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4일 중국 베이징 외교부를 찾아 왕이 외교부장과 기념촬영한 더불어민주당 3차 방중단(왼쪽부터 통역·박찬대·유은혜·유동수·송영길·왕이·박정·신동근·정재호·박선원). ⓒphoto 연합
지난 1월 4일 중국 베이징 외교부를 찾아 왕이 외교부장과 기념촬영한 더불어민주당 3차 방중단(왼쪽부터 통역·박찬대·유은혜·유동수·송영길·왕이·박정·신동근·정재호·박선원). ⓒphoto 연합

매년 10월 1일은 중국이 건국기념일로 삼는 국경절이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매년 국경절을 앞두고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국경절 경축행사를 연다. 지난해 9월 26일에도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국경절 경축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우리 정부 측에서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을 비롯해 국회에서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새로 금배지를 단 송영길·표창원·노회찬 의원은 물론 낙선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이홍구 전 국무총리, 한·중우호협회장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정재계 유명 인사 800여명은 신라호텔에서 가장 크다는 다이너스티홀을 가득 채웠다.

축하건배를 제의받는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사실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 외교부의 국장급에 불과하다. 국장급 외교관이 한국의 저명인사들을 맞상대하는 풍경은 추 대사의 전임자인 장신썬(張鑫森)·청융화(程永華) 대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청융화 대사 재임 때인 2009년 중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역시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경절 경축행사 때는 김형오 국회의장을 비롯 이명박 정부 최고 실력자였던 이상득 의원, 김무성 의원, 정세균 민주당 대표, 고건 전 총리,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그나마 닝푸쿠이(寧賦魁), 리빈(李濱) 등 부국장급 중국대사가 행사를 주재할 때보다는 나아진 풍경이었다.

국장급·부국장급 외교관이 중국의 대한(對韓) 외교를 사실상 지휘하고 있을 때, 한국은 국방부 장관·국회의원(비례)을 거쳐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장수씨를 주중 대사로 보냈다. 박근혜 정부 초에는 주중 한국대사(권영세)는 물론 상하이총영사(구상찬) 자리에도 국회의원 경력을 가진 인사를 파견해왔다. 거물급 한국 정치인들을 맞상대한 주한 중국대사관 외교관들이 국경절 경축행사 때면 달려와 눈도장 찍기에 바쁜 한국 국회의원들을 어찌 생각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적전 분열 초래하는 한국 의원외교

국회의원들의 ‘의원외교’가 대중(對中)외교에 적전(敵前)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한·중 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중국으로 떼를 지어 우르르 달려간 야당 의원들이 의원외교에 합당한 자격을 갖췄는지부터가 논란이다.

실제 지난해 8월부터 올 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단체로 방중한 야당 의원들의 소속 상임위원회를 조사한 결과 1·2·3차 방중단 중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은 한 명밖에 없었다. 지난해 12월 2차 방중단 단장 자격으로 방중한 이인영 의원 한 명이다. 특히 사드 문제를 직접 소관으로 하는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은 전무했다. 1차 방중을 사실상 주도한 김영호 의원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3차 방중에 단장 자격으로 간 송영길 의원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다.

외교부와 통일부를 관장하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주로 3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로 구성돼 있다. 3선의 더불어민주당 심재권 의원을 위원장으로 여야 의원 22명이 소속돼 있다. 주로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외통위에 배정되는 까닭은 국가 대 국가 사무인 외교를 관장하는 엄중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통위 자체의 인기가 없어서다. 국토교통위나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산업통상자원위같이 자신의 지역구에 직접적 예산배정이나 민원청탁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국회 상임위 배정 때는 외통위 배정을 손사래 치다가, 너도나도 ‘의원외교’를 한답시고 방중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처사다.

