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Bob Dylan)을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위대한 미국의 음악 전통에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고 설명했다. 밥 딜런이 2008년 퓰리처상 특별상을 받았을 때의 수상 이유인 “팝뮤직과 미국 문화에 끼친 심대한 영향”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워낙 파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문화계에서 영향력이 큰 유대인들의 입김이 작용한 덕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문화계, 특히 음악·영화와 같은 대중문화계에서 유대인들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길래 이런 주장이 나오는 걸까?

유대인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에서 미국으로 대거 이주했다. 이들은 주로 뉴욕을 통해 입국했는데, 처음에 자리 잡은 곳이 뉴욕의 브롱크스나 브루클린 등 빈민가였다. 유대인들은 가난과 차별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메리카에서의 삶에 적응하고 동화되어야만 했다. 영국의 사학자 폴 존슨은 뉴욕의 유대인들이 미국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음악·영화 등이 미국 문화 속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밥 딜런의 음악도 1960년대 미국 뉴욕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밥 딜런의 본명은 로버트 지머맨.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년 밥 딜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뉴욕에서 활동하던 포크 뮤지션 우디 거스리(1912~1967). 저항적 가사를 담은 포크 뮤지션의 원조. 민권운동이 한창일 때 저항적인 내용을 담은 포크 뮤직이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우디 거스리 같은 포크 뮤지션들의 영향이 컸다. 거스리에게는 램블링 잭 엘리어트(85)라는 제자가 있었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인 엘리어트는 밥 딜런을 공연장에 데리고 다니며 관객들에게 ‘내 아들 밥 딜런’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불러 히트시킨 그룹은 뉴욕에서 결성된 ‘피터, 폴, 앤 메리’. 이 그룹의 리더인 피터 야로는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그는 ‘Puff the Magic dragon’을 작곡했으며 포크 뮤지션답게 민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유대인은 일반적으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어릴 때부터 구약성서 같은 경전을 배우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에 익숙하다. 1960년대 민권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던 미국 사회에서 유행한 포크뮤직에 유대인 싱어송라이터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뮤지션 중에는 뉴욕 출신 유대인이 많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75)과 아트 가펑클(75) 역시 유대인 뉴요커들. 이들은 1970년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내놓고 결별. 각각 솔로로 활동했다.

닐 다이아몬드(75)는 ‘Sweet Caroline’ ‘You Don’t Bring Me Flowers’ 등을 히트시키며 앨범을 1억장 이상 판매했다. 싱어송라이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74)는 그의 고교 동창. 그녀는 앨범을 1억4500만장 팔았다. 그녀는 음악뿐만 아니라 ‘퍼니걸’ ‘스타탄생’ 등의 영화로 아카데미상도 수상했다. 닐 다이아몬드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나 모두 동유럽 유대인 후손들로 브루클린에서 살았다. 닐 다이아몬드는 나중에 “스트라이샌드와 나는 고교 시절 가난한 아이들이었다”며 “학교 다닐 때 함께 나가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고 회상했다.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평가를 받는 캐럴 킹(73)도 뉴욕 브루클린에서 성장했다. 1971년에 나온 ‘It’s Too Late’ ‘You’ve Got a Friend’ 등이 담긴 그녀의 앨범 ‘Tapestry’는 미국에서는 1000만장, 전 세계적으로는 2500만장이나 팔렸다.

최근에 들어서는 브루노 마스의 대히트곡 ‘Uptown Funk’를 프로듀싱한 마크 론슨이 리투아니아 유대인 후손. 영국 태생으로 원래 성은 아론슨인데, 론슨으로 줄였다. 론슨의 부모는 이혼했는데, 여덟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뉴욕 맨해튼으로 이주해 살았다. 브루노 마스는 하와이 호놀룰루 태생. 본명은 피터 진 헤르난데스. 아버지는 푸에르토리코인과 동유럽 출신의 유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필리핀 출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Frozen)’의 주제가 ‘Let It Go’를 불러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린 이디나 멘젤(45)도 뉴욕 출신 유대인. 어릴 때부터 유대 명절에 불려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뉴욕대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뮤지컬과 영화 쪽에서 성장했다. 이들 말고도 폴라 압둘, ‘피아노맨’의 빌리 조엘 등이 유대계.

대중음악 분야에서의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1960년대 포크뮤직이 인기를 누릴 때가 전성기였다. 1970년대 이후 로큰롤, 재즈, 디스코 등을 거쳐 최근의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등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유대인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힙합에서는 흑인들의 영향력이 압도적.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벤허’ 포스터.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벤허’ 포스터.

미국 영화사는 유대계 손에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그러나 세계 최강인 미국 영화 부문에서는 여전하다. 뉴욕 유대인들은 가난한 시절 입장료 5센트짜리 영화관을 찾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이들을 기반으로 유대인들이 설립한 영화사들이 유니버셜, 콜롬비아, MGM, 20세기폭스, 파라마운트 등. 이 영화사들이 제작비 중 조명 비용을 줄이기 위해 햇빛이 강한 지역을 물색하다 찾아간 곳이 바로 LA의 할리우드였다.

미국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영화사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이 많다. 세실 B 데밀(1881~1959) 감독은 ‘십계’ ‘삼손과 데릴라’ 등 구약성서의 유대인의 고난과 구원을 담은 영화들을 제작해 가난한 유대인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윌리엄 와일러(1902~1981) 감독의 영화 ‘벤허’(1959)도 유대인의 구원을 담은 영화.

스탠리 큐브릭(1928~1999)은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뉴욕 브롱크스 출신인 그는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스파르타쿠스’(1960),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등으로 이름을 떨쳤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는 영화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영화. 특수효과와 영화 속에 나오는 냉혹한 컴퓨터 ‘할’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예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이 영화는 ‘빅뱅’이었다고 했을 정도.

