틈이 보이면 그것을 철저하게 파고드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그대로 가져왔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게선 ‘노 피어(No fear)’ 정신과 체력관리의 중요성을 배웠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해보는 게 ‘노 피어’ 정신이다. 염 감독은 훈련량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적은 훈련이라도 선수들이 열심히 하면서 제대로 깨우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즌 중 월요일은 무조건 휴식을 줬다. 최근 잔여경기 일정을 치를 땐 사흘간 야구가 없자 이틀을 쉬게 했다. 푹 쉬어 체력을 아껴야 긴 시즌을 잘 치를 수 있다는 것을 로이스터 시절의 롯데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올 시즌은 특히나 체력관리에 더 신경을 썼다. 비록 주축 선수들이 많이 떠났지만 그래도 5강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염 감독은 다른 팀처럼 가용자원이 풍부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주전들의 체력관리로 메우려 했다. 김상수·이보근·김세현의 필승조는 반드시 꼭 필요할 때만 투입했다. 리드한 상황에서 등판시키는 것은 당연했지만 동점이나 뒤진 상황에서는 기용을 꺼렸다. 예전엔 작은 점수 차로 지고 있더라도 필승조를 투입해 막은 뒤 강력한 타격으로 역전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올해는 그럴 수 있는 타격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필승조를 최대한 아꼈다. 지거나 비기는 경기에서 필승조를 투입했다가 질 경우 그 타격이 다음 경기에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길 가능성이 낮은 경기에 투입했다가 나중에 이겨야 하는 경기까지 놓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투수들에게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라고 주문하는 것도 선수들의 체력과 관련이 깊다. 안타를 맞지 않으려 유인구를 던지다가 볼이 늘어나고 볼넷을 내주면 시간이 길어지고 그렇게 되면 야수들의 체력이 떨어진다. 1∼2경기는 상관없겠지만 144경기의 긴 레이스에선 10분이나 20분의 수비시간이 시즌 후반엔 큰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염 감독의 말이다.

“볼넷 2개를 내줘 1, 2루를 만들어주는 것과 안타 2개로 만들어주는 것의 시간 차는 분명히 크다. 어차피 점수를 내줄 거면 빨리 내줘야 수비수들도 짧게 수비를 할 수 있다.”

선수들의 체력관리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부상과도 연관이 있다. 체력이 떨어지면 경기 도중 부상을 입을 위험도 커진다. 넥센으로선 아무래도 선수층이 얇아 주전의 부상이 크게 다가온다. 염 감독의 철저한 관리 덕분에 넥센은 큰 부상 없이 전력을 유지하면서 시즌을 잘 치를 수 있었다.

5 솔직하게, 적절한 타이밍에

고척돔에서 훈련 도중 생각에 잠긴 염경엽. photo 넥센
고척돔에서 훈련 도중 생각에 잠긴 염경엽. photo 넥센

염 감독은 선수들에게 솔직하게 말을 하는 편이다. 염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시작할 때 선수들이 시즌 때 해야 할 역할을 미리 지정해준다. 미리 보직이나 역할을 결정하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염 감독은 그동안 봐왔던 선수들의 모습과 능력치를 고려해 주전과 비주전을 일찌감치 나누고 역할을 부여해 스프링캠프에서부터 그 역할에 맞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끝까지 경쟁시켜 선수들이 열심히 하도록 하는 감독들도 있지만 염 감독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모든 선수들이 공격, 수비, 주루 등을 연습해야 하지만 대타, 대수비, 대주자 요원으로 지목된 선수들은 자기의 특기를 더 잘 살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당장 주전이 되지 못하는 선수에게 주전이 될 수 있다는 헛된 꿈을 심어주었다가 나중에 허탈감에 야구에 대한 열정이 식기보다는 솔직하게 현재 그 선수의 능력치를 말해줌으로써 그 선수가 더 열심히 노력하도록 한다. 프로야구는 포지션별로 분업화돼 있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염 감독은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줄 때도 솔직하게 말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는 시기 선택을 중시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느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시기는 선수가 납득을 할 수 있을 때다. 해당 선수가 그렇게 느끼지 않고 있을 때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 봤자 제대로 듣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에 그는 타이밍을 본다.

올 시즌 혜성처럼 등장해 넥센 선발 마운드를 지켰던 신재영은 시즌 중반까지 직구와 슬라이더, 두 가지 구종으로만 승부를 했다. 2개 구종만으로도 전반기에만 10승을 챙겼다. 그러나 후반기에선 맞는 확률이 높아졌다. 전반기 17경기서 10승3패에 평균자책점 3.33을 기록했던 신재영은 후반기엔 12경기에서 5승4패, 평균자책점 4.66을 기록했다. 직구와 슬라이더 2개만 던지는 신재영의 피칭 패턴이 노출되어 익숙해진 결과다.

신재영이 후반기 초반 부진에 빠지자 염 감독은 그제서야 신재영에게 구종 추가를 조언했다. 완벽하게 제구가 되지 않더라도 “내가 이런 공도 던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구종 하나를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염 감독은 이렇게 신재영을 설득했다. “제구가 좋다고 해도 완벽한 제구는 아닌 상황에서 2가지 구종만으론 타자들에게 읽힌다. 체인지업을 가끔 하나씩 던지기만 해도 타자의 머릿속엔 직구, 슬라이더에 체인지업도 추가된다. 50%의 확률에서 33%의 확률로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

이후 신재영은 체인지업을 메뉴에 추가했다. 비록 체인지업을 한 경기에 10개 내외로 던지고 아직은 큰 효과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신재영에겐 한 단계 발전하는 모습이다.

