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온 표절 논란을 정리해 보자. 시작은 국회였다. 지난 6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강 장관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꼭 일주일 뒤 열린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는 김 장관 후보자가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청문회가 열리는 사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자신의 석·박사 학위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표절 논란은 대학에서도 일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의 박모 교수가 지난 2월 학술지 ‘비교한국학’에 실은 논문을 표절이라고 인정하며 10년 만에 자진철회하는 일이 생겼다. 이어 곧바로 언론과 학과 동료 교수들에 의해 박 교수가 표절 의혹을 받는 논문이 20편에 달한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6월 14일 국어국문학과 동료 교수들은 전체 회의를 열고 박 교수에게 사직을 권고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각종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박모 교수의 글을 불어불문학과 이모 교수가 또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모 교수가 저서 ‘우리 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찾아서’라는 책 속에 쓴 ‘비교문학 이론의 전개-프랑스 학파를 중심으로’ 부분이 이 교수의 2007년 논문에 인용 표시 없이 상당수 인용돼 있다는 의혹이다. 이런 의혹은 학내 대자보를 통해 알려졌는데 이 교수는 표절 의혹을 시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런 표절 논란이 최근 들어서 부각된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2016년 언론에서 다뤘던 주요 정치인·고위공직자에 대한 논문 표절 의혹만 살펴봐도 10여건이 넘는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정부 당시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내정됐던 박승주 한국시민자원봉사회 부회장은 논문 표절 의혹과 여러 논란이 겹쳐 자진 사퇴했다. 같은 시기 국무총리로 지명됐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이미 2006년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여 교육부총리을 사퇴한 적이 있었다. 지난해 8월 지명됐던 조경규 환경부 장관은 청문회 과정에서 석사 논문이 짜깁기된 것이라는 의혹 제기를 받았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청문회 내내 논문 표절 논란을 해명해야 했다.

2016년 후반기가 고위공직자들의 논문 표절 논란으로 시끄러웠다면 전반기에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6월 서영교 의원은 딸을 국회 인턴으로 채용했다는 ‘가족 채용’ 논란에 논문 표절 의혹까지 더해져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4월 총선을 전후해서는 의원들의 논문 표절 의혹이 줄을 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1번을 부여받아 당선된 박경미 의원의 논문,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9번으로 당선된 전희경 의원의 석사학위 논문, 함진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석사학위 논문,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석사 논문 등이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아예 ‘낙마’한 경우도 있었는데 지난해 1월에 더불어민주당이 영입 인사로 발표한 김선현 차의과대학교 교수는 논문 표절 의혹이 일자 결국 입당을 포기하고 “개인으로 돌아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모든 의혹이 1년 사이에 쏟아진 것이다. 그 이전에도 논문 표절 의혹은 사회 곳곳에서 나왔다. 2013년에는 정치인, 관료 등 공인뿐 아니라 연예인 같은 사회 유명 인사의 논문 표절 의혹도 문제가 됐다. 조선일보는 ‘죄의식 없는 표절 대한민국’이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영화배우 김혜수, 방송인 김미화 등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이 학위를 반납하고 출연하던 방송에서 하차할 정도로 반향을 일으키며 논문 표절은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퍼지게 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2년 당시 문대성 의원의 석·박사 논문 표절 논란이 있었다. 그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대학동문회, 교수단체, 시민단체까지 들고일어나 국회의원직을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아예 자리에 올랐다가 사퇴한 경우도 많다. 2007년 당시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제자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취임 56일 만에 사퇴했다.

법무부 장관에게 범법 사실이 중대한 위반인 것처럼, 교육부 장관에게 표절은 직무 특성상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위반이다. 현재 교육부 장관에 지명된 김상곤 후보자도 표절 의혹이 제기돼 주요 언론으로부터 자진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2006년에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취임하고도 논문 표절 문제로 18일 만에 낙마했다. 2010년에는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논문 표절 문제에 시달렸고, 2014년에는 김명수 교육부 장관 내정자가 논문 표절 문제로 낙마했다.

