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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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현실적인 핵보유국을 향해 폭주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유엔 등 국제사회는 아직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지나 6차, 7차, 8차… 핵 실험으로 계속 밀고 나가고, 대륙간탄도탄과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을 계속 더 발전시켜 나가면, 그땐 한국과 동맹국과 다른 유관국들은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 불투명성이야말로 오늘의 북핵(北核) 위기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위기다. 상대방이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우리가 해야 할 바는 불확실한 것, 이게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이다.

왜 이쪽의 대응방안이 이렇게 불투명한가. 지금까지 우리와 그 동맹국(미국) 및 주변국들의 대북정책과 대북인식이 거의 모두 적중하지 않았거나, 먹히지 않았거나, 헛발질, 겉핥기, 희망적(wishful), 주관적, 낙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안이(安易)하고 안일했던 것이다. 그 모든 대북(對北) 묘안(妙案)과 가설(假說)과 방법론들이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말짱 꽝’이었고, 이에 대한 당혹감이 ‘머릿속 혼돈’ 상태 같은 것을 초래한 상황이다. “대화·평화·공존·교류·협력을 위해 좋다는 처방은 다 써 보았는데 손에 잡힌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게 우리가 처한 곤혹스러운 처지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었나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이런 딱한 상황이 초래되었는가. 이걸 알아내지 않고선 우리는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결론부터 앞세우면, 북한이란 상대방에 대한 그간의 우리의 기본인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란 역대 정부, 정치인들, 지식인들을 말한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막론한 ‘우리’ 말이다. 기본인식이 잘못되었으니,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전제(前提)와 가설과 방법론이 제대로 된 것이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인식과 대북정책의 전제, 가설, 방법론은 무엇이었나. “우리가 북한에 대해 선의(善意), 정직, 열린 자세, 성심, 성의, 포용, 물질적 지원을 베풀면 그에 비례해서 북한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자 혈육이기에 언젠가는 경직되고 적대적인 대남(對南) 자세를 수정해 점차 상호수렴(收斂)의 과정을 거쳐 평화·공존·교류·호혜·협력·개방·불가침·동질화·통일 추구의 길로 나올 것이다”라고 설정한 게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시베리아 북극의 오로라(신기루)였다.

‘사람은 다 같다’는 것은 비슷한 문화 패턴 사이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이지, 문화 패턴이 너무 다른 사람들이나 집단들 사이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인종이 달라도 문화 패턴이 비슷하면 생각과 행태가 비슷할 수 있다. 반면에 인종과 민족이 같아도 문화 패턴이 너무 다르면 생각과 행태가 이(異)민족보다도 더 다를 수 있다. 우리와 북한은 물론 같은 민족이다. 그러나 남과 북의 문화·가치관·종교·라이프스타일·체제·철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는 개인주의·자유·법치·세속주의·종교다원주의·사생활 공생활의 분리·시장·개방·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란 문화 패턴 속에서 살아왔다. 반면에 북한은 집단주의·전제(專制)·신정(神政)체제·병영사회·폐쇄·정보통제에 갇혀왔다. 이래서 우리와 북한의 생각과 행태는 비슷한 문화 패턴을 가진 이민족들 사이보다도 더 멀고 다르다. 이점을 가벼이 여긴 채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잘해주면 북한도 같은 인간이자 같은 민족이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남조선 혁명’ ‘전국적 규모의 주체혁명’을 버리거나 수정해서 우리와 공존·교류·호혜·협력·상호수렴·연착륙할 것”이라고 턱없이 낙관했다. 그 낙관의 끝이 오늘의 핵 재난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저처럼 강철의 ‘혁명적 철칙’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선 바가 없는 존재인 한에는, 우리가 만약 깨어 있는 국가요 정권들이요 국민이었다면, 우리는 마땅히 경제적 우위뿐 아니라 군사적 우위도 확고하게 점하고 있었어야 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신념과 철학을 투철하게 내면화하고 사회화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위기의식과 긴장을 스스로 놓아버렸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핵·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에서 완전히 뒤처져 버렸다. 정신적으로는 전체주의에 대한 이념무장과 면역력을 스스로 방기한 채 “이념의 시대는 갔다” “북한은 거덜 났다” “저런 피폐한 북한에 계속 경계심을 갖는 건 ‘수구꼴통’이다” 운운하며, 그렇게 무장해제하는 게 마치 신식(新式)이라는 양 떠들어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공갈 앞에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 하는 자신들의 민망한 자화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조선중앙TV는 지난 9월 5일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 탄도로켓 발사 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photo 뉴시스
조선중앙TV는 지난 9월 5일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 탄도로켓 발사 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photo 뉴시스

