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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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년2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대학 강단에 다시 선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퇴임 이후에도 통계청과 국내외 통계 관련 이슈를 빠짐없이 챙겨 보고 있다. 통계 오용(誤用) 사례를 알려달라는 요청에 유경준 전 청장은 자료를 잔뜩 들고 인터뷰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통계청에서 ‘통계 바로쓰기’ 공모전을 시작한 것이나 직접 ‘오해하기 쉬운 유사통계 바로 알리기’ 같은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통계 오·남용 방지를 위한 TF’를 만든 것도 유경준 전 청장이 한 일이다.

“통계를 잘못 쓰고 통계 방식을 비판하는 사람은 무척 많지만 막상 통계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대표적 사례로는 실업률 통계를 들 수 있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에서는 2015년 8월을 기준으로 한국의 ‘청년 체감실업률’이 34.2%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통계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당시 청년실업률은 8.0%에 그쳤다. 통계청의 통계가 현실에 맞지 않다거나 의도적으로 적은 수치를 제공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현대경제연구원이 말한 ‘체감통계’에는 그냥 쉰 사람까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단순히 ‘실업(失業)’을 ‘일을 하지 않는 상태’로만 해석해 잡은 통계입니다. 그러나 이건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작성된 실업률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실업’이라는 단어의 뜻까지 확대해석한 것입니다.”

그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논란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국제노동기구의 기준에 따라 국제적으로 실업률은 만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중 일을 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며 곧바로 취업이 가능한 실업자를 집계해 나타낸다. 유럽 국가에서 청년실업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복지 시스템이 잘 정비된 나라일수록 오랫동안 실업 상태에 머무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이에 따라 한국 상황에 맞는 통계가 필요하다는 것은 통계청에서도 잘 알고 있는 바다. 그래서 이미 ‘고용보조지표’라는 것을 집계해 발표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 경력단절 여성,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까지 포함하는 고용보조지표 1, 2, 3이 마련돼 있다. 가장 넓은 범위의 청년층 고용보조지표3은 지난 10월 기준으로 21.7%이다. 공식 청년실업률 8.6%에 비해 크게 높은 편이다. 이를 따르자면 통계청의 공식실업률이 ‘낮다’고 생각한다면 고용보조지표3으로 충분히 ‘체감실업률’을 설명할 수 있다. 고용보조지표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자의적인 기준으로 임의의 통계를 만들 때는 문제가 된다.

“가장 경계하는 것은 고의적인 오류입니다. 제가 통계청장에 있을 때나 언제든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만들려는 사람들은 있어왔습니다.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류를 바로잡는 통계 교육

통계 수치를 여기저기서 가져와 임의로 비교를 한다거나 교묘하게 그래프나 증감률을 바꿔 표시하는 등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는 늘 시간에 쫓겨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 숫자로 된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보강하려는 학자나 정치인의 조합이 고의적인 오류를 반복 재생산한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는 일입니다. 통계청의 해명자료만 봐도 우리 사회에서 통계가 얼마나 잘못 사용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지요.”

이를 바로잡을 최선의 대안 중 하나는 통계교육이다.

“통계 교육은 통계적 소양을 기릅니다.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통계 결과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을 기르는 겁니다. 이 능력은 나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결과적으로는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통계 교육을 수학 교육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학시간에 공식으로 배우는 통계가 친근하게 느껴질 리가 없다. 통계적 소양을 길러내기는커녕 통계를 먼 나라 일처럼 생각하며 수많은 통계자료를 대강 훑어보는 데서 만족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거리감’은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어린이 유망직업 순위 중 1~3위가 다 통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데이터분석사, 정보처리사, 통계학자입니다. 흔히 지금을 빅데이터 시대라고 하죠.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처리하고 분석하며 해석하는 것이 바로 통계입니다.”

그래서 그는 재직 시절 통계청에 빅데이터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통계청이 보유한 공공데이터와 민간기관의 빅데이터를 연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의 인구 데이터와 민간 신용정보기관의 개인 신용데이터를 연계시켜 신혼부부에 대한 통계를 마련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민간 금융기관에서는 개인별 데이터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통계청의 가구 데이터와 연계를 한다면 우리나라 가구에 대한 금융 통계가 정확히 산출될 수 있습니다.”

그의 설명처럼 통계청은 빅데이터와의 연계 작업을 통해 신혼부부의 출산 동향, 부채와 신용 관련한 구체적이고 새로운 통계를 내놓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못지않은 통계시스템을 갖추고도 빅데이터 산업에서는 외국에 한참 밀려 있습니다. 지난번 신혼부부 통계를 마련할 때만 하더라도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해서 무척 어렵게 작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 다양한 분야의 끝이 없는 빅데이터를 통계청 데이터와 연계시킨다면 정말 멋진 통계들이 나올 텐데 여전히 이 작업이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 문제는 통계청의 자율성, 독립성과도 관계가 있다. 사실 그의 통계청장 재임기간(2년2개월)은 역대 청장에 비하면 꽤 긴 편에 속한다. 1년, 1년반 임기만 마치고 떠나는 통계청장도 많았다.

“미국은 물론 유럽 등 여러 선진국에서는 통계 관련 기구를 독립적으로 두고 임기제로 운영합니다. 정무적 판단으로 통계청 업무가 좌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죠. 무엇보다 통계청이 국가 통계의 주관기관으로 각 기관마다 산재한 통계를 컨트롤하고 국가 주요 정책의 기반이 되는 기반통계를 주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 거시경제지표인 국민계정은 통계청이 없었던 대한민국 설립 초기부터 한국은행이 주관하고 있다. 자연히 통계청과는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다. OECD 국가 중 중앙은행이 국민계정을 산출하는 국가는 칠레와 벨기에와 한국이 전부다. 그는 재직 시절부터 통계 일원화를 강조해왔다. 통계청을 ‘국가통계처’로 격상해 통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하자는 그의 주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밥그릇을 키우자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국가 통계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일은 선진국으로 가는 핵심경로 중 하나라는 신념이 확고하다.

“통계는 사회를 인식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 자료를 자의적이거나 엇갈리지 않게 제대로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고 오·남용하지 않게 교육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정부에서는 일관적이고 효율적이며 객관적인 통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 국민들은 통계적 소양을 길러 오·남용 사례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두 어려운 일이지만 해내야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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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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