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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8호] 2017.12.25

‘2017 올해의 인물’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

그의 칼끝에서 우리 사회 부끄러운 환부가 드러나다

“외상센터를 하면서 한국 사회의 바닥을 봤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 돈이 걸리면 목숨 걸고 하잖아요. 근데 돈이 아니라 윤리적 측면에 좌우되는 부분에서는 한국은 무너지는 것 같아요. 특히 공적 영역, 주인이 없고 돈이 걸리지 않은 영역에서 묵묵히 자기 일 하는 사람? 솔직히 전 그런 사람 별로 못 봤어요. 그러니까 이만하면 경제적으로는 잘살잖아요. 근데 선진국 되려면 그것만으로는 안 될 걸요. 안 될 거야….”
   
   수많은 미디어가 그를 촬영했지만 사진 속 그는 여간해서 웃지 않는다.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이야기다. 주간조선은 내부 회의를 통해 이국종 교수를 ‘2017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를 계기로 그를 만나는 만큼 그간 알려지지 않은 인간 이국종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의사로서 그가 지닌 철학, 그가 웃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12월 18일 오후 늦게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에서 이 교수와 만났다.
   
   흰 가운에 하늘색 수술모자를 쓴 채 무표정한 얼굴로 이 교수가 외상센터 전담간호사실에 들어섰다. 이 교수는 기자와 악수한 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라며 전담간호사가 가져온 편의점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그릇 안에는 김치, 흰쌀밥, 계란말이, 멸치볶음, 간장양념 불고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이 정도면 굉장히 잘 먹는 편”이라며 “보통은 햇반을 먹는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직후 시작한 인터뷰는 3시간가량 이어졌다. 이날을 포함해 3일간 병원에서 이 교수를 세 번 만났다. 그의 말은 신랄했고 단어들은 거칠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외상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겪은 의료, 소방, 군 등 사회의 공적 영역에 대한 환멸을 쏟아냈다.
   
   “외상센터는 규제로만 되는 게 아니에요. 꼭 규제 칼날을 맞지 않는 부분이라도 알아서 윤리적으로 어느 정도씩은 맞춰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윤리적인 측면을 맞추기는커녕 규제를 해도 회피할 궁리만 하는 게 현 한국의 외상센터들이에요.”
   
   
▲ 이국종 교수(오른쪽)가 권준식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 등 의료진과 함께 외상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예산 가져가는 사람 따로 있어
   
   이 교수가 말한 외상센터 설립 관련 규제는 사업계획서에 명시된 의료진 운영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외상센터는 의사 한 명당 연 1억2000만원을 지원받는 대신 외상전문의를 일반진료에 투입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빠른 처치를 요하는 중증외상환자가 언제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상센터 5곳이 첫 지정된 2012년 이후 외상전문의를 진료에 투입하다 적발된 외상센터만 해도 여러 곳이다. 지난해 9월에는 후진하는 차량에 치여 장기가 파열된 두 살배기 김민건군이 숨진 일명 ‘민건이 사건’도 발생했다. 김군은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10여곳의 대형병원으로부터 치료를 거부받다 7시간 뒤에 도착한 아주대병원에서 수술받는 도중 숨졌다. 당시 권역외상센터가 설치된 전남대병원과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설치된 전북대병원은 아이의 상태를 전달받고도 “중증외상환자로 판단되지 않는다”거나 “당직 의사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전원(傳院)을 거부했다. 이 교수는 병원에 도착한 아이의 수술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며 울분을 토했다.
   
   “몸이 빵빵하게 고무풍선처럼 부풀어올랐잖아요. 배를 열고 들어가는데 벌써 내장이 다 짓이겨졌어요. 피 나는 것 보세요. 얼마나 버티겠어요. 이 애가 첫 번째 수혈을 받은 게 병원 도착하고도 세 시간이 훨씬 넘어서였어요. 피 한 방울 못 받고 있었다고요. 외상센터고 뭐고 간에 간판 단 병원이잖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판단이 안 될 땐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자기 자식 같으면 그렇게 하나.”
   
   ‘민건이 사건’이 벌어진 지 약 1년 뒤인 지난 11월 중순, 권역외상센터의 필요성이 새삼 부각되면서 20만 국민이 청와대에 청원을 했다. 총상을 입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 오청성씨를 이국종 교수 팀이 치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열띤 여론이 반영되면서 당초 편성된 예산보다 212억원 증액된 금액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의 소감을 물었다.
   
