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72호] 2017.08.28

北美 평화협정, 판도라 상자 열렸나

정장열  부장대우 jrchung@chosun.com 

▲ 지난 8월 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8·15 범국민대회 참가자가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철수’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계기로 봇물 터지듯 한 최근의 반미 시위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호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미국을 향해 “전쟁광”이라고 비판하면서 한편으론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6·25 정전협정을 대치할 평화협정 체결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최종 해법이라는 인식을 내보이고 있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은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 정권과 좌파 종북단체의 단골 요구사항이었지만 현 국면에서는 이전과는 의미와 무게가 달라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5년부터 민주평통 통일정책분과위원장을 맡아온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을 한쪽 당사자로 삼는 평화협정은 우리 사회에서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었고 보수 진영에서는 기피사항이었는데 현 정부가 평화협정을 거론하면서 공론화의 대상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지적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6일 독일 베를린 퀘르버 재단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
   
   물론 대통령이 언급한 ‘한반도 평화협정’은 ‘관련국’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북한 정권이 주장해온 북·미 양자 간 평화협정과는 달리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형태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정부가 평화협정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평화협정 공론화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지적했다.
   
   평화협정은 6·25 종전 당사자인 미국에서도 최근 백가쟁명식으로 터져나오는 ‘북한 해법’ 중 하나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16일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이그나티어스는 ‘북한과의 항구적 협정 모습’이라는 칼럼에서 “북한 수수께끼에 대한 한 접근은 평화협정의 가능성”이라며 “정전협정은 최종적인 평화 해결이 이뤄질 때까지 적대 행위의 중단만을 명시했다. 따라서 미 관리들은 항구적 협정에 이를 협상의 길을 숙고하면서 몇 가지 미국의 기본적 입장에 대한 신호를 보냈다”고 썼다. 그에 따르면 그동안 미국이 보낸 신호는 ‘미국은 북한 정권을 전복하지 않는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안전을 보장한다’ ‘미국은 통일돼 부활하는 한반도를 두려워하는 중국과 일본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반도 통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평화협정이 지속가능한 것으로 입증되면 주한미군의 미래를 놓고 논의할 용의가 있다’ 등이다. 이그나티어스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첫 3가지 보장을 이미 공개적으로 밝혔다”며 “하지만 마지막 주한미군 문제는 가장 민감하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북한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군비증강을 억제할 핵심적인 안정세력이라고 모든 당사자가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평화협정 거론은 처음
   
   이 칼럼에서 가장 민감한 선택지로 지목된 ‘주한미군의 미래’도 최근 경질된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발언 등을 통해 금기(禁忌)의 봉인이 해제된 느낌이다. 김영수 교수는 “북·미 평화협정 공론화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면 이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 불가’라는 그간의 상수도 ‘철수 검토 가능’이라는 변수로 대치되는 국면”이라며 “상황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 부분 철수 등의 방안이 협상테이블에 올라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평화협정은 결국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옵션일까. 이와 관련해 당장의 관심사는 미국과 북한이 다시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지난 7월 28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4형을 기습 발사한 후 전개된 국면을 보면 미국과 북한은 말로는 전쟁 일보직전까지 돌입한 상황이다. 괌 포위 사격 위협을 가했던 북한은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기간에도 “무자비한 보복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괌 미사일 위협 영상을 공개하는 등 위협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미국도 미군 핵심 수뇌부인 태평양사령관, 전략사령관, 미사일방어청장이 함께 날아와 “북한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모든 미군 자산을 한반도에 제공할 것”이라며 전쟁 불사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미국과 북한의 강한 대치 국면이 이어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화 재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작년에 북한은 최대 명절인 건국절 다음날인 9월 10일 5차 핵실험을 강행했는데 만약 북한이 을지프리덤가디언 기간과 9월 9일 건국절 전후까지 큰 도발을 감행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이후 미·북 간에 극적인 대화 국면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영수 교수도 “미국이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규모를 종전보다 축소한 것은 북한에 분명 메시지를 보낸 셈”이라며 “북한도 을지훈련 기간 도발을 하더라도 단기 미사일 발사 정도에 그치고 이후 대화 7, 강경 3의 국면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올 하반기 미·북 대화 재개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 ICBM의 수준이 생각보다 빨리 진화해 이를 어떻게든 틀어막아야 할 입장이다. 북한으로서도 지금 정도면 못 이기는 척 대화에 나서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 실제 도입돼 중국이 본격적으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면 견딜 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시간 여유가 많지 않고 북한은 본격적인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협상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인 지난 6월 25일 경기 의정부 미군 2사단·한미연합사단을 방문, 첨단무기에 대한 미군의 설명을 듣고 있다. photo 연합

