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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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10일 쌍십절(雙十節)은 중화민국(대만)의 건국기념일이다. 1911년 청(淸)나라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된 우창(武昌)봉기를 기념하는 날로, 대만은 이날을 건국기념일로 삼아 기념해왔다. 매년 10월 10일을 앞두고 대만대사관에 해당하는 주한 타이베이대표부는 이를 경축하는 행사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열어왔다. 하지만 쌍십절 행사처럼 국제외교의 염량세태(炎凉世態)를 잘 보여주는 행사도 없다. 쌍십절 행사에 약 일주일가량 앞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리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건국기념일인 국경절(10월 1일) 경축행사에 유명 국회의원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과 달리 이곳을 찾는 정치인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중국 눈치 때문에 참석하더라도 잠깐 눈도장을 찍고 가는 데 급급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으로 있는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4선·부산사하을)은 야당인 민주당 시절부터 쌍십절 경축행사를 줄곧 찾아왔다. 이것으로 인해 조 의원은 중국 눈 밖에 난 대표적인 정치인의 한 명으로 꼽힌다. 한·대만 의원친선협회 회장으로 있는 조경태 의원은 지난해 5월, 차이잉원(蔡英文) 신임 대만 총통 취임식 때는 대만 타이베이를 찾기도 했다. 지난 1월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실에서 만난 조경태 의원은 “지난해 쌍십절 행사는 대만 현지에 가서 직접 축하를 했다”며 “중국의 사드(THAAD) 압박에 맞서 대만 카드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경태 의원은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잇단 방중(訪中)을 “굴욕외교”란 한마디로 비난했다. 그는 “자국 안보와 관련된 일을 어찌 남의 나라에 상의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며 “자국 안보와 관련된 사항은 어떤 나라가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중국은 6·25전쟁 때 군사적으로 충돌했던 나라로, 군사적인 문제를 함께 상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도 밝혔다. 조 의원은 “중국이 핵미사일 기지를 결정할 때 미사일 기지를 어디다 둘 것인지 한국과 상의하나”라고 반문했다.

“사드는 중국을 공격하기 위한 공격수단이 아니라 북한 핵미사일을 막기 위한 방어수단”이라고 인터뷰 내내 줄곧 강조했다. 이에 “중국 측도 북한 핵미사일로 인해 불가피해진 사드 배치를 한국 측에 따질 게 아니라 북한 측에 따져야 한다”는 것이 조 의원의 입장이다. 그리고 의원외교라고 하면 정치적 위상에 걸맞은 인물이 정부를 도와 수행해야 하는데 최근 민주당 의원들의 거듭되는 방중은 의원 개개인 면면만 봐도 사드 같은 국가 간 중대사를 논의하는 의원외교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조 의원은 “처신이 너무 가볍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19대 국회 때인 2013년부터 한·대만 의원친선협회장을 맡고 있다. 국회에는 의원외교 차원에서 약 110개국과 의원친선협회가 조직돼 있다. 사실 ‘한·대만 의원친선협회’는 그리 인기 있는 친선협회가 아니다. 미국과 함께 가장 인기가 많고 김무성, 정몽준 등 거물급 인사들이 회장을 역임한 한·중 의원외교협의회와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19대 때만 해도 조 의원을 비롯해 6명의 의원이 속해 있었으나 지난해 4월 20대 총선 때 몇몇 의원들이 낙선해 지금은 3명만 남았다. 20대 국회에서는 아직 재편성조차 못 하고 있다. 한·대만 의원친선협회는 국회에서 1992년 한·중 수교에 이은 단교 이후 대사급 외교관계가 없어진 한국과 대만 간에 몇 안 되는 정치적 채널이다. 중국 눈치로 인해 양국 간 정상회담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의원들이 우회 외교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조 의원은 “복교까지는 정치적으로 어렵겠지만 한국과 대만 관계를 일본과 대만 관계 정도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미국, 일본 등 주변국과 보조를 맞춰야 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 대만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 카드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대만 독립을 표방하는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셰창팅(謝長廷) 전 행정원장(국무총리)을 사실상 주일 대만대사 격인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 대표’로 임명했다. 셰창팅은 2008년 대만 대선 때 민진당 후보로 출마해 국민당 후보로 나온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과 맞붙은 거물급 정치인이다.

지난해 5월 대만을 방문해 천젠런 신임 부총통(오른쪽)과 만난 조경태 의원. ⓒphoto 조경태 의원실
지난해 5월 대만을 방문해 천젠런 신임 부총통(오른쪽)과 만난 조경태 의원. ⓒphoto 조경태 의원실

“일본·대만 관계만큼 격상해야”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같은 경우는 아예 대놓고 ‘친일파’를 자처한다. 과거 한국과 같이 일본 식민지로 지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일본 역시 중국 견제를 위해 대만 카드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실제 인구 2300만의 대만은 적어도 인구 규모로만 놓고 보면 북한 못지않게 중시해야 할 나라다. 한국과 대만 양국 간 교역규모는 286억달러(약 34조1600억원)로 10위권 안에 드는 통상대국이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에 있어 대만은 8위(2,3%)의 수출대상국이고 6위(3.8%)의 수입국이다.

조 의원은 “양국 간 상호 인적 교류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국 간 상호 관광객 수도 급속히 늘어나 2014년 100만명을 최초 돌파했고 올해는 약 1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조 의원은 “양국 간 국제운전면허 상호 인정도 시급하다”고 했다. 대만에서는 한국에서 발급받은 국제운전면허증으로 렌터카를 이용할 수 없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상호 운전면허 인정을 하지 않는 나라는 중국 정도다. 조 의원은 “대만은 국민소득도 우리와 비슷하고 중국과 달리 교통문화도 성숙했는데 상호 국제운전면허증을 인정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대만 제2 도시이자 최대 항구도시인 가오슝(高雄)과 서울 김포공항 간의 셔틀항로 신설도 대만 측에서 적극 요청하는 부분이다. 현재 김포공항에서는 대만 수도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쑹산(松山)공항과만 셔틀항로가 개설돼 있다.

조 의원에 따르면, 한국과 대만 양국은 현재 이중과세 방지협정 체결과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다. 기업활동 편의를 돕기 위해 기업이 한 국가에만 세금을 낼 수 있게 하는 협정으로 지금까지 3차례 실무자급 회담이 이뤄졌다. 기획재정부 가서명을 거쳐 외교부가 본서명을 하면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된다. 조 의원은 “대만의 누적 대한(對韓) 투자가 한국의 대만 투자보다 많다”며 “이중과세 방지협정이 체결될 경우 더 많은 투자가 유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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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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