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승진한 41살 이나현(가명) 부장의 귀에 자신과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귀띔해준 얘기다.

“후배 말에 따르면 제가 승진할 무렵 몇몇 동기가 승진에서 누락된 경우가 있었는데 그 친구들을 제치고 제가 승진한 이유가 모 임원의 ‘세컨드’ 노릇을 했기 때문이래요. 아예 모 임원과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소문도 있다고 전해 들었어요.”

이씨는 ‘헛소문’의 원인으로 자신이 미혼이라는 점을 들었다. “억울한 마음에 다른 회사 다니는 친구에게 털어놨더니 친구 회사에도 비슷한 소문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른 나이에 임원으로 승진한 미혼 선배가 사실은 어떤 임원의 애인이라느니, 어떤 임원에게 꼬리쳤다느니 하는 소문이 있대요.”

처음에는 이씨도 소문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씨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여러 임원 사이를 줄타기 하기 위해서’라거나 ‘이미 너무 문란해서 결혼할 수 없다’는 식의 소문까지 도는 것을 알고 “포기했다”고 말했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 네 명이서 한두 달에 한 번 만나 모임을 갖거든요.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하니 ‘결혼하지 않은 우리가 잘못’이라는 반응도 나왔어요.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멍에 같은 거라는 운명론적인 말을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이씨의 사례는 2017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국의 30~40대 미혼여성 인구는 2015년 기준 138만명을 넘겼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 결과를 보면 30대 여성 3명 중 1명, 40대 여성 10명 중 1명은 미혼이다. 10년 사이에 미혼여성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났지만 우리 사회의 미혼여성에 대한 인식은 별달리 변한 것이 없다. 미혼여성의 삶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만 있지, 이들의 삶을 제대로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미혼여성에 대한 무관심 혹은 편견에는 ‘미혼(未婚)’이라는 단어의 숨은 의미가 작용을 한다. 즉 여자는 혼인을 함으로써 정상적이고 완결된 상태가 되며, 결혼하지 않은 상태는 미완성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요즘에는 미혼 대신 ‘비혼(非婚)’이라는 말을 더러 쓰기도 한다. 결혼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를 앞세워 주체적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나현씨는 “미혼이나 비혼 어느 단어도 자신을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씨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프리랜서 플로리스트인 홍준경씨는 비혼이라는 단어가 주로 쓰이는 상황을 두고 “신기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제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이에요. 사람들은 미혼여성에게 미혼인지, 비혼인지 딱 잘라 말해주기를 원해요. 그런데 사람 삶이 어느 한쪽에 고정돼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혼을 생각할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난 적도 있었지만 기회가 맞지 않아 결혼하지 않았고, 일하고 지내다 보니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살고 있는 거거든요. 앞으로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꼭 해야 하나요.”

사회에서는 미혼여성을 얼른 결혼시키고 싶어한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해 올해부터 시행되는 ‘혼인세액공제’는 신혼부부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줘 결혼하는 사람을 늘리고자 하는 목적에서 신설된 정책이다. 올해 초에는 한 국책연구기관에서 저출산의 원인은 낮은 혼인율에 있다면서 고학력 여성들의 ‘눈’을 낮춰 결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내놨다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통계 결과를 보면 처음부터 ‘비혼’을 선택한 미혼여성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강유진 총신대 아동학과 교수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조사’를 분석해본 결과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결혼하지 않음을 선택한 여성은 전체 미혼여성의 26%에 불과했다. 결혼에 대한 인식도 ‘해야 한다’ ‘하지 않는다’로 딱 잘라 나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응답한 30~40대 미혼여성은 전체의 60%를 웃돈다.

정리해 보자면 30~40대 미혼여성이 늘어나는 것은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삶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순서, 과정 같은 것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혼여성의 미혼 상태를 ‘미완성’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결혼하지 못한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특히 그렇다.