만약 구종 추가에 대한 얘기를 전반기에 잘 던질 때 했다면 어땠을까. 선수가 잘 받아들였을까. 염 감독은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 순간을 경험하지 못하면 그냥 감독, 코치들 말에 따라하는 척만 하지 실제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염 감독은 안다.

6 인정할 건 인정해야 고친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고치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을 발전시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조상우가 지난 2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팔꿈치 통증으로 수술을 받게 됐을 때 지난해 많이 던진 것이 문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염 감독은 이를 인정했다. 염 감독은 “관리를 해준다고 했지만 그래도 결국 무리가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투구 수에 따라서 연투에 대한 원칙을 세웠던 염 감독은 조상우에 대해 몇 차례 그 원칙을 어기고 던지게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올 시즌 주축 불펜인 김상수와 이보근, 김세현 등은 투구 수에 따른 연투 원칙을 철저히 지켰고, 올 시즌이 1군 데뷔였던 신재영은 항상 100개 이하의 공을 던지게 하고 충분한 휴식을 줬다. 시즌 막판엔 일주일, 열흘의 휴식을 주기도 했다.

염 감독은 올 시즌을 돌아보면서 “감독을 하면서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낀다”라고 했다. 성적 앞에서 참지 못하고 했던 일들이 결국은 나쁜 결과로 돌아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염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내가 급해서 망친 것들이 많았다. 작년 시즌이 제일 급했던 것 같다. 많이 반성했고, 그래서 올해는 정말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생각했던 원칙을 지키려고 했고, 다음을 보자고 속으로 많이 얘기했었다. 그렇게 참고 참았던 게 올 시즌을 잘 버티게 한 것 같다.”

야구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염경엽의 지도력을 인정한다. 앞으로 염경엽의 야구는 또 어떻게 발전할까. 그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또 뭔가를 이뤄낼 것 같다.

전문가들이 2016 시즌 꼴찌로 꼽은 넥센은

2013년 이후 기적의 팀을 만들다

2016 KBO리그는 두산 베어스의 독주 속에 마무리가 되고 있다. 2015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두산은 김현수의 해외 진출로 전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가장 강력한 선발진과 타격의 힘으로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그런데 두산보다 더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올린 팀이 있다. 바로 넥센 히어로즈다. 넥센은 지난해까지 팀을 이끌었던 주축 선수가 대거 빠지면서 꼴찌 후보로 꼽혔지만 정규리그 3위에 올랐다. 시즌 초반 반짝이 아닐까 했지만 끝까지 견고한 모습으로 큰 위기 없이 3위를 지켜냈다. 지난해 4위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 것이다.

넥센에서 떠난 선수들을 보면 이들 없이 어떻게 시즌을 치르나 싶을 정도였다. 홈런왕 박병호가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했고, 중심타자인 유한준도 FA 자격을 얻어 kt 위즈로 떠났다. 또 FA 마무리 손승락이 롯데로 갔고, 에이스 역할을 했던 외국인 투수 밴 헤켄은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로 옮겼다(후반기에 넥센으로 다시 이적). 여기에 불펜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한현희와 조상우는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장기로 치면 차, 포에 마, 상까지 떼고 경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삼성 라이온즈가 몇몇 주축 선수들이 여러 이유로 빠지면서 휘청인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넥센은 새롭게 기용된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야구계에서 이변을 연출했다.

힘이 없을 것 같았던 중심타선엔 윤석민과 김민성과 대니 돈이 있었고, 허술하기 짝이 없을 것 같던 뒷문은 김세현이 지켰다. 조상우와 한현희의 공백이 클 것 같던 필승조는 김상수와 이보근이 훌륭하게 버텼다. 15승 투수가 된 신예 신재영은 언제나 고민이었던 토종 선발 문제를 해결해줬다. 모두가 똘똘 뭉친 결과 넥센은 꼴찌를 예상한 전문가와 팬들을 민망하게 했다. 그런 넥센의 야구를 보며 ‘화수분’이라고 한다.

넥센의 올 시즌 팀 전체 연봉은 40억5800만원이다. 지난해 54억5000만원에서 무려 22.6%나 낮아졌다. 연봉이 내려간 팀은 삼성(-2.6%)과 LG(-4.3%)가 있는데 모두 넥센보다 하락폭이 작다. 앞서 말한 대로 거액 연봉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다.<13쪽 표 참조>

이것은 무려 28.1%나 상승한 총연봉 1위인 한화 이글스의 102억1000만원의 40%밖에 안 되는 액수다. 삼성(81억9600만원)이나 LG(71억9700만원), 롯데(71억8900만원), SK(70억1400만원), 두산(67억6400만원) 등 대부분의 팀들과 큰 차이를 보였고, 1군 데뷔 2년 차인 젊은 선수들이 많은 kt 위즈의 43억5200만원보다도 적은 10개 팀 중 연봉 꼴찌다. 이런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로 3위의 성적을 올렸으니 가성비 최고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기적의 팀, 그 중심에 염경엽 감독이 있다. 염경엽과 제갈량을 합친 ‘염갈량’이란 별명처럼 주축 선수들이 빠진 자리에 대체 선수들을 기가 막히게 기용하며 예전보다 더 탄탄한 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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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하 스포츠조선 야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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