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42호] 2017.01.23

다음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능력 세 가지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2017년은 한국인에게 중요한 역사적 고비가 될 수 있다. 남한뿐 아니라 북한을 포함해 한민족 전체에 그렇다. 올해 한국인이 역사의 신(神)과 제대로 사귀지 못하면 싸늘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험준한 계곡으로 들어서고 있다. 올해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전망은 2.5%다. 역사상 처음으로 3년째 2%대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이명박 정권의 평균 성장률은 2.9%는 됐다. 2011년부터 내리 한국의 성장률은 세계 평균보다 낮다. 세계적 추세라지만 한국은 저성장을 더 심하게 앓고 있다. 한국의 제조업 가동률(70.3%)은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이다. 게다가 조선·해운 등에서 구조조정에 실패했다.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의 보복이라는 새로운 파도까지 덮치고 있다.
   
   장기적인 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올해부터 줄어든다. 2015년 기준 출산율은 1.24로 OECD 평균(1.7)보다 훨씬 낮다. 한국은 올해부터 고령사회(65세 이상이 14% 이상)로 진입한다. 사회의 노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 리더십이 사라져버렸다. 리더십이 흔들린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붕괴된 적은 없었다. 박근혜 보수·우파 정권의 몰락은 한국 정치에 충격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진보·좌파 세력은 ‘진정한’ 진보·좌파 정권을 세우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짜내고 있다. 그들에게 김대중·노무현 좌파 정권 10년은 아쉬움이 많은 어설픈 실험기였다. 김대중은 집권하기 위해 원조 보수 김종필과 손을 잡아야 했다. 노무현은 독자적으로 성공했으나 순진한 이념정치로 너무나 쉽게 정권을 다시 내주었다. ‘강력하고 진정한’ 진보·좌파 정권을 세우려는 세력과 박근혜의 폐허 속에서도 좌파 집권만은 막으려는 세력…. 올해 그들의 아마겟돈(Armageddon)이 펼쳐진다.
   
   한국 관객이 모두 대선 결투장(arena)에 운집한 사이 한반도 상공엔 태풍의 비구름이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북한 정권은 올해 69년이다. 소련은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69년 만에 해체됐다. 김정은 3대 세습독재 정권이 69란 마(魔)의 숫자를 넘을 수 있을까. 모든 상황이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에는 평양의 내부폭발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처형과 숙청에 의존하는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올해로 5년째다. 그가 공포라는 뚜껑으로 북한 사회를 얼마나 더 누를 수 있을까. 암살이나 납치 또는 소규모 반란으로 김정은은 제거될 수 있다.
   
   정권 내부의 압력이 높아질수록 김정은은 더욱 핵(核)에 매달릴 것이다. 망명한 태영호 전 북한 주영공사는 김정은이 2017년 말을 핵 개발 완성 시점으로 잡고 있다고 했다. 그가 마지막 핵 카드를 던지면 동북아 상황은 과거와는 다른 차원을 맞게 될 것이다.
   
   그것은 트럼프 정권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미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정권에는 두 명의 검투사(gladiator)가 있다.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다. 이들은 공히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을 경험한 전사들이다. 이들은 군사작전으로 세상을 낫게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치·경제·북한·안보 상황에서 한국은 올해 대선을 치른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3월 초에 있을 것으로 많은 이가 예상한다. 만일 대통령이 탄핵되면 대선은 5월 초일 것이다. 기각되더라도 6월 대선이 불가피하다. 대통령이 이미 4월 퇴진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어떤 대통령이 어떤 비전으로 나라를 이끌어야 하나. 나는 역사적 통찰력, 소통 그리고 문제해결 능력을 3대 조건으로 꼽는다.
   
   
▲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상위를 기록 중인 문재인·반기문·이재명·안철수(왼쪽부터).

