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3월 새마음궐기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당시 구국봉사단 총재(오른쪽). ⓒphoto 조선일보
1977년 3월 새마음궐기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당시 구국봉사단 총재(오른쪽). ⓒphoto 조선일보

신호는 여기저기에서 감지됐다. 그중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일도 있었다. 2013년 초 친박계 인사 A씨가 지나가듯 전해준 얘기다. 오랫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한 전담 미용사가, 대통령 당선이 되자마자 해고통보를 받았단다. 육영수 여사의 머리 손질을 담당했던 스승의 뒤를 이어 ‘영애’ 시절부터 박 대통령을 보아온 이였다. 그는 자신의 실직(失職)보다, 인사도 못 하고 대통령과 헤어진 것을 슬퍼하고 있다고 A씨는 전해왔다. “박 대통령의 의상이니 화장이니 하는 걸 대체 누가 옆에서 챙기는지 오리무중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호텔 헬스클럽 트레이너를 청와대 3급 행정관으로 채용해 대통령 옆을 지키게 하고, 공식 행사의 연설문을 봐주는 등 지근에서 대통령을 돌본 이는 결국 ‘최순실씨’(현재는 최서원으로 개명)였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정유라 세 사람과 관련돼 제기되는 의문점들을 정리해 봤다.

1 상류사회 입장권… 마장마술 종목을 택한 이유는?

언론으로부터 숨어지내던 최순실·정윤회 부부(현재는 법적으로 이혼)가 그나마 모습을 드러내던 곳은 바로 ‘승마장’이다. 첫 번째 의문은 ‘왜 하필 승마인가’다. 정윤회씨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딸이) 다섯 살 때부터 말을 탔다”고 했다. 승마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말에 잠시 앉아나 봤겠지, 그 나이에 말을 타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유라(개명 전 이름은 정유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승마협회에 마장마술 선수로 등록했다. 이듬해 출전한 첫 대회서 초등부 1위를 했다. 선수경력의 시작이다.

승마는 타 종목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성별과 연령 상관없이 모든 선수가 한 부문으로 대결한다. 선수층은 얇은 편이다. 진입 장벽 때문이다. 취미 수준을 넘어 엘리트 선수로 뛰려면 일단 말이 있어야 한다. 승마 특기생의 대학 진학이 쉬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단 진입 장벽 안으로 들어오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말을 처음 접해 본 일반인이 2년 동안 취미로 말을 탄 다음 사회인부에서 1등을 한 사례도 있다.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 겨루는 승마 종목은 세 가지다. 마장마술, 장애물, 종합마술이다. 이 중 정유라가 고른 마장마술은 말과 사람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어 정해진 동작들을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종목이다. ‘말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당당한가’ 등 계량화가 힘든 채점 기준이 있다. 심판의 주관적 평가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장애물과 종합마술은 소요시간 등을 기계로 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관적 요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작다.

기자는 2014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위해 대회에 출전한 정유라 일행을 밀착 취재했다. 당시 정유라 옆에는 부모를 제외하고도 수행원 네댓 명이 항상 붙어 있었다. 인터뷰를 시도할 때마다 수행원들의 벽에 부딪혔다. 그들 대신 승마협회 관계자나 선수, 학부모 등과 이야기를 나눠 보며 최순실이 딸을 위해 왜 승마를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승마는 가장 빨리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상류사회 입장권이었다. 바로 승마대회장 뒤편에서 열리는 모임 때문이다. 여러 마리의 말을 보유하고 있기도 한 승마협회 관계자 B씨의 설명이다.

“국제대회가 열리면 마주(馬主)들은 VIP석에 앉습니다. 일반석과 분위기가 달라요. 대회기간 동안 식사든 술이든 함께 즐깁니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유럽의 왕이며 공주들입니다. 승마를 즐기는 기업인들, 정치인들도 모이지요. 여기에서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도 큰 대우를 못 받을 정도입니다. 이곳에선 초면이라도 금방 얘기가 통합니다. 이건희 회장과도 말에 관한 얘기를 건네며 안면을 틀 수 있을 정도니까요. 실제로 이건희 회장님은 건강했을 때 자주 국제대회장에 왔습니다.”

B씨는 최순실·정유라가 독일을 훈련장소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말했다.

“국내에서만 훈련해서는 절대 메달을 못 땁니다. 독일에는 좋은 말과 코치진이 몰려 있습니다. 삼성이 이전에 프로 승마단을 운영할 때 독일에 훈련장을 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올림픽 대회를 나가려면 국제 대회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문제는 대회가 주로 유럽대륙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훈련 캠프가 유럽에 있으면 차로 말을 옮길 수 있다.

2 정유라 승마훈련에 들어가는 돈은 얼마?

아무리 ‘올림픽 메달프로젝트’를 위한다지만 독일에 기업까지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자금세탁설 등 여러 의혹이 분분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 명의 승마선수 훈련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승마선수인 자식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학부모 C씨는 “승마선수 부모 치고 빚 없는 사람 없을 정도”라고 했다. 국제적 수준이 아닌, 국내 수준에서 좋다고 평가받는 말일지라도 마리당 2억~3억원은 줘야 한다. 한 마리의 말을 계속 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도 전성기가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바꿔야 한다. 게다가 말은 예민한 동물이라 하루에 1시간가량만 기수가 탈 수 있다. 선수가 하루에 그 이상 훈련하려면 여러 마리의 말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 드는 돈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말이 거주하는 마방(馬房)의 임대료는 마리당 매월 약 150만원이다. 사료비는 월 50만원가량. 여기에 말의 훈련을 전담하는 코치에게 매월 약 1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순수하게 말에게만 드는 비용이 마리당 300만원이라는 계산이다. 정유라는 국내에서 훈련 당시 다섯 마리의 말을 보유하고 있었다. 매월 1500만원에 레슨 코치의 월급은 따로다. 레슨 코치의 월급은 천차만별로 뛸 수 있다. 독일에서 코치를 초빙해온다면 국내 체류비도 대야 한다.

