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일본 아사히신문에는 ‘김정은, 미국 압력 지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리던 시기에 북한 재외공관에 긴급 지령문을 보냈다는 내용의 보도다. 긴급 지령문에는 북한의 핵 포기가 불가능하다고 미국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라는 지시와 함께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지령문을 통해 김정은은 “문재인 정권이 계속되는 기간은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도 한 것으로 보도됐다.

북한이 북·미 평화협정을 주장한 것은 오래된 얘기다. 1994년 4월 28일 북한 외교부는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제의하며 미국에 대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2015년에는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10월 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미가 낡은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새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월 18일에는 외무성 성명을 통해 “조선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자”고 주장했다. 이후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을 하기 직전에도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가 있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노무현·정동영·이해찬·이재명도 주장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북·미 평화협정 체결은 그동안 우리 내부에서도 동조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대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계속돼왔다.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에 대한 언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된 2000년 이후의 일이다. 2005년 9·19 합의에는 “넷째,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 때는 평화협정에 대한 언급이 더욱 구체화됐다.

2007년 7월 1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3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 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조속히 달성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10월 4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평화협정이 화두에 올랐다. 공개된 대화록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조선전쟁에 관련 있는 3자나 4자가 모여 종전선언을 한 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완전히 바꾸는 게 어떻겠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10·4 공동선언에 이런 내용이 포함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평화협정에 대해 꾸준히 강조해왔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여러 차례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반도 평화협정 추진을 위한 정당연석회의’를 정식으로 제안했다. 대선 예비후보로 나섰던 이해찬 전 총리도 “현재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고 또 평화협정으로 바꾸면 안보위협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18대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에도 여러 번 평화협정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로서 대북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남북 대결구도를 해소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이번 대선에서도 나왔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발언에서도 평화협정 전환 주장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시장은 지난 2월 16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협정 전환 요구는 종종 국가보안법 위반 등 국가 안보 차원에서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2014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강령에도 평화협정 전환 요구가 있었다. 통합진보당 강령 44번째 항목을 보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 이와 연동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종속적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하여 동북아 다자평화협력체제로 전환한다”는 강령이 있다.

2015년 3월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는 매달 열리는 ‘평화협정시민토론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김씨가 매월 토론회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북한의 주장과 거의 유사하다고 판단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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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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