   남북문제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역사적 통찰력이란 좌표를 읽어내는 힘이다. 남북한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국가안보의 방법론도 이런 좌표 속에서 정해져야 한다. 방법론은 이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방법론의 논리는 무엇이며 결과에 어떻게 대처할지 지도자는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이 직면할 가장 중요한 안보·북한 문제는 사드 배치와 대북(對北) 제재일 것이다. 탄핵 사태로 인해 미국은 한국 리더십의 불안을 주시한다. 그래서 사드 배치를 서둘러 7~8월 안에 끝내려 한다. 만약 다음 대통령이 이를 연기하면 한·미 동맹엔 중대한 균열이 생길 것이다. 트럼프 정권은 사드를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규정한다. 실제로도 사드가 무산되면 주한미군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노출된다. 미국은 “사드 철회로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없으니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하겠다”고 나올 수 있다.
   
   사드 철회와 함께 다음 대통령이 보수정권의 안보·대북·통일 정책의 줄기를 바꾸려 하면 이 또한 중요한 긴장 요소가 될 것이다. 5·24 제재 해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정상회담 추진, 한·미 군사훈련 축소 등이다.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상당 부분 중국에 성패가 달려 있다. 한국은 북한 도발의 제1 당사국이자 피해자다. 그런 나라가 제재 해제에 앞장서면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따를 것이다. 그러면 미국과 일본의 독자 제재만으론 효과가 미미하다. 결국 유엔의 대북 제재 전선은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은 상황을 오판하여 더욱 도발적인 행로로 치달을 수 있다.
   
   신념이 있다면 지도자는 방법론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북 제재를 풀어도 한·미 동맹은 흔들리지 않고 북한의 오판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드와 경제적 위기라는 문제에도 해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사드 반대론자들은 중국의 제재로 한국 경제에 적잖은 타격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드의 좌절로 한·미·일 동맹이 흔들리면 경제적으로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새 정권이 사드를 막고 대북 제재를 완화하면 트럼프 정권은 한반도 안보정책을 바꾸려 할 것이다. 트럼프 정권이 강경하게 돌면 한반도의 안보 불안은 높아진다. 그러면 미국의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빠른 속도로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은 2003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반미(反美)주의자였다. 미군 장갑차에 치인 효순·미선을 과도하게 선거에 이용했다. 그런데 대통령 당선 이후엔 이게 큰 부담이 됐다. 노무현 당선 두 달 후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두 단계나 낮췄다. 북한이 우라늄 핵 개발을 시인했는데 남한 정권은 반미여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이 커졌다고 본 것이다. 그대로 놔두면 무디스 등 3대 신용평가회사는 한국의 등급을 실제로 떨어뜨릴 참이었다. 그러면 외국인 투자가가 대거 떠난다. 대통령 노무현의 첫 번째 위기였다. 정권은 4인 대표단을 급파했다. 반기문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 권태신 재경부 국제금융국장 등이었다. 4인은 뉴욕 무디스에 가서 호소했다. “제발 등급을 낮추지 말아 달라. 노 대통령의 대미 정책은 확연히 바뀔 것이다. 대통령의 방미 때까지 두 달만 시간을 달라.” 무디스는 이들의 호소를 들어주었다. 2개월 후 노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친미 발언을 쏟아냈다. 신용등급은 떨어지지 않았다.
   
   한·미·일 동맹에서 위안부 문제는 위험한 불씨다. 만약 새 대통령이 한·일 정부합의를 폐기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설 것이다. 이는 양국의 군사정보 교류나 대북문제 협력에 장애를 초래하게 된다. 지도자는 사드를 철회하고 대북 제재를 풀고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 소신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게 왜 더 나은 선택인지, 부작용은 어떻게 할지 대선에서 명확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분명한 역사적 통찰력이 있어도 국민이 따라주지 않으면 지도자는 나라를 이끌 수 없다. 지도자의 독도법(讀圖法)과 국민의 행군을 접합하는 게 소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점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번 대선에서 특별히 요구되는 시대정신이 소통이다. 사실 요즘과 같은 디지털 SNS 시대에는 전설적이고 영웅적인 리더십은 불가능하다.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 레이건, 처칠, 드골 같은 지도자가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대통령의 거의 모든 것이 국민에게 노출되는 상황에서 지도자를 영웅으로 포장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는 영웅의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신화로 포장되는 것보다는 정면으로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가 영웅이다.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그것은 적어도 국정 운영의 줄기에서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대통령은 모든 것에 전문가인 초인이 될 수 없다. 공동체 문제에 대해서 ‘줄기적 해결능력’만 갖추면 된다. 가지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부분은 전문가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데에 필수적인 능력이 소통이다. 소통은 불완전한 지도자를 영웅으로 안내하는 통로다.
   
