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의 배후로 지목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 받기 위해 지난 11월 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photo 뉴시스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의 배후로 지목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 받기 위해 지난 11월 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photo 뉴시스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과 함께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안종범(57)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 청와대 내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은 검찰과 경찰 등 사법부와 각종 사정기관을 장악했고,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경제계를 좌지우지해온 대표적 인사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의 ‘주연급 조연’으로 활동해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경련과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을 동원해 기업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총 774억원을 각출하게끔 압력을 행사한 인물로 지목받고 있다. 또 이와 별도로 ‘SK’에 80억원, ‘롯데’와 ‘부영’에 각각 70억원의 K스포츠재단 운영자금을 추가 각출하라고 요구한 의혹도 짙다. 이뿐이 아니다. 한진 조양호 회장의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직 해임 지시 의혹 역시 커지고 있다.

불법으로 얼룩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인사·운영 개입은 물론, 최순실씨 개인 회사 더블루K의 운영과 사업에도 깊이 관여한 증거와 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더블루K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기업 GKL(그랜드코리아레저)의 장애인펜싱팀 에이전트로 계약할 수 있게 미팅을 주선하는 등 최순실씨 개인 회사의 뒤를 봐주며 경영에 관여한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대포폰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자 회유를 시도하고, 특히 각종 범죄 의혹을 증명할 증거 인멸과 은폐 의혹도 짙어지고 있다.

2006년 박근혜 계파로 유입

하지만 이런 의혹들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기업들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주장해온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이 지난 10월 31일 검찰에서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등 청와대 측이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모금에 힘써달라’고 지시한 게 사실이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최순실씨 회사인 더블루K 조성민 전 대표 역시 “나는 바지사장이었다”며 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의 통화기록과 내용을 공개하며, 그가 최순실씨와 함께 더블루K 사업의 핵심임을 폭로했다. 또 K스포츠재단 정현식 전 사무총장도 안 수석이 대포폰으로 보낸 회유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그의 각종 불법 의혹들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알려진 대로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다. 2000년대 초부터 정치권을 기웃거리다가 2012년 국회의원이 됐고,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에 입성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폭로되며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안종범씨는 그동안 ‘폴리페서’로 비판받던 대표적 인물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의 ‘주연급 조연’으로 부상한 안종범씨. 안씨는 1977년 대구 계성고를 졸업한 후, 성균관대 경제학과에 들어갔다. 1981년 6월~1982년 6월까지 1년 동안 방위(단기사병·일병)로 생활을 했다. 1981년 성균관대 졸업 후 바로 같은 대학 경제학 석사과정에 들어가 1984년 석사학위를 받았고, 1985년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다시 밟았다. 1987년 석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 이 대학 경제학 박사과정에 들어가 199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안씨의 박사학위와 관련해 재미있는 점이 있다. 그동안 그는 한국에서 ‘재정학’ 전문가로 소개돼왔다. 그런데 정작 안씨는 재정학이 아닌 사회보장과 노동경제 관련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의 박사 논문은 ‘Interdependence of Retirement and Labor Supply Under the Social Security(사회보장제도하에서의 퇴직 시기와 노동공급의 상호 의존성)’이다.

그는 1991년 미국에서 박사를 마친 직후 한국에 돌아와 지금은 사라진 대우경제연구소에서 1년 근무한다. 그리고 한국조세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6년 11월부터 서울시립대에서 첫 교수생활을 시작한다. 1998년 3월 성균관대 경제학과로 옮겼다. 성균관대 교수직을 내세워 정치권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 당시 그는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 캠프에 들어가 민생·복지정책특보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다시 성균관대 교수로 돌아갔다.

비례 11번 박근혜, 안종범에 비례 12번 줘

2006년, 그는 다시 정치판을 기웃거린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둔 2006년 9월, 박근혜 후보 캠프 경제참모 모임인 ‘경제자문회의’에 참여한 것이다. 당시 ‘경제자문회의’는 박근혜 캠프의 경제 공약을 구상하던 곳으로, 논란을 일으킨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 구상을 내놓은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안씨의 박근혜 캠프행은 TK와 미국 위스콘신대 인맥들의 힘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같은 TK 출신으로 1987~1991년 위스콘신대에서 함께 박사과정을 한 최경환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때 박근혜 후보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지만, 안씨는 ‘친박’ 이미지를 굳히며, 친박 내 자신의 지분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 1월, 그는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국가미래연구원장), 최외출 영남대 교수 등과 함께 박근혜를 위한 이른바 ‘5인 공부모임’에 참여한다. 이 활동을 통해 결국 2012년 유력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박계의 전폭적 지원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주목해 볼 대목이 있다. 당시 안종범씨의 비례대표 순번은 12번이었다. 그런데 그의 바로 앞인 새누리당 비례대표 11번이 바로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의 바로 뒷 순번을 줬을 만큼 그는 최경환 의원과 함께 친박 핵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2012년 8월, 대선 정국 당시 안씨는 이상돈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현 국민의당 의원)의 몫으로 모두가 예상했던 박근혜 캠프 ‘정책·메시지본부장’ 자리를 거머쥐며 친박 실세임을 과시했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을 맡아 일찍부터 박근혜 정권 청와대 참모 입성이 거론됐다.

결국 안씨는 2014년 6월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고, 이때 이미 실세 수석비석관 중 하나로 꼽혔다. 특히 자신보다 한 달 늦은 2014년 7월, 기획재정부 장관이 된 또 다른 친박 핵심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과 함께 2년여 동안 한국 경제의 실권을 휘둘렀다. 하지만 당시 내놨던 경제정책들이 연이어 실패하며 비판이 쇄도했고, 자질론과 경질론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런 자질론과 경질 여론에도 안종범은 건재했다. 오히려 2016년 5월 경질론을 비웃듯 대통령실 경제수석에서 정책조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며 박근혜 대통령의 편애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렇게 되자 세간에선 각종 비리와 불법 의혹에도 건재함을 과시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을 가리켜 박근혜 정권의 우(右)병우·좌(左)종범으로 불렸다.

그랬던 그가 지금 인맥과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을 배경으로 불법적인 각종 이권에 개입한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무너뜨린 ‘악당’으로 자리매김하며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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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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