정치인, 학자, 유명인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논문 표절 논란에 시달리다 보니 표절 문제가 별 문제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논문 ‘19대 총선에서의 논문 표절 문제와 연구윤리’를 보면 2012년 제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후보자 7명이 논문 표절 의혹을 받았지만 전원 당선됐다. 문대성 당선자나 정우택 당선자는 실제 표절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각각 부산 사하갑과 청주 상당 지역구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차 교수는 논문에서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유권자들에게 연구윤리 위반 행위와 같은 도덕적 흠결은 소속 정당에 대한 일체감에 비해 크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애초에 19대 총선이 상호비방과 흑색선전으로 매우 혼탁해져 있던 상황이고 유권자들은 인물이나 능력보다 소속 정당을 위주로 후보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논문 표절이란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판단할 때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됐다.

이처럼 논문 표절 문제는 일종의 의혹 제기에 그칠 뿐 경우에 따라서는 크게 확산이 되거나 없는 듯 슬쩍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어떤 교수는 표절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쳐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고 어떤 교수는 교수직까지 사퇴하기도 한다. 표절의 강도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 것이 맞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표절의 강도보다 논란의 강도가 처벌의 수위를 좌우한다.

(왼쪽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photo 성형주 조선일보 기자
(왼쪽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photo 성형주 조선일보 기자

6단어 같으면 표절?

논문 표절 논란이 한 사람의 흑역사가 되기도 하고 묻히기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표절 논란을 정확하게 판단해줄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언론보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다수의 언론보도는 표절 논란이 생기면 표절이다 아니다 몇몇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중계식 방송을 하지만 그 기준이 모호하다. 보도에 따라 인용되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표절이다 아니다가 갈리는 셈이다.

2015년 10월 교육부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해설서’라는 이름으로 표절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150쪽에 달하는 이 해설서에는 연구부정행위, 즉 표절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표절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해설해뒀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에 덧붙여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정민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연속된 6단어가 같을 경우’ 표절로 보자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미 2007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최했던 공청회에 참석해 ‘표절 판정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전화인터뷰에서 “외국 대학의 사례 중 ‘more than 4 words’, 네 단어 이상 같은 경우 표절로 간주한다는 주장을 접했고 방대한 자료를 빅데이터식으로 조사해 봤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표현이 많아 4단어로 한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져다 쓰지 않고서는 우연히 6단어가 같을 경우는 없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단어 일치’와 같은 기준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남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표절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교수로 2015년 ‘표절론’이라는 700쪽 넘는 저서를 펴낸 적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말의 경우 “단어의 의미가 문법에 따라 달라지고 띄어쓰기 문법도 다르다는 점에서 미국식 제안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남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말을 쓸 때 띄어쓰기는 때에 따라 다르게 쓰입니다. ‘판결 선고’라고 쓰기도 하지만 ‘판결선고’라고 붙여 쓰기도 합니다. 작가의 호흡에 따라 자유롭게 띄어쓰기를 하기도 하죠. 또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지식을 쓰는 경우 단어가 얼마나 중복되는지만을 가지고 표절을 논하면 논란이 생깁니다. 공학이나 자연과학에서는 실험 방법 같은 것이 선행 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기계적인 잣대로 6단어는 표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남 교수가 주장하는 기준은 문장 단위다. “원칙이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 논문을 쓸 때는 앞뒤 문맥으로 볼 때 핵심적인 문장이 아니면 출처 표시를 문장마다 일일이 적지 않고 생략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같은 출처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중문이나 복문을 써 문장을 한없이 길게 하면서 여러 문장을 혼합한 후 문장 끝에만 출처 표시를 하나 쓰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표절을 양적으로만 판단할 경우에는 짜깁기, 바꿔쓰기 같은 표절 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 특히 출처 표시와 관련해 더욱 엄격해진 요즘 표절 기준에 비춰 볼 때 단어나 문장의 연속성보다 다른 방식의 표절 검증이 필요하다.