   미·북회담 파탄의 역사
   
   전문가들은 만약 미국과 북한이 이번에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는다면 일단 북한 핵 동결을 놓고 지루한 입씨름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한 교수는 “미국은 비핵화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높지만 현실적으로는 핵동결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문제는 북한의 요구조건”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가해지는 제재가 북한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세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제재 완화를 협상 카드로 제시할 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미국과 마주 앉을 경우 본격적인 북·미 평화협정 카드를 들고나올 수 있고, 자신들이 선호해온 이른바 ‘살라미 전술’을 통해 요구 조건을 단계별로 높여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핵실험 동결, 영변 핵 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재개, 영변 핵 시설 이외의 지역도 포함한 사찰 허용 등에 따라 북한이 요구하는 반대급부가 점차 높아질 수 있다”며 “한·미 군사훈련 축소와 중단부터 상호불가침조약, 북·미 평화협정까지 다 상상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 국면에서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 북한의 목표는 체제보장일 텐데 1990년대 중반 북핵 위기 이후 양국의 협상 경험에 비춰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지금은 핵을 보유한 북한이 과거에 비해 협상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포괄적 합의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미국과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처음 불거진 북핵 위기 이후 여러 차례 마주 앉아 위기 타결을 위한 합의문을 도출해냈다가도 서로 등을 돌리는 일을 반복해왔다. 예컨대 1차 핵위기 타결을 위한 1994년 제네바합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대체에너지와 경수로 건설을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2년 미국의 부시 정권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문제 삼으면서 2차 핵위기가 시작됐다. 당시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을 추방하고 핵비확산기구(NPT)를 탈퇴하는 강수를 뒀다. 2차 핵위기는 2003년 4월 탄생한 6자회담 틀 안에서 해소되는 듯했다. 미국과 북한은 2005년 6자회담 틀 안에서 합의된 9·19 공동성명에서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터지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재개됐고, 이후 미국과 북한은 다시 마주 앉아 2007년 2·13 합의를 도출해냈다. 이 합의에서 북한은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 핵프로그램 신고 등에 합의했고 이에 상응하는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을 약속받았다. 북한은 그해 6월 외국 언론인과 외교관들까지 불러 영변원자력 연구소의 상징인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도 보여줬다. 하지만 북한은 2008년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을 빌미로 영변 핵시설 원상 복구 방침을 밝혔고, 결국 2009년 4월 6자회담 불참을 선언했다.
   
   이 같은 미·북 회담 파탄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은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중요한 쟁점이기도 하다. 보수 진영은 북한이 미·북 회담을 시간 벌기로 이용한 것일 뿐 처음부터 핵 포기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 진영은 핵 포기를 약속했던 북한의 선의(善意)를 믿는 쪽이다. 진보 진영은 체제보장과 미·북 수교에 처음 접근했던 9·19 공동성명이 전쟁을 배제할 경우 지금도 북핵 위기 해결의 교과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이 고도화된 것은 1차적으로 북한 책임이지만 2차적으로 미국 책임도 적지 않다”며 “미국이 합의한 대로 이행했으면 북한이 지금의 핵을 안 가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대북 정책을 담당했던 인사들은 9·19 공동성명 이후 불거진 방코델타아시아 사건도 미국 재무부의 네오콘(neocon)들이 대북 유화책에 반발해서 터뜨린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만약 미국과 북한이 이번에 다시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평화협정의 길로 들어서는 걸까. 상당수 전문가들은 미·북 회담 재개와 평화협정 체결 간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한다. 일단 우리 사회의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미·북 평화협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최근 ‘북핵 위기가 고조된 한반도에서 평화협정이 가능한가?’라는 글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정상적인 평화협정은 전쟁에서 승패가 난 뒤 패전국과 승전국 사이에서 이뤄진다.… 한반도에선 평화가 정착되기는커녕 북(北)의 핵무장과 핵위협으로 위기가 고조되었는데, 평화협정 이야기가 나온다. 분쟁 그 자체를 해결하지 않고 평화협정을 맺는 것은 원수지간의 남녀(男女)가 화해하지 않고 결혼하는 격이다.”
   