   “미안하죠. 국민들은 순수한 뜻으로 해주시는 거잖아요. 근데 그렇게 해서 예산 많아지면 가져가는 사람들은 따로 있어요. (청원)하지 말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2011년에도 ‘아덴만 여명 작전’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리면서 권역외상센터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 교수는 “그때는 지금보다 파장이 100배쯤 컸다”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수차례 지시를 했고, 장관부터가 직접 나서 뛰었다”고 말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에 보건복지부가 헬기를 두 대 도입했어요. 중증외상환자 전용 닥터헬기라고. 저는 그때 소방헬기 타고 다녔는데, 복지부가 예산을 마련하니까 다른 두 군데가 가져갔어요. 그래서 이유를 물으니까 서해 도서 연안지역 환자들을 위해서 섬이 많은 지역에 우선 배치하기 위한 거래요. 그러면 처음부터 섬마을 예산이라고 하고 예산을 따내든지. 헬기 도입할 땐 중증외상환자를 위해 도입한다고 해놓고는. 이건 장난하는 것 아닙니까.”
   
   
▲ 지난 12월 19일 오전 이국종 교수가 중환자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금 영웅이니 뭐니 하는 것 안 믿는다”
   
   헬기를 타고 현장에 출동해 기내에서 응급의료수술을 하는 이 교수는 아직 국내에서 닥터헬기를 실물로 본 적이 없다. 2011년 두 대 배치된 닥터헬기는 인천의 가천대길병원과 전남 목포한국병원에 배치됐다. 이 닥터헬기들의 출동 건수 중 중증외상으로 인한 출동 건수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의 경우 중증외상환자들을 상대로만 출동을 하는데도 경기소방항공대를 통한 연간 출동 건수만 250차례가 넘는다. 아주대병원 외상팀은 이외에도 중앙구조단, 해양경찰, 미군 헬기 등을 타고 출동한다.
   
   이 교수는 당시 소방항공대와 일하는 시간이 괴로웠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외상팀 때문에 출동 건수가 많아지자 “기상이 안 좋다”는 등 갖가지 이유로 출동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진정성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주황색 조종복을 입은 소방항공대 소속 헬기조종사가 “기상이 나빠 비행을 못 한다”며 헬기에서 내려 도망치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기상이 안 좋아서 출동 못 한다고 하죠. 런던은 언제나 이것보다 기상이 나빠요. 갖가지 핑계가 있죠 정말.” 이 교수는 2007년 영국 로열런던외상센터에서 교육을 받았다.
   
   경기소방항공대의 비협조로 비행을 그만둔 이 교수는 2012년 들어 중앙119구조본부와 다시 비행을 시작했다. 중앙구조본부 소속으로 이국종 교수와 함께 비행한 헬기조종사 중 한 명이 석해균 선장의 5촌조카인 석회성씨다. 헬기를 통한 외상환자 치료에서는 조종사의 기량이 관건이다. 중앙구조본부와의 비행이 활발해지자 경기소방도 다시 함께 헬기 출동을 하자고 나왔다. 이 교수는 소방에 “이번엔 야간비행도 하자”고 제안했고 경기소방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2012년 초부터 야간비행을 시작했다. 현재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의 경우 전체 출동 건수의 40%가량이 야간 출동 건수라고 한다.
   
   “중증외상환자는 특히 야간의 전원이 중요해요. 왜냐면 낮에는 어떤 병원이든 의사들이 많은데, 밤에는 응급실 의사들밖에 없으니까 낮보다 수술 능력이 확 떨어져요. 실제로 사고 난 환자들이 대부분 야간, 주말, 연휴, 명절 이런 의료가 헐거워질 때 죽어요. 그렇다고 의료진한테 강요할 수 있나요. 의료진도 사람인데 쉬어야죠. 그래서 야간비행이 중요한 거예요.”
   
