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號)가 한반도로 북상 중이다. 칼빈슨호는 오사마 빈라덴을 수장(水葬)시킨 미 해군 3함대 소속 니미츠급 항공모함이다. 칼빈슨호의 북상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북핵(北核)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압박할 가장 강력한 군사적 카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리조트에서 시진핑 주석과 만나는 와중인 지난 4월 6일, 지중해에 있는 미 해군 구축함에 시리아를 상대로 한 미사일 공격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세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허를 찌르는 선택에 경악하면서 트럼프 정부의 ‘포함(砲艦)외교’식 북핵 문제 해결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시리아 공습 이후 한반도 주변 사정은 훨씬 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 조야에서는 ‘독자행동’ ‘선제타격’ ‘비례적 대응’과 같은 각종 대응방안이 미국 언론을 통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11일, 트위터에 “만약 중국이 돕기로 결정하면 아주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중국) 없이 문제를 풀 것이다”라고 했다. 앞서 3월 17일에는 “북한이 매우 나쁘게 행동한다. 그들은 수년 동안 미국을 갖고 놀았다. 중국은 돕기 위해 거의 한 것이 없다”는 직설적인 트윗을 날렸다. 이런 상황에서 칼빈슨호가 싱가포르에서 호주로 가던 항로를 바꿔 한국으로 향했으니 세계의 관심이 한반도로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칼빈슨호를 ‘무적함대(Armada)’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무적함대’가 북상을 시작한 후 미·중 정상은 4월 12일에 전화통화를 갖고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 미·중 정상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전화통화 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의 위협에 관해 중국 주석과 지난 밤 매우 좋은 통화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중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와 시진핑 양자 간에 ‘환율조작국’ ‘대북 석유 공급 중단’ 등과 관련한 치열한 물밑 거래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는 칼빈슨호를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칼빈슨호가 세계 최강의 전투력과 전투 경험에도 불구하고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돼 있어서다. 특히 중국과 북한을 현실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서해에는 항모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 해상자위대와 칼빈슨호의 합동 군사훈련 해역으로 특정한 곳도 동중국해 혹은 규슈 서쪽 해역이다. 규슈 서쪽이면 부산 남쪽으로 서해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해군 관계자는 “중국의 반대로 미 해군 항공모함은 전북 군산 이상으로 올라가기 어렵다”며 “항모의 이동계획은 군사기밀”이라고 추가 언급은 삼갔다.

이 같은 ‘전례’는 2010년 천안함 폭침(爆沈)과 연평도 포격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요코스카(橫須賀)를 모항으로 하는 미 해군 7함대 소속 니미츠급 핵추진 항모 조지워싱턴호가 서해 진입을 시도한 적이 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직후였다. 조지워싱턴호가 서해로 진입하려 하자 당시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정권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중국 군부의 대표적 강경파인 뤄위안(羅援) 예비역 소장(한국의 준장)은 “조지워싱턴호가 서해로 진입하면 사격 목표가 될 것”이란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중국의 반발에 조지워싱턴호는 천안함이 폭침된 서해와 전혀 상관없는 동해로 올라가서 대북 무력시위를 벌였다.

같은해 11월, 한국과 미국은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에는 연평도 앞바다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아래까지 조지워싱턴호 진입을 공언했다. 하지만 이 역시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당초 연평도 앞바다 북상을 공언했던 한·미 양국 해군의 연합 실사격훈련이 이루어진 곳은 연평도에서 한참 이남인 전북 군산 앞바다였다. 전북 군산은 위도 36도로,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호의 모항이자 인민해방군 해군 북해함대 사령부가 있는 칭다오(靑島)와 위도가 같다. 결국 서해에서 위도 36도 이상의 해상은 사실상 중국 해군에 제해권(制海權)이 넘어간 셈이다. 한국으로서는 육상에 있는 ‘38선’보다 2도나 후퇴한 ‘36선’이다.

