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80호] 2017.10.30

‘혁오’ 리더 오혁 최초 인터뷰 3시간

“청춘을 노래하며 세대 간 갈등을 줄여나가고 싶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014년 9월 18일, 지금까지 듣도 보지도 못했던 장르의 곡을 들고 한 인디밴드가 등장했다. 밴드 이름은 혁오. 인디밴드(indie band)란 자신이 원하는 음악만을 만들기 위하여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그룹이다. 당시 4인조 혁오의 보컬 겸 리더인 오혁은 스물한 살이었다. 그가 들고나온 노래는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위잉위잉’ ‘와리가리’…. 그가 앨범을 내놓은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셋방 보증금 1000만원 가운데 500만원을 투자했다.
   
   그의 첫 앨범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그는 기획사에서 기획된 가수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결국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앨범을 내놨다. 가요계와 방송에서는 혁오를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수많은 인디밴드처럼 혁오도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렇게 7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사이 대중은 유튜브를 통해 그의 음악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2015년 4월,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혁오를 불러냈다. 가수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 방송을 눈여겨본 MBC 김태호 PD가 다시 혁오를 ‘무한도전’에 섭외했다. 2015년 7월 MBC의 ‘무한도전’에 출연한 직후부터 혁오의 인기는 수직 상승했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팬들이 혁오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현재 혁오는 한국 가요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의 곡은 인디밴드 출신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음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 7월,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의 인기 순위를 보자. 당시 혁오는 인기 아이돌 ‘엑소’를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빅뱅’이었다.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인디밴드가 보여준 음원 성적표였다.
   
   2016년 오혁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인 ‘소녀’를 솔로로 선보여 또 한 번 큰 화제를 모았다. 이문세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이 곡은 공개 당시 멜론, 지니, 올레뮤직 등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 8곳에서 1위 자리를 싹쓸이했다. 오혁의 ‘소녀’는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서도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무려 29주간 100위권에 진입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그의 인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4월 발매한 혁오의 정규앨범 ‘23’의 ‘TOMBOY’는 Mnet ‘엠카운트다운’과 SBS ‘인기가요’에서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5월 11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혁오는 아이돌 ‘위너’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와 관련, 싱어송라이터 윤종신은 혁오를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주류와는 다른 독자적 음악을 하는 팀”이라고 평가했다.
   
   오혁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중국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지난해 중국 최대 동영상 서비스 기업 러에코(LeEco) 뮤직의 인양(尹亮) 대표는 “한국의 가수 가운데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가수가 혁오”라고 말했다. 오혁은 올해 4월 독일 패션잡지 ‘하이스노바이어티(Highsnobiety Magazine)’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이 잡지는 오혁에 대해 “새로운 물결을 대표하고, 세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혁오’의 리더 오혁과의 인터뷰 섭외는 쉽지 않았다. 8월부터 추진한 인터뷰는 10월이 돼서야 성사됐다. 그의 빼곡한 월드투어 일정 때문이었다. 밴드 혁오는 지난 5월부터 8월에 걸쳐 홍콩,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에서 단독 공연을 개최해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지난 9월에는 미주지역 6개 도시에서 공연을 마쳤다. 데뷔 3년 차 가수가 동남아가 아닌 미주와 유럽으로 월드투어 공연을 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밴드 혁오는 유럽 공연을 위해 지난 10월 26일 유럽으로 떠났다. 오혁은 월드투어 기간 중 잠시 한국에 머물 때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10월 20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혁오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나 3시간 동안 단독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에 응하며 “이렇게 내 모든 것을 얘기하는 인터뷰는 데뷔 후 최초”라고 강조했다.
   
   - 중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지금까지 내 인생의 팔 할이 중국에서의 삶이다. 태어나자마자 중국으로 건너가 열아홉 살 때까지 중국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한 선교사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베푸는 삶을 살았다. 중국에서의 삶은 풍요롭고 넉넉하지 않았지만 가족이 함께했기에 행복했다. 타국에서 느끼는 고독을 막연하게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다.”
   