해외에서 훈련하면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들 수 있다. 역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부문은 ‘말 구입비’다. 승마계에서는 흔히 ‘경기 성적은 마칠기삼’이라는 말을 한다. 말의 역량이 70%이고, 사람은 나머지를 담당한다는 뜻이다. 그랑프리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거의 반드시 그랑프리급 말을 타야 한다. 100억원이 넘는 말도 허다하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샬단 파살 왕자는 125억원짜리 말을 타고 출전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국제 승마계 상위권에 입성하려면 적어도 몇십억원짜리 말 서너 마리는 보유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C씨는 “재벌이 아닌 이상 몇백억원을 가진 자산가라도 승마하는 자식을 위해 현금으로 50억~60억원을 쉽게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라고 말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3대 국제 승마대회에 출전하고, 홀로 리우올림픽에 출전했던 김동선 선수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3남이다.

3 정유라가 자신을 삼성팀 소속으로 말한 이유

정유라는 국제승마연맹(FEI) 홈페이지 선수 소개에 “삼성팀 소속이고 아버지는 한국의 대통령을 보좌했다”고 써놨다. 현재는 해당 문구가 삭제됐다. 두 번째 의문은 ‘숨겨도 되는데 왜 굳이 삼성을 들먹였냐’는 점이다. 독일에서 말을 거래해 봤다는 D씨는 “정유라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독일에는 집안 대대로 말을 길러내는 마장(馬匠)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길러낸 말이 국제 경기에서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사업 향방이 결정되니까 함부로 말을 안 팝니다. 실력이 없는 선수가 돈을 아무리 많이 싸들고 가도 좋은 말을 살 수 없다는 얘기예요. 삼성 소속이라면 다릅니다. 유럽 승마계에서 삼성이란 이름은 여전히 살아 있어요.”

삼성은 1997년부터 유럽대륙에서 ‘삼성네이션스컵’ 승마대회를 열었다. 대회가 열릴 때면 이건희 회장이 가장 앞자리에 앉고 그 뒤로 유럽의 왕족들, 정치·경제계 인사들이 도열하곤 했다. 2005년까지 9년간 삼성이 타이틀스폰서를 맡은 이 대회를 통해 삼성은 유럽 상류사회 안에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쌓을 수 있었다고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06년부턴 삼성슈퍼리그 대회를 열었다.

정유라의 2016년 경기 출전 기록을 보면 그랑프리급 말인 ‘비타나(Vitana) V’가 등장한다. 해외 언론에 비타나와 삼성, 정유라의 이름이 처음으로 함께 등장한 것은 지난 2월이다. 스페인의 매체인 ‘톱 이베리안(Top Iberian)’은 2월 10일 “그랑프리 우승마인 비타나가 삼성에 팔렸다”고 보도했다. 거래 가격은 노출되지 않았다. 말 전문가들은 ‘최소 20억원,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라고 추측했다. 유럽의 승마 전문 매체를 보면 전 주인인 모르간 바르반손 선수는 삼성과의 거래 이전엔 “도쿄올림픽을 비타나와 함께 가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삼성과 최순실 모녀 사이의 연결 다리는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전 삼성물산 회장)이라고 일각에선 보고 있다. 마사회 소속이었던 박재홍 감독은 지난 12월 독일로 출국해 올해 1월에 돌아왔다. 정 선수의 훈련을 도왔을 거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두 사람은 종목이 다르다. 박 감독은 장애물 종목의 감독이다. 승마협회 관계자 E씨는 “원래는 승마 팀을 만들어 박 감독을 총감독으로 앉히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복수의 승마계 인사들도 같은 말을 했다. 최순실 모녀가 대회장에서 선수들에게 “우리가 곧 재단을 만들어 선수들을 영입할 것”이라고 했다는 증언이다.

4 박근혜의 사람들이 유독 보안에 신경 쓰는 이유

네 번째 의문은 ‘왜 최순실 모녀와 정윤회의 과거 행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가’이다. 정윤회의 아버지 정관모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윤회와 재혼하기 전 최순실이 아이(정유라)를 낳아 왔다”고 말했다. SNS 등에서는 ‘최순실이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모든 언론이 뛰어들다시피 했지만 전 남편이 누구인지, 전 남편과의 사이에 둔 자식은 어디에 있는지 등은 여전히 공개되어 있지 않다. 두 사람의 학력은 노출됐다. 정윤회는 서울에 있는 보인상고와 경희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최순실은 단국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자주 방문했고,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이었던 정윤회를 이때 알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5 최태민은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

다섯 번째는 ‘혹시 죽은 최태민이 정신적인 측면에서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최태민은 영생교 교주였다.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 등을 종합해 최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종교다. 최순실이 2014년 육영수 여사의 유품을 판 정황이 최근 포착됐다. 육 여사가 서독 방문 당시 둘렀던 하얀 여우털 목도리가 그 유품이다.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의 측근은 이에 대해 ‘주술적 의미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박 대통령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목도리를 팔아야 한다’고 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자가 직접 감지한 신호도 있다. 지난 2014년, 한국 전통 종교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내놓은 모 교수가 청와대를 들락거린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이 ‘최순실 사태’와 어떤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300차례의 가벼운 사고와 중간급 재해 29번이 감지된 후 대형사고가 일어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떠오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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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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