2차 방중 직전인 지난해 12월 4일 베이징을 방문해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를 만난 심재권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정도가 합당한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공식일정은 아니었다. 국회 외통위원장실의 한 관계자는 “당시 중국에서 행사가 있어 국회 외통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다가 우다웨이를 잠깐 만난 것”이라며 “별도로 동행한 의원은 없다”고 했다. 그나마 범위를 최대한 넓혀 국회 상임위가 아닌 당 차원의 직책을 따져도, 민주당 사드대책위(위원장 우상호)에 속한 김영호(간사)·정재호(위원) 의원 정도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경력 6개월 남짓의 초선의원들이 너도나도 의원외교를 자처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8월 1차 방중 때는 의원외교 경력이 일천한 초선의원 6명이 사드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방중했다. 2차 방중 때는 이인영 의원을 제외한 3명이 초선이었다. 심지어 보건복지위 소속 초선 비례대표(정춘숙)도 있었고, 강훈식 의원은 외교석상에서 유일하게 밑창이 하얀 보트슈즈를 신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3차 방중 때도 송영길(4선), 유은혜(재선)를 제외하면 무려 5명이 국회의원 경력 6개월 남짓의 초선의원이다.

특히 3차 방중단 중 무려 4명이 인천을 지역구로 둔 의원이라 마치 ‘인천 지역 대표단’ 같은 모양새였다. 한 국회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인천시장을 지낸 송영길 의원의 영향력 아래 있는 ‘송영길 키즈’”라고 했다. 실제 1·3차 방중에 참가한 신동근 의원은 1차 방중 때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에 가장 안 좋은 것은 중국이 북한과 다시 혈맹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란 말을 전달한 후 발언의 진위를 두고 옥신각신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치과의사 출신 신동근 의원 역시 인천 서구을이 지역구로, 송영길 시장 때 인천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지난해 12월 5일 중국 베이징 외교부를 찾아 류전민 부부장(차관)과 기념촬영한 더불어민주당 2차 방중단(왼쪽부터 김영호·정춘숙·류전민·이인영·강훈식). ⓒphoto 중국 외교부
지난해 12월 5일 중국 베이징 외교부를 찾아 류전민 부부장(차관)과 기념촬영한 더불어민주당 2차 방중단(왼쪽부터 김영호·정춘숙·류전민·이인영·강훈식). ⓒphoto 중국 외교부

야당의 파트너는 전인대·정협

한국 의원들을 홈그라운드에서 맞이한 중국 외교부와 중국중앙방송(CCTV) 등 관영 언론들은 “한국의 ‘공동(共同·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방중했다”고 대대적으로 환대했다. 또 외교에 미숙한 한국 의원들을 상대로 변방 오랑캐를 상대해온 전통적 외교술인 ‘이이제이(以夷制夷)’와 레닌 이래 공산당의 전통적 외교책략인 ‘통일전선(Unified Front)’ 전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중국 외교관 특유의 화려한 변검(變臉)술을 과시했다. 지난 1월 4일 베이징 조양문(朝陽門)에 자리한 중국 외교부 감람청(올리브홀)에서 송영길 의원 등 야당 의원 7명을 직접 맞이한 왕이 부장의 표정은 득의양양했다. 베이징성의 동문인 조양문은 과거 조선의 조공사절들이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드나들던 문이다. 중국 외교부의 전신인 청말 총리각국사무아문도 조양문 일대에 있었고, 외교부 역시 중화적 조공질서를 상징하는 조양문에 세워졌다. 이런 역사적 장소에서 한국 의원단을 맞이하니, 지난해 7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윤병세 외교장관과 만나 잔뜩 찌푸린 표정이 나왔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이었다.

