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56호] 2017.05.08

세계경제 사이클과 비교한 역대 정권 경제성장률

박근혜 ‘최악’ 노무현·이명박 ‘낙제’

한국 경제는 1970~1980년대 중화학공업 중심의 압축·고도성장을 통해 규모를 키웠다. 이 시기를 거치며 대만·싱가포르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국가 중 하나가 됐다. 1990년대에도 한국 경제의 성장은 이어졌다. 1981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989년에만 7%(IMF자료·이하 동일)로 주춤했을 뿐 1983년 13.2% 등 8~12%대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세계 경제성장률은 최저 0.7%(1982년)~최대 4.7%(1988년) 정도에 불과했다.
   
   1993년 시작된 김영삼 정부도 성장률과 규모 확대를 중시했다. 최소한 1997년 여름까지는 말이다. 1991년부터 김영삼 정부 4년 차이던 1996년까지만 해도 효율은 낮지만 경쟁국 대비 낮은 인건비와 절대적으로 긴 노동시간을 발판으로 생산을 확대했다. 정부와 기업들이 벌인 대규모 차입은 외형적인 경제 총량 확대에 핵심 역할을 했다. 1991년 10.4%에 이르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1994년과 1995년 각각 9.2%와 9.6%나 성장했다. 같은 기간 세계 경제성장률의 3~4배에 이를 정도였다.
   
   
   고성장 끝물 김영삼·김대중 정부
   
   사실 이때까지의 경제성장은 대규모 압축과 차입을 통한 성과였다. 하지만 1997년 압축·고도성장의 부작용이라는 폭탄이 터졌다. 수십 년 외형성장에 치중해온 정부와 기업들의 차입 경제는 작은 리스크에도 취약했다. 심지어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상황에서조차 위기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외환시장에서의 단기차입 관리 능력은 사실상 낙제였다. 국제경제·금융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가 낮았던 관제(官製) 경제, 고질적 정경유착을 품은 위험성 높은 경제성장률의 그늘에 문제들이 가려져 있었다. 결국 1997년 겨울,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로 불리는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에 빠졌다.
   
   1997년 경제성장률이 5.9%로 주저앉았고, 그 충격은 1998년으로 이어졌다. 1998년 경제성장률은 -5.5로 추락했다. 1981년 경제성장률이 -1.7%로 주저앉은 이후 18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에 빠졌다. 당시 세계 경제성장률은 2.5%였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구조와 성장 역사를 가진 아시아 경쟁국인 대만이 4.2% 성장한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김대중 정부는 소비 확대와 함께 전자·반도체·IT·벤처산업을 중심으로 확장 정책을 폈다. 1999년 경제성장률이 11.3%로 반등했고, 2000년과 2002년 역시 8.9%와 7.4%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1999년 3.6%, 2000년 4.8%, 2002년 3%이던 세계 경제성장률을 다시 앞섰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성장 정책을 뜯어보면 외형성장에 치중했던 과거 정부나 기업들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형 자금이 투입되는 산업의 종류가 바뀌었을 뿐 압축과 차입에 의한 성장 정책은 사실상 그대로였다. 경제 구조 변화, 기업 체질개선을 통한 성장이 아닌 차입과 소비를 키워 경제의 총량을 늘리는 방식을 답습했다. 그 결과 IT산업 열풍을 타고 벤처시장으로 투입된 각종 정책자금과 차입금들이 거대한 버블을 만들었다.
   
   또 기업을 넘어 가계 부문까지 차입 확장에 빠져들었다. 성장률에 치중하다 버블과 부실을 또다시 키운 셈이다. 이 부작용은 그의 퇴임 직후 곧바로 나타나 노무현 정부 초기 경제 운영에 큰 부담을 안겼다. 2002년 말부터 2003년 사이 터진 ‘카드사태’가 대표적이다.
   
   1981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약 20년 동안 세계경제 사이클 속에서 한국 경제가 경험한 성장의 역사는 ‘경제 규모를 확대했다’는 평가와 ‘압축성장 부작용과 대규모 차입에 의존했던 부실 문제가 이후 한국 경제에 부담을 떠넘겼다’는 비판이 공존하는 시기다.
   
   
   저성장의 시작 노무현 정부
   
   2000년 이후 들어선 세 번의 정권은 어땠을까. 2003년 시작된 노무현 정부를 보자. 앞서 말한 대로 노무현 정부 초기 한국 경제는 김대중 정부에서 벌어진 버블과 차입 부실이라는 짐을 그대로 넘겨받았다. 평가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과거 압축·고도 성장기에 드러났던 경제 운용 문제와 관제경제의 약점이 제대로 수정되지 못한 채 이어졌다.
   
   카드사태를 거친 2000년대 초, 당시 한국 경제는 옆 나라 중국의 폭발적 성장과 마주했다. 개혁·개방을 통해 1990년대부터 성장의 맛을 본 중국이, 1990년대 말부터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하며 매년 10% 이상 성장했다. 당시 중국 경제의 성장세는 대단했다. 노무현 정부가 시작된 2003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0%였다. 이후 2004년 10.1%, 2005년 11.3%, 2006년 12.7%, 2007년에는 무려 14.2%까지 폭등했다.
   