   2012년 복지부는 전국의 대형병원 5곳을 첫 외상센터로 지정했다. 인천 길병원, 전남 목포한국병원, 강원 연세대원주병원, 대구 경북대병원, 충남 단국대병원이다. 아주대병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그때 아주대병원을 제치고 뽑혔던 병원들은 다 아주대병원보다 잘하고 있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당시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경북대병원은 아직까지 개소하지 못하고 있고, 외상외과 진료 인력을 빼돌려 전원온 환자를 받지 못해 죽음으로 내몬 전남대병원은 한때 권역외상센터 지정 취소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현재는 건재하다.
   
   “2001년 응급의료기금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이랬어요. 응급실 만들고 응급의학과 만들고 응급의료 관련된 기금을 만들 때는 항상 맨 앞에 내세우는 게 중증외상이에요. 스토리 쓰기가 좋잖아요. 근데 예산을 딱 타고 나면 바뀌는 거죠.”
   
   18대 국회가 끝날 무렵인 2012년 4월 24일, 조선일보에 ‘중증외상센터 건립 약속, 정치인들 립서비스였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여·야 대치가 심해 민생 법안이 파기될 위험에 처한 상태인데, 소위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외상센터 관련 법안과 응급의료기금을 연장하는 법안이 포함됐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 기사에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이 치료받을 때는 수십 명의 국회의원이 찾아와 중증외상센터 건립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 모두 ‘나 몰라라’ 하니, 누구를 믿고 외상 치료에 전념해야 합니까”라는 이 교수의 발언이 실렸다. 당시 연간 400억원 규모로 편성된 응급의료기금이 사라지면 응급실 내 인력 다수가 사라질 판이었다. 이 교수가 선봉에 나서면서 응급의료기금의 금액은 연간 2000억원 규모로 확충됐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 기사로 인해 민주당 의원 중 한 명과 충돌하는 모양새가 됐다.
   
   “기사가 나가고 모 민주당 의원 지지자들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았어요. 대번에 ‘듣보잡’ 이국종이 누구예요 그러던데. 그래서 말인데 국민들이 지금 영웅이니 뭐니 하는 것 털끝만큼도 안 믿습니다 저는. 사실 특정 정치인을 지칭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번 김종대 의원 건하고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그때 욕 세례를 받으면서 환멸을 느꼈죠. 나 같은 사람한테 그렇게 해서 뭐해….”
   
   
▲ 아주대병원의 미군 더스트오프팀 전용 헬기착륙장. 야간에도 착륙할 수 있도록 불이 밝혀져 있다.

   “죽는 게 나았는데 왜 나를 살려놨냐”
   
   이국종 교수는 1969년생이다. 1988년 아주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아주대 의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2002년 아주대병원에 외상외과 의사로 임용됐다. 그의 나이 서른셋 때였다. 이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 의사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다. 어떤 면에서 ‘스타 의사’로 보일 수도 있다.
   
   중증외상으로 외상센터를 찾는 이들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를 찾는 중증외상자의 사고 원인은 교통사고와 산업재해가 대부분이다. 이 교수는 수술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피투성이가 되면서 밤잠 설치며 중증외상환자들을 돌본다. 이 모습이 여러 미디어를 통해 조명되면서 ‘나도 이국종처럼 스타 의사가 되겠다’는 후학들의 다짐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수가 바라보는 스스로의 모습은 달랐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망한 인생”이라고 했다.
   
   “나는 잘못된 인생을 산 거예요, 잘못된 인생을. 한국에선 이런 걸(외상센터) 하면 안 돼요. 괜히 내 조용한 인생을 망친 것 같아.”
   
   이 교수는 ‘학생 때부터 교수님 다큐멘터리를 봤다’며 외상센터를 지원하는 학생들일수록 더욱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오히려 제 환자들은 더 비참한 경우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외상센터에 실려오는 환자들은 대다수가 소위 ‘없는 사람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더라도 후유증으로 직장을 잃고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환자들이 저한테 고마워하겠어요? 죽는 게 나았는데 왜 나를 살려놨냐. 이런다고요. 그냥 전 그런 생각이에요. ‘이런 거지 같은 직장생활도 그냥 벌어먹고 살려고 한다.’ 그렇게 기대 없이 사는 거예요. ‘그냥 이거 하면서 먹고살았잖아’ 그 생각 하나로 가는 거예요.”
   
