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당시 반부패 청렴실천을 결의했던 문화체육관광부 김종덕 장관(앞줄 오른쪽)과 김종 제2차관(앞줄 왼쪽). ⓒphoto 문체부
2014년 당시 반부패 청렴실천을 결의했던 문화체육관광부 김종덕 장관(앞줄 오른쪽)과 김종 제2차관(앞줄 왼쪽). ⓒphoto 문체부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원지(震源地)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한동안 장·차관 등 최고위직을 교수 출신 관료들이 접수하고 있었다. 지난 8월 교체된 김종덕 전 장관은 홍익대 교수, 김종 전 차관은 한양대 교수 출신이다. 김종덕 교수는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있다가 2014년 8월 문체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행정고시 출신의 정통 관료인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22회)과 조현재 전 제1차관(26회)이 같은해 7월 사임한 직후였다. 김종 전 차관은 2013년 10월,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있다가 체육과 관광은 물론 국정홍보를 총괄하는 제2차관으로 발탁됐다. 김종덕 전 장관은 홍익대 영상대학원장을 지냈고, 김종 전 차관은 예술체육대학장 등을 지냈다. 공직 경험은 전무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으로 체포된 광고감독 차은택씨가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란 직함과 함께 단장 완장을 차고 있던 ‘창조경제추진단’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민관합동 조직이다. 박근혜 정부 탄생과 함께 출범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수장은 줄곧 교수 출신들이 도맡았다. 최양희 장관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에서 장관으로 직행했다. 최양희 장관의 전임자인 최문기 전 장관 역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에서 신생 부처 수장으로 직행한 경우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 브랜드인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관장하는 부처의 전·현 장관이 모두 교수 출신들로 채워졌다.

게다가 문체부와 손발을 맞춰야 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마저 숙명여대 교수 출신 김상률 전 수석이 장악하고 있었다. 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있던 김상률 전 수석은 2014년 11월 청와대 교문수석으로 발탁됐다. 김상률 전 수석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의 외삼촌이다. 결과적으로 차은택씨는 공직 경험이 전무한 교수 출신들이 수장으로 있던 문체부, 미래부, 청와대를 오가며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란 그럴듯한 완장을 차고 활개 쳤던 셈이다. 지금도 문체부와 미래부를 관장하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미래전략수석은 각각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 김용승 수석과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출신 현대원 수석이 이끌고 있다.

도마 오른 교수 출신 장·차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교수 출신 관료들이 장악한 부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체불명의 사인(私人)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일을 견제하기는커녕 철저히 농락당했기 때문이다. 문체부 장·차관의 경우 사실상 묵인방조한 혐의도 짙다.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해당 분야에 경험도 없고, 부처 장악도 안 되고, 정책결정권자로서 정부와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그런 입장도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며 “공무원 윤리규정이 몸에 배어 있는 정통 관료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 때 환경부 장관을 지낸 김명자 전 장관 역시 “할말은 해야 하는데 소신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체부처럼 장·차관까지 교수 출신 관료들이 장악한 정부 부처는 또 있다. 사회부총리를 겸하는 교육부 장관의 경우 서울대 교수(부총장) 출신 이준식씨가 장관으로 곧장 직행했고, 이영 차관은 한양대 교수에서 차관으로 직행한 케이스다. 지난해 12월 발탁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장관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조금 앞선 지난해 10월 발탁된 이영 차관은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를 지냈다.

공교롭게도 지난 7월 “민중은 개돼지”란 취중발언으로 파면당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 파문은 교육부 장·차관들이 모두 교수 출신으로 있을 때 터졌다. 일선 교육청의 한 장학관은 “박근혜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인 서남수 장관은 차관까지 하고 대학(위덕대 총장)을 거쳐 장관으로 입각한 경우”라며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이 날뛸 수 있었던 것도 교수 출신 장·차관의 허술한 장악력 탓”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교육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 들어 사회부총리로 재격상됐음에도 이렇다 할 존재감 자체가 없다는 평가다. 이 밖에 메르스(MERS) 사태 직후인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한 정진엽 장관 역시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이다. 보건복지부는 한 해 예산 50조원의 공룡부처다.

