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73호] 2017.09.04

‘이재용 재판’ 그 후 삼성

경제학자 5인, 삼성의 미래를 말하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일인 지난 8월 25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삼성전자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지난 8월 24일 세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이 열리기 전날이었다. 미국의 CNN, 카타르의 알자지라, 일본의 아사히신문사로부터 걸려온 인터뷰 요청 전화였다. 외신들은 이 교수에게 “이재용 재판 결과가 한국 사회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 말해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직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미국·일본·카타르 언론은 이미 이재용 부회장의 실형(實刑)을 예상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당시 상황에 대해 이 교수는 “1심 재판이 열리기 하루 전날이었지만 외신들은 이미 이재용 부회장의 실형을 전제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면서 “3개의 외신들은 한결같이 국민 여론, 정부의 입김 등의 주관적인 요소들이 재판에 개입되고 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이미 반재벌 정서가 국민 여론이 돼버린 상황에서 공정한 재판결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8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은 내외신의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오후 1시40분쯤 정장 차림에 서류봉투를 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호송차에서 내리자 일제히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부회장은 아무 말 없이 서울중앙지법 417호로 발길을 옮겼다.
   
   
   미국 월가의 시각
   
   오후 2시30분, 417호 대법정에서는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세기의 재판’이 열렸다. 글로벌기업 삼성그룹의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재판 결과에 국민들은 물론 내외신들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과 횡령 등 5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204억원)은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불법 승마지원액 중 실제 집행되지 않은 부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인정한 뇌물은 영재센터 지원액 16억원과 승마지원액 중 72억원을 합한 88억여원이다. 재판부는 이 같은 지원을 묵시적 청탁으로 판단했다. 특검이 기소한 내용과 비교할 때 전체에서 약 20%만 실제 뇌물로 인정한 셈이다. 앞서 특검은 삼성의 정유라에 대한 불법 승마지원액 213억원(실제 지급액 78억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 지원액 16억원 등 433억여원을 이 부회장의 뇌물혐의 액수로 봤다.
   
   세계 주요 외신들은 실시간으로 이 부회장의 법원 판결 내용을 속보로 쏟아냈다. CNN은 “이번 유죄 판결은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이자 한국 최대 재벌 그룹인 삼성에 대한 일격”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CCTV는 “한국인들은 이번 재판이 한국 재벌과 정치권력의 결탁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과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기업 삼성을 이끄는 이재용 부회장의 실형 선고에 대해 걱정하는 건 외신뿐만이 아니었다.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가 가져올 경제적 파장에 대해서 걱정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많다. 다만 이번 이재용 부회장의 유죄 판결을 두고 소신 있게 입장을 밝힌 경제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20명이 넘는 경제 전문가들과 접촉했지만 상당수가 이와 관련 이름을 걸고 이야기 하기를 꺼렸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결과가 불러올 경제적 파장에 대해 소신을 밝힌 이는 경제·경영학 교수 5명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경제 전문가는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나다 순)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부회장의 형량이 조금 과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 국가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선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다. 대만은 중소기업 중심 경제체제를 구축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만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인 삼성에 대해선 대한민국의 위상이나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조심스러운 접근과 판결이 필요하다고 본다.
   
   5년 실형 선고는 조금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윤 교수의 설명대로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액이 전년동기 대비 19.76% 증가해 역대 최고인 61조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4조7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2.72%, 전분기 대비 61.71% 증가했다. 특히 올해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에서만 매출 17조5800억원, 영업이익 8조300억원을 기록하며 24년 동안 반도체 부동의 1위였던 인텔을 제쳤다. 이어 윤 교수는 “이재용 회장이 구속된 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사라지게 됐다”면서 “거대 그룹을 움직이는 컨트롤타워도 사라진 상태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까지 길어지면 삼성의 의사결정 구조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1심 재판 결과와 관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지금은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다른 제조업들이 가동률 71%의 장기불황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삼성은 반도체 수출과 투자로 성장률마저 상향조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이어 “전 세계를 관통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향후 4~5년 이내에 집중적인 투자가 중요하다”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만약 5년간의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잃어버린 5년이란 엄청난 공백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 반도체 생산라인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16조원을 투자한 평택 반도체 생산라인은 2015년 5월 착공해 2년2개월 만에 완공했다. 부지면적만 축구장 400개 크기인 289만㎡(약 87만5000평)에 달한다. 건설 현장에 투입된 일평균 근로자는 1만2000여명에 이른다.
   