核 재난에 대한 옵션들

문제는 핵 재난이 이것으로 끝인 게 아니라 더 심화될 수도 있다는 끔찍함이다. 활로를 찾기 위해선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선 지금 핵 재난에 대응할 몇 개의 옵션이 논의되고 있다. 독자 핵무장론, 미국 전술핵무기 재배치, 미국의 ‘확장 억제력’, 그리고 선제 타격론이 그것이다. 독자 핵무장과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에 대해선 미국 관리들과 정치인들이 이미 냉담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우리 역시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탈퇴하고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타격을 감내하며 능히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이야 자유·민주·개방·세계로부터 동떨어져 조선왕조·일제식민지·김일성 왕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전근대적 생활양식 속에서만 살았기에, 단절과 제재를 저렇게 집요하게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근대·시장·세계·개방·디지털·풍요의 맛을 본 우리에겐 고립과 궁핍에 대한 공포감이 북한에 비해 훨씬 더할 수 있다. 그리고 보수 일부가 설령 독자 핵무장론으로 나간다 해도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미국보다 중국에 붙어 살면 된다”고 하는 투쟁세력이 과연 팔짱만 낀 채 가만히 앉아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확장 억제력’이라는 건 확고부동한 보증수표인가. 미국의 개입 결의가 확고한 한에는 그것은 물론 유효한 대처방안임에 틀림없다. 현재로서는 그것 이외에 달리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괌에 있는 미국의 ‘전략적 자산’은 이미 북한에 대해 막강한 위력을 과시한 바 있다. 항모 로널드레이건호(號)와 전략폭격기 B-1B가 한반도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 앞에서 우리가 과연 미국만 믿고 살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이 의구심이 독자 핵무장론으로 연결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의 ‘확장 억제력’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미국·유럽 핵 공동운영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는 한결 높아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우리가 외교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과연 이에 기꺼이 응해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사회 일각엔 반미·친중(反美·親中) 기류도 있고, 한동안은 “반미면 어떠냐?”고 공언하던 정권도 있었기에, 한국의 신뢰도에 대한 미국 조야(朝野)의 평가는 미·일 동맹의 경우보다 현저히 낮을 수도 있다.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론’은 최근 미국의 일부 정치인과 관리가 이런저런 동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도 고려해야 한다” “선제 타격에 대해선 미리 말하는 게 아니다”라고 한 미국의 일부 정치인과 관리의 발언들이 그것이다. 미국엔 그러나 강성 매파들만 있는 게 아니라 온건 비둘기파도 있고, 상하 양원(兩院)이 있고, 냉소적인 언론이 있고, 고립주의적인 유권자들과 정치인이 있고, 수염 기른 반전(反戰)론자도 있으며 “왜 우리 자식들과 돈을 한반도 분쟁에 소진하느냐”고 시비하는, 분노한 백인 중하층도 많다. 베트남전, 아프가니스탄 내전, 이라크전쟁 같은 것엔 두 번 다시 휘말려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치인들과 대통령들은 점점 더 여론에 민감한 포퓰리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판에 “전쟁을 각오하고라도 선제타격을 하겠다”고 천명할 21세기의 트루먼 대통령이 과연 쉽게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옵션들 가운데 어느 게 과연 한·미 동맹의 최종적인 결론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옵션들과는 전혀 다른 대안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대세는 물론 응징과 제재다. ‘세컨더리 보이콧’도 그중 하나다.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나라들의 기업과 은행들을 제재하겠다는 게 그것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차석이 미국을 방문하는 것을 두고 모종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방안’이 논의되는 것처럼 보도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대증(對症)요법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미국 안에 출현하고 있다. 결코 예사로이 넘겨버릴 조짐이 아니다. ‘미·북 직접대화, 양자 대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다수(81%)는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지지했다. 대북 제재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물론 그와 비슷(80%)했다. 반면에 선제 타격엔 소수(35%)만이 찬성했다. 이런 여론 흐름을 내다보기라도 했다는 듯, 그동안 미국 일각에는 “이제는 북한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 주고받기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고개를 들어왔다.

지난 3월 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한 대북 제재 결의안 2770호에 손을 들어 찬성을 표시하고 있다. ⓒphoto AP
지난 3월 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한 대북 제재 결의안 2770호에 손을 들어 찬성을 표시하고 있다. ⓒphoto AP

다시 일고 있는 ‘햇볕 근본주의’

여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미·북 양자 대화의 필요성 또는 불가피성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도 방법론상의 차이는 있다. 편의상 포틀랜드주립대학 명예교수 멜 거토프(Mel Gurtov)의 주장을 살펴본다면, 그의 견해는 우리 내부의 ‘햇볕 근본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가 2014년 8월에 발표한 ‘미국은 왜 북한을 포용(engagement)해야 하는가’라는 논문의 내용인즉,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에 의한 북핵 폐기는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을 두고 볼 때 실패했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바와 같은 포용적 대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포용정책에 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 그의 제언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렇다.