   
   ‘코리아 패싱’을 막아라
   
   조 대표는 이 글에서 “북한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평화 기구를 구축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미·한 동맹을 해체시키기 위해 평화협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수미 테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국담당 보좌관의 지난 2월 미 하원 외교위 청문회 서면 증언 내용을 소개하면서 “1953년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된다면 이 평화협정에 북한의 핵 개발 포기 또는 한반도 비핵화가 명시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한미군 철수 또는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민족자결권 존중 등이 포함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남한 공산화를 민족 문제로 공식화하여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독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교관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도 “이번에 미·북이 마주 앉을 경우 북한이 상호불가침조약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이것도 결국 한·미연합사 해체, 한·미동맹 와해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며 “김대중 정권 당시 우리와 낮은 단계 연방제에 합의했던 북한이 통일전선전술을 포기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미국이 북한과 단독으로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는 당사자가 될 자격이 있느냐는 국제법상의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조갑제 대표의 위 글에 소개된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의 2007년 논문에는 이런 지적이 있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대해 단독으로 전쟁선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 의회가 북·미 평화협정을 비준할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 최 원장은 휴전협상 서명 당사자가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 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이 평화협정의 ‘코리아 패싱’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전협정은 군사적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한 조약이며 정치적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협정과는 다르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정전협정 제4조 60항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쌍방 관계당사국 정부에 정치회담의 개최를 권고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유엔총회결의(1953. 8. 28)에 의해 16개 참전국, 한국과 북한, 중국, 소련이 정치회담의 당사국으로 정해졌으며 실제로 정치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네바 정치회담(1954. 4. 11~6. 15)이 개최되었다.”
   
   김성한 교수도 “전통적으로 북한은 6·25를 조·미(朝美) 양자 전쟁으로 보면서 북·미 평화협정의 정당성을 강조하지만 6·25는 한국과 중국도 교전 당사자로 참가한 전쟁”이라며 “북·미 평화협정이 ‘코리아 패싱’으로 흘러가도록 놔둬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3자든, 4자든 우리가 평화협정 논의에 참가할 수 있도록 카운터오퍼(counter-offer)를 준비해야 한다. 북·미 평화협정을 용인한다는 것은 단순한 국격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미국의 괴뢰정권이라는 북한 주장을 용인하는 것으로 이는 국가 정통성이 걸린 문제다.”
   
   만약 평화협정을 논의하기 위한 길로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평화협정 체결까지는 현실적인 난제들이 수두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수 교수는 대표적인 난제로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꼽는다. “북한은 평화협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었다고 주장해온 NLL부터 휴전선에 맞춰 끌어내리자고 할 것이다. 이 경우 서해 5도 등 우리 섬들이 북한의 영해에 속하게 된다. 북한은 우리 섬에 접근가능하도록 수로(水路)를 내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현실을 우리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나.”
   
   김 교수는 “NLL 문제 이외에도 이산가족 문제, 북한의 납치 문제와 테러 등 ‘평화’로 가기 위해 협상테이블 위에 올려야 할 문제들이 하나둘이 아니다”며 “북·미 협상과 남·북 협상을 순차적으로 열든 동시에 열든 우리를 건너뛰고 평화협정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했다.
   
   평화협정 논의의 결정적 걸림돌로는 결국 주한미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이 과거 김대중 정권 시절 남북 접촉 과정에서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 주둔 용인’ ‘주한미군의 평화유지군으로의 역할 변화 기대’ 등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융통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북한이 평화협정 논의가 시작될 경우 이 문제를 ‘패싱’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예상하듯이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물고늘어지면서 한·미동맹의 약한 고리로 만들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으로서도 현재로서는 주한미군 철수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관옥 교수는 “주한미군은 단순히 북한과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 이익이 걸린 중국 견제용이라는 의미가 크다”며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기지를 보유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이점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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