   - 언제부터 뮤지션을 꿈꾸게 됐는가. “본격적으로 가수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단순히 음악이 좋았다. 나는 구속받는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음악은 자유, 그 자체였다. 중학생 시절에는 보컬 수업을 들었다. 처음에는 R&B 장르의 곡을 듣고 따라 불렀다. 흑인 솔(soul) 음악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가 인디음악으로 음악세계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곡을 만들 때도 어느 한 장르에 얽매여 작업을 하지 않는다.”
   
▲ 인터뷰하는 오혁.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혁오가 선보이는 음악 장르는 딱히 규정하기 어렵다. 그의 데뷔 앨범 ‘20’은 10대의 마지막인 열아홉 살과 스무 살 언저리에 쓴 6곡이 담겨 있다. 그래서 데뷔 앨범은 10대의 끝자락과 20대의 시작 사이에서 오는 불안함과 허무함이 뒤섞여 표현됐다. 혁오는 20대의 감정을 재해석해 새로운 목소리로 들려준다. 기성 가요와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아픈 청춘에 공감하는 척하는 기성세대의 어설픈 위로가 아니다. 그는 진짜 청춘 한복판에 서 있는 20대로서 또래의 삶에 공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간다.
   
   - 혁오는 동갑내기 친구들로 이루어졌는데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 입학하며 스무 살이 되던 해 한국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아마도 본격적인 음악 활동은 이때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엔 음악동아리 활동처럼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다. 그런데 처음 음악을 함께한 친구들은 군 입대와 학교 생활 때문에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그후 정말 음악만을 목적으로 모인 친구들과 다시 밴드를 결성하게 됐다.”
   
   - 멤버들 간의 의견 충돌은 없는가. “(활짝 웃으며) 충돌이 왜 없겠는가. 멤버들이 담당하는 악기가 각각 다르듯이 음악적 견해 또한 다 다르다. 오히려 다른 음악적 견해로 인해 다양한 의견이 많이 나온다. 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조율해서 곡을 내놓으려고 하고 있다. 일단 멤버들은 내 의견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주기로 했다. 멤버들에게 항상 감사하다.”
   
   - 밴드 이름이 ‘혁오’인데, 왜 이렇게 지었나. “(머리를 긁적이며) 원래는 내가 ‘오일머니’로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2010년 초중반에는 힙합이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각종 ○○머니가 유행할 때였다. 그래서 농반 진반으로 의견을 내놨다. 팀명을 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달을 팀명 선정에만 고민했던 것 같다. 학교 선배 4명도 같이 고민해줬는데, 답이 나오지 않자 ‘젖동냥’으로 하라고 하더라(큰소리로 웃으며). 그래서 그냥 내 이름을 걸기로 했다. 언젠가 혁오가 음악계에서 ‘대명사’로 불리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었다.”
   
   - 작업을 할 때 영감은 어떻게 얻는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나는 음악작업을 할 때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곡을 그려본다. 가장 먼저 색을 떠올린다. 어떤 색깔의 곡을 만들지가 중요하다. 색이 정해지면, 거기에 알맞은 리듬과 가사를 구성한다. 그래서 내가 영감을 얻는 방법은 모든 시각적 요소이다. 그것이 영화가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고, 그냥 풍경이 될 수 있다. 사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곡으로 만들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시각적 요소들이 내 음악적 소재이다.”
   
   - 청각이 아닌 시각적 요소에서 영감을 얻는다니 특이하다. “시각적 요소에서 영감을 얻은 많은 곡들이 있지만, 특히 소개하고 싶은 곡이 ‘공드리’다. ‘공드리’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감독 이름이다. 제목에서 눈치챘듯이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곡에 표현했다. 새벽에 뜀박질하는 불빛과 선선한 아침의 노을이 느껴졌다. 바로 곡을 써내려갔다.”
   