   3일간 만난 이 교수는 한국 사회에 지쳐 있었다. 온통 절망만을 얘기하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밝은 기운을 주고자 “많은 학생들이 당신을 롤모델로 여긴다”는 말을 전했다.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 친구들한테 외상외과 하라고 권할 수 없어요. 전 주위 사람들한테도 이거 하라고 안 권해요. 한국 사회에서 뭘 하면 이렇게 이용만 당하거든요. 기사에는 내 사진 쓰고 내 이름 박히는데 정작 예산은 다른 데서 가져가고. 가져가는 걸로 뭐라 하는 게 아니에요. 밥상을 뺏어갔으면 잘 먹기라도 해야죠. 의사 빼서 다른 진료 환자 죽게 만들고.”
   
   기자가 “그래도 외상센터는 생명하고 직결된 분야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환자의 만족도는 오히려 더 세세한 것에서 크게 와요. 이비인후과에서 호흡기 치료를 받고 머리가 맑아졌다, 성형수술이 잘돼서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 그런 게 더 커요. 생명을 살린다? 그건 건방진 생각이에요. 제가 만약 그런 생각 갖고 했으면 잠시도 못 해요. 억울할 것 아니에요,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을 하는데. 전 그런 생각 털끝만큼도 없어요. 그냥 자리에서, 직업이니까 일하는 거지, ‘내가 이 정도 환자는 살릴 수 있다’ 이런 프로페션(profession)에 관한 문제지, 고맙니 뭐니 이런 건 없어요.”
   
   이날 새벽 권역외상센터 2층 중환자실에서 회진하는 이국종 교수를 다시 만났다. 5층짜리 별도 건물로 건립된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에는 총 100병상이 있다. 중환자용이 40병상, 일반 환자용이 60병상이다. 이 교수의 신랄한 비판은 계속됐다.
   
   “‘이국종 교수 왜 이렇게 비판적이냐’ 하셔도 좋아요. 외상센터 건립한다고 지금 겉으로는 번들번들하죠. 속으로는 개판이에요. 안 되는 일을 하는 거라고요. 간호사 한 명이 두세 명 환자를 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데 네다섯, 대여섯을 보면서 외상센터를 하겠다는 건 아예 말이 안 돼요. 이게 우리 사회 전반적 모습이에요. 겉만 번들번들하지. 정부 지원받아 외상센터를 하겠다면 임금을 더 주고서라도 간호사를 뽑아야죠. 진정성이 없는 거라고요.”
   
   
▲ 이국종 교수가 헬기에 탑승할 때 지니는 치료 키트.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생명 살린다고 생각하면 잠시도 못 해”
   
   지난 12월 20일 오후 10시 권역외상센터 3층의 한 수술실. 이국종 교수, 권준식 교수를 포함한 외상외과 전문의 세 명과 대여섯 명의 보조인력들이 내장을 드러낸 채 누워 있는 환자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한 달 전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차체에 끼인 사고를 당한 뒤 아주대병원에서만 6번의 수술을 거친 환자였다. 수술실 한편에 놓인 용기에는 환자로부터 흘러나온 검은 피가 엉긴 채 담겨 있었다. 투명한 통 두 개에 연결된 호스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수술을 시작한 지 50분이 지날 때쯤 이 교수가 고개를 들고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음악 좀 켜줄래?” 수술실 내에 놓인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록음악이 흘러나왔다. 미국의 록밴드 린킨파크의 ‘페인트’였다. 10여분이 흐른 뒤, 환자의 배를 닫기 시작하는 의료진을 뒤로하고 이 교수가 먼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수술이 굉장히 잘 끝났어요. 피가 안 멎어서 걱정이었는데 한시름 놨습니다.” 그가 이끄는 외상센터 의료진은 지난 1년간 1170여회의 응급수술을 했다. 수술 과정에서 피로할 때 듣는 그의 선곡 리스트에는 린킨파크 외에도 콜드플레이, 뮤즈 등 해외 록밴드의 음악이 담겨 있다.
   
