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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나오는 얘기가 ‘정책 선거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조기대선이다 보니 정책보다 네거티브 공세, 이미지 싸움이 주가 되는 모양새다. 공약 선거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유권자가 어떤 공약이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간조선은 대선후보 5인의 주요 공약을 7개 분야로 나눠 핵심적인 공약만을 분류, 비교해 봤다. 보다 자세한 공약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 알리미 사이트(policy.nec.go.kr)를 참고하면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 전후로 실시하는 ‘유권자 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투표할 때 무엇을 고려하는가’에 대한 유권자들의 대답이다.

먼저 지난해 4월, 20대 총선 직전 조사한 결과다. 투표할 때 정책을 먼저 본다고 답한 유권자는 전체의 28.2%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후에 조사한 결과는 조금 다르다. 정책을 먼저 보고 투표했다고 응답한 유권자는 22.4%에 그쳤다.

이런 흐름은 거의 모든 선거에서 드러난다.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 전에는 정책·공약을 보겠다고 답한 유권자가 38.8%였다. 막상 투표가 끝나고 나서 정책·공약을 고려해 투표했다고 말한 유권자는 27.1%에 불과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선거 전 40.4%의 유권자가 공약을 보겠다고 했지만 막상 투표를 할 때는 26.4%만 공약을 고려했다. 공약을 비교·검토한 후에 해당 후보에게 표를 행사하는 선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증거다.

왜 우리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후보자의 공약을 뒷전으로 미루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유권자들이 후보의 공약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애초에 선거운동이 정책 대결보다는 상대를 비방하면서 지지율을 끌어내리려는 데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실수와 실언에 따라 지지율이 출렁거리는 상황에서 공약은 딱딱하고 지루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그 결과 후보들 역시 듣기 좋고 보기에 그럴듯한 선심성 공약을 일단 던져놓고 보는 경향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약이 공약의 기본 요건을 갖출 리가 없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구체적 실천 방안, 소요 예산, 재원 조달 방법 등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그러나 이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대선후보는 한 명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하는 ‘정책·공약 알리미’ 사이트에는 대선후보 15인의 10대 공약이 실려 있다. 이들 공약은 ‘무엇을’은 있지만 ‘어떻게’는 없다. 대다수의 후보들이 공약 이행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이행 기간 또한 두루뭉술하게 적어뒀다. 소요 예산은 더욱 알 방법이 없다. 그나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각 공약에 대한 소요 예산을 제시했을 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관련 내용을 제시하지 않았다.

‘어떻게’가 없는 공약

소요 예산을 제시했다 해도 어떻게 예산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간다. 문재인 후보는 공공일자리 81만개 창출에 연간 3조2000억원, 아동수당 도입에 연간 2조6000억원 등 연간 25조135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재원 조달 방법으로는 기존 예산을 조정하고 법인세율을 올리겠다는 식의 추상적인 답변밖에 없다.

모든 후보가 확대 지급하기로 약속한 노인 기초연금 공약도 살펴보자. 문재인 후보는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30만원씩 주겠다고 했는데 5년간 22조원이 들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후보는 소득 하위 50% 노인에게 월 30만원씩 주겠다고 약속해 이에 따르면 5년간 18조1500억원이 더 든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1년 예산이 58조원인 것을 고려해 보면 쉽게 약속하기 어려운 규모다. 그러나 역시 ‘어떻게’는 없다.

지난해 치러진 미국 대선을 살펴보자.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홈페이지(berniesanders.com)를 통해 자신이 내건 공약에 드는 예산, 예산 조달 방법, 예상 세입 등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예를 들어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대학 무상교육 정책에 드는 예산은 10년에 7500억달러(약 850조원)다. 샌더스는 이 예산을 월스트리트 투자자에게서 과세한 세금으로 메우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에게서 거두게 될 세금은 매년 3000억달러. 대학 무상 교육을 실현하고도 남을 비용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샌더스 상원의원 같은 구체적 공약을 내세우기 어렵다. 한 대선후보 캠프의 정책담당자 말을 들어보자.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에너지 낭비’이기 때문이다. 공약을 꼼꼼히 마련하더라도 그걸 다 챙겨 보는 유권자도 없을 뿐더러 공격받기 쉽다. 정말 열심히 준비해도 제대로 평가해주는 사람이 없다. 재원 조달 방법도 제시하지 못한 후보에게서 재원 조달 방법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우리 선거의 현실이다.”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18대 국회의원의 말이다. “나름대로 지역의 미래라고 생각한 공약을 마련해 구체적인 실현 방안까지 제시했는데 제대로 보도해준 언론이 한 군데도 없었다. 상대 후보가 내건 ‘언제까지 예산 얼마를 따와서 무엇을 건설하겠다’는 식의 선심성 공약은 크게 쓰면서도 어떻게, 언제까지 할 것인지 비판한 내 목소리는 한 줄 넣는 식이었다.”