   중국만이 아니다. 세계 경제성장률 역시 최저 4.3%(2003년)에서 최고 5.6% (2007년)를 오르내렸다. ‘2000년대 세계경제의 안정적 성장기’란 평과 함께 21세기 첫 번째 골디락스(goldilocks)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한국의 경제는 상대적으로 불안했다. 성장률 역시 상대적으로 저조한 상태에 빠졌다. 2003년 카드사태 충격은 경제성장률을 2.9%로 주저앉혔다. 2004년과 2005년은 각 4.9%와 3.9%로 널뛰기 성장을 했다. 2006년과 2007년 5.2%와 5.5%로 외형상 5%대 성장을 했지만 내용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이유가 있다. 2003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4.3%였고 이후 2004년 5.4%, 2005년 4.9%, 2006년 5.5%, 2007년 5.6%나 됐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노무현 정부는 단 한 해도 세계 경제성장률을 넘어 보지 못했다. 경제구조가 비슷한 대만과 비교해도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경제 운영은 후한 점수를 받기 힘들다.
   
   1998년 외환위기의 후유증과 2000년대 초 IT버블·카드사태에 따른 방어적 경제 운영, 또 상대적으로 분배를 내세웠던 정권의 성격이 이런 답답함을 불러왔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경제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게 더 큰 문제였다. 고질적 관제경제의 악습이 수정되지 못한 채 경제가 운영됐던 점 역시 문제였다.
   
   
   토건개발만 부르짖은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성적표와 운영 역시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세계경제 흐름 속에서 이명박 정부 집권기 한국 경제는 고전(苦戰) 그 자체였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장률 역시 노무현 정부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토건경제를 앞세운 개발과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은 무리수와 실책을 연발했다.
   
   각종 개발 정책을 쏟아냈던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첫해 경제성장률은 2.8%에 불과했다. 2007년 5.5%였던 성장률은 이명박 정부 집권과 함께 순식간에 반토막 났다. 이해 터진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핑계를 돌리기도 쉽지 않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한국에 본격화된 건 2009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은 한국보다 선진국 시장이 훨씬 컸다. 그럼에도 2008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2.8%밖에 안 됐다. 같은 해 3%였던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낮았다.
   
   이명박 정부 2년 차인 2009년 경제성장률은 결국 0.7%로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경제위기 충격에 기업과 가계 등 민간 부문의 경제가 움츠러든 게 큰 이유다. 그나마 핑곗거리는 2009년의 경우 중국을 제외하고 주요국들이 모두 ‘마이너스 성장’에 빠졌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 6.5%로 정점을 찍는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통해 사실상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서자 세계 자본시장에 엄청난 자금이 풀렸다. 이 자금이 이머징시장, 그중에서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덜했던 한국 등 일부 이머징마켓으로 상당수 유입된 덕분이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 등 건설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토목·건설 부문으로 짧은 기간 천문학적 자금이 흘러들었다. 토목·건설은 전자·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과 함께 한국 경제·산업 구조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2010년 6%대 높은 경제성장률은 대외적으론 미국의 양적완화 효과, 대내적으론 정부의 토목·건설 투자 확대라는 정책적 개입의 영향이 더 컸다. 사실 6.5%라는 당시의 성장률보다 개발을 이유로 대규모로 발생시킨 공공영역의 부채가 지금까지도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큰 게 현실이다.
   
   이는 다음 해인 2011년과 2012년 경제성장률이 3.7%와 2.3%로 맥없이 추락해버린 사실로도 확인된다.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경제성장률은 2008년 2.8%, 2009년 0.7%, 2010년 6.5%, 2011년 3.7%, 2012년 2.3%였다. 반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2008년 3%, 2009년 -0.1%, 2010년 5.4%, 2011년 4.2%, 2012년 3.5%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선진국 경제가 위축됐던 2009년과 2010년을 빼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장률 역시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모두 낮았다.
   
   
   성장률 역대 최악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의 현실은 앞선 두 정부와 비교해 나은 점을 찾기가 더 힘들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박근혜 정부 4년 동안의 경제성장률 역시 단 한 번도 세계 경제성장률을 넘지 못했다. 2013년 2.9%, 2014년 3.3%, 2015년 2.8%, 2016년 2.8%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세계 경제성장률은 2013년 3.4%를 시작으로 2014년 3.5%, 2015년 3.4%, 2016년 3.1%였다. 2013년 이후 세계 경제성장률은 단 한 번도 3%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4년은 거꾸로 2014년을 빼면 단 한 번도 3% 이상 성장한 적이 없다. 그나마 3.3% 성장했던 2014년조차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0.2%포인트나 성장률이 낮았다.
   
   박근혜 정부 4년 역시 외형 확장에 중점을 둔 경제 운영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현오석·최경환·유일호 기재부 장관으로 이어진 박근혜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들은 미숙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경제 운영으로 한국 경제에 부담을 더 키웠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급조된 듯 미숙하게 운영된 대출규제 완화 정책은 14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가계부채 폭탄을 만들었다. 한국 경제 성장을 억누른 대표적 정책 실패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공공부문 부채도 1000조원을 넘겼다. 부채 확대를 용인한 박근혜 정부의 이 같은 확장 정책의 미숙한 운영은 자산 버블을 키웠을 뿐 가계와 기업의 소비는 제대로 늘리지도 못했다.
   
   2013년 이후 세계경제 흐름 속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이어진 이런 정책이 오히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와 부채 폭탄을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 정치권과 경제학자 중에는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힘들고 복잡한 상황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2%대 성장을 비판만 하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2013년부터 지금까지 그 어렵다던 세계경제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3% 이상 성장했다. 경제성장률과 부채 현황 등 각종 경제지표는 물론 정책 내용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경제 성장에 실패했다.
   
   역대 정부의 경제 운영 실태와 경제성장률 등락 요인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실책성 경제 정책과 운영 미숙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세계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반전 분위기에 편승해 거창한 성장 구호만 외칠 게 아니다. 이제라도 우리 경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안목을 키워야 한다. 현실적인 경제 운영 기준과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세계경제 속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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