이는 국정의 핵인 행정부 장·차관 자리뿐만 아니라 외청(外廳)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다. 정부의 외청 조직 중 하나인 산림청 신원섭 청장은 충북대 임학과 교수에서 곧장 산림청장으로 직행했다. 통계청 유경준 청장은 지난해 5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에서 차관급인 통계청장으로 직행했다. 유경준 통계청장은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동생이다. 이 밖에 한양대 교수 출신이지만 청와대 비서실(통일비서관)을 거쳐 입각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 같은 인사까지 포함할 경우 그 수가 더욱 늘어난다. “정부인지 학교인지 헷갈릴 정도”란 말이 나오는 것도 괜한 말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인재풀 빈약 탓인지 2013년 출범 초부터 유독 교수 출신 관료를 선호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실 국장)은 “교수들은 과도하게 정치적인 야망을 드러내거나 경계선을 벗어나 사고를 치지않는 모범생 스타일이 많다”며 “또 한국 사회에서 교수가 갖는 전문성과 참신성이란 이미지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이 심리적으로 선호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인 류길재씨가 맡았다.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맡은 최문기 전 장관은 카이스트 교수에서 곧장 초대 미래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을 맡은 서승환 전 장관 역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에서 연간 20조원 예산을 굴리는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곧장 입각한 경우다.

차관급인 중소기업청장 역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 한정화 전 청장이 교수에서 청장으로 곧장 직행했다. 이 밖에 박근혜 정부의 초대 산업은행장인 홍기택 전 행장 역시 중앙대 교수에서 곧장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수장으로 직행했다. 홍기택 전 행장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에서 돌연 낙마한 직후 종적이 묘연하다. 이 밖에 박근혜 정부 초대 각료였던 방하남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 교수 출신은 아니지만 각각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양수산개발원 등 모두 학계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의 교수 관료 선호 현상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 ‘관(官)피아’ 척결바람이 일면서, 정작 행정 경험이나 위기관리 능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교수 출신들이 그 공백을 파고든 것. 세월호 사태로 인해 당시 강병규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이 취임 3개월 만에 경질되고 발탁된 사람은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출신인 정종섭 전 장관이다. 정 전 장관은 장관직을 중도사퇴하고 ‘친박(親朴)’ 간판으로 20대 총선에서 국회에까지 진출했다. 김종덕 전 장관 역시 세월호 사고 때 유진룡 당시 장관이 ‘내각총사퇴’ 발언으로 경질된 직후 발탁된 경우다. 메르스 사태 직후인 2015년 8월, 문형표 전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경질되자 후임으로 정진엽 서울대 교수를 복지부 장관으로 발탁해 입각시켰다.

美 국장급 교수, 中 총장급 장관

전·현직 관료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교수 출신 관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관료 장악력 부족’이다. 숙명여대 교수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때 입각해 3년8개월 최장수 여성 장관을 지낸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전임 손숙 장관(연극인)이 한 달 만에 낙마하고 끈도 없는 여대 교수 출신 여성 장관이 들어오니 정치적 끈을 중시하는 공무원들 분위기가 처음에 썰렁했다”며 “부처 인사를 공정하게 하고 일거리를 늘리니까 비로소 공무원들이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긴급한 국정 현안에 대한 느슨한 대응태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장관급)은 “장관은 업무파악에만 6개월~1년이 걸리는데 현안을 모르고 들어오는 교수들도 있다”며 “중요 의사결정은 팀워크로 협의를 해야 하는데 자기가 잘나서 장관이 된 줄 알고 독불장군식 태도로 타 부처와 협의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에서 대변인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을 지낸 송석준 새누리당 의원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관료사회에서 교수 출신 장관들은 책임감이 약하고 조직의 인화단결에서 겉돈다는 평가가 있다”며 “학문 가설을 세웠다가 아니면 그만인 교수들과 달리 장관들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반드시 풀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교수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연구와 강의, 평가”라며 “심사위원이나 평가위원 등으로 평가하는 일에는 맞지만 집행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교수 출신들이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장·차관으로 곧장 직행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드물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경우 중앙 행정부처는 15개. 이 중 교수 출신이 장관으로 직행한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 입각을 해도 국장, 차관보로 우선 부처에 들어가 차관, 부장관으로 행정 경험을 쌓은 뒤 장관직을 수행한다.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의 경우 하버드대 교수 출신이지만,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부 차관보(국제전략담당)를 지낸 뒤, 오바마 행정부 때 차관, 부장관을 거쳐 장관직에 올랐다.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부 장관의 경우도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출신이지만, 클린턴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국장, 차관을 지낸 뒤 오바마 행정부에서 장관을 맡았다.