   - 음악적 멘토가 있는가. “나는 인디밴드를 하는 사람이라 대중적인 취향이나 대중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그래서 곡 작업을 마친 후에 타이틀 곡 선정을 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는 편이다. 특히 가수 ‘아이유’가 타이틀곡을 선정할 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아이유와는 1993년생 동갑내기로 서로 친한 친구 사이다. 가수 ‘씨엘’도 내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다면 누구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들국화’ 선배님께 많은 영향을 받았다. 들국화는 1980년대 후반의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을 이끌었다. 우리 밴드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그룹이기도 하다. 영국의 록밴드 ‘비틀스’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서 블루스, 가스펠, 재즈 등 다양한 양식을 아우르며 흑인음악의 성장을 이끈 레이 찰스 역시 많은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다.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통해 한 시대를 이끈 뮤지션들을 바라보며 많이 배우고 또 자극을 받는다.”
   
   - 베토벤은 주로 한밤중에 피아노를 치며 곡을 만들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다. 주로 언제 음악작업을 많이 하는가. “베토벤과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니 신기하다(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도 한밤중에 주로 곡을 만든다. 자정을 넘겨 새벽 3~4시까지 곡 작업에 몰두할 때가 많다. 이상하게 그 시간에 집중이 잘되더라. 바쁜 스케줄 때문에 아침이나 낮에 시간이 날 때는 피곤해서 그런지 잠이 들 때가 많다.”
   
▲ 지난 4월 오혁은 독일 패션잡지 ‘하이스노바이어티’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photo 하이스노바이어티

   - 혁오의 곡을 사랑하는 팬층의 연령대가 폭넓은 편이다. “아마도 다양한 장르를 하는 가수들과 함께 협업작업을 하는 것도 큰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인디밴드를 좋아하는 팬들은 물론 대중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까지 팬층이 두껍다. 잔잔한 분위기의 곡도 꽤 많아서 40대 이상 팬들도 많다. 아이유, 프라이머리 등 많은 가수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이문세 선배님의 ‘소녀’를 리메이크해 부르기도 했다. 특정한 장르에 얽매이려고 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하고 또 다양한 가수들과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 자신의 음악을 단어 혹은 색깔로 간결하게 표현한다면. “(한참을 생각하다가) 음, 흰색이다. 흰색이 있어야 다른 색들이 돋보이고, 또 다른 색들의 진가가 드러나지 않나. 또 어떤 음악이든 담을 수 있는 준비가 됐다는 의미도 있다.”
   
   - 밴드 혁오가 추구하는 음악적 장르는 무엇인가. “단정 지어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 음악을 그냥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표현한다.”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란 기존의 메탈적 성향을 벗어난 모든 록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다.
   
   -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꼽아달라면. “‘TOMBOY’이다. 이 곡은 나를 정말 아프고 힘들게 만들었던 곡이기도 하다. 무려 1년이 넘도록 붙들고 작업한 곡이다.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탄생한 곡은 처음이었다. 참고로 ‘위잉위잉’은 20분 만에 완성한 곡이다. 다른 곡들도 며칠 이내로 완성하는 경우가 많다. 청춘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사를 쓸 때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 많은 팬들 역시 ‘TOMBOY’를 최고의 곡으로 꼽고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사실 ‘TOMBOY’가 타이틀곡으로 선정되지 않을 뻔했다. 회사 관계자들에게 같은 앨범의 ‘가죽자켓’이란 곡의 반응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곡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이라 타이틀곡으로 선정하기엔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TOMBOY’를 타이틀곡으로 하자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 가사가 시적이고 철학적인데 책을 많이 읽는 편인가. “사실 요즘은 정말 바쁜 스케줄 탓에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하지만 학창시절 문학을 좋아해서 시와 소설은 많이 읽었다. 그때의 경험이 가사를 쓸 때 많은 도움이 된다. 독서를 많이 하지 못해도 영화, 공연 등을 보며 문화적인 활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잖아
   나는 사랑을 응원해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아아아아아
   슬픈 어른은 늘 뒷걸음만 치고
   미운 스물을 넘긴 넌 지루해 보여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니까
   우리 사랑을 응원해
   - 혁오 ‘Tomboy’ 가사 중
   