회사에서 헛소문이 도는 이나현씨의 사례도 그중 하나다. 이씨보다 2살 많은 43살 미혼여성 양주은씨는 부모님으로부터 “혹시 부모에게도 밝히기 어려운 남자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37살 정정민(가명)씨는 이미 결혼한 친구들과 결혼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들이 정씨가 20대 초반에 낙태한 사실을 언급하며 “‘하자’가 있으니 결혼하기 힘든 것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통에 크게 다툰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정씨는 “미혼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흠집 잡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곤 한다”고 말했다.

42살 미혼여성 이신지씨는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기로 소문난 인물이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이씨는 평소에 남자 동료와 단둘이서 만나는 일이 없다. 회식을 하면서도 혹시나 소문에 휩싸일까봐 가급적 사무적인 태도로 임하곤 했다. 남자 상사, 동료와 거리를 두다 보니 직장생활 10년 사이 이씨는 ‘워커홀릭’ ‘얼음공주’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직원들끼리 모여 앉아 간식 먹는 시간에 한 상사가 어린 여직원에게 ‘얼른 결혼해야지’라고 말하며 ‘안 그러면 이 주임처럼 일만 하고 사랑은 모르는 얼음공주가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처신을 잘하려고 일부러 거리 두기를 한 건데 승진에서도 계속 밀리고.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을 잘해도, 못해도 미혼여성 직장인은 ‘미혼’이라는 꼬리표를 떨쳐내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미혼’의 삶이 굴레가 될 때가 있다.

불안감·우울감 높아

그래서 미혼여성은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보건복지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자. ‘1년 유병률’이란 최근 1년 사이에 한 번 이상 병을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을 의미한다. 니코틴·알코올의존증을 제외한 정신질환에 대한 1년 유병률을 보면 미혼여성이 가장 높다. 14.7%로 7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호소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혼남성이 9.1%, 기혼여성이 7.3%, 기혼남성이 3.2%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높은 수치다.

미혼여성의 정신질환 유병률을 높이는 원인은 불안장애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독에 있다. 미혼여성의 불안장애 1년 유병률은 11.8%로 미혼남성, 기혼여성, 기혼남성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양성평등실태조사’에서도 미혼여성이 유독 우울감, 불안감을 호소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우울감이나 불안감은 미혼여성의 취약한 경제환경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미혼여성의 88.1%가 전세나 월세로 살고 있고, 150만~250만원의 월급을 받고 지낸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들 대부분(46.7%)은 노후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77.8%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미혼여성의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비율이 높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조사에 따르면 미혼남성의 인터넷 중독 율은 2.2%에 불과한데 미혼여성의 인터넷 중독 비율은 8.9%나 된다. 스마트폰 중독은 더욱 많아 기혼남성, 미혼남성이 각각 1.3%, 8.3%의 유병률을 보일 때 미혼여성의 스마트폰 중독 비율은 22.3%에 달했다.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를 내놓은 김대진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성의 스마트폰 중독 위험이 높은 이유로 “여성이 의사소통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이 강한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사회적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대개 미혼여성이 우울증과 불안장애 유병률이 높은 만큼 스마트폰 중독 비율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혼여성은 스마트폰 속 가상공간이 아닌 실제 세계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충분히 맺고 즐길 만큼 기회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미혼여성의 현재 삶의 만족도는 다른 집단에 비해 높은 편이다. 가정의 의무에서 해방돼 있고, 자아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혼여성은 모든 여성이 꿈꾸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혼여성을 두고 가해지는 사회적 편견이 이들의 만족감을 떨어트린다.

미혼여성 수는 늘어나는데 미혼여성은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사는 상태는 언젠가는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 ‘미완’의 것으로 간주된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저절로 미혼여성의 불안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소외감도 강해진다. 성미애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미혼여성이 스스로를 소외된 존재로 인식하면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심하고 국가를 불신하게 된다”며 “미혼여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고 사회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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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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