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국정(國政)이 마비되면서 1년1개월 남은 내년 대선 판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구나 야권의 대통령 퇴진 요구로 인해 조기(早期) 대선론이 부각되고 있다. 여권에서도 비박(非朴)계를 중심으로 탄핵 불가피론이 나오면서 대선 일정이 빨라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다음 대선 판도와 관련해선 허리케인급 최순실 태풍으로 인해 야권의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장 큰 수혜자일 것이란 예측이 많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선 문재인 전 대표가 초대형 호재(好材)에도 불구하고 반사이익을 생각보다 크게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1월 둘째 주 한국갤럽의 대선후보 다자(多者)대결 조사에서 문씨는 19%로 21%를 기록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여전히 2위였다. 여권의 잠재적 주자로 꼽히는 반 총장은 최순실 파동 이전인 지난 10월 초 갤럽 조사의 27%에 비해 최근 6%포인트 하락했다. 반 총장 지지율이 비교적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문씨는 지난 10월 조사의 18%에 비해 1%포인트 상승에 그치면서 2위에 머물렀다. 문씨는 4개월 전인 7월 조사의 16%와 비교해도 3%포인트 상승에 그치면서 정체가 길어지고 있다. 예상 밖으로 문씨의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선후보 선호도 설문에 함께 올라 있는 안철수 의원(전 국민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다른 야권 주자들과 지지가 분산됐기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탄핵과 구속 등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낸 이재명 성남시장의 경우엔 지난 7월 2%에서 최근 8%로 상승했다. 그는 정의당 지지층에선 지지율이 26%로 18%인 문 전 대표를 앞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반기문·문재인·안철수 등 상위권 3자대결로 좁혀서 표심(票心)을 측정해도 문 전 대표의 상승세가 뚜렷하게 확인되진 않는다. 지난 9월 말 미디어리서치의 3자 가상(假想)대결 조사에서 반 총장(39%)이 선두였고 그 뒤는 문씨(28%)와 안 의원(15%)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이후인 11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선 문씨(33%)와 반 총장(32%)의 박빙 대결 양상으로 바뀌었고 다음은 안 의원(17%)이었다.

한 달 사이 5% 상승에 그쳐

문씨는 반 총장과 선두 대결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약 한 달 사이에 5%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30%에서 5%로 25%포인트나 수직 하락하며 여권이 풍비박산이 난 것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지지율 상승으로 보기 어렵다. 안 의원도 15%에서 17%로 상승 폭이 미미했다. 최근 갤럽의 3자대결 조사에서 문씨와 반 총장은 대선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35% 대 31%로 비슷했다. 충청권도 문씨(33%)와 반 총장(32%)이 접전을 벌였다. 여권의 지지 기반인 영남권도 반 총장(39%)과 문씨(31%)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대선에서 3자 대결이 벌어질 경우 승자를 예측하기 힘든 혼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그래도 2012년 대선처럼 문·안 야권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엔 야권 단일 후보가 지난 대선 때보다 득표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대선 직전 문·안 야권 단일화가 성사될 당시엔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40% 안팎이었고 문·안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20%가량이었다. 두 야권 후보의 지지율 합(合)이 4년 전엔 40%였지만 최근엔 50%로 10%포인트 상승했다. 야권 후보들의 지지율 단순 합산 수치로 보면 다음 대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가 승리할 확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 이어 또다시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는 문씨와 안 의원이 이번엔 단일화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최종 승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대선 승부의 선행지수 역할을 하는 여야(與野) 정당 지지율도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의 상승세가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최순실 파동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직전인 10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선 새누리당(28%), 민주당(26%), 국민의당(12%) 등의 순이었다. 최근인 11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서는 민주당(31%), 새누리당(17%), 국민의당(13%) 등의 순이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하락했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5%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과거에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했던 시기와 비교하면 제1야당인 민주당(31%)의 최근 지지율은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4년 차 4분기에 갤럽 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12%까지 하락했을 때 당시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 지지율은 국민 과반수인 52%까지 치솟았다. 초대형 호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예상보다 높지 않은 것은 여당 이탈층의 상당수가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無黨)파로 흡수됐기 때문이다. 현재 무당파는 33%로 현 정부 출범 이후 최고 수준으로 늘어났다. 정당 지지율 선두인 민주당 지지층보다 무당파가 많다. 최근 여당 지지층 일부가 야당으로 옮겨 가긴 했지만, 여당 이탈층의 상당수가 지지할 정당을 정하지 않고 정국을 관망 중이다. 무당파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은 박 대통령의 지지가 높았던 충청권(44%)과 영남권(38%)이다. 연령별로도 박 대통령에 대해 콘크리트 같은 지지를 보냈던 60대 이상에서 무당파가 38%로 가장 많았다.

확장성 부족이 여전한 과제

전문가들은 “현재의 정당 구도로 다음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은 별로 없기 때문에 아무도 대선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이른바 ‘최순실 쓰나미’에도 불구하고 문씨 지지율이 치솟지 못하는 이유로는 “친노·강경 이미지로 인해 중도 및 보수를 향한 확장성 부족이 여전히 과제”라고 했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도 문씨는 진보층에서 31%로 선두였지만 중도층에선 19%로 반 총장(16%)과 비슷했고 보수층에선 10%로 반 총장(33%)과 차이가 컸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문 대표는 강성 진보 이미지로 인해 지지층을 지금보다 이념적으로 오른쪽에 있는 유권자까지 확산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그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관련 파문과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등의 영향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도 반사이익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반복적으로 조건을 바꿔 내걸며 청와대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행태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재 표출된 분노는 대통령을 향해 있지만, 숨어 있는 분노는 야당을 포함한 전체 정치권을 향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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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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