세실 B 데밀 감독의 영화 ‘십계’ 포스터.
세실 B 데밀 감독의 영화 ‘십계’ 포스터.

코미디의 거장 우디 앨런(81)은 뉴욕 브롱크스 출신. 동유럽 유대인의 후손인 그는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살았다고 한다. ‘애니 홀’(1977), ‘한나와 그 자매들’(1986) 등 뉴요커의 삶을 그린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현재 우디 앨런은 한국인 입양아 출신인 순이 프레빈과 결혼한 상태.

살아 있는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평가받는 스티븐 스필버그(70) 감독은 우크라이나에서 이주한 유대계. 학창 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다녔다.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집안에 돌멩이가 날아들어 유리창이 깨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사다준 무비카메라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조스’(1975), ‘ET’(1982), ‘인디아나 존스’(1984), ‘쥬라기공원’(1993), ‘쉰들러리스트’(1993), ‘라이언일병 구하기’(1998), ‘링컨’(2012) 등 무수히 많은 문제작과 히트작을 제작·감독했다. 세 번째 부인 케이트 캡쇼는 남편을 따라 유대교로 개종했다.

배우 마릴린 먼로(1926~1962)도 세 번째 남편인 ‘세일즈맨의 죽음’의 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했다. 밀러는 뉴욕에 살던 동유럽 출신 유대인. 20세기 세기의 연인이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1932~2011)도 영화제작자였던 세 번째 남편 마이크 토드가 사망한 뒤 남편의 영향으로 유대교로 개종했다. 이들의 유대인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계 배우 김윤진이 등장하는 드라마 ‘로스트’(2004~2010) 시리즈로 유명한 J.J. 에이브럼스(50) 감독은 뉴욕 출신 유대인. ‘아마겟돈’(1998), ‘스타트렉’(2009),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등 공상과학 블록버스터 연출에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 ‘스파이더맨’ 3부작으로 유명한 샘 레이미(57) 감독은 보수적인 유대인 집안 출신. 영화로 제작되는 밀리언셀러 게임 ‘Last of Us’의 메가폰을 잡을 예정. 영화 ‘X맨’ 시리즈로 유명한 브라이언 싱어(41) 감독은 뉴욕 출신 유대인으로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유주얼 서스펙트’(1995)로 재능을 널리 알렸다.

유대계 할리우드 스타는 누구?

영화배우들 가운데에도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커크 더글러스(100)는 러시아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유대인 후손. 원래 이름은 이지 뎀스키. 아들 마이클 더글러스(72)도 수퍼스타. 폴 뉴먼(1925~2008)은 부모가 동유럽에서 이주한 유대인.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안방극장을 휩쓸었던 시리즈 ‘전투(Combat)’에서 주인공 손더스 중사 역을 맡았던 배우 빅 모로(1929~1982)도 뉴욕 브롱크스 출신의 유대인이다. ‘형사 콜롬보’로 유명한 피터 포크(1927~2011)는 부모가 모두 동유럽 출신 유대인.

토니 커티스(1925~2010)는 뉴욕 브롱크스 출신. 부모는 동유럽 출신 유대인. 아버지는 가난한 양복공에 어머니는 정신분열증이었다. 너무 가난해서 고아원에서 자랐다. 2차대전에 참전하고 제대 후 뉴욕시립대학을 나왔다. 재학 중 기획사의 눈에 띄어 1948년 할리우드로 가서 스타가 되었다. 노후에는 화가로도 성공했다. 연기파 배우 더스틴 호프먼(79)은 동유럽 출신의 유대인. 그의 출세작인 ‘졸업’(1967)의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본명이 미카일 페슈콥스키로 러시아에서 살았던 유대인. 영화에 나오는 음악인 ‘미세스 로빈슨’ ‘스카보로의 추억’ 등을 만든 사람들도 유대인인 사이먼 앤 가펑클.

‘스타워즈’ 시리즈의 상징인 해리슨 포드(74)의 어머니는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 “배우로서 유대인이라고 느낀다”는 말을 남겼다. 심형래 감독의 영화 ‘라스트 갓 파더’(2010)에 출연했던 명배우 하비 케이텔(77)은 부모가 동유럽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유대인. 진보적인 활동으로 유명한 숀 펜(56)의 아버지는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최근 코미디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벤 스틸러(51)와 애덤 샌들러(51) 등은 모두 동유럽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유대계. ‘무한도전’에도 등장했던 코미디언이자 로커인 잭 블랙(47)은 히브리전통학교를 다녔다. 김정은을 희화화한 영화 ‘인터뷰’(2014)의 각본을 쓰고, 주연·감독을 겸했던 세스 로건(34)은 부모가 이스라엘 협동농장에서 만나 결혼한 급진적 유대사회주의자들이라고 한다.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51)는 뉴욕 맨해튼 출신. 아버지는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으로 영화감독이었다. 그의 연인으로 나오는 기네스 팰트로(44)는 고조할아버지가 폴란드에서 이름 높은 유대교 랍비였다. 내털리 포트먼(37)은 아버지가 이스라엘인이고 어머니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어벤저스’에서 블랙 위도 역을 맡았던 스칼렛 요한슨(32)은 동유럽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유대인 후손.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조셉 고든 레빗(35)은 부모가 모두 진보적인 유대인 운동가.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샤이아 라보프(30)는 유대인임을 자부한다고 한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를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2010)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제시 아이젠버그(33)는 어릴 때부터 우디 앨런을 흠모하던 뉴욕 출신 유대인.

이처럼 유대인들은 미국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얼핏 보면 미국 대중문화의 주역이 유대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앞서 폴 존슨이 설명한 대로 유대 문화가 아닌 미국 문화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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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영 조선pub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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