   오 교수는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공장이 있는 텍사스 오스틴은 공장 주변 도로명을 ‘삼성로’로 명명했고, 베트남은 삼성전자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50년간이라는 파격적인 법인세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이는 삼성이 전 세계적으로도 일자리 창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실형 선고 후 주가 하락
   
이병태 교수도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삼성그룹의 공(功)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자에게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경제 전문가들을 만났던 일화를 들려줬다. 이때 이 교수는 그들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 교수가 미국의 경제 전문가에게 들었던 말은 바로 “한국은 반도체 한 분야만 유명한 나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이 발언에 대해 반박을 하지 못했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조선업의 불황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더 이상 조선해양강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전 세계인에게 반도체 강국이라는 확실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던 건 삼성그룹의 역할이 컸다”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삼성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결국 1심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면서 삼성의 경영 공백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삼성주가는 연일 상승했던 게 사실이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 지난 2월 17일 전날(16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189만6400원이었으나 지난 8월 25일(종가기준) 주가는 235만1000원으로 23.97% 상승했다. 금융계열사 가운데 핵심인 삼성생명도 이 부회장의 구속 전날 대비 10.95% 올랐다. 이 정도면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이 삼성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지난 8월 25일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줄곧 내림세를 이어갔다. 8월 25일 전일 대비 1.05% 하락한 데 이어, 28일(-1.96%)과 29일(-0.04%)에도 하락 마감했다. 그러다가 8월 30일에 전일 대비 0.26% 소폭 상승했다.
   
   이에 대해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이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업은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이끌 최고경영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은 결국 삼성의 미래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실제 삼성의 초대형 M&A는 2015년 3건, 2016년 6건에 달했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전혀 없다. 조 교수는 “삼성전자는 정보기술(IT) 기업으로서 끊임없는 인수·합병(M&A)이 필요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라면서 “애플, 샤오미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삼성을 이끄는 오너의 부재는 결국 경제적인 손실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부패방지법 적용될까 우려
   
   이어 조동근 교수는 2심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의 실형이 확정되면 생길 수 있는 경제적 파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먼저, 삼성전자의 글로벌 사업이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영국·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들은 부패방지법을 시행 중인데, 제재 대상을 자국 기업에서 외국 기업으로 점점 넓히는 추세다.
   
   미국은 1977년 해외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미국 기업을 처벌하기 위해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FCPA)’을 만들었다. 이후 법을 개정하면서 미국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FCPA 적용을 받도록 했다. 조 교수는 이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미국 등 주요국이 부패방지 관련법을 근거로 삼성전자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조 교수는 일부 주주가 삼성을 상대로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을 공격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1심 결과를 앞세워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위치를 되새겨봐야 할 때”라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빈자리는 결코 다른 이가 대신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의 유죄 여부를 떠나 정경유착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지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치 권력이 너무 막강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가령 면세점 사업권도 정부가 쥐고 있고, 치킨 값을 올리고 내리는 것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정도”라면서 “기업의 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보장하지 않는 상황에선 기업들은 정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이 본보기로 재판을 받고 있을 뿐, 이는 비단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이 교수의 판단이다. 이 교수는 “이번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계기로 고질적인 정경유착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잘못된 시스템들이 개선되고, 정부는 무분별한 개입보다는 공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하는 위치로 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5명의 교수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재판과 형량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중에서 오정근·조동근 교수는 거의 비슷한 전망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은 삼성의 손실이자 국가적 손실이 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을 고려했을 때 쉽게 결론 내릴 사안은 아니어서 재판부가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고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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