이에 북한이 ‘태양절(김일성 생일)’로 기념하는 4월 15일이나 조선인민군 창건절(4월 25일)을 전후로 6차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 해도 기존의 압박 수준 이상을 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시진핑 주석은 4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정옥임 전 의원은 “칼빈슨호가 한반도로 오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한반도 방위공약’ 차원에서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진화하려는 차원”이라며 “선제타격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성공하면 또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photo EPA·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photo EPA·연합

중국 항모 2척 서해 포진

현재 중국 해군은 미 해군 태평양함대에 맞서 서해에서 항모 전력을 급속히 강화 중이다. 오는 4월 23일 중국 해군 창설기념일에는 두 번째 항모인 ‘산둥호(山東號)’의 진수식도 가질 예정이다. 랴오닝성 다롄(大連)의 중국선박중공 다롄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산둥호는 지난 2월, 함정의 기본 골격을 완성하고 도색작업을 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다롄조선소는 우크라이나에서 사들인 고물선 바랴그호를 개조해 중국의 첫 번째 항공모함 ‘랴오닝호’로 건조해낸 곳이다. 지난 3월 30일, 중국 국방부 대변인 우첸(吳謙) 대교(대령)는 “국산 항모는 현재 의장작업 중으로 작업이 매우 순조롭다”며 “좋은 소식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랴오닝호와 쌍둥이함인 산둥호가 전력화하면 서해에서 중국의 항모전력은 대폭 강화된다. 중국이 러시아의 수호이(Su)-33을 모방해 함재기로 개발한 ‘잔(殲)-15(J-15)’ 24대와 대잠헬기를 태우고 서해를 누비게 된다. 약 70대가량의 함재기를 태우고 다니는 미국의 니미츠급이나 포드급 핵추진 항모에 비해서는 해상작전 시간, 함재기 대수에서 한참 못 미치지만, 영국의 퀸엘리자베스함이나 프랑스 샤를드골함에는 필적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욱 주목할 점은 중국이 ‘제2항모’를 자체 건조하는 데 불과 2년9개월밖에 걸리지 않은 사실이다. 2012년 첫 번째 항모 랴오닝호를 바다에 띄우기까지는 2004년부터 8년이 걸렸다. 항모 건조 기간을 세 배 가까이 단축시킨 셈이다.

산둥호는 중국 북해함대 사령부가 있는 산둥성 칭다오의 샤오커우즈(小口子)항을 모항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칭다오항에서 서남쪽으로 50㎞가량 떨어진 군항(軍港)으로 항모 전용 부두를 갖추고 있다. 현재 랴오닝호도 이곳을 모항으로 쓰고 있다. 랴오닝호가 다롄의 뤼순군항으로 옮겨가고, 산둥호가 칭다오의 샤오커우즈군항으로 배치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산둥반도의 칭다오와 랴오둥반도의 다롄(뤼순)은 북해함대의 양대 기지다. 산둥반도와 랴오둥반도 안쪽의 발해만(渤海灣) 입구에 각각의 항모가 수문장처럼 포진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로써 발해만을 품은 서해는 중국 항모가 2척이나 포진한 ‘중국의 내해(內海)’로 사실상 전락 중이다.

실제 최근 항모 전력을 부쩍 강화한 중국 해군은 서해부터 서태평양까지를 마음대로 활보 중이다. 지난 1월에는 랴오닝호 항모편대의 서태평양 원양훈련도 실시했다. 랴오닝호를 필두로 한 6척의 항모편대가 모항인 칭다오를 출발해 서해를 따라 남하한 뒤 오키나와(일본) 본섬과 미야코섬 사이의 미야코(宮古)해협을 가로지른 뒤 대만섬을 바깥으로 돌아 다시 대만섬과 바탄섬(필리핀) 사이의 바시해협을 통과해 하이난다오(海南島)의 싼야(三亞)기지를 찍고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싼야기지는 중국 남해함대의 주요 기지 중 하나다. 당시 중국 해군사령관 우성리(吳勝利) 제독(상장)은 71세의 노구를 이끌고 직접 랴오닝호의 갑판에 나와 J-15가 뜨고 내리는 이착륙 훈련을 지켜봤다.

