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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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3일 서울 서대문구 한 대학 교양수업 시간. 수업에 출석한 28명의 학생 중 ‘젊은 반다문화주의자가 늘고 있다’는 문장에 ‘그렇다’고 답한 학생은 24명이나 됐다. 이 대학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김형석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원래 역사 문제 때문에 일본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은 많습니다. 조선족 이주노동자라든가 중국인 관광객 때문에 중국인에 대한 반감도 매우 커졌어요. 유럽의 테러나 IS 때문에 무슬림은 근처에도 가기 싫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경영학과 재학생 최은유씨는 “최근에는 무슬림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광화문에 놀러 갔다가 히잡을 쓴 무슬림 관광객들을 봤어요. 같이 있던 친구가 ‘이러다가 테러리스트도 들어오겠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묘한 기분에 빠졌습니다. 친구는 호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고, 거기에서 인종차별도 겪었거든요.” 최씨가 “차별적 발언 아니냐”고 농담처럼 말하자 최씨 친구는 “사실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회학과 재학생 홍시내씨는 “다른 나라는 몰라도 중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감정은 확실히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저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특유의 민족성이 있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요약하긴 어려운데 중국인들은 무례하고 일본인들은 이중적이죠. 저도 겪어본 적이 많아요.” 홍씨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직접 중국인과 일본인을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다.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20대는 전체의 43.6%에 달한다.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 유학생 수만 12만명, 초·중·고를 다니는 다문화 학생 수도 10만명에 달한다. 수치만 놓고 보면 20대 이하 젊은층이 더 개방적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자. 외국인에 대해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 20대는 37%나 됐다. 전체 평균 32.5%보다 높은 것은 물론 60대의 31.1%보다 훨씬 높다. ‘매우 신뢰한다’는 20대도 가장 적어 전체 20대의 0.3%에 불과했다. 60대는 1.1%가 외국인을 ‘매우 신뢰한다’고 답했다.

위로부터 시작된 시혜적 다문화주의

아산정책연구원의 2014년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20대는 다문화가정이 증가하면 ‘한국사회 경쟁력이 약화된다’ ‘사회통합이 저해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30~40대가 다문화가정에 대해 가장 긍정적이었던 것과 대비되는 결과다.

젊은 반다문화주의자들 반감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반다문화적 정서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다문화주의의 성찰과 전망’ ‘동북아시아의 국제이주와 다문화주의’ 등의 책을 펴낸 다문화 전문가다. 그는 최근 들어 다문화에 대한 국민 정서가 온정주의에서 냉담주의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문화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문화주의의 시작이 자생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위로부터의 다문화주의’였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다문화주의’란 우리 사회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윤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통용되고 다문화주의가 확산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을 생각해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인권을 중시하고 진보적인 가치를 옹호했었죠. 그러면서 위로부터의 다문화가 시작됐습니다.”

다문화사회로 진입해 사회 구성원이 저절로 다문화주의에 대해 확신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정부, 언론, 시민단체 등에서 시작한, 말하자면 ‘위로부터의 다문화주의’가 시초가 된 것이다. 공감대가 일어나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마치 사회운동처럼 갑자기 정책 방향으로 정해졌다. “학교에서는 살색 대신 살구색을 쓰도록 지도받았습니다.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한다거나 우리 민족이 더 우월하다는 식의 국수주의적 시각은 없어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발이 시작됐다. 윤 교수는 “정권이 바뀌고 국정 기조가 변한 것, 미디어를 통해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된 것 등 때문에 ‘반다문화주의’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다문화주의가 ‘시혜적 다문화주의’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백인, 흑인, 동양인을 아우르며 미국, 유럽, 아시아의 문화를 존중하는 다문화주의가 아니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결혼이주자들의 경제·사회·문화적 정착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면서 다문화주의 정책은 종종 공정성 논란을 일으켰다. 한동안 5세 이하 아동이 있는 다문화가정에는 보육료가 전액 지원됐는데 ‘내국인 역차별’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다문화가정지원센터가 따로 마련된다거나 학교마다 다문화 학생을 위한 수업, 교실 등이 설치되는 것을 두고 “내국인 아이들을 더 신경 쓰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대학생 김준규씨가 경남 김해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2004년. 김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문화 관련 교육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다문화 학생을 차별하지 말아요’라고 적힌 책자도 나눠줬고, 간혹 다문화가정 체험 행사 같은 것도 했어요. 학교에 다문화 학생이 다 합해서 5명이 안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문화 관련 교육은 정기적으로 받았어요.” 김씨는 다문화 학생들은 오히려 과한 배려를 받았다고 느꼈다.

“제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하던 사업이 망한 후로 가출하셨어요. 어머니가 저와 형을 혼자 돌보기 힘드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겼지요. 생각해 보면 저야말로 돌봄이 필요했던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모두가 한 학년에 한 명 있던 태국인 혼혈의 다문화 친구에게 관심을 쏟았지요.”