공약은 단지 구호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공약을 제대로 지켜낼 리 없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행률은 지난 4년간 41%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당장 대선에 출마하는 유력 후보들이 국회에서 보여준 공약이행률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대 국회에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행률은 16.7%에 그쳤다. 12개의 공약을 내걸었는데 2개만 수행한 것이다. 안철수 후보 역시 22.2% 공약이행률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당선되면 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제 유권자는 모든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공약을 검토하다 보면 네거티브 전략이나 이미지에 가려진 ‘진짜 후보의 모습’이 보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구조 개편과 관련된 공약을 보자. 공약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후보별로 성향이 보인다. 문재인 후보는 정부 주도의 산업 개편을 주장하는 편이다. 국가가 나서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성과를 독려한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민간이 주도해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지원을 해줄 뿐 민간 기업이 알아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대목은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부 형태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엿보게 한다.

이런 방침은 일자리 창출 공약에도 이어지는데 문재인 후보가 공공부문 8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은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는 지난 2월 국회에서 일자리 공약을 발표하며 “시장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가 아무리 과감한 일자리 정책과 복지 정책을 펼치더라도 당면한 양극화와 고용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산업을 발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 10만 인재 양성’ 정책을 내세운 것이다.

지난 4월 1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대선후보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국회 사진기자단
지난 4월 1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대선후보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국회 사진기자단

공약을 보면 후보가 보여

사회·복지 분야 공약을 보면 다섯 후보의 차이를 알기 쉽지 않다. 특히 아동수당·기초연금확대 공약을 보면 후보 간 이견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전체 공약을 보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모두가 중부담 중복지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홍준표 후보는 ‘서민 맞춤형 복지’라는 이름으로 선별적 복지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홍 후보 역시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소득 하위 50% 이하 가구의 아동이 대상이다. 심상정 후보나 문재인 후보가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과는 다르다.

후보 간 차이가 가장 큰 분야 중 하나는 교육 분야다. 국방·안보·외교, 사회·복지 분야에서 보수 후보가 진보적 공약을 내세우고 진보 후보가 보수층 유권자를 노린 공약을 들고나오는 것과 다르다. 실제 실현 가능성이 높고 구체적이라는 점도 다른 분야 공약과는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안철수 후보는 “입시에만 맞춰져 있는 현행 공교육을 바꾸자는 큰 틀”에서 학제 개편안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는 틀을 바꾸기보다 현재의 교육 과정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후보는 공평한 교육 기회, 공교육 정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나 고교 학점제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공약이다. 고교 학점제는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듣는 방식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많이 시행하는 제도인데 고등학교부터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면서 시대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공약이다.

유승민 후보는 교육 분야에서 큰 변화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학 입시를 법제화하자는 공약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 정책도 바뀌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주는 일을 막자는 취지다. 심상정 후보는 교육 분야에서도 평등함을 강조하는데 외고·자사고를 폐지하고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홍준표 후보는 입시 정책이나 교과과정 개편보다 교육 복지 부문을 강조했다. 저소득층 우수 학생을 선발해 지원하는 희망사다리 교육지원제도나 맞춤형 방과후학교 확대 시행 같은 공약이다. 다른 후보들이 강조하는 교육부 개혁이나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 유권자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히는 환경 분야 미세먼지와 관련된 공약에서도 후보들 간 성향의 차이가 보인다. 문재인 후보는 미세먼지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공약이 주를 이룬다. 국내 미세먼지 발생 요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지적받는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중단하는 것이 그 예다. 안철수 후보는 미세먼지 공약에서도 신기술을 활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중국 베이징시에 설치돼 있는 대형 공기청정기 ‘스모그 프리타워’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공약이다. 보수 성향 후보들은 유권자의 실생활과 직접 연관된 공약도 하나씩 내걸었다. 홍준표 후보가 병원이나 학교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고 유승민 후보도 아동·노약자가 많은 시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렇게 후보들 간 공약을 비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 될 전망이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아직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은 최소 10~20%가량 된다. 지금은 지지하는 후보가 있더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유권자도 20~40%에 달한다.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라도 공약을 전체적으로 보다 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나 선입견에 가려 어떤 후보의 공약이 내 생각과 비슷한지 미처 따져보지 못했다면 분야별 공약을 뜯어보면 된다. 투표일 당일까지 어떤 후보가 내 가족이 사는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면 이제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볼 때다. 30분만 투자하면 어떤 후보가 현실적인 공약(公約)을 하는지,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空約)을 하지 않는지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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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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