   현재 이 교수의 삶은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다. 알려진 것처럼 그의 왼쪽 눈 망막은 심하게 손상됐다. 잠을 못 자고 일하는데 신경 쓸 일은 많아 안압이 높아진 탓이다. “교수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자 그는 말했다. “‘망막은 막막하다’는 말이 있어요. 잠자는 게 제일 중요한데 잠을 못 자니까. 이렇게 계속 가다가 언젠가 시력을 잃겠죠.” 이 교수는 센터장실 옷장 안에 걸린 비행복을 뒤적이며 말했다. 여러 벌의 비행복에는 일본 요코스카에 주둔한 미 태평양함대, 샌디에이고에 있는 미 소방항공대 등의 비행패치들이 각각 붙어 있었다. 그는 이 비행패치들이 부착된 비행복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듯했다.
   
   지난 11월 북한군 오청성씨가 더 가까운 다른 외상센터를 두고 아주대병원으로 실려왔는지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이 교수가 2003년부터 주한미군과 교류하며 쌓은 신뢰와 교감 때문이다. 판문점에 쓰러진 오씨는 미군 더스트오프(Dustoff·항공의무후송팀)팀의 헬기에 실려 수원의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2003년에 주한미군 의무사령관이 먼저 절 찾아왔어요. 그때 한국에선 다들 ‘너 뭐하는 사람이냐’ 할 때였는데. 미군은 외상 수술이 뭔지 아니까요. 그리고 더스트오프팀과의 교류가 시작된 거죠. 이번에 오청성만 온 게 아니라 미군은 언제든 왔어요. 심지어 CIA나 펜타곤(미 국방부) 사람들이 우리 외상센터에 와서 준비태세 점검도 해요. 미리 점검 일시를 안 주고 병원 1층 로비에 들이닥치는 식이죠. 이런 미군들하고만 같이 지냈어요. 그때 주한 미군 의무사령관으로 계시던 분은 육군 대령이었는데 다음 임지인 이라크 바그다드 최전방에서 헬기로 부상자 운송하다 추락해서 전사했어요. 우리 군 대령이 이런 전방에 나설까요? ‘양키 고 홈’만 할 게 아니라 배울 건 배워야죠.”
   
   이 교수는 인터뷰 내내 ‘진정성’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애초에 한국이란 나라는 진정성이 없는 국가 같아요. 진짜 없어요. 선생님(기자)도 없고 저도 없어요. 우리 모두가 없어요.” 그가 말하는 진정성이 무엇인지는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3일간의 취재 기간 내내 기자의 휴대폰에는 밤낮으로 “환자가 들어왔다”는 전화가 왔다. 이 교수는 “헬기 이송 환자가 들어오니 촬영하라”며 오전 1시에 기자의 단잠을 깨우기도 했고, 진눈깨비가 내리는 밤 11시에도 병원 옥상의 헬리콥터 착륙장에 올라가 이송 시스템을 설명하기도 했다. 모두가 잠든 오전 2시에도 중환자실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사흘 동안 이어진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가 웃는 모습으로 나온 사진이 드문 이유가 어렴풋이 이해됐다.
   
이국종을 선정한 이유
   
   1위 이국종, 2위 트럼프, 3위 방탄소년단
   
   주간조선은 지난 12월 15일 기자들의 투표와 회의를 통해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를 선정했다. 이 교수는 지난 11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북한군 하전사 오청성씨를 치료했다. 이 교수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음지에서 묵묵히 해냈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라는 점에서 기자들의 압도적인 추천을 받았다. 한 기자는 “스러지는 생명을 방치하는 나라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이라며 그를 ‘올해의 인물’로 추천한 이유를 밝혔다. 이 교수는 오씨가 위중한 상태를 넘긴 뒤 “귀순병사의 몸속에 우리 국민의 피 1만2000㏄가 세 번 돌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날 투표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상반기 고조된 북핵 긴장 국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고,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올해의 인물’로 추천받았다. 3위로는 올해 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선정됐다. 이외에 올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기자들의 추천을 받았고, 인물은 아니지만 올해 세계를 뒤흔든 암호화폐 ‘비트코인’도 다수의 표를 받았다. 직장에서 사투하는 ‘워킹맘’의 이야기를 다룬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가공인물), 11월 중순 자유를 찾아 귀순한 오청성씨도 ‘올해의 인물’로 추천받았다. 주간조선은 2016년 ‘올해의 인물’로 구글 딥마인드사(社)의 인공지능 ‘알파고’를 선정했고, 2015년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와 싸운 대전 건양대병원 간호사들을 선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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