중국이 그간의 외교 관례에 따라 합당한 카운터파트를 내보냈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은 사실상 야당을 인정하지 않는 일당독재국가다. 1949년 건국할 때 공산당에 협력한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 ‘중국민주동맹’ ‘중국민주건국회’ ‘중국민주촉진회’ ‘중국농공민주당’ ‘중국치공당’ ‘구삼학사’ ‘대만민주자치동맹’ 등 8개 민주당파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집권 가능성이 전무한 관제야당, 어용야당이다. 중국 측은 이를 “중국공산당 영도의 다당합작 및 정치협상제도”란 말로 포장한다. 이들 8개 민주당파의 주석은 대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부위원장,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등의 직위를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타국 야당을 상대하는 것은 전인대나 정협 인사들이다. 실제 19대 국회 때인 2013년 원유철 국회 기우회장을 위시한 여야 의원들이 중국 측과 ‘바둑 교류’를 한답시고 우르르 방중했을 때 중국 측에서 카운터파트로 나온 인사는 뤄푸허(羅富和) 정협 부주석과 쑨화이산(孫懷山) 정협 부비서장 등이었다. 뤄푸허 부주석은 중국공산당원이 아닌 중국민주촉진회 부주석을 맡고 있다. 반면 2·3차 방중 때는 중국 외교부가 직접 나섰다. 원래 중국에서 외교부는 국가 대 국가, 공산당 대외연락부는 당 대 당 외교를 관장한다.

최순실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며 박근혜 정부가 식물 상태가 된 후 찾아온 2차 방중, 3차 방중 때는 카운터파트의 격을 대폭 높이는 파격도 제공했다. 지난해 12월 2차 방중 때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차관), 새해 1월 3차 방중 때 왕이 외교부장(장관)이 직접 나왔다. 그나마 중국 외교부는 1차 방중 때인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상대국 정부와 집권당을 배려해 야당을 상대하는 금도(襟度)를 지켜왔다. 사실상 상대국 정부나 집권당을 상대하는 대신 야당을 새 파트너로 간주한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이는 격식과 의전을 그 어느 나라보다 따지는 중국 외교의 특성상 고의적 도발이다. 이 같은 도발은 우리 측 공식 외교라인인 주중 대사관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 송영길 의원은 김장수 주중 대사를 두고 “주미 대사로 보낼 분을 주중 대사로 보냈다”는 비아냥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송 의원은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월 정세균 국회의장의 방중을 추진 중”이라며 “시진핑 주석과 회담 일정을 조율 중으로 회담이 잡히지 않으면 방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세균 국회의장과 시진핑 면담을 고집하는 것도 자칫 외교적 구걸로 비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공식 카운터파트인 서열 3위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엄연히 존재해서다. 실제 2015년 장더장 위원장이 방한했을 때도 우리 측 초청 당사자는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이었다.

노련한 중국의 전문 외교관들을 상대한 의원외교단의 성과는 제한적이다. 중국 측 관리들을 아예 만나지 못한 1차 방중단은 말할 것도 없다. 왕이 외교부장을 만났다고 자랑한 3차 방중단 역시 대한 무역보복을 주도하는 상무부(商務部)나 한국 연예인 방송출연 제한 등 ‘한한령(限韓令)’을 주도한 광전총국, 한국 수출품 검역을 강화한 질검총국 등에는 발걸음조차 못 했다. 굳이 성과를 찾자면 쿵쉬안여우(孔鉉佑)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의 입에서 “제재는 중국 국민들이 한 것”이란 말을 끌어낸 것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사드 관련 일련의 보복조치를 줄곧 부인해왔는데 사실상 자백한 것이다.

야당 의원 중국 짝사랑의 뿌리는

야당 의원들의 중국 짝사랑도 남다르다. 중국 유학은 낙선한 야당 의원들의 필수코스가 됐다. 송영길 의원은 2010년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중문학을 공부하고, 2014년 인천시장 재선에 실패한 직후 베이징 칭화대로 떠나 방문학자 자격으로 1년간 머물렀다. 노무현 정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2011년 강원지사직을 상실한 후 중국으로 떠나 칭화대 공공관리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머물렀다. 이후 베이징대 중문과 박사 출신으로 희망제작소 기획위원을 지낸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와 함께 ‘중국에게 묻다’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행자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 의원도 17대 총선 낙선 직후인 2004년 8월부터 베이징대 역사학과에 방문학자 자격으로 6개월간 머물렀다. 노무현 정부 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은 과거 ‘한중문화원’을 설립하고 부인 김정옥씨와 함께 계간 ‘한국과 중국’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해찬 의원은 한·중교류협회 명예고문으로 있다.