   소통과 통합의 중요성을 잘 아는 선진국은 가장 중요한 통치기구를 밀집형으로 배치한다. 백악관의 웨스트 윙(West Wing), 독일의 베를린 연방정부청사, 영국의 다우닝가 10번지, 일본의 총리 집무실이 그렇다. 최고지도자와 핵심 참모진의 업무공간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것이다. 안보위기에 노출된 한국과 같은 분단대치국가에는 이런 밀집형이 더욱 필요하다. 새 대통령은 소통에 대해 종교 같은 신념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그는 구중궁궐 본관을 폐쇄하고 참모들이 있는 비서동에 집무실을 차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취임 즉시 청와대 내에 새 통합집무센터를 건립하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최근 수년간 기자회견을 1년에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질문에 능숙하게 답할 자신이 없거나 아니면 자신의 일방적인 메시지로도 국정이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수석비서관 회의나 국무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에 의존했다. 새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주 가져야 한다. 조금 부족하고 답변에 실수가 있으면 어떤가. 자신이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담당 전문가를 배석시키면 된다. 대통령이 국정의 줄기를 꿰고 있으면 가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017년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새 대통령은 실존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결국 국가는 국민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존재여야 할 것이다. 북한의 포격으로 국민의 섬마을이 불타고 있는데 1000억원짜리 전폭기를 40여대나 보유하고서도 미사일 한 방 쏘지 못하는 정권은 그런 해결사 정권이 못 된다. 국민의 선박이 이역만리에서 해적에게 납치됐을 때 특수부대를 동원해 국민을 구출하는 나라. 이런 정권이 해결사 정권이다.
   
   물론 난제를 푸는 건 쉽지 않다. 산업 구조조정, 비정규직 축소, 양극화 단축, 주택·출산·노후·복지의 개선, 북한 핵 위협 제거, 중국 패권에 대한 단호한 대처, 김대중·노무현 교과서를 대한민국 교과서로 바로잡는 일…. 어느 것 하나 단기간에 괄목할 성과를 내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난제다.
   
   신이 아닌 이상 어떤 지도자도 빠른 시간 내에 효과적인 방안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동력이자 분위기다. 어렵지만 한번 해보자는 것, 부족하지만 한국 사회의 자산과 역량을 총동원해 최고의 해결사 팀을 만들어 보자는 것, 박근혜의 폐허 위에서 대한민국을 한번 재건해 보자는 것, 대통령인 나부터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장설 터이니 우리 한번 다시 뛰어 보자는 것…. 이런 호소를 할 수 있고 그런 호소가 먹혀들어 갈 수 있는 지도자가 새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다.
   
   역시 중요한 건 인사다. 새 대통령은 오직 국익을 기준으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 같은 파행적 문화를 제거하고, 인사를 통해 사회의 숨통을 틔우고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그런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의지만 있으면, 그리고 신세를 진 이상한 채권자 세력만 없으면 그리 어렵지 않다. 박 대통령의 실패만 잘 추적하면 올바른 새 길을 찾을 수 있다. 정당 공천이나 공공기관 인사도 개혁이 가능하다. 객관적인 그룹의 참여를 늘리면 된다. 내가 수차례 주장했던 ‘국민공천 배심원단’ 제도도 그런 방안이다.
   
   대통령은 최강의 청와대 참모진을 구성해야 한다. 핵심 수석비서관의 경우 자신의 분야뿐만 아니라 국정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 대충의 윤곽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인물들을 발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1차로 청와대 회의에서 효과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조직의 부족한 점은 특보단 같은 것으로 보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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