김씨는 나이가 들면서 ‘다문화주의의 진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다문화주의는 내국인에게 관심을 덜 쏟고 책임을 덜 지고 싶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범죄자 인권을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피해자보다 가해자, 내국인보다 외국인에게 집중하면서 정작 진짜 복지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춘천 남이섬 입구에 마련된 다국어 인사말 안내판.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기자
강원도 춘천 남이섬 입구에 마련된 다국어 인사말 안내판.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기자

反다문화주의의 확산

강진구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반다문화주의적 생각을 키우는 토양이 된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가도 취직하기가 어렵고, 취직을 해도 버티기가 힘들죠. 결혼도, 육아도, 은퇴도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연히 외부로 원인을 돌리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보통 다문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일자리를 빼앗겨서’ ‘범죄가 늘어나서’라고 요약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의하면 반다문화주의는 이렇게 간단한 이유로 생겨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와는 전혀 관계 없는 사람도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바로 피해의식과 분노 때문이다. 다른 문제로 생겨난 분노를 외국인에게 푸는 것이다. 강 교수의 설명을 더 들어 보자.

“불안과 공포와 혐오를 외부로 돌리면 내적으로는 안정됩니다. ‘저놈들이 나쁜 놈들이야’라고 외치면서 내부를 결속하고 안정시키는 것이죠.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대상은 ‘저놈’, 즉 외국인이 됩니다.”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대표적이다. 국내 거주 무슬림 인구는 14만~15만명 정도. 인구의 0.01%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슬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특히 큰 편이다. 유럽에서 무슬림에 의한 테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나라에는 무슬림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큰 호응을 받는다. 2015년 11월 파리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온라인 기사 댓글을 보자. “이슬람을 모두 추방하자” “우리도 다문화 정책 할 때가 아니다, 자국민들부터 챙기자”. 가장 많이 읽은 기사의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들이다. 당장 테러의 위험에 노출될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리는 댓글도 많았다.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의 김현희 연구원은 논문 ‘외국인 범죄·테러리즘과 반다문화 정서의 글로벌화’에서 외국에서 일어나는 테러에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무슬림이 범죄를 저지르는 유럽’은 곧 ‘조선족이 범죄를 저지르는 대한민국’이다. 무슬림의 테러 사건은 우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그동안 일어났던 조선족에 의한 강력범죄를 떠올리게 하면서 반다문화주의적 시각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다문화주의는 주로 동남아와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려는 데서 시작했다. 그러나 반다문화주의는 그보다 넓은 범위로 확대됐다. 베트남인·필리핀인·중국인뿐 아니라 무슬림·흑인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소수인 인종 모두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SNS의 활성화가 반다문화주의의 확대를 부추겼다. 반다문화주의를 강화할 만한 경험과 사건·사고들이 SNS를 타고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무슬림 인구는 적은 수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외국에서 벌어진 테러를 겪어본 것처럼 인식하면서 반무슬림 성향을 띠게 된다. 유럽의 극우 민족주의적 생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머리로는 다문화주의가 옳은 것을 알지만 실제로는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통계청의 조사를 보자. 다문화주의에 대한 조사에서 20대는 ‘다양한 인종·종교·문화의 공존이 국가에 유리하다’거나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문장에 상당수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외국인을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20대는 37%에 달했다. 전체 평균 32.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지금 20대는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정책적으로 시행된 다문화주의를 직접 경험한 세대다. 다문화주의는 이들 세대가 필요하다고 공감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옳은 것’으로 교육받았다는 데 특성이 있다. 여기에 반발하던 20대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반다문화주의를 확대·확증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움직임이다.

여성혐오와 반다문화주의는 같은 바구니?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반다문화주의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혐오, 장애인 차별 등과 같은 맥락을 가진 문제라고 지적한다. 윤인진 교수는 “양성평등, 다문화, 장애인 인권 같은 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최근 불고 있는 반다문화주의적 인식은 타자에 대한 배제, 혐오라는 측면에서 여성혐오와도 맥락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양성평등이나 다문화 둘 다 역차별 논란을 맞고 있다. 여성이나 다문화 이주민들이 약자라는 사실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양성평등에 반기를 드는 20~30대 젊은 남자들 중에는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외국인이 저지른 강력범죄 사건이 터질 때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벌이는 시민단체 회원들은 대개 남성들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이주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자스민 의원에 쏟아진 비난에는 여성혐오와 반다문화주의가 고루 섞여 있었다.

반다문화주의를 주장하는 대학생 김준규씨는 여성혐오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 20대 한국인 남성은 정말 살기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여성에 치이고 다문화에 치여 아무 혜택도 못 받고 오히려 희생만 하는 것 같아요.” 김씨와 함께 온라인 웹사이트를 기획 중이라는 22살 박동진씨는 “주변에 커뮤니티를 조직하면 가입하겠다는 20대 남자들이 매우 많다”며 “소수자, 약자라는 이름으로 보호받는 사람들만 신경 쓰다가 막상 소외되는 것이 우리 20대 남성들”이라고 주장했다.

젊은 반다문화주의자들을 관찰해 보면 이들처럼 “피해받고 있다”거나 “나는 동의한 적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게는 반다문화주의와 반페미니즘에 대해 처음부터 논의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강진구 교수는 이런 젊은 반다문화주의자들을 위해 “공론장을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왜 다문화주의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문화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사람도 많고요.” 단지 ‘다문화가 옳다’거나 젊은 반다문화주의자들을 ‘별종’으로 취급해서는 평행선을 달리기만 할 뿐이라는 얘기다.

사실 젊은 반다문화주의자들이 느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유럽의 민족주의적 극우 정당을 이끄는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20~30대 젊은 남성이다. 유럽의 모습을 닮아가지 않으려면 지금 생겨나는 젊은 반다문화주의자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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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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