자기표절의 문제

자기표절과 중복게재는 때로 같은 말처럼 쓰이기도 하고 다른 상황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최근 제기되고 있는 많은 논문 표절 논란이 자기표절 문제와 관련이 있을 때가 많다. 엄격하게 자기표절 문제를 다룰 때는 ‘6단어 기준’처럼 일부만 제대로 출처 표시를 하지 않을 때에도 자기표절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너무 엄격한 자기표절 기준은 학문의 독창성을 막을 수 있다. 남형두 교수의 ‘표절론’을 인용해 보자.

“표절 논의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에는 정직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발전도 있다. 그런데 정직성에만 매달려 오해가 될 만한 일은 아예 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선행 논문과 중복된 표현이나 아이디어를 써서는 안 된다고 이해한다면, 표절금지윤리를 통해 달성하려는 최종 목적인 ‘학문의 진정한 발전’을 도외시하는 결과가 된다.

자기표절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매번 이전 논문과 중복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면,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이거나, 자기 생각도 없이 여기저기서 매번 새로운 것을 말하고 써내는, 깊이가 매우 얕거나 일관성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남형두 교수는 전화인터뷰에서 자기표절을 표절로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에 대해 분명히 밝혔다. 그 기준은 ‘독창성’이다. “얼마나 같은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부분, 즉 새롭게 추가된 부분이 해당 학문 분야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봐야 합니다. 몇 퍼센트 이상 같으면 자기표절이 되고 그 이하면 자기표절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학자는 자신이 쌓아온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조금씩 발전해간다. 만약 자기표절 문제가 중복되는 단어의 수에만 집중해 기존의 학문적 성과를 이용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면 발전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기표절의 경우 전문가 집단이 평가하는 독창성의 문제에 기준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연구윤리정보센터’라는 것이 있다. 연구 윤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며 표절기준 등을 재정립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의 초대 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도 표절을 판단하는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양적으로, 몇 퍼센트가 같은지만을 따지다 보면 연구 독창성이 저해되고 표절 결과에 대해 이견이 생깁니다. 그것보다는 독자적 연구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느냐, 논문의 핵심이 남의 것이냐 내 것이냐를 판단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지식은 길게 가져와도 됩니다. 논문에서 중요한 부분이 내 것이 아니라면 그게 표절입니다.”

이 이야기는 표절의 원래 정의에도 부합하는 얘기다. 아주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무엇을 표절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표절은 출처를 표시하지 않거나 무단으로 도용해 남의 것을 ‘내 것인 것처럼’ 하는 행위를 말한다. ‘내 것인 것처럼’ 한다는 부분이 중요하다. 남형두 교수는 ‘표절론’에서 표절은 저작권 침해 문제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허락을 받지 않고 불법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영화 파일을 공유했다고 해 보자. 그 영화가 자신의 것인 것처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절은 아니고,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본다. 저작권 침해는 상당 부분 동의를 구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표절은 원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동의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남의 것을 내 것처럼 했느냐, 혹은 예전의 자기 것을 새로운 것처럼 했느냐가 중요하다. 참고하려는 논문 저자의 동의를 받고서는 출처 표시를 하지 않고 그대로 쓰면 표절이 된다. 표절은 동의를 받든 받지 않았든 간에 상관없이 표절의 피해가 발생했느냐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

표절 논문의 피해자는 원래 논문의 저자뿐 아니라 새로운 논문을 읽는 독자, 학계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인재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출처를 밝히라는 얘기는 기계적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남의, 혹은 예전 자신의 연구 결과를 가져오면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내가 새롭게 독창적으로 무엇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연구윤리를 지키자는 얘기를 하며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걸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과 자신의 저작물을 돌이켜보고 점검해 보는 계기로 삼으라고 합니다.”