야당 의원들의 중국 짝사랑은 운동권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차 방중단을 이끈 이인영 의원은 고려대 총학생회장, 3차 방중을 주도한 송영길 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1·3차 방중에 참석한 신동근 의원은 경희대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위원장을 지냈다. 3차 방중 때 참석한 유은혜 의원도 성균관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3차 방중을 실질적으로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박선원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 역시 연세대 삼민투 위원장 출신이다. 박 전 비서관은 1985년 미 문화원 점거사건 당시 배후로 지목돼 수감된 전력이 있다. 천안함 폭침 때는 ‘아군 기뢰 폭발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세대는 다르지만 3차 방중 때 동행한 강훈식 의원도 건국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1970~1980년대 대학가 운동권들은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별’, 님 웨일스의 ‘아리랑’, 해리슨 E. 솔즈베리의 ‘대장정’, 로이드 E. 이스트만의 ‘장제스는 왜 패하였는가’, 리영희의 ‘8억인과의 대화’ 등을 탐독하며 중국공산혁명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품었다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기 전 중국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일 때 국내에 소개된 서적들이다.

송영길 의원은 리영희 선생이 2010년 작고했을 때 빈소를 직접 찾아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된 뒤로 책도 다 읽었다”고 밝혔다. 김두관 의원도 “‘8억인과의 대화’ 등을 통해 중국을 보는 새 눈을 주셨다”고 했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리씨의 빈소를 지켰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2003년 방중 때 칭화대 연설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존경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의례적인 외교수사였을 수도 있으나, 6·25전쟁 당시 적이었던 ‘마오쩌둥 존경’ 발언은 국내에서 상당한 논란이 됐다.

운동권 전성기가 끝난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세대에서도 중국 짝사랑은 계속된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현 상임고문의 아들인 김영호 의원은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의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성월보’를 발행했다. 박정어학원으로 유명한 박정 의원은 영어 사교육으로 수백억원의 재산을 불렸지만, 후베이성에 있는 우한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샹판(襄樊)대와 우한대 등에서 객좌교수를 지냈다.

이동호 미래한국 편집위원은 연세대 재학 시절 ‘주사파(主思派)’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동호 위원은 “운동권들에게 ‘중국의 붉은별’은 저학년용이었고, 고학년들은 ‘중국혁명사’와 ‘마오의 모순론’ 같은 책도 많이 봤는데 리영희의 ‘8억인과의 대화’가 결정타였다”며 “이들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이 형성돼 있는데, 젊을 때 형성된 기본적인 사람의 생각이나 우호적인 감정은 잘 바뀌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개개인의 우호적 감정과 냉혹한 외교는 전혀 별개다. 한국의 대중외교 역사상 최대 굴욕인 한·중 마늘파동은 좌파진영이 집권한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터졌다. 당시 중국산 마늘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한국에 중국은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으로 되받아치며 참패를 안겼다.

친중파 오자와를 징벌한 일본

2009년 9월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 출범 직후인 같은 해 12월의 일이다. 민주당 정권에서 ‘상황(上皇)’으로 불린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은 그해 자신의 지원으로 당선된 ‘오자와 칠드런’으로 구성된 143명 의원을 포함해 626명을 이끌고 방중했다. 이들은 베이징 천안문광장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오자와 이치로는 1972년 중·일수교를 단행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수제자다. 오자와 이치로 역시 다나카의 기조를 이어받아 1989년부터 ‘장성(長城)계획’이란 일·중간 민간교류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대규모 방중에 일본 국민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면서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마치 중국 황제를 알현하러 가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오자와 이치로는 이듬해 불법정치자금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동반 사퇴했다. 한때 100여명에 달했던 오자와 칠드런도 2012년 중의원 선거 때 사실상 전멸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오자와만 당적을 옮기면서 재기를 모색해왔으나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민주당은 지난해 3월 ‘민진당’으로 간판까지 바꿔 달았다.

오자와와 일본 민주당의 몰락은 거듭되는 야당 의원들의 방중을 바라보는 한국에도 시사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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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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