   
   오혁은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다가도 음악과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는 자신의 철학을 분명하게 밝혔다. 긴 인터뷰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중저음 목소리에 집중이 됐다. 처음 다소 경직돼 있던 그는 인터뷰 중반 무렵부터 긴장이 풀린 듯 표정이 밝아졌다. 첫 앨범의 탄생 비화부터 월드투어에서 느낀 경험담까지 그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철학과 사회현상에 대한 입장을 말하기도 했다. 그는 자유와 행복을 추구했다. 스물네 살이란 나이답지 않게 그는 생각이 깊었고 자신만의 철학이 분명했다.
   
   - 혼자 있을 때 주로 무엇을 하며 보내나. “(이 질문에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주로 영화를 본다. 내가 우울하거나 힘들 때 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섬웨어(Somewhere)’다. 한 유명 배우가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열한 살 딸과 함께 지내면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이 영화는 50번도 넘게 봤다. 영화가 엄청난 대작이어서 그만큼 본 건 아니다. 그냥 이 영화를 보면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곡이 많이 떠오르기도 했다.”
   
   - 오혁이 생각하는 청춘이란 무엇인가. “청춘은 찬란하지만 영원한 것은 아니다. 청춘의 시작이 있다면 반드시 그 끝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무모할 수 있고, 열정적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청춘이다. 하지만 청춘이 끝나간다는 것을 점점 느낄수록 어떤 기분일지 떠올려 본다. 불안할 것 같다.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청춘의 찬란하면서도 불안한 이중성을 표현한 곡이 바로 ‘TOMBOY’이다.”
   
   - 고독을 즐기는 편인가. “고독은 아이러니한 존재다. 사람이 고독해서는 안 되지만 또한 고독이 없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때때로 고독은 필요하다. 혼자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또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연애는 해보았나. 그런 경험들이 음악 속에 많이 녹아들어 있는지. “물론 연애는 해보았다. 하지만 내 곡에 사랑을 노래한 곡은 많지 않다. 우리 멤버의 연애담을 담은 곡은 있다. ‘2002 월드컵’은 멤버의 첫사랑 이야기를 담아 만든 곡이다. 내 곡의 가사들은 내 얘기이거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다.”
   
   - 본인의 연애담이 담긴 곡은 없나. “(고민하다가) ‘paul’이라는 곡이 내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근데 사실 20%와 허구 80%를 섞은 곡이라는 점을 알아 달라. 앞으로 사랑을 소재로 한 곡을 많이 써 보고 싶다.”
   
   -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행복’이다. 나는 늘 행복한 삶을 추구하지만, 과연 진정한 행복이란 어떤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면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진정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행복을 발견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 행복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인다. “처음 말하는 것이지만 다음 앨범의 주제는 바로 ‘행복’이 될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곡에 담아내려고 한다. 절대적인 행복과 상대적인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고민하는 중이다. 단순히 남한테 멋있게 보이는 삶이 행복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다.”
   
   - 한국 사회의 체면을 따지는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체면을 따지는 문화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는 나이, 계급, 직책이 주는 위계질서가 있다. 그래서 그 나이답게, 그 직책에 걸맞게 보여지는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스무 살 때 한국에 왔을 때 이런 문화 때문에 힘들었다. 남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체면에 얽매이다 보면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억눌리기 마련이다. 이제는 체면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 가길 바란다.”
   
   오혁은 대중을 의식하며 곡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팬이 듣기에 불편한 음악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는 한때 대중적 취향을 고려해 곡을 만들려고 애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오히려 대중의 반응을 의식할수록 곡이 잘 써지지 않았다. 현재 그는 하고 싶은 음악을 자신 있게 만들고 선보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스물네 살 가수로서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뭐라고 보나. “세대갈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기성세대와 청춘의 세대는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청춘의 시각에서 노래하며 세대 간의 갈등을 줄여나가는 역할을 해가고 싶다.”
   