피해를 따져야 하는 표절 판단은 어렵다. 단순히 몇 단어, 몇 문장이 같다고 표절이라고 한다면 표절을 판단하는 일이 어려울 리 없다. 그러나 논문의 독창성, 표절 피해 같은 것은 객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표절은 학자로서의 인생을 끝낼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표절의 피해는 원래 논문 저자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독자, 같은 학문 분야의 학자까지 매우 넓게 확산된다. 이런 중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표절 논란은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제기해 짧은 기간 내에 결론 지으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사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독일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아네테 샤반(왼쪽)은 메르켈 총리의 심복으로 알려졌지만 논문 표절 문제로 사퇴했다. ⓒphoto 뉴시스
독일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아네테 샤반(왼쪽)은 메르켈 총리의 심복으로 알려졌지만 논문 표절 문제로 사퇴했다. ⓒphoto 뉴시스

검증에는 시효가 없지만 신중하게

남형두 교수는 “전문가 집단에 맡겨야 한다”고 했고, 이정민 교수는 “법원이나 학계 같은 중립적이고 존중할 수 있는 기관에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연구진실성위원회를 갖춰 표절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구윤리정보센터에 따르면 2016년 9월 30일 기준으로 전국 201개 대학 중 189개 대학에 연구윤리지침이 마련돼 있고 연구윤리 관련 부서는 131개 대학에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교육부가 제정한 연구윤리지침에 따르면 각 대학의 조사위원회는 해당 학문 분야의 외부 전문가를 30% 이상, 해당 연구 분야 전문가를 50% 이상 구성해야 한다. 이 위원회에서는 표절 의혹이 제기된 논문의 단어와 문장 수뿐 아니라 독창성, 피해의 정도, 논문으로 취한 부당한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표절 판단을 내린다. 선진국 대학에서는 1년 넘게 검증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만약 고위공직자의 표절 문제가 제기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남형두 교수는 “신속하게 인사를 해야 하는데 표절 문제를 검증한다고 시간을 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독일의 사례를 소개했다.

2013년 2월 독일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아네테 샤반은 1980년 자신이 독일 뒤셀도르프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이라는 판정을 받고 결국 사퇴했다. 샤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문제가 제기된 것은 2012년 5월, 9개월 만의 일이었다. 남 교수는 “표절로 판정되면 책임을 지는 것으로 하되 인사는 신속하게 진행하면서 표절에 대한 판정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방향이 옳다”고 말했다. 단 표절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한다.

샤반의 사례처럼 표절 논문은 30년이 지나서도 발각될 수 있다. 표절로 얻은 부당한 이익과 표절 때문에 발생한 피해에는 시효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 기준으로만 표절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국시민윤리학회 회장을 지낸 차재권 동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문장을 인용하더라도 반드시 출처를 밝히도록 하는 지금의 표절 기준을 20년 전, 30년 전에 그대로 가져다 댈 수는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남형두 교수도 “표절에는 검증 시효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점이 다른 기준으로 검증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당시의 연구 윤리 수준과 현재까지 지속되는 피해와 이득의 정도에 따라 경중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표절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논문 표절 의혹이 일던 2006년부터의 일이다. 이후 2007년 교육부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마련했다. 교육부의 지침이 나온 후의 논문에 대해서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중한 잣대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기준에서 보면 최근 불거진 두 가지 표절 논란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하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문제다. 30여년 전의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점에서 강 장관의 표절 문제는 그 당시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참여한 적 있었던 한 사회과학대학 교수는 “시간을 들여 논문을 검토해 봐야겠지만 언론에 제기된 것만으로는 강 장관의 논문이 표절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표절 의혹이 불거진 부분이 선행연구를 참고하고 기존 이론을 설명하는 앞부분에서 제기된 것을 볼 때 출처 표시가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논문의 성과와 독창성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모 교수의 경우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전화인터뷰에서 “표절 의혹이 제기된 박 교수의 논문 중에는 5년, 10년 전의 논문이 대다수다. 표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연구윤리 교육을 받은 교수들이 많아질 무렵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표절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은 있다. 표절은 우선 ‘남의 것을 내 것인 것처럼’ ‘예전 것을 새로운 것처럼’ 하여 별도의 표기 없이 가져다 썼을 때, 그리고 그 가져다 쓴 부분이 연구의 독창성과 성과를 해치는 부분일 때 심각하게 다뤄져야 하는 문제다. 그 피해는 학자 본인뿐 아니라 학계 전반에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표절 검증에는 시효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누구나 의혹을 제기할 수 있고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다. 표절을 어떻게 판단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시점이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