이 중 미야코해협과 바시해협은 중국 해군이 ‘제1도련선(島链線)’으로 간주하는 라인이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가상의 선으로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존 포스터 덜레스가 최초 제시한 공산국가의 태평양 진입을 막는 1차 해상방어선이다. 중국은 ‘제1도련선’을 태평양 진출을 위해 반드시 뚫어야 하는 마지노선으로 간주해왔다. 랴오닝호 항모편대가 제1도련선을 뚫고 남해함대가 주둔하는 하이난다오 싼야까지 내려갔다는 것은 ‘제1도련선’이 사실상 뚫렸음을 의미한다. 이는 대만섬 이북의 북해함대(칭다오)와 동해함대(닝보)가 남해함대와 호응해 서태평양을 방어하는 미 해군 7함대에 맞설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제1도련선 안쪽의 서해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4월 23일 진수를 앞둔 중국의 첫 번째 자체 제작 항모 산둥호 외에도, 상하이의 장난(江南)조선소에서 2018년을 목표로 ‘제3항모’를 추가로 건조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국방대학 진이난(金一南) 교수(소장)는 “제3항모가 2015년 3월부터 상하이 장강 하구에 있는 창싱다오(長興島) 장난조선소에서 건조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제3항모는 기존의 랴오닝호, 산둥호 같은 스키점프식이 아니라 사출식 항공모함이 될 것으로 알려진다. 스키점프 방식을 쓸 경우 함재기 무게를 줄여야 해 무장과 연료를 충분히 탑재할 수 없다. 사출기를 장착할 경우 함재기에 무장을 가득 적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착륙 횟수도 대폭 늘릴 수 있다.

중국의 항모 전력 증강을 한국 해군은 사실상 방치해왔다. 한·중 간 해군 전력은 비교 자체가 우스울 정도다. 한국 해군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경(輕)항모급인 독도함(만재 1만8800t)을 건조했다. 하지만 탑재할 함재기도 없고, 최고속력이 23노트(약 42㎞)에 불과해 항모가 아닌 강습상륙함(LPH)으로 분류된다.

한 예비역 해군 관계자는 “짧은 갑판에서 비행기를 띄우려면 최소 30노트 이상 속력이 나야 한다”며 “미국의 핵추진 항모나 일본의 경항모는 모두 30노트 이상”이라고 했다. 또 갑판의 강도(强度) 문제 때문에 향후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F-35를 도입하더라도 뜨고 내리는 데 제약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도함의 후속함인 마라도함(가칭)과 백령도함(가칭)의 전력화도 지연 중이다. 해군 관계자는 “독도함-2번함(LPH-2, 가칭 마라도함)은 현재 한진중공업에서 건조 중”이라고 했다.

미 해군 항공모함 칼빈슨호 ⓒphoto 연합
미 해군 항공모함 칼빈슨호 ⓒphoto 연합

힘받는 한국 해군 항모 확보論

일본은 중국의 항모전력 증강을 실체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중국이 랴오닝호를 띄운 이듬해인 2013년, 경항모급 ‘이즈모호(만재 2만7000t급)’를 띄웠다. 2015년에도 ‘가가호’를 진수했다. 현재 일본은 1만9000t급 ‘휴가호’ ‘이세호’를 비롯해 2만7000t급 ‘이즈모호’ ‘가가호’ 경항모를 이미 4척이나 확보한 상태다. 이들 함정은 대외적으로 ‘헬기호위함’으로 불리지만 수직이착륙기인 F-35가 뜨고 내리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알려졌다.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은 “일본은 1차 세계대전 때 4척, 2차 세계대전 때 18척의 항모를 운용했다”며 “항모 운영 경험만 놓고 보면 1918년부터 이미 99년으로 중국보다도 월등히 앞선다”고 했다.

이에 우리 해군도 주변국의 항모 확보에 맞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현재 항모를 갖춘 국가는 미국·중국·러시아·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브라질·인도·태국 등 11개국이다. 이 중 러시아·스페인·태국은 한국보다 GDP(국내총생산)가 낮다. 하지만 전통의 군사강국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스페인은 후안 카를로스 1세호(2만7000t급), 태국은 차크리 나루에벳호(1만1480t급) 경항모를 갖추고 있다. 미국과 중국 항모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자국 바다는 스스로 지킨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은 “스페인과 태국도 항모를 운용하는 마당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우선적으로 독도함을 경항모로 개조해 주변국에 대응하고, 장기적으로 4만t급 핵추진 항모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재작년 해군에서 발주한 연구용역을 대우조선과 함께 수행했을 때, 주변국에 대응해 ‘공포의 균형’을 맞춰 최소한 생존할 수 있으려면 경항모가 아닌 7만3000t급 가스터빈 중형항모는 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연간 항모 유지비는 3000억원 정도로 충분히 감내할 수준으로 지금부터라도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2033년쯤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군본부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국방중기계획에 아직 항모 보유 계획이 없다”며 “어느 정도 국민 여론이 형성된 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북핵과 미사일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미 해군 항모를 불러들여 무력시위를 하는 똑같은 패턴은 이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무적함대’를 불러들이는 일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더 큰 청구서로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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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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