“새로 시작할 협상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 폐기 대가로 북한의 안보를 약속해주고(security assurance), 한국전쟁 종식을 약속해주며, 불가침조약(Non-aggression Pact) 체결과 경제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그의 이런 주장을 돌아보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가 대북 포용정책이라는 게 한 번도 실시된 적이 없었다는 양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과 김정은이 핵·미사일 공갈로 저렇게 마구 나오는 건 우리가 포용정책을 쓰지 않고 오로지 ‘제재’로만 임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오늘의 한·미 양국의 대북 제재는 “대화에 의한 핵 폐기를 추구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좌절감의 소산이지, 한·미가 처음부터 다른 건 제치고 제재에만 집착했던 게 아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남북 적십자회담’ 이래 노태우 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포용정책을 거쳐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과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제의에 이르기까지 시종 공존·교류·협력·신뢰구축·단계적 통일, 그리고 그것을 위한 대화와 협상을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멜 거토프 교수는 무엇을 어떻게 봤기에 그러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예컨대 북한에 비(非)전향 장기수들을 무조건 북송해 주고서도 국군포로와 납북자 단 한 명을 데려오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는 비굴하다 할 정도로 대화 성사에 을(乙)처럼 매달렸고, 정상회담 전제조건으로 4억5000만달러를 부랴부랴 김정일 내탕금(內帑金) 계좌로 송금할 정도로 회담 성사에 급급했으며, 협상의 일반 원칙인 상호주의마저 내걸지 않거나 못했다.

이런 우리의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김정일·김정은은 대화 이면에서 ‘우리가 준 돈’을 전용해가면서(이건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핵·미사일을 개발했고, 우리의 정치 환경이 바뀌어 ‘대화를 통한 통일전선 공작’이 더 이상 먹히지 않을 징후가 보이자 돌연 대화를 깨고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목함지뢰 폭발로 나왔다. 이런 인과관계, 전후관계, 사실관계를 조명하지 않은 채 “왜 북한을 포용하지 않느냐?”고 일방적으로 나무란다면 그건 정보와 레퍼런스(reference)의 편향, 기존연구·관련자료 검토가 제대로 되지 않은, 대단히 허술한 논문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다.

사전적이고 당위론적이며 규범적인 의미의 평화·대화·포용·불가침·휴전종식·평화협정을 말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불문곡직 ‘반(反)평화’로 찍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는 이견(異見)을 정치적·규범적 함정에 빠뜨리는 부적절한 논리일 수 있다. 북한이 말하는 ‘평화협정’이란 한·미 동맹 해체, 미군 철수, 미국 핵우산 철거, 대한민국의 안전판 제거를 의미한다. 이건 평화가 아니라 ‘남조선 혁명’으로 가는 ‘트로이의 목마’일 뿐이다.

작금의 한·미 양국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는 오랜 기간의 대북 포용정책(진보정권의 것이든 보수정권의 것이든)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진의(眞意)가 ‘영구적인 핵·미사일 보유’에 있다는 것만 확실하게 드러냈다. 멜 거토프 교수 유(類)의 주장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말하듯 포용정책을 쓰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걸 썼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좌절감에서 나온 것이 이런 결론이었다.

“문제는 북한의 정권(regime) 그 자체다.”

이건 브루킹스연구소 비상임 선임연구원이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국무차관보를 역임하고 1998~2000년엔 북한과 상대하는 미국 외교팀의 부책임자직을 맡았던 리비어(J.R Revere)의 말이다. 이어서 그는 2013년 발표한 ‘사실과 마주하기: 새로운 미·북 정책을 향하여(Facing the Facts: Towards a New U.S. North Korea Policy)’란 자신의 논문을 통해 이렇게 결론 짓고 있다.

“북한의 핵 폐기는 불가능하다. 평양 정권은 핵 폐기에 대해 어떤 신호도 보인 바 없고, 오히려 자체 핵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지금 같은 북핵 문제의 교착상태에 대해 그는 북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북한의 핵 폐기를 강제하기 위해선 북한 정권의 속성을 바꿔야 하고 이를 위해선 북한에 보다 강력한 금융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최고 권력과 북한 엘리트층 사이에 쐐기를 박고, 김정은에 대한 일반 주민의 충성도를 약화시키기 위해, 그래서 북한의 레짐 체인지를 촉진하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안이 얼마나 주효할지는 좀 두고 봐야 한다.

TV조선이 10월 9일 단독 보도한 바에 의하면 북한의 한 무역상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 가서 물건 들여오려고 하는데 이게 큰일이다. 그나마 그것 가지고 먹고살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놈의 핵실험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이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북한 주민과 북한 권력 사이를 벌려 놓는 데 꽤 효과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공사 등 최근 엘리트 계층의 탈북 시리즈도 그런 분열 과정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북한은 고립을 버텨내는 데 잘 훈련돼 있다”는 반론도 없지는 않다.

내년 초 미국에 힐러리 행정부가 들어서든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든 미국의 대북정책은 또 한 번 적잖은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다. “북한이 만약 핵을 동결하고 비확산을 약속하면 그 대가로 북한의 ‘지금 수준의’ 핵 보유를 묵인해주고 김정은 정권의 안전을 보장해주자”는 평화협정 논의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에겐 상당한 시련이 불어닥칠 것이다. 정부, 정치권, 지식인 사회가 다 같이 깊이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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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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