▲ 콘서트장에서 공연을 마친 ‘혁오’. 왼쪽부터 임현제, 이인우, 오혁, 임동건. photo 두루두루amc

   - 뮤지션으로서 우리나라의 창작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의 창작 환경은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다양성 면에서는 많이 부족하다. 최근 한 음원사이트에 접속해 인기순위를 살펴본 적이 있었다. 근데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에 올라간 곡 대부분이 아이돌 음원이거나 댄스 및 발라드였다. 인디밴드의 곡은 거의 없었다. 무엇이든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부작용이 생긴다.”
   
   - 그렇지만 K팝을 중심으로한 한류 열풍은 대단하지 않은가. “전 세계에 불어닥친 한류는 대단하다. 그렇지만 이는 대중음악에만 국한돼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한국에도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고, 또 다양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앞으로는 한국의 인디밴드들이 한류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것도 새롭지 않겠는가.”
   
   - 자신의 기사에 달린 댓글이나 관련 SNS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편인가. “(웃으며) 사실 겁이 많은 편이라 나와 관련된 댓글이나 SNS를 잘 확인하지 않는다. 혹시나 악플을 보고 상처받을까봐서다. 그렇지만 궁금하기도 해서 가끔 페이스북을 확인해 보곤 한다. 실명을 토대로 작성하는 댓글 창 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악플이 적더라.”
   
   - 현재 혁오는 월드투어를 돌고 있는데. “일본, 동남아, 미주지역을 돌았고 이제 유럽으로 공연을 하러 떠난다. 말레이시아 같은 경우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다. 미주지역에서는 뉴욕, 보스턴 등 7개 지역을 돌았는데 1000석 내외의 객석이 가득 찼다.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모여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공연을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 경청하는 문화더라. 너무 조용하게 공연을 즐겨서 내 숨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 오는 12월 올림픽공원 K-아트홀에서 콘서트를 준비한다고 들었다. “월드투어를 마치고 우리나라에서 12월에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가운데 원형무대를 중심으로 관객이 모여 즐길 수 있게 준비했다. 공연에 엄청나게 신경을 많이 썼다. 혁오의 곡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콘서트가 될 것이라 자부한다.”
   
   - 4개 국어를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혹시 해외진출 계획이 있나. “내가 추구하는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 다음 앨범은 언제 발매할 계획인가. “내년 봄에 음원 발매를 목표로 곡을 준비하고 있다. 신곡은 앞서 말한대로 ‘행복’을 주제로 한 곡이 될 것이다. 혁오와 함께 많은 팬들도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찾길 바란다.”
   
   - 30년 뒤에 어떤 모습이 되었을 것으로 상상하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 스튜디오를 세우고 싶다. 30년 뒤엔 뮤지션이면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실력은 있지만 배고픈 음악 전문가들이 많다. 특히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음악 전문가들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아날로그 전문가들이 있어야 음악은 다양해지고 발전할 수 있다. 이런 전문가들을 한데 모으고 싶다. (웃으며) 그러려면 건물을 세워야 하니 열심히 활동할 수밖에 없겠다.”
   
   - 앞으로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단순하다. 거짓이 없고 허세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삶을 추구한다.”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오혁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아쉬워했다. 그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처음으로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한 의미 있는 첫 인터뷰”라고 말했다. 오혁은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의 매니저는 그가 스무 살 때부터 홍익대 부근에서 자취생활을 할 때 함께 지낸 동네 이웃이다. 단칸방에서 서로 꿈을 키우며 응원했던 동지였다. 오혁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 동생은 현재 그를 돕고 있다.
   
   지난 9월 27일, 12월 혁오 콘서트 1회 차 예매티켓이 5분 만에 매진됐다. 지난 9월, 헤드폰 브랜드 제조사 비츠일렉트로닉스의 회장 루크 우드는 “혁오는 세계를 정복할 밴드이자 록음악을 지금도 독창적으로 재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팀”이라고 극찬했다. 아직 오혁의 음악세계를 규정 짓기는 이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음악세계를 심화시키고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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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