중국의 경우 우리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국무원 직속 25개 각 부처와 위원회 중 교수 출신으로 부장(장관)에 오른 사례는 단 두 명이다. 과학기술부의 완강(萬鋼) 부장과 환경보호부의 천지닝(陳吉寧) 부장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완강 부장과 천지닝 부장이 일개 평교수가 아니라 중국 명문대의 교장(총장)을 지낸 거물급 인사들이란 점이다. 완강 과학기술부장은 상하이 퉁지(同濟)대학 교장(총장)을 지냈고, 천지닝 환경보호부장은 중국 최고 명문대인 칭화(淸華)대 교장을 지냈다. 천지닝 부장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베이징 칭화대를 찾아 중국어로 강연했을 때, 박 대통령을 직접 영접했던 인사다. 적어도 대학 총장 정도를 지내야 국무원 부처 장관급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얘기다.

뿌리 깊은 士農工商 서열의식

물론 교수 출신 장관들이라고 해서 관료장악력이나 업무추진력이 모두 다 떨어졌던 것도 아니다. 국민대·서강대 교수를 지낸 남덕우 전 국무총리 같은 경우는 박정희 정부 때 재무부 장관으로 곧장 발탁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전두환 정부에서는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압축성장을 설계한 ‘서강학파’의 태두로 전·현직 경제관료들이 한결같이 꼽는 최고의 교수 출신 관료다. 서울대 교수(총장)를 지낸 권이혁씨는 전두환 정부 때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돼 노태우 정부 때는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 환경처(현 환경부) 장관 등 멀티플레이어를 맡았다.

노태우 정부 때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에서 곧장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된 이홍구 전 국무총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곧장 발탁된 조순씨 같은 경우도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백용호씨가 공정거래위원장(장관급), 국세청장, 청와대 정책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교수 출신이라고 해도 청와대, 국회, 정부에서 일정 기간 국정 경험을 쌓은 후 입각한 경우 나름 성과를 내기도 했다.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은 “이승윤·나웅배·사공일 장관 같은 경우도 정부와 준(準)정부 기관에서 공직 경험을 충분히 쌓고 들어와 관료사회에서도 존경받는 교수 출신 장관”이라고 했다.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정무적 감각을 익히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중간 훈련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최순실 사태로 책임총리 물망에 오르면서 몸값이 높아진 김병준·손학규·김종인 같은 정치권 인사들도 교수 출신으로 국회나 청와대를 거친 대표인사들이다. 국민대 교수 출신인 김병준씨는 비록 13일이지만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냈고, 각각 서강대 정외과,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보건복지부, 김종인 의원은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했다.

물론 미국, 중국과 달리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유교적 서열의식이 뿌리내린 한국적 현실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자본주의가 꽃핀 미국은 기업인을 중시해왔고,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거지 바로 위에 학자가 위치할 정도로 사농공상 서열이 완전히 깨졌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교수가 한국에서 중용되는 이유는 선비, 즉 학자들이 정권을 잡았던 조선조의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고려가 과거제도를 도입한 이후 한국은 두 번의 예외를 빼면 학자그룹이 권력을 독점해왔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이현재, 현승종, 이수성, 정운찬 전 총리 같이 교수 출신들이 단번에 내각의 정점이자 현대판 영의정인 국무총리로 직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뿌리 깊은 문화 때문인지 교수들이 상아탑 밖을 기웃거리며 현실정치 참여를 타진하는 기현상은 계속된다. 차기 유력 대권 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싱크탱크로 지난 10월 출범한 ‘정책공간 국민성장’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보좌관(차관급)과 주영(駐英) 대사를 지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를 총괄소장으로 교수 5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부소장과 연구위원으로는 각각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와 연세대 정외과 김기정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18대 대선 때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의 대선용 싱크탱크로 김광두 서강대 교수가 주도했던 국가미래연구원의 복사판이다. 당시 국가미래연구원에 몸담았던 류길재, 서승환, 안명옥(국립중앙의료원장), 안종범, 최문기, 한석희(상하이총영사), 홍기택, 홍용표 교수 등은 모두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 한데 박근혜 정부의 성과는 보다시피다.

이명박 정부 때의 전직 장관급 인사는 “대통령직 인수위의 교수 선호는 어느 정권 때나 비슷했다”며 “DJ정부 때도 ‘중경회(中經會·대중경제를 생각하는 모임)’ 출신 교수들이 중용됐는데 업무 성과가 미진해 결국 직업공무원들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명자 전 장관은 “교수들의 장점은 전문성인데 전문성은 극히 일부분으로 최고의 덕목도 아니고 빌려오면 되는 것”이라며 “국무위원으로 더 필요한 것은 다양성을 아우르는 협상능력과 갈등조정능력”이라고 했다. 역대 정권에서 수차례 입각 제의를 받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업적과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장관이 몇이나 되나”라며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 줄 모르고 권력욕과 명예욕에 덥석 받는다”고 했다.

공직은 연습하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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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 장민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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