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55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서울세종고속도로를 신설하려는 목적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교통난 해소에 있다. 중앙부처 실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들은 서울에 있는 청와대와 국회에 불려다니느라 얼굴 볼 틈이 없다. 세종시 관가에서는 우두머리가 없는 소위 ‘무두절(無頭節)’이 계속되면서 행정품질 저하는 물론 공직기강 해이까지 염려되는 형편이다. 정부세종청사를 찾는 민원인들도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재정여건이 열악하다며 부자 증세(增稅)를 외치는 마당에 7조550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가 걸림돌이다. 이에 고속철 세종역(驛) 신설이 서울세종고속도로의 대안으로 떠오른다. 호남고속철이 관통하는 세종시 금남면 발산리에 역사(驛舍) 하나만 신설하면 세종시의 불편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어서다. 세종역 신설은 세종시를 지역구로 하는 이해찬 의원(7선·전 국무총리)의 총선 공약이기도 하다. 당시 이해찬 의원 측은 “최대 500억원 정도면 간이역 형태로 세종역을 신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비교적 최근에 신설된 경기도 평택시 지제역 건설에 543억원, 충남 공주시 공주역에 185억원이 들었으니 대략 계산이 맞는 셈이다.

세종역의 경우 부설된 호남고속철 세종시 통과 구간 아래에 선하(線下)역사 하나만을 신설하는 것이라 토지보상에 따른 비용부담이 거의 없다. 총사업비 7조5500억원 가운데 1조3200억원이 토지보상비로 풀릴 예정인 서울세종고속도로에 비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서울~세종 거리를 45분대로 줄일 수 있다. KTX를 이용해 서울역이나 용산역은 물론 지난해 12월 수도권고속철 개통으로 SRT를 이용해 강남에 있는 수서역으로도 접근이 가능해졌다. 물론 세종역 신설비용 500억원도 크다면 큰 금액이지만, 서울세종고속도로의 총사업비(7조5500억원)에 비하면 채 1%가 안 되는 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종역 신설 방안은 지난 5월 한국철도시설공단(KR)이 서현기술단에 의뢰해 ‘예비타당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 ‘경제성 없음’ 결론이 내려져 일단 제동이 걸려 있는 상태다. 당시 조사 결과 세종역의 비용대비편익(B/C)은 0.59가 나왔다. B/C 평가결과가 1 이상 나와야 경제성이 있다고 얘기된다.

이는 세종역 예정지인 세종시 금남면 발산리에서 인근 고속철역인 오송역(충북 청주시), 공주역(충남 공주시)이 각각 22㎞ 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13년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고속철 적정 역간거리로 제시한 57.1㎞에 현저히 못 미치는 수치다.

고속철 적정 역간거리 57.1㎞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밀집해, 전통적으로 50~100리(20~40㎞) 거리를 두고 도시가 형성된 한국적 실상에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힘든 목표다.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에만 고속철을 정차할 경우 적정 역간거리 달성이 가능하지만, 지자체에서 빗발치는 고속철 정차 요구에 따라 적정 역간거리 57.1㎞는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다. 경전선 KTX 고속철이 투입되는 경남 창원시 창원역~마산역 구간은 불과 3.6㎞, 4분 만에 고속철이 선다. 적정 역간거리를 고수하려다 보니 허허벌판이나 두메산골에 고속철역을 만드는 코미디도 벌어진다. 산속에 들어선 공주역이 대표적 사례다. 오송역과 공주역의 역간거리도 44㎞에 불과해, 고속철 적정 역간거리로 밝힌 57.1㎞에 미달한다.

이런 반성을 토대로 최근에는 적정 역간거리보다는 수요에 기반해 탄력적으로 고속철을 운행하는 것으로 바뀌는 추세다. 코레일이 최근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 일부 고속열차를 불과 3.2㎞ 떨어진 용산역에 세우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오송역 반발 무서워서?

세종역 신설의 더 큰 걸림돌은 현재 세종시의 관문역으로 쓰이는 오송역의 강한 반발이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오송역은 고속철을 이용하는 공무원과 민원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역이다. 하지만 오송역에서 정부세종청사까지 거리는 18㎞, 시간은 20분가량 걸리는 데 반해 택시비는 미터요금으로 2만원가량 나온다. 서울~오송 간 KTX 일반석 요금(1만8500원), 수서~오송 간 SRT 일반석 요금(1만5200원)보다 비싸다. 택시 미터요금에 지역(농촌)할증(35%)과 시경계할증(20%)이 복합적용되기 때문이다. 반면 세종역 예정지인 세종시 금남면 발산리에서 정부세종청사까지는 6㎞, 세종시청까지는 4㎞ 거리다. 이해찬 의원 측은 “BRT(간선급행버스체계)로는 10분 만에 정부세종청사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충북도와 청주시는 세종역이 신설될 경우 오송역 이용객이 급감해 열차 편수가 줄면서 경부고속철과 호남고속철의 분기역으로서 오송역의 위상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오송역이 있는 청주시 흥덕구를 지역구로 하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세종시와 인접한 청주 흥덕구민의 입장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세종역 공약은 국가균형발전에 위배되며 충청인을 분열할 뿐”이라고 지난 총선 때 밝힌 바 있다. 같은 정당, 내각 안에서도 지역구가 어디냐에 따라 세종역을 둘러싼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셈이다. 최근 청주시는 세종역 신설 저지를 위해 별도 택시요금표를 만들고 오송역 명칭변경 작업도 추진 중이다. 이해찬 의원실의 관계자는 “공약으로 제시한 만큼 향후에도 계속 얘기해 나갈 것”이라며 “언제 될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세종시의 교통수요를 서울세종고속도로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과도한 도로수송분담률을 낮추려는 그간의 정책적 노력과도 배치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도로수송분담률은 87.6%에 달한다. 철도(4.1%)는 지하철(8.1%)까지 합쳐도 12.2%에 그친다. 교통평론가 한우진씨는 “개인적으로는 간이승강장 식으로 역사 건설비를 최저로 줄여서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며 “세종역은 세종뿐만 아니라 대전 유성 쪽까지 커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석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 입장에서 무턱대고 고속도로를 늘려 자동차 통행을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속도로 건설과 확장에는 철도에 비해 몇 배의 부지와 토지보상비가 필요하다.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자동차 통행을 장려하는 것은 미세먼지 절감 노력과도 배치된다. 미세먼지를 줄이자고 멀쩡한 석탄화력발전소마저 폐쇄하면서 고속도로